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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160화 (160/266)

# 160

<공략자들 160화>

기이한 대치 상황이 이루어졌다.

발터와 인한, 그리고 허공에 떠 있는 정체 모를 검은 물체가 삼각형을 이루고 서로를 견제했다.

-발칙한 놈들이로군.

검은 물체가 꿈틀대며 뭉치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더니 형태를 바꿨다.

여전히 검은 입자를 흘려 댔지만, 그 모습은 분명 이전의 뱀 형태와는 다른, 박쥐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다.

-감히 최하위 위계의 존재인 주제에 어떻게 나를 물러나게 한다는 것이냐.

“뭐라고 지껄이는 거야? 왜 끊겨서 들려?”

발터가 거칠게 자신의 귀에 손가락을 집어 넣으며 말했다.

씨앗을 가지지 못한 존재는 아발론에 대한 것을 알아들을 수 없다. 발터는 씨앗이 없기 때문인지 귀로 제대로 된 정보를 알아듣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검은 박쥐에게서 다시 한 번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나는 그다지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네게서 확인할 것만 확인하고 돌아갈 것이다. 그만 저항하고 항복하라.

귀찮은 듯, 하지만 왠지 서두는 듯 들리는 목소리였다.

지금까지의 왕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발터가 피식 웃으며 왕에게 말했다.

“다짜고짜 쳐들어온 새끼가 한 말을 믿으라고?”

그 말에 검은 물체는 코웃음을 치며 물체의 형상을 발터의 쪽으로 향했다.

-우매하군. 어차피 너는 나를 어찌하지 못한다. 이건 이기고 말고의 싸움이 아니다. 시간의 싸움이지. 결국 네 마력은 떨어질 테고, 나는 끝내 네 근원을 확인하게 될 테다.

“그거야 해보고 나면 알게 될 일이다.”

발터가 앞으로 육중한 소리가 나게 발을 뻗었다.

묵직한 소리와 함께 지면이 울렸다.

그것을 피하며 검은 박쥐가 말을 이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군.

검은 박쥐에게서 답답한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물을 죽일 수 있는가? 불을 죽일 수 있는가? 바람을 죽일 수 있는가? 하찮은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물이 마르기를, 불이 꺼지기를, 바람이 멈추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그러면 불사신인 내가 그저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일 아닌가.

검은 박쥐의 말에 인한은 아연한 기분이었다.

지금까지와의 왕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그는 정말로 전투가 길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시간이 아까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귀찮아서 그런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 땅은 죽음으로 가득 찰 것이다. 네가 버틸수록 이 땅에 차오르는 죽음의 수는 늘어난다. 모든 생명이 죽은 후, 땅이 역병에 물들고 나무가 독을 내뱉어야 그만두겠나?

“네가 그만두고 지금 물러가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발터의 말에, 검은 박쥐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그럼 그렇지.”

역시, 왕은 왕이다.

그토록 처참한 죽음을 만들어 내고도 왕은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다.

곧 검은 박쥐가 말을 이었다.

-이것은 나의 의지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고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짧은 그 말로는 검은 박쥐가 하는 말을 전부 이해하기는 불가능했다.

의문이 머릿속에 가득 맴돌았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인한이 먼저 움직였다.

쿠웅!

순식간에 지면을 박찬 인한의 몸이 허공에 떠 있는 검은 박쥐에게 도달했다.

-……우매하구나.

투확!

휘둘러진 주먹에 검은 박쥐의 몸이 풍선처럼 터져 버렸다.

하지만 인한은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감촉이 없어.’

검은 박쥐는 인한의 주먹에 부딪힌 순간 힘없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발터의 공격을 받고도 무사했던 이유를 인한은 이제야 알 수 있었다.

검은 박쥐는 공격을 단순히 피한 게 아니라, 오러의 영향조차 무시했다.

[신경독에 중독되었습니다.]

[피부독에 중독되었습니다.]

[흑사병에 걸렸습니다.]

[패혈증에 걸렸습니다.]

[골수염에 걸렸습니다.]

……

“쿨럭!”

거친 기침 소리와 함께, 핏물이 흘러내렸다.

고작 한 번의 부딪힘이었거늘, 수도 없이 많은 천문이 떠올랐다.

‘직접 전투를 하면 이 정도란 말인가……!’

중독 면역과 물리 면역, 거기다 오리하르콘 슈트의 디버프 회복 효과와 패시브 스킬 리커버리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 모든 걸 뚫고 독과 병균이 침투했다.

순식간에 오러를 피워 올려 태워 버렸지만, 그것과 거의 비슷한 속도로 독과 병균이 침투해 왔다.

“감히!”

후욱!

어느새 인한의 옆에 발터가 도달해 있었다.

무지막지한 기세가 인한을 덮친다.

사실상 특별히 공격다운 공격을 펼치지 않는 왕보다는 발터의 공격이 더 무서운 상황이었다.

‘쯧!’

인한도 가만히 맞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오러를 사용하려면 독과 병균의 침투를 막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샐러!’

콰아아앙!

인한이 주먹을 휘두른 순간, 발터의 전신에 폭발하는 듯한 화염이 터져 나갔다.

발터의 온몸이 불에 물들었다.

아무리 발터라지만 속성력에 의해 타오르는 불꽃에 주춤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

그때, 발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한의 커다래진 두 눈에 발터의 커다란 주먹이 도달했다.

콰앙!

인한의 몸이 지면에 처박혔다.

발터는 전신에 화염을 휘감은 채, 인한보다 조금 늦게 지면에 착지했다.

“고작 이 정도로 어떻게 해 볼 생각이었나?”

후욱! 퍼엉!

오러를 전신에 두르고, 순식간에 화염을 밀어내며 터뜨려 버린 발터가 비릿하게 웃었다.

인한이 비틀대며 일어섰다. 땅바닥에 독과 병균의 덩어리를 뱉어 낸 인한이 버럭 외쳤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란 말이다!”

인한이 지면을 가리켰다.

왕에게서 떨어진 가루가 지면을 푸르뎅뎅하게 변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처리하겠다는 말이다. 너는 저기서 찌그러져 있어.”

인한은 대답하지 않고 마력을 끌어올렸다.

순식간에 언더 코어에서 출발한 마력에 미드 코어의 마력이 호응했다.

“중압.”

인한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

발터는 전신에 가해지는 기이한 압력에 눈가를 찌푸렸다.

발터는 후방으로 몸을 날렸다. 아니, 날리려고 한 순간, 이번에는 하체에 기분 나쁜 무게를 느꼈다.

‘물?’

물방울이 무릎까지 휘감겨 있었다.

발터는 오러를 흘려 넣어 발을 속박하고 있는 물을 터뜨린 후, 몸을 날렸다.

하지만 후방에 돌풍과 함께 화염이 몰아쳐서 발터의 몸이 튕겨져 나갔다.

‘이건…… 위험하군.’

발터가 등을 돌린 순간, 인한의 주먹이 코앞에 도달해 있었다.

“제로 어택!”

우우우우웅!

인한의 주먹에 휘감긴 주먹에 섬뜩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발터가 채 방어를 하기도 전에, 인한의 주먹이 발터의 복부에 닿았다.

‘이, 이런, 힘 조절이……!’

주먹을 뻗은 순간, 인한의 표정에 낭패감이 서렸다.

급격히 상승한 마력 탓에 오러의 출력이 생각보다 더 강력했다.

쿠웅!

거친 폭음은 울리지 않았다.

발터의 육체가 크게 출렁이며 내부로 충격이 전달되는 것이 보였다.

인한은 천천히 시선을 들어 발터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아무리 발터가 불굴의 육체를 가지고 있어도 내장까지 전달되는 충격을 상쇄시키지는 못했을 게 분명했다.

제로 어택은 두꺼운 표면을 뚫고 내부로 침투하는 공격이었기에.

하지만.

발터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씨익 웃었다.

“고작 이 정도 공격을 하려고 그 난리를 친 건가?”

발터의 얼굴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대체 무슨!’

죽었으면 죽었지, 절대 저렇게 맞고도 멀쩡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었다.

인한이 놀라 잠시 멈칫했을 때였다.

발터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주먹을 치켜들고, 그대로 인한에게 휘둘렀다.

콰앙!

인한은 발터의 공격을 몸으로 받아들였다.

한 방이 안 된다면 두 번째 공격을 펼칠 뿐이다.

카가가각!

발터의 공격이 오리하르콘 슈트를 두들겼다.

한순간 오리하르콘 슈트의 내구도가 팍 떨어졌지만, 인한은 개의치 않고 그대로 발터의 오른팔을 겨드랑이에 껴서 꽉 붙잡았다.

그리고 오러를 휘감은 주먹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발터의 가슴을 꿰뚫듯 오러가 파고들었다.

하지만 인한의 눈에 발터의 반대쪽 손이 그 자신의 몸에 닿아 있는 걸 보았다.

이번에도 공격이 통하지 않았음을 느낀 인한이 발터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며 거리를 벌렸다.

발터는 목을 뚝뚝 꺾고 양쪽 어깨를 휘휘 흔들며 씨익 웃었다.

“내가 내 약점조차 알지 못했을 것 같은가?”

발터와 인한의 최강의 무기는 불굴의 육체다.

하지만, 내부는 아무리 단련해도 강해질 수 없는 부분이다.

육체를 뚫고 파동으로 충격을 주는 종류의 공격에는, 내장에 마력을 코팅해 막아 내는 것 외의 방법이 없다.

“그런 공격이라면, 비슷한 마력량의 파동을 몸에 흘려 넣어서 상쇄시키면 되는 것 아닌가?”

“그게 무슨 괴물 같은……!”

자기 자신의 몸에 마력을 흘려 넣는 것도 미친 짓이다.

그런데 공격을 상쇄하고자 마력을 흘려 넣었다고?

‘마력량이 조금이라도 틀리면 내부가 터져 버린다!’

흘러 들어온 마력을 상쇄시키고자 마력을 불어 넣는다.

말이야 쉽지, 조금이라도 힘 조절에 실패하면 두 마력이 동시에 육체를 파괴시킬지도 모르는 방법이었다.

천부적인 재능과 전투의 센스, 거기에 뛰어난 기술까지 합쳐진 방어법이었다.

인한이 아연함을 느끼고 있을 무렵, 기이한 기척이 지근거리까지 다가온 것을 느꼈다.

인한이 신음을 흘리며 옆으로 몸을 날렸다.

콰아아아아!

검은 입자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분명 박쥐 한 마리 정도의 양이었을 텐데, 분열이라도 한 것인지 그 양이 대형 몬스터 정도로 많아져 있었다.

-어처구니가 없군. 내부 분열인가?

검은 입자는 마치 뱀처럼 허공을 이리저리 유영하다 멈춰 섰다.

“꺼져. 이건 내가 처리할 거니까.”

발터가 인한을 노려보며 말했다.

인한의 표정이 절로 찌푸려졌다.

‘……강한 척을 하는군.’

발터의 모습을 본 인한은 단숨에 그의 상태를 눈치챘다.

독과 병균들이 그의 몸을 침식하고 있었다.

인한과의 전투 전까지는 침투해 온 것들을 마력으로 꽉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인한의 공격을 상쇄하고자 마력을 흘려 넣으면서 몸속에 독과 병균이 퍼진 것이다.

‘계속해서 마력으로 독을 태우고 있는 거겠지만…… 소름이 다 돋는군.’

그럼에도 발터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싸울 수 있다는 듯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저 정도 되면 광기(狂氣)에 가깝다.

그때, 인한의 옆에 있는 나무에서 의식이 느껴졌다.

-동반자여.

인한은 화색을 하며 다급히 외쳤다.

“이쪽으로 아무도 오지 말게 하십시오.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외곽으로 빠지세요. 저와 발터 정도 되지 않으면 위험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자 말을 건 것이 아닐세.

드반은 잠시 뜸을 들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 둘로는 역부족이야.

짙게 가라앉은 목소리.

콰아앙!

그사이, 발터가 갑자기 지면을 박차더니 검은 안개에 돌진했다.

오러에 의해 입자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덕분에 수가 줄어든 듯 보였지만, 순식간에 다시 원상태로 돌아와 발터를 휘감듯 덮쳤다.

-약하다거나, 강하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닐세. 그 누구도, 설령 옛 왕들조차도…… 쿨럭!

갑자기 드반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무슨 일입니까!”

-흑사(黑砂)의…… 주인에게서 승리하지 못했으니…….

목소리가 이상했다. 인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설마?’

좀비와 같은 몬스터가 되어 죽어 가던 엘프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내게 남은 시간이 길지 않네. 그러니 잘 듣게. 어차피 죽을 목숨이라면, 도움이라도 되고 죽어야 할 테니.

“지금 어딥니까.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인한의 마력은 그 검은 가루를 태워 버릴 수 있다.

-어차피 왕을…… 쿨럭! 물리치지 못하면 죽음뿐이라네…….

분명 아발론과 관련된 이야기는 할 수 없었던 드반이었다.

하지만 그가 지금 왕의 이름을 담았다.

인한은 본능적으로 그가 자신에게 가해진 금제에 저항하며 마지막 말을 내뱉는다는 것을 느꼈다.

-그는 병마의 왕…… 온 세계가 질병과 극독에 휩싸인 세계에서 찾아온…… 쿨럭! 그자는 죽일 수 없어. 그의 세계에 죽음이란 것은 없네. 어떤 힘도 그것을 쓰러뜨리게 할 수 없어…… 숨 쉬는 것만으로 살아 있는 생명을 자신의 권속으로 만들어 내고, 단 한 줌의 가루만 있어도 세계를 멸망시킬 수 있는…….

“그만, 그만 말하십시오. 바로 치료하면 될 일입니다! 저건 제가 어떻게든…….”

-듣게!

드반의 목소리는 끝내 발음조차 어눌하게 들릴 정도에 이르렀다.

당장 멈추게 하고 싶지만, 드반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의지에 인한이 숨을 머금었다.

-지금…… 병마의 왕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드반의 말에, 인한의 눈가가 거세게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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