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158화 (158/266)

# 158

<공략자들 158화>

괴물 같은 아이템이 하나 탄생했다.

마력 스테이터스 750포인트를 상승시키는 것부터가 일단 엄청난 효과인데, 그 외에 두 가지나 부가적인 효과가 더 있다.

하지만 인한을 더 당황스럽게 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영약 하나 먹는다고 스킬이 생기다니.’

고작 영약을 섭취하는 것만으로 <넬레바나의 가호>라는 패시브 스킬이 따라온다.

인한도 이런 현상은 처음이라 그 효과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어 그저 멍하게 있었다.

그런데 엘프 원로 한 명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인한에게 말을 걸었다.

“자, 어서 이름을 정하게. 레시피는 이미 양피지에 적어 놓았네. 이름만 정하면 끝이야!”

그 말에 인한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이름을 짓다니요. 여러분들이 지어야지요.”

하지만 엘프들은 오히려 그런 인한의 말이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동반자여, 자네가 만들었으니 자네가 짓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어찌하여 우리더러 지으라고 하는 겐가?”

“전 커다란 길만 제시했지, 여러분이 다 작업하지 않으셨습니까. 넬레바나의 여러분들이 정하시죠.”

최초 제작 아이템에 이름을 붙이는 것은 꽤 명예로운 일이다.

한 번도 세상에 나오지 않는 물품을 만들어 낸 데다, 거기에 자신의 이름이 천문으로 새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한은 딱히 영약을 제작했다는 명예가 필요 없었다.

어차피 효과만 좋으면 뭐가 됐든 상관없었기 때문이다.

“일을 시작한 것도, 재료를 모은 것도, 방향을 제시한 것도 인한 씨였습니다. 인한 씨가 정하시지요.”

그 와중에 들려온 일란의 조용한 목소리는, 묘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인한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동안 고민하던 인한은 이름을 결정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넬레바나의 호의]

영약 이름이라고 생각하면 꽤 이상한 이름이었다.

하지만 인한은 이게 딱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엘프들이 저마다 감격스러운 말들을 쏟아 냈다.

“하하! 고맙군, 동반자여.”

“우리 마을의 이름이 영양에 붙다니! 영광일세!”

인한의 입장에서는 조금 속 보이는 짓이었다.

그런데 엘프들에게는 그저 고맙게만 느껴진 듯했다.

인한은 그저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때, 일란이 물어 왔다.

“영약은 바로 복용할 생각이십니까?”

“예, 기왕 완성이 됐는데 바로 해 봐야죠.”

복용하면 얻게 된다는 패시브 스킬의 효과가 궁금했다.

“그렇다면 여기가 아닌 넬레바나의 밑에서 섭취하시길 바랍니다. 그곳은 마력과 속성력이 풍부한 곳이니, 체내의 마력 흐름을 제어하기 수월할 겁니다.”

“아, 그렇겠군요.”

인한이 눈을 빛냈다.

“이야,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두근 뛰더군.”

“자네 덕분에 한동안 재밌게 놀았어.”

“근데 저걸 다시 못 만드는 게 아쉽지 않나?”

“그렇지 뭐. 비싸디비싼 재료를 엄청나게 퍼부었으니.”

“꼭 복용한 후의 경과를 알려 주게. 심히 궁금하군.”

제작에 참여했던 엘프들은 인한에게 한마디씩 하거나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해산했다.

인한은 자리를 뜨는 엘프들 한 명 한 명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곧장 세계수로 향한 인한은 평소 앉던 자리에 앉아, 숨을 길게 내쉬고는 무쇠솥에 담긴 영약을 바라보았다.

영약의 양은 대략 1리터 정도였다.

인한은 마력으로 솥의 표면에 묻은 한 방울까지 전부 걷어 내서 목 뒤로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분명 액체 상태였을 텐데, 입에 들어가서 식도를 지날 때쯤엔 영약이 기체처럼 순식간에 형태를 잃었다.

더 정확하게는, 인한의 마력에 닿은 순간 마력으로 치환되며 곳곳의 마력로에 스며들었다.

그리고 한순간, 마력이 요동쳤다.

* * *

30층 필드.

해태 길드는 벌써 필드의 후반부, 메인 던전이 있는 곳까지 진행되었다.

격변의 날에 의한 변종 몬스터 때문에 진행이 상당히 더뎠지만, 크게 다치는 사람 한 명 없이 나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치는 사람 없이 진행할 수 있는 것엔 다른 누구도 아닌 이창훈의 역할이 컸다.

“캬! 인정? 인정하십니까? 이거 인정 안 하면 최소 랭커 딱지 떼야 하는 각 아닙니까?”

간부들의 회의 때 이창훈이 킬킬대며 웃었다.

그에 이정환이 피식 웃었고, 임태호는 무슨 말인가 알아듣지 못해서 멀뚱멀뚱 중앙에 피워 둔 모닥불만 바라보았다.

“그래그래, 오늘도 변종 몬스터 열 마리가 모여 있는 걸 네가 찾아냈으니까. 잘했어. 고맙다.”

“흐흐흐.”

이정환이 칭찬하자, 이창훈이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해태 길드에서 사상자를 내지 않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정찰을 이창훈 혼자서 다 책임진 것이다.

현재 이창훈이 테이밍한 몬스터의 수는 총 27마리.

이창훈은 그중 한두 마리만 곁에 두고 나머지는 전부 정찰에 활용했다.

이창훈의 몬스터는 도주 능력과 탐색 능력이 뛰어나서 척후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다.

몬스터의 위치 파악이 정확하게 되자, 사냥의 주도권이 몬스터 쪽에서 해태 길드 쪽으로 넘어왔다.

물론 정찰이란 것은 완벽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때때로 예상되지 않은 몬스터와 조우하기도 했다.

하지만 베테랑 헌터들인 해태 길드에게 그 정도는 별것도 아니었다.

“하하, 역시 창훈 님은 대단하십니다.”

“흐흐흐! 역시 알아주는 건 겐지 뿐이구만!”

“저희야 할 수 있는 게 전투뿐이지만, 창훈 님은 전투보다 더 중요한 곳에서 활약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비록 가진 바 힘이 적지만, 그것을 활용하는 능력! 감복했습니다!”

“…….”

악의는 1퍼센트도 없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이창훈의 약점을 사정없이 찔러 대는 겐지였다.

이창훈이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아니, 대체 내 몬스터들은 왜 이런 건데?’

이창훈은 인한과 같이 탑을 올랐을 무렵부터 묘하게 강해 보이는 몬스터는 길들이지 못했다.

마나 스킬의 등급이 높아지면, 테이밍 기술이 높아지면 어떻게 될까 싶었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결국 이창훈이 키우는 27마리의 몬스터들은 모두 강하다는 느낌은 전혀 주지 않는 놈들로만 구성이 되었다.

하물며 절대 전투에 쓸모없는 놈들이 아닌데도 말이다.

“응?”

그 뒤로 한참을 잡담을 나누던 중이었다.

갑자기 이창훈이 고개를 갸웃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왜 그러십니까?”

겐지가 눈을 껌뻑이며 물어 왔다.

그런데 이창훈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졌다.

마나 스킬 상승과 몬스터 테이머로서의 숙련도가 상승하며, 이창훈은 새로운 스킬을 몇 가지 얻게 됐다.

그중 하나.

몬스터와의 시야 공유.

이창훈은 지금, 정찰에 나가 있던 몬스터 하나의 시야로 세상을 보고 있었다.

“시, 시발, 저 자식이 왜……!”

이창훈의 표정이 점점 더 심각하게 굳어졌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린 이정환이 이창훈의 팔을 확 잡아챘다.

그러자 이창훈이 번뜩 정신을 차리며 이정환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정환이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빨리 말해.”

무엇을 본 것인지 잔뜩 굳어 있는 이창훈이 말을 더듬거렸다.

“저, 적이 오고 있…….”

“빨리!”

“적이 오고 있습니다! 남서쪽에서 100명 정도!”

“명?”

이 필드 깊숙한 곳에 몬스터가 아닌 100명에 달하는 사람이라니?

“키, 킬러예요. 얘네들, 킬러입니다! 엄청나게 빠르게 달려오고 있어요! 도망쳐야 해요. 설명은 나중에 할 테니까 일단 도망부터 칩시다!”

“길드가 아니라 킬러라고? 거기다 도망이라니?”

이정환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헌터인 줄 알았다면 길드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은가.

30층 언저리에 오를 수 있는 헌터 길드는 전 세계로 구분하면 20개 정도는 있는 편이다.

그런데 이창훈은 지금 달려오는 이들이 킬러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챘다.

그뿐 아니다.

해태 길드는 강하다.

인원수는 120명이 조금 넘는 정도지만, 개개인의 실력은 다른 길드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

거기다 단체전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이정환의 존재가 있다.

그리고 겉으로는 약해 보이는 이정환의 몬스터들조차 난전에서는 큰 위력을 발휘한다.

고작 킬러들 상대로는 도망칠 이유가 없는 것을 이창훈도 알고 있을 텐데, 왜 도망치라고 하는지 이정환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이창훈의 말에 반응하는 이는 또 있었다.

“이 새끼. 또 쫄았냐? 킬러 새끼들 잘 만났어. 그런 사회악은 족쳐야지.”

임태호가 비릿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런 임태호를 보던 이창훈이 답답하다는 듯이 외쳤다.

“됐고 일단 도망치자구요! 그, 그 자식이 있어요!”

“그 자식?”

“레오 뒤보아! 그 또라이 자식이 있다구요!”

* * *

엘프 전사들과 대련을 하던 발터가 고개를 저었다.

“허접하군.”

발터가 실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발터의 주위에는 서른 명이 넘는 전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전사들은 끙끙대며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발터는 혀를 쯧쯧 찼다.

“너희는 백병전 실력이 왜 이렇게 떨어지는 거지?”

“친구여, 우리는 자네와 같이 전투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는다네.”

“익숙하지 않은 것과 약한 것은 다른 문제다. 그런데 너네는 그냥 약해.”

발터의 오만하고 직설적인 말투는 좋게 받아들이려 노력해도 기분 나쁘게 들렸다.

하지만 엘프들은 그런 발터의 말을 오히려 시원시원하고 솔직한 성격으로만 여기곤 했다.

이번에도 엘프 전사장이 픽 웃으며 답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부족하지 않다네. 자네가 유난히 강한 거지.”

“웃기는군. 자기 합리화에 불과하다.”

하지만 자기 합리화라고 하기엔 발터의 무위는 객관적으로 너무나 뛰어났다.

검은 탑 랭킹 1위, 즉, 지구에서 제일 강한 존재이니 웬만해서는 다 약해 보일 게 뻔했다.

그 뒤로 대련은 계속됐다.

발터는 생긴 것과 달리 상당히 기교를 잘 사용하는 사내였다.

굳건한 육체를 통해 파워풀한 공격을 펼치는 것은 물론이고, 고난이도의 기술과 복잡한 마력 운용마저 사용했다.

힘과 기술이 적절히 섞여 있는 실력자.

극한으로 단련한 기술과 육체, 그리고 그것에 받침이 되는 마력.

그는 무인(武人)으로서 완성되어 있는 순수한 강자였다.

“친구여, 땀도 뺐겠다. 시원하게 온천욕이나 즐기지 않겠나?”

“그래, 그거 좋지.”

전사의 말에 발터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이전에 온천에 들어갔던 경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뚜벅뚜벅 걸어가던 때였다.

발터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며 세계수 쪽을 바라보았다.

“저기에서 다들 지금 뭐 하고 있나?”

드반에게 안내를 받았을 때, 가선 안 되는 곳 중 하나로 설명받은 방향이었다.

“아, 친구여. 저곳은 이 대지의 어머니, 세계수 넬레바나가 있는 곳이라네.”

“넬레바나? 그건 너희 마을 이름이 아닌가?”

“세계수가 곧 우리고, 우리가 곧 세계수지.”

“근데 묘하군. 이 마력은 뭐지?”

발터가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다 씨익 미소를 지었다.

‘보나마나 최인한이군.’

최인한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한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더니, 또 강해질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무시무시한 놈. 후후!’

인한을 떠올리자 피가 들끓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뜬금없이 나타난 괴물 같은 헌터.

3년 전에는 무언가 2퍼센트 부족한 듯한 모습이었지만, 다시 보게 된 인한은 그때의 부족한 것을 채운 듯했다.

그런데 거기서 더 강해진다?

“크하핫!”

발터가 저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렸다.

엘프 전사들이 의아한 눈으로 발터를 바라보았지만, 발터는 아랑곳 않고 즐겁다는 듯 눈을 빛냈다.

금세 온천에 도착한 발터가 상의를 탈의한 순간이었다.

우웅!

발터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먼 곳을 바라보았다.

“저건 또 뭐야?”

하늘에서 새까만 안개를 휘감은 덩어리가 떨어지고 있었다.

-네가 또 하나의 변수인가.

그 검은 덩어리가 입을 열었다.

발터의 눈이 점점 가늘어졌다.

* * *

영약이 소화된 순간, 인한은 전력으로 마력을 운용했다.

‘미치겠군……!’

마력이 순식간에 전신의 마력로로 파고들었다.

예전, 엘드라드의 영약보다 고작 3배 정도 많을 뿐인 마력이었지만, 운용하는 데는 그때와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노력이 들었다.

영약이 발하는 약력을 한 방울이라도 소모하지 않기 위해 인한은 전력으로 극체술을 펼쳤다.

우웅!

마력을 소화하는 게 힘든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마력이 향하는 곳이 언더 코어뿐이 아니었던 것이다.

미드 코어를 휘감고 있는 마력구도 마력을 끌어당겼기에, 인한은 어쩔 수 없이 한 번에 두 마력원을 운용해야 했다.

‘그래도…….’

인한은 수월하게 약력을 해소하며 미소를 지었다.

엘프의 순수함과 정결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영약이었다.

약력의 힘 자체는 너무나 뛰어났지만, 굉장히 정순하고 부드러웠다.

그뿐 아니라 세 번째 효과도 적용되고 있었다.

약력이 마력로를 타고 흐르며 알게 모르게 존재했던 노폐물을 휩쓸고 지나갔다.

‘이런 게 있었다니.’

그동안 몰랐던 마력로가 눈에 들어오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미세한 내상의 흔적이 발견됐다.

다 태워 버렸을 것이라 생각했던 노폐물이 곳곳에 남아 쌓여갔다.

‘이건 발터와의 전투, 왕과의 전투, 리시피르와 만났을 때의 흔적도…….’

수많은 힘의 흔적이 마력원과 마력로 깊숙이 숨어 있었다.

그동안은 큰 영향을 받지 않았기도 했고, 이렇게 자기 자신을 관조할 일이 그리 많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 그 상흔들은 마력의 흐름을 미세하게 느리게 만들었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마력의 운용에 문제가 있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그만큼 극체술의 안정성이 뛰어난 것이겠지만, 동시에 인한의 부족함이기도 했다.

마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몸을 보듯, 인한은 자신의 육체 구석구석을 관조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인한이 천천히 눈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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