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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152화 (152/266)

# 152

<공략자들 152화>

인한은 고민에 빠졌다.

질문하고 싶은 것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정작 무엇부터 질문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인한의 속을 읽은 루한이 짜증 섞인 말을 쏟아 냈다.

“네가 그렇게 머리가 좋냐? 또 머리 굴리네? 아직 시간 좀 있으니까 일단 던지고 봐라! 사내자식이 패기가 그렇게 없어서.”

“하하…….”

인한이 헛웃음을 지었다.

맞는 말이었다.

솔직히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인한은 자신의 머리가 그리 좋은 편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가장 필요한 것부터 물어보는 게 좋을 것이다.

인한은 입술을 한 번 깨물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강해질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지금도 많이 강해졌다.

하지만 아직 부족함을 느꼈다.

어떤 것도 뛰어넘을 수 있는 압도적인 힘을 원했다.

루한은 눈을 껌뻑이며 인한을 보다가, 미간을 찌푸리며 답했다.

“싫어.”

“예?”

“아니, 너는 대체 네가 익힌 트리아스 액셀을 대체 어디서 익힌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네가 천재여서 자연스럽게 터득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용왕과 요정왕,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영웅이 트리아스 액셀의 창시자다.

그중 요정왕은 눈앞에 있는 루한 아르페이어.

‘그럼 난 어떻게 익힌 거지?’

인한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무려 세상의 규칙을 뒤틀고, 이어질 수 없는 것들이 이어진 기적 중의 기적이다.

당연히 세상에 무분별하게 퍼졌을 리도 없고, 인한이 눈앞에 있는 루한에게 배웠을 리도 없다.

그럼 남은 건 용왕과 인간의 영웅.

그런데 루한은 인한에게 묘한 짜증을 부리기도 했다.

인한의 손에 있는 것은 용왕의 이빨이고, 퀘스트는 용왕과 만나야 클리어가 된다.

그렇다면 인한은, 트리아스 액셀을 용왕에게 배웠다는 말이 된다.

“아니, 그건 조금 다르다. 네 힘은 배웠다고 말하기에는 아직 너무 거칠어. 애초에 너처럼 마력을 사용하는 것도 그놈의 스타일이 아니고. 하지만 그 도마뱀 자식의 끈이 네게 이어져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

그렇게 생각하니, 인한은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 부탁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면……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제게 승산은 있습니까?”

인한의 질문에 루한이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비웃는 듯하면서도, 흥미롭다는 듯 인한을 살피는 미소였다.

“승산이라. 무슨 승산을 말하는 거지?”

“아시지 않습니까.”

왕들을 쓰러뜨릴 수 있는 승산.

아무리 인한이 왕들의 예상을 벗어난 수많은 힘을 얻었다지만, 이 탑은 어디까지나 왕의 소유물이었다.

왕의 소유물에서 힘을 키운 인한이 과연 왕들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불가능하다.”

루한은 단언했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면 그만둘 거냐? 아니잖아? 그럼 그런 걸 왜 물어보는 거냐. 자신에 대한 불신은 손발을 더디게 만든다.”

“……!”

인한의 눈이 커다래졌다.

맞는 말이었다.

만약 승산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떻게 했을까?

승산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면?

달라지는 건 없다.

포기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고, 그럴 생각도 없다.

직전의 질문보다 더욱 멍청한 질문이었다.

“마음에 드는 놈이군. 그 건방진 도마뱀 자식답지 않게 말이야.”

루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말을 이었다.

“조언을 하나 하지.”

“예?”

“목표를 정해라. 그리고 동기를 제대로 파악해. 너는 왜 이곳을 오르는 거지? 왜 승산을 원하는 거지?”

“그거야 당연히 탑을 끝내기 위해서입니다.”

“정말?”

“당연하지 않습니까.”

루한의 말에 인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당연한 일이 아닌가.

탑이라는 이름의 재앙을 불식시키는 것.

그게 인한이 탑을 오르는 이유의 전부였다.

‘정말?’

그때 머릿속에서 한 줄기 의문이 떠올랐다.

그 의문은 점차 덩치가 커져 갔고, 곧 인한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었다.

‘정말…… 정말로 그게 끝인가?’

머리가 아득해지는 기분이었다.

회귀 전, 팔과 동료를 잃은 인한은 폐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매일같이 트라우마에 휘둘렸고, 하루에도 몇 번이나 찾아오는 죄책감에 스스로의 목숨을 끊고 싶기도 했다.

그런 인한이 노예 같은 삶을 버티면서도 데스 파티에서 탑을 오른 것에는 하영의 말 때문이었다.

회귀 후, 다시 탑을 오르게 만들어 준 것도 하영의 말이었다.

하지만 과연 지금도 그런 것일까.

하영과의 관계는 과거와 달라졌으며, 회귀 전의 일은 이제 다시 오지 않을 과거가 되어 버렸다.

인한은 과거와는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게 됐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고, 탑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비밀들에 접촉했다.

숨겨진 과거, 탑의 진실, 왕과 마왕, 아발론.

인한에게는 아직 알아내지 못한 너무 많은 일들이 있다.

탑이라는 재앙은 끝내야 마땅하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인한은 그 외에 다른 이유로도 움직이고 있었다.

생각을 이어 갈수록 인한은 점점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을 느꼈다.

“바로 나오지 않을 답이겠지. 말했지 않느냐, 너는 상당한 바보이거나 성가실 정도로 진지한 놈일 거라고.”

인한이 입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곧 눈을 빛냈다.

“감사합니다.”

그건 일종의 가르침이었다.

강해지는 법은 아니었지만 어쩌면 그보다 더 클지도 모르는 것을, 루한에게서 얻었다.

처음으로 조금 놀란 표정을 지은 루한의 얼굴이 곧 일그러졌다.

“쯧, 역시 도마뱀 자식이 갖기는 아까워. 제길, 난 언제 구하냐.”

루한이 혀를 차며 투덜댔다.

‘정말 엘프와 닮았군.’

인한은 루한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엘프 특유의 기다란 귀나 금발의 머리카락은 없지만, 루한은 누가 보더라도 엘프로 오해할 것 같은 생김새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자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요정의 왕이라고 하셨으면서, 어째서 아인족인 엘프의 마을에서 나타난 것입니까?”

“뭐?”

루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엘프가 왜 아인족이야?”

“예?”

“이 세계는 정말 아는 게 없군. 인간과 닮았다고 멋대로 아인종으로 분류를 했단 말이야? 이런 간단한 것도 설명해야 한다니…….”

루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입을 열었다.

“엘프는 요정족이다. 드워프, 페어리…… 놈들도 요정족이지.”

그 말에 인한이 깜짝 놀랐다.

지구에서 페어리는 요정족으로 분류를 하지만, 엘프와 드워프는 아니었다. 둘은 아인족으로 분류되고 있었다.

“인간과 닮았다고 다 아인족인 것이 아니다. 종족은 생김새로 분류되는 게 아니야. 요정족들은 인간과 달리 세계와 하나가 되어 살아간다. 엘프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드워프들은 흙과 불의 소리를 듣는다. 그들이 정말 인족과 비슷한가?”

지금까지의 상식이 부서지는 이야기였다.

확실히, 세계수와 하나 되어 살아가는 엘프나, 흙과 불의 화신이라고까지 불리는 드워프는 생김새는 인간과 닮았어도 삶을 살아가는 데에는 다른 부분이 많다.

“후후, 오크도 굳이 분류하면 요정족인데?”

“……예?”

“지금은 짐승에 불과하지만, 오크들도 자연에서 태어난 요정의 일부였다. 긴 세대를 거쳐 피가 옅어지면서 짐승에 가깝게 됐을 뿐이지.”

돼지를 닮은 오크의 모습을 떠올린 인한이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오크가 요정이라니…… 인정하기 힘들었다. 아니, 인정할 수 없었다.

인한의 표정을 보던 루한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그런 것보다, 궁금한 게 있었을 텐데?”

루한은 인한의 생각을 꿰뚫어 본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인한이 고개를 끄덕이고 입을 열었다.

“이 탑의 생명들이 다른 세계의 존재, 혹은 아발론의 존재인 것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그럼…… 엘프나 다른 아인족들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뿔도 없고, 정신 또한 온전합니다. 하지만 무언가가 조금 어그러져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탑이 세계를 잡아먹는 괴물이라면, 거기에 살고 있는 원주민인 그들은 대체 뭐죠?”

“그래, 그게 제대로 된 질문이지. 탑의 원주민들이라…… 한 단어로 말하자면 이거지.”

루한이 눈을 빛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노예들.”

실리암이 만들어 낸 바람이 불어와 인한과 루한의 주위에 맴돌았다.

“……예?”

노예들.

지금 노예들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잘못 들은 게 아니다. 찬탈자들에게 목숨을 구걸한 노예들이 바로 탑의 원주민들이다.”

루한은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왕은 마왕이 되고, 이계의 존재는 왕이 되었다. 그들이 어떻게 왕이 될 수 있었는지, 어째서 왕이 되기를 바랐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뭐 하여튼 세계의 주권은 이계의 존재들이 가지게 됐지.”

“그건 이미 알고 있습니다.”

인한의 말에 루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이 있고 난 뒤의 일이다. 새로운 왕들은 제멋대로였다. 딱히 옛 왕들보다 더 뛰어나고 더 강하기에 왕이 되고 싶었다거나, 뚜렷한 야망이 있기에 왕이 된 게 아니었지. 그냥 세계를 갖고 싶었던 거야. 마치 장난감을 원하는 아이처럼 말이지. 그런 놈들이 왕이 되었으니…… 얼마나 많은 생명이 죽었을까?”

악신이 등장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루한이 잠시 뜸을 들였다.

“당연히 생명을 구걸한 존재가 있었다. 그게 나쁜 건 아니지. 그런데 그들의 생명을 가지고 어떤 재밌는 장난을 칠까 고민한 왕들이 그 수많은 생명을 탑에 넣어 버린 거야.”

예상치 못한 이야기였다.

인한이 눈가를 찌푸리며 물었다.

“왜 그럼 당신은 그토록 큰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돕지 않은 것입니까?”

“그 시절, 나와 도마뱀 자식의 힘은 완전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도울 수도 없었고 말이지.”

루한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으나, 그건 계획적이었다. 타 차원의 유입은, 세계로서는 불안정했던 아발론에는 자주 있는 일이었지. 그럴 때마다 나나 왕들이 차원을 틀어막았고. 하지만 그날, 그 전쟁의 날, 아발론의 곳곳에서 동시에 균열이 터졌다.”

루한이 이를 빠득 갈았다.

“나와 도마뱀 자식은 균열을 막느라 필사적이었다. 우리가 전투에 참여했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끝나 있었다.”

“그럼…… 왜 그 후에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겁니까?”

“왕은 오직 왕만이 죽일 수 있다. 이미 왕이 되어 버린 놈들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

“당신도 요정족의 왕이지 않습니까? 왕들과 뭐가 다른 겁니까?”

“세계의 왕좌는 오직 일곱이다. 또한 왕이라 이름 붙여질 존재도 오직 일곱뿐이지. 예정된 자가, 정해진 방법을 통해 왕으로서의 자질을 증명하면 왕좌의 주인이 된다. 왕은 세계에 의해 정해져, 세계의 주권을 위임받는 존재다. 그저 강하기에 될 수 있는 것도, 그저 뛰어나기에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었지.”

루한은 길게 내려온 머리를 어깨 너머로 쓸어 넘기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바로, 딱히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지만, 종족의 정점이라고 불렸던 나나 도마뱀 새끼가 왕이 되지 못한 이유였다.”

그렇다면 왕은 굉장히 특별한 존재임에 틀림없었다.

왕은 세계의 의지를 받아들인, 그야말로 신과 같은 존재였다.

“사실 나도 원래부터 왕이라 불렸던 것은 아니야. 나와 도마뱀 자식의 존재는 어디까지나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세계에 찾아온 이변, 변수…… 심지어는 오류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일이었지.”

숨을 한 차례 고른 루한이 인한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 모든 것에 트리아스 액셀이 있었다.”

“……!”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 이루어졌고, 우리는 강제로 세계의 규칙을 찢어 내고 조금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왕과 비슷하지만, 사실 왕은 아니지. 용왕이나 요정왕은 우리의 권속들이 멋대로 이름을 붙인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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