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4
<공략자들 144화>
똑똑똑!
하영은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엷은 잠에서 깨어났다. 심심함을 못 이기고 뉴스를 보다가 약 기운에 잠깐 잠든 모양이었다.
“네, 들어오세요.”
그녀는 고개를 한 번 흔들어 잠기운을 떨쳐 내고 말했다.
하영에게 찾아올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지인들에게는 걱정할까 봐 일부러 소식을 전하지 않았고, 동료들은 전부 병원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노크를 할 사람이라고는 옆 병실에 있을 오빠, 아니면 간호사나 간병인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은 하영이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었다.
“안녕하세요.”
스르륵!
미닫이문이 부드럽게 닫히는 소리와 함께, 인한의 모습이 하영에게 들어왔다.
“앗.”
-……또한 10층 공략자로도 알려져 있는 최인한 헌터는 강원도 토벌을 이끌기도 하였으며, 세계 최고의 길드인 해태 길드의 길드장인 것이 밝혀졌습니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최인한 헌터에 대해 무관의 랭커, 영웅, 구원자 등의 칭호를 붙이기도 했습니다.
뉴스를 보고 있었던 건지 병실에 있던 벽걸이용 TV에서 마침 인한의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인한은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 그, 어서 오세요.”
하영이 다급히 TV의 전원을 끄며 어색하게 웃었다.
인한은 심각하게 쭈뼛거리는 걸음걸이로 다가가 과일 바구니를 침대 옆 서랍장 위에 올려놓고선 의자에 앉았다.
“몸은 좀 괜찮으신가 해서 찾아왔습니다.”
“아! 감사해요.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셨단 걸 들었어요. 10층에서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요.”
“아닙니다.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닌걸요.”
“그래도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짧은 인사치레가 오고 가고,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숨 막히는 정적이 둘 사이에 맴돌았다.
‘이건 이것대로 고역이군.’
인한은 문득 탑에서 몬스터를 상대로 하는 게 더 편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찾아와서 잘했다고 생각했다.
병실에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싱숭생숭하던 마음이, 하영의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눈 순간 편안하게 가라앉았다.
인한이 천천히 입을 뗐다.
“저, 하영 씨.”
“흠흠, 인한 씨.”
하영과 인한이 서로를 바라보고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풋! 먼저 말씀하세요.”
하영이 엷은 미소를 지었다.
회귀 전의 하영은 짓지 않았을 표정이었다.
그 아름다운 미소에 가슴 한편이 아릿하면서도, 동시에 기쁜, 모순된 마음이 떠올랐다.
“다름이 아니라…….”
인한은 감정을 빠르게 수습하고, 본론을 꺼냈다.
하영은 인한의 질문에 왕과 나눴던 대화의 일부분을 말해 주었다.
대화 내용을 전해 들은 인한은 저도 모르게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누군가에게 심어진 무언가를 찾고 있다. 역시 나를 찾고 있는 거야. 변수라면 분명…….’
하영의 말에 따르면 왕은 변수를 찾고 있다고 했다.
아마도 그건 검은 탑이라는 잘 짜인 유희에서 나타난 에러와 같은 것이 분명했다.
그 에러의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한이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들이 직접 움직일 이유가 있는 건가?’
소 잡는 칼을 닭 잡는 데 쓰는 격이다.
그렇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움직일 만한 다른 이유가 있다는 뜻이 된다.
‘이미 왕좌를 빼앗았으면서, 왜 마왕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거지?’
인한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적어도 인한이 경험해 본 바로는 마왕의 씨앗을 받은 자는 없었다.
그에 비해 다른 왕들의 씨앗을 받은 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단적으로 왕과 마왕의 영향력을 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실제로 인한은 탑을 오르며 왕에 대한 언급은 자주 들었지만 마왕에 대한 것은 거의 듣지 못했다.
그때, 인한을 살피던 하영이 조심스레 물었다.
“별로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아니네요. 죄송해요.”
“아닙니다, 큰 도움이 됐어요. 아, 그러고 보니 아까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한 거죠?”
“아…… 그냥, 어색해서 뭐라도 말을 꺼내 보려고 한 거예요.”
하영이 이불자락을 만지작댔다.
인한은 엷게 웃으며 하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잠깐 손을 줘 보시겠어요?”
“손을요?”
하영은 잠시 고민하는 듯했지만, 곧 인한에게 손을 내밀었다.
“거칠죠? 여자 손 같지 않게…….”
하영이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다.
하영의 손바닥에는 곳곳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헐렁한 환자복 틈으로 보이는 팔뚝에는 자잘한 흉터까지 보였다.
“하영 씨가 탑을 오르며 쌓아 온 노력의 증거인걸요. 멋있습니다.”
인한의 말에 하영의 볼이 살짝 붉어졌지만, 인한은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인한은 하영의 손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오빠분은 외상이 심한 케이스라 제가 많이 도와 드리지 못하지만, 하영 씨의 부상에는 제가 회복에 도움이 될 겁니다.”
“네?”
우웅!
인한의 손이 은은한 밝은 빛에 휘감겼다.
회복의 성질을 띤 오러가 하영의 마력로로 파고들었다.
원래라면 성질이 다른 마력은 서로 충돌하기 마련이지만, 극체술의 마력은 상극의 성질을 지닌 마력만 아니라면 거의 대부분 충돌하지 않았다.
“아!”
하영은 짧은 탄성을 질렀다.
시원한 기운이 체내로 파고드는 걸 느낀 순간, 틀어지고 망가진 마력의 흐름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마력로를 갉아먹던 잔여 마력과 불순물이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마력을…… 이런 식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건가?’
그건 일종의 깨달음과 같았다.
도저히 마력이라고 볼 수 없는 강력하고도 순수한 기운.
그리고 마력로를 맴도는 그 기운의 힘이 하영에게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는 듯했다.
“극검술을 익히셨군요. 시작의 신전 4단계 보상. 괜찮은 스킬이죠.”
인한은 천천히 손을 뗐다.
하영은 넋이 나간 듯 입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아, 그, 가, 감사합니다.”
당황한 와중에도 고마움을 느낀 건지 하영이 고개를 숙였다.
인한은 쑥쓰러워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 뒤로도 인한과 하영은 몇 분 정도 잡담을 나눴다.
그러다 자연스레 달의 검 팀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영이 쓴웃음을 지었다.
팀의 반 정도가 죽었다.
반이나 살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 살아남은 절반 중에서 영영 탑을 오를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을 입은 사람도 상당수였다.
“어쩌면 팀 자체가 무너질지도 모르겠네요.”
인한은 잠시 텀을 두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다면, 해태 길드에 들어오시겠습니까?”
“네?”
“제가 해태 길드의 길드장인 건 아실 테죠. 해태 길드는 제작 팀, 운영 팀, 그리고 공략 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중에 알려진 공략 팀은 오직 최전선에 있는 본대뿐입니다. 하지만 사실 공략 팀에 최전선에 뛰어드는 헌터들만 있는 건 아닙니다. 후발 팀들이 있어요. 그리고 오히려 이쪽이 인원은 더 많습니다.”
“후발 팀이요? 후진 양성 같은 느낌인가요?”
“비슷합니다.”
인한의 말에 하영이 눈을 크게 떴다.
해태 길드.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올리고 있는 헌터 집단이었다.
단지 공략뿐 아니라 검은 탑 관련 상품들을 판매하며 기업으로서의 규모도 키우고 있는 그런 집단에 자신이 들어가도 되는 건가 싶어, 하영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그녀의 눈치를 슬쩍 보던 인한이 슬쩍 말을 던졌다.
“그저 제안일 뿐입니다. 아직 해태 길드는 막 시작한 길드일 뿐이에요. 달의 검 팀이 도와준다면 많은 힘이 될 겁니다.”
“혹시 오빠에게도 말을 해 두셨나요?”
“아니요. 하영 씨에게 먼저 꺼내는 말입니다. 사실 생각하면서 온 얘기는 아니었어요.”
하영은 상당히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조금 시간을 주시겠어요?”
“언제든지 괜찮습니다. 거절하면, 조금 아쉽기는 하겠지만 괜찮습니다.”
하영이 묘한 눈으로 인한을 바라보았다.
그 뒤로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마침 간호사와 의사들이 병실로 들어왔다. 인한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인사를 하고는 병실을 나섰다.
하영은 언제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삼키기에 노력했다.
‘제게 왜 이렇게 잘해 주시는 건가요?’
하영은 의아해하는 눈빛으로 몸을 돌려 걸어 나가는 인한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10층에서 목숨을 구해 주었을 때, 그리고 이번에는 목숨을 구해 준 것으로도 모자라서 병원을 잡아 주기까지 했다.
11층에서 만났을 때는 일방적으로 3번에 한해서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하기도 했다.
하영의 입장에서 인한은 그리 친한 사람도, 잘 알고 지낸 사람도 아니다.
만약 인한이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거라면, 오히려 이렇게 답답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인한이 자신을 볼 때 보여 주는 눈빛은 단순히 연애 감정으로 보기에는 힘든 면이 있었다.
‘나를 모른다고 했지만, 정말 그럴까?’
하영의 의문은 더욱 깊어져 갔다.
하지만 결국, 하영은 그 의문을 입에 담지 않았다.
언젠가…….
만약 인한과 더 가까운 관계가 된다면, 언젠가.
그렇게 생각하며, 하영은 인한을 배웅했다.
* * *
인한은 다시 탑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검은 탑에는 헌터들이 많이 보이지 않았다.
인한은 바로 35층으로 향했다.
‘조금 더 강해져야 해.’
3년 동안 전투 방식은 확립되었다.
몇 가지 기술들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펼치기 위한 이론도 세웠다.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기에 몇 가지 점에서 보완이 필요하지만, 그건 시간이 해결해 줄 게 분명했다.
인한은 강해졌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강해질 수 있다.
‘마나 스킬 6단계를 도전해 보자.’
과거, 인한은 올라보지 못했고, 탑에서도 소수의 랭커들만이 도달했던 경지.
10층에서 4단계에 도달한 이후, 인한은 2년 전쯤 오러를 전투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5단계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 뒤로 마나 스킬이 성장하는 기색은 없었다. 이번 일을 통해 마력이 3천 스테이터스에 가깝게 상승한 것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제 마력량은 크게 상관이 없어.’
마력이 많기만 하다고 강한 것이 아니다.
마나 스킬 6단계는, 세계에 시전자의 힘이 투영되는 환상의 단계다.
화귀 전, 발터 에스키엘은 오러를 통해 공간을 부숴 버리는 기술을 만들어 냈다.
레오는 오러를 체외에서 구현하여 수백 수천 자루의 오러로 만들어진 검을 다뤘다.
박철환은 무엇이든 분해시켜 버리는 일검을 개발해 냈다.
4단계나 5단계와 달리, 인한의 과거의 경험이나 경지가 도움이 되지 않는 도전일 게 분명했다.
애초에 감조차 잡히지 않는 경지이지만, 인한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
그리고 또 하나.
‘40층, 용왕 볼카누스와 만나라는 것이었나.’
인한은 퀘스트를 떠올리며 눈을 빛냈다.
이제 벌써 4차까지 진행된 퀘스트, 왕의 선택.
매 퀘스트를 클리어할 때마다 인한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아니, 정확히는 인한을 성장시키려는 아리아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우웅!
손에 장착하고 있는 용왕의 이빨이 엷게 떨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 *
100층 보스존.
라스틴이 미간을 찌푸렸다.
“대체 이건……?”
그의 앞에 천문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라스틴의 지식으로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뿐이었다.
[40층, 공간 역장에 에러가 발생했습니다.]
[침입자 발생!]
[침입자 발생!]
[침입자…….]
시초의 세계 아발론에서 왕들에게만 허락된 물건이자, 왕들조차 완전하게 다룰 수 없는 보물인 검은 탑.
그 검은 탑에.
침입자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