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공략자들 137화>
왕들에게는 그들이 왕임을 증명하는 왕관이 있는 법.
아발론의 왕들에게 왕관이란, 그들이 가진 힘을 증거하는 사물을 의미했다.
어떠한 곳에서 정해진 시련을 통과하고, 왕으로서의 자격을 증명한 존재에게만 주어지는 막대한 힘의 증거물.
그러나 왕관이라 칭해진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왕관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드넓은 우주를 개변시키고, 세계의 규칙을 뒤트는 힘이 담긴 왕들의 상징물들 전부가 왕관이라 칭해졌으니.
그것을, 레갈리아라 불렀다.
망치, 카드, 활, 칼, 램프…….
그들의 힘은 다양했으며, 그렇기에 어떤 것도 똑같은 형태를 취하지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하게 존재하는 어떤 ‘사물’이라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레갈리아가 단 하나 있었다.
그것이 극멸기다.
시작과 끝의 왕이자, 뭇 왕들의 우두머리가 된 자.
무관의 왕, 아리아의 레갈리아.
그녀의 레갈리아는 그 힘 자체였다.
전 우주에 공통되게 흐르는 힘인 마나마저 지워 버리는, 진정한 소멸의 힘.
그렇기에 그녀는 세계의 어떤 규칙과 이치에도 얽매이지 않았다.
어떠한 제한도 그녀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그녀야말로 세계의 중심이었다.
그런 그녀의 힘이, 인한에게 스며들었다.
[레갈리아의 권한을 획득했습니다.]
그 천문과 함께, 백금의 왕관이 녹아내려 인한의 손에 흡수됐다.
직후, 엄청난 숫자의 천문이 인한의 눈앞을 가렸다.
[타이틀 <비밀을 아는 자>를 얻었습니다.]
[타이틀 <힘의 기원>을 얻었습니다.]
[타이틀 <페어리 테일(Fairy Tail)>을 얻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
[모든 스테이터스가 100씩 상승합니다.]
[스페셜 던전 ‘시작과 끝의 왕의 신전’을 클리어했습니다.]
미친 듯이 떠오르는 천문이 눈앞을 가렸다.
그리고 한순간, 인한은 둔중한 두통과 함께 정신을 잃었다.
* * *
-……어나라. 무슨 일인가! 대체 왜…….
“윽.”
머릿속에 울리는 위그라노아의 목소리에 인한은 힘겹게 눈을 떴다.
마력을 얻은 뒤로 몸이 무겁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는데, 전신이 물에 젖은 듯 무거웠다.
-깨어났나?
“어, 응. 고마워. 그보다 뭐지? 내가 왜 여기에…….”
인한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인한이 눈을 뜬 곳은 필드의 한복판이었다.
분명 신전의 내부에서 기억을 잃었는데, 지상에서 정신을 차린 것이다.
‘신전은?’
인한이 벌떡 일어나 구멍이 뻥 뚫려 있는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폭탄이라도 맞은 듯 움푹 파인 크레이터와 같은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신전이 있었던 자리도, 신전 그 자체도 사라지고 없었다.
‘꿈……일 리가 없지.’
인한은 고개를 저었다.
머릿속에 선명하게 기억이 남아 있었다.
아마도 시작의 신전처럼 인한이 던전을 클리어했기에 던전의 모습을 더 이상 보여 주지 않는 것일지도 몰랐다.
인한은 일단 움직였다.
여러모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 많지만, 그것을 필드 한복판에서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보다 갑자기 연결이 끊어진 건 어째서지? 잠시 그대가 죽은 줄 알았다.
“연결이 끊어졌다고?”
위그라노아와의 연결은 영혼과 영혼을 이은 계약이었다.
그래서 한쪽이 죽기 전에는 절대 끊어질 일이 없고,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이어진다.
그런데 그런 것이 끊어졌다라?
‘설마 신전의 그 얇은 막 때문에?’
위그라노아와의 연결마저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로 극멸기를 제외한 모든 걸 막아 낼 수 있다는 말이 됐다.
-나와 필드에 대한 대화를 나눈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너와의 연결이 끊겼다.
인한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때라면 신전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일이 있었어.”
-그렇군.
위그라노아는 조용해졌다. 다시 잠에 든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위그라노아와 연결이 되어 있어도 그가 말을 거는 경우는 드물었다.
인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안전지대를 찾고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근처에 분명…… 찾았다!’
퀘스트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몇 번이나 35층을 찾아왔던 인한은 근처 지리를 대충 기억하고 있었다.
광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지금 당장 사람이 살아도 될 것 같은 거대한 3층 저택이 바로 안전지대였다.
‘혹시 모르니까 적당히 준비를 해야겠군.’
인한은 마적목 가루로 알람 주술을 펼치고, 마력을 일정량 얇게 퍼뜨렸다.
35층은 아직 많은 헌터들이 도전한 층이 아니기에 그럴 일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한 것이었다.
“후우…….”
인한이 긴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몸이 무거운 것과 별개로, 온몸에 힘이 넘쳤다.
신전의 입구와 내부의 환상에서 마력을 상당히 소모했음에도 불구하고, 마력량이 전혀 줄어들지 않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늘었다.
그것도 엄청난 양이.
“상태창.”
아주 오랜만에, 인한은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사용자 정보]
이름 : 최인한
종족 : 인간
레벨 : Lv.213
타이틀 : 시작하는 자(A+), 언데드 학살자(E), 독보(A), 수련광(B), 독주(A), 비밀을 아는 자(B), 힘의 기원(A+), 페어리 테일(A)
클래스 : 스트라이커(히든 클래스), 정령사(일반 클래스), 세계수의 신관(히든 클래스)
[스테이터스]
힘 : 2003
민첩 : 1718
체력 : 1891
지능 : 885
마력 : 2181
속성력 : 1087
(미분배 포인트 : 125)
[스킬]
<액티브 스킬>
1. [아이언 크래시 (B) Lv.21(10.01%)]
2. [제국식 유술(柔術) (C) Lv.20(3.01%)]
3. [도축(A) Lv.5(4.75%)]
4. [왕의 권세(EX) Lv.1]
……
<패시브 스킬>
1. [폰 체술 (A) Lv.21]
2. [지도 제작 (C) Lv.14]
3. [정령술(B) Lv.14]
……
11.[왕의 유산(EX) Lv.1]
<마나 스킬>
1. [극체술 <3단계> (S) Lv.9(21.5%)]
2. [기공술 (A)] (상위 마나 스킬에 편입됩니다.)
3. [위그드라실류 마력 연공(S)]
<면역 스킬>
1. [피해 면역 (S) Lv.12(21.01%)]
2. [중독 면역 (S) Lv.11(7.01%)]
……
“하하, 하하하!”
인한이 웃음을 터뜨렸다.
레벨 213.
드디어 레벨 200대에 도착했다.
‘25레벨 상승이라니? 위그라노아를 사냥했을 때랑 비슷하잖아!’
굳이 레벨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은 인한이었지만, 한 번에 25레벨이 오른 건 아무래도 의미가 있다.
수백 레벨의 차이가 있던 위그라노아를 잡았을 때 단번에 30레벨이 올랐던 것을 떠올린 인한이 밝은 미소를 지었다.
인한은 미분배 포인트를 모조리 마력에 투자했다.
그걸로 끝이 아니다.
그 얻기 힘들다는 타이틀도 세 개나, 그것도 B급, A급, A+급의 상위 등급으로 얻었다.
비밀을 아는 자.
힘의 기원.
페어리 테일.
3년의 시간 동안 인한이 얻은 타이틀이 고작 <수련광>과 <독주>, 이 두 가지에 불과했는데 한 번에 세 개의 타이틀을 얻었다.
수련광은 수련의 효율과 회복을 20퍼센트 상승시켜 주는 타이틀이었고, 독주는 누구보다 빠르게 탑을 오르는 사람에게 붙는 스테이터스 상승형 타이틀이었다.
만약 후발 주자에게 뒤처지면 빼앗기는 타이틀이기도 했다.
이번에 인한이 얻은 타이틀의 효과는 간단했다.
‘비밀을 아는 자는 시작하는 자와 비슷한 효과다. 히든 던전과 스페셜 던전의 최초 도전자였을 때 보상이 일정량 좋아지는 정도.’
그리 대단한 효과는 아니었다.
인한은 보상 상승 관련 타이틀 중 최상위에 위치한 <시작하는 자>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힘의 기원, 페어리 테일. 이 두 가지가 진짜배기다.’
인한이 눈을 빛냈다.
<힘의 기원>의 효과는 아주 단순했다.
힘 스테이터스 20퍼센트 증가.
고정 증가가 아니라, 퍼센트 증가다.
이번 일로 모든 스테이터스 100포인트 상승의 보상이라는 믿을 수 없는 일을 겪은 인한이었다.
그런데 거기다 더해, 힘의 기원이 인한의 힘 스테이터스를 월등히 높여 주었다.
만약 인한의 힘 스테이터스가 세 자릿수였다면 큰 변화를 못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인한의 힘 스테이터스는 네 자릿수를 넘긴 지 오래였다.
‘페어리 테일은…… 조건형이긴 하지만 희귀하다는 증폭형 타이틀이야.’
전설과 신화 등과 관련된 던전, 퀘스트 등을 진행할 때 스킬과 스테이터스의 효과가 50퍼센트 상승하는 효과다.
‘아, 그러고 보니.’
인한이 퀘스트 창을 띄웠다.
[왕의 선택 (4/10)]
[난이도 : EX]
[성공조건 : 용왕 볼카누스와 만나십시오.]
[실패조건 : 죽음]
[상세설명 : 없음]
[보상 : 왕의 자격]
[왕의 선택]이라는 퀘스트는 네 번째 퀘스트로 넘어갔다.
첫 번째 퀘스트의 조건이 아마도 죽음이었다면, 두 번째는 환생이었을 것이고, 세 번째는 신전에 도착하는 것이었다.
‘용왕 볼카누스?’
인한은 그 이름을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용왕이라는 존재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혀 없었다.
왕이나 마왕에 대해 떠올려 봐도, 용왕이라 칭해지는 존재는 없었다.
‘드레키를 말하는 걸까?’
옛 왕이자, 현재는 마왕이라 불리는 존재 중 유일한 용족.
사실 어떤 존재인지는 모르지만, 인한은 일곱 왕들 중에 용족이 있었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이 달랐다.
‘그러고 보니…….’
인한은 장착 중인 아이템을 확인했다.
언제나 어딘가 연결된 듯한 기묘한 느낌을 주는 장비.
인피니트 시리즈, 용왕의 이빨.
‘용왕이라.’
아발론은 크게 나눠 세 가지 종족이 존재했다.
최강종(最强宗), 용족.
환상종(幻想宗), 요정족.
아인종(亞人宗), 인족.
용왕이라는 것은, 그중 최강종이라 불리는 용족의 왕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있나? 드래곤들은 하나하나가 최상위 보스 몬스터급의 존재…… 결코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는 존재들인데?’
탑에도 드래곤은 많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공략은 언제나 최상위 난이도를 자랑하며, 수많은 사상자와 사망자를 야기했다.
최강종이란 이름에 걸맞게 그들은 무지막지하게 강력했다.
‘일단…… 드라칸 산맥으로 가 보자.’
목표를 정했다.
40층 필드, 드라칸 산맥.
용족이 무더기로 살고 있는 필드이자 최초로 드래곤이 보스 몬스터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물론 진정한 드래곤에게는 상대도 안 될 정도로 다운그레이드된 드래곤이기는 하지만, 일단 용족이긴 용족이었다.
그리고.
놈은 인한의 모든 걸 빼앗아 간 존재였다.
순간, 가슴 쪽에 둔중한 아픔을 느꼈다. 인한이 눈을 질끈 감았다.
‘몽마왕…… 큐베리아.’
40층.
해태 길드의 모든 게 끝났던 곳이자, 인한의 모든 트라우마의 근원.
문득 깊은 늪에 빠지는 듯한 무력감이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인한은 숨을 훅 내쉬며 눈을 빛냈다.
‘언제까지 멈춰 있을 줄 알고.’
이제 인한은 과거의 인한이 아니다.
더 이상 과거에 질질 끌려다닐 생각은 없었다.
인한은 한결 편안해진 표정으로 다시 생각에 잠겼다.
‘역시 문제는…….’
인한이 혀를 찼다.
용족은 태생부터 높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난다.
당연히 인간과 대화도 통한다.
하지만…… 몬스터에게 뭘 물어 봤자 대답해 줄지는 미지수였다.
그러다 인한이 문득 궁금한 것이 떠올라 위그라노아에게 물었다.
“그러고 보니 왜 위그드라실의 주민들은 상당한 지능을 가지고 있는데도 자아를 상실한 거지? 용족들은 뿔이 있는데도 자아를 확실히 유지했는데?”
-간단한 이야기다. 위그드라실의 생명체들은 세계수에서 태어나 세계수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세계에서 세계수는 하나이며 전체이고, 전체이며 하나이지. 세계수를 장악하고 그 정수를 빼앗은 이상, 우리들은 모두 빠르거나 늦거나 자아를 잃을 운명이었다.
“그렇군.”
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결국은 다른 세계의 일이기에, 위그라노아의 지식을 흡수한 인한임에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참, 나도 대단하군.’
인한이 씁쓸하게 웃었다.
차원, 이계, 세계의 정수.
과거에는 모른 것은 물론이거니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자신의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스케일이 너무 커져 버렸다.
‘만약 그렇다면 지능이 높지만 자아가 없는 몬스터들도 어떠한 사정이 있을지 모르겠어.’
다음으로 인한은 퀘스트를 내리고, 스킬창을 열었다.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3차 왕의 선택 퀘스트에서 얻은 스킬.
<왕의 유산>.
그것이 바로, 인한의 세 번째로 얻은 EX급 스킬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