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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130화 (130/266)

# 130

<공략자들 130화>

그 누가 알까.

한창 검은 탑을 들끓게 만들고 있는 정예 공략자 집단이자 그 누구도 의심치 않는 최강의 조직, 해태 길드의 간부들이…….

“야 이 개노무 자식아!”

“아니! 형님이 뭘 잘했다고! 솔직히 이번 공략도 제가 다 했잖아요!”

“다는 무슨! 그걸 니들이 어떻게 한 건데! 내가 앞에서 다 쳐 맞고 있으니까 뒤에서 편안히 할 수 있었던 거지!”

“편하긴 개뿔! 제 몬스터들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

“이 새끼가, 그런데 아까부터 말본새를……!”

만취해서 술집에서 싸움이나 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임태호와 이창훈은 벌겋게 얼굴이 달아올라 서로 삿대질하며 싸우고 있었다.

“자, 자, 두 분 다 거기까지만 하세요. 아니, 뭐 다 지난 일 가지고 그러십니까.”

“정환 씨, 그냥 힘 빼지 말고 내버려 둬요. 이러는 게 뭐 하루 이틀인가?”

“맞는 말이에요, 정환. 그냥 무시해요.”

“…….”

난처하다는 듯이 볼을 긁적이는 이정환에게 심드렁한 표정으로 안주를 집어 먹는 이소영과 맞장구치는 아나스타샤가 익숙하다는 듯이 말했다.

옆에서는 세릴이 주위에는 1퍼센트도 관심 없다는 듯 야금야금 감자튀김을 갉아먹고 있었다.

7층 정화의 샘에서 푸른 숲 부족의 보물을 정화하는데 성공한 세릴은 5층으로 되돌아가 마을에 보물을 전달했다.

현재 푸른 숲 부족은 임시로 옮겼던 마을을 다시 이동해 필드 깊숙한 곳에 숨어들어 있었다.

원래라면 세릴도 마을로 돌아가기로 했었지만, 세릴은 굳이 서커스 팀에 남아 그들과 함께했다.

그때쯤이었다.

“죄송합니다. 수련이 늦어져 의도치 않게 지각했습니다.”

주점의 문을 열더니 뚜벅뚜벅 한 사내가 들어섰다.

170cm 안팎의 작은 키지만, 강렬한 눈빛과 다부진 몸이 인상적인 사내.

니시야마 겐지.

결국 홀로 탑을 오르는 것의 한계를 느끼고 해태 길드로 들어온 그는 단숨에 조직의 간부가 됐다.

겐지는 원래 일반 길드원이었지만, 단순 길드원으로는 볼 수 없을 정도의 성과를 올렸다.

공략이 위험할 때마다 근거리 공격형 헌터들을 이끌고 전세를 바꾸기를 수십 번 반복했을 때쯤, 길드원들의 추천을 받아 간부가 될 수 있었다.

이소영이 자리를 권하며 말했다.

“어서 와요. 한 잔 받을래요?”

“권유는 감사드리지만, 무인된 자, 언제나 흐트러짐이 없어야 하는 법. 거기다 저는 아직 수행하는 몸인 바, 죄송하지만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에…….”

겐지는 술잔 대신 물 한 컵을 호탕하게 마셨다.

그러고는 여전히 드잡이질 중인 임태호와 이창훈, 그리고 그걸 말리는 이정환을 바라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저 두 분은 진정으로 친하시군요. 보기 좋습니다!”

“……저게 그렇게 보여요?”

이소영이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이 새끼가, 오늘 진짜 죽여 주마.”

“맨날 죽인다고 말만 하고! 죽여 봐요! 죽여 봐!”

술기운에 풀린 눈으로 살기를 흘리는 임태호와 힐끗 주변 눈치를 살피며 애써 강한 척하는 이창훈.

“어휴…….”

이소영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겐지는 오히려 그들을 보며 부럽다는 듯 눈을 빛냈다.

이소영이 그걸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자, 겐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러십니까?”

“겐지 씨는 연애 같은 건 영영 못하겠네요.”

“……!”

겐지가 눈을 부릅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고로 영웅호색! 제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은 좋지 않아요. 힘내요, 겐지.”

아나스타샤가 툭 내뱉으며 겐지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줬다.

겐지는 우물쭈물하다가 고개를 푹 떨어뜨렸다.

“저, 정말 해 봤습니다. 초등학교 때 여자애들한테…… 인기도 많았는데…….”

그때, 갑자기 세릴이 아나스타샤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아나, 하나 더.”

세릴이 옆에 있던 아나스타샤에게 그릇을 슬쩍 들이밀며 말했다.

아나스타샤와 세릴은 같은 팀에서 활동한 탓인지 상당히 친했다.

아나스타샤가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끄덕이며 감자튀김을 한 그릇 더 주문했다.

딸랑!

그때, 문을 열고 마지막 한 사람이 들어섰다.

“인한 씨!”

이소영이 미소를 띠며 술집에 들어온 사람, 인한에게 손을 흔들었다.

“야! 너 밖으로 나와!”

“아! 나가요! 나가!”

인한은 싸우고 있는 임태호와 이창훈을 힐끗 한 번 보고는 별로 놀랍지도 않다는 듯 자연스레 겐지의 옆에 앉았다.

“얘는 왜 이럽니까?”

풀 죽어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겐지를 보며 인한이 눈을 껌뻑였다.

“아, 형님. 오셨습니까.”

겐지가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겐지는 인한에게 형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인한이 마나 스킬에 대한 기초 이론을 가르친 직후부터였는데, 원래 스승이라고 하던 것을 형님으로 타협 본 것이었다.

“그동안 연락도 안 받고. 뭐 했어요, 인한?”

아나스타샤가 싱긋 웃으며 인한에게 술잔을 내밀고 맥주를 따라 주었다.

“고마워요. 그냥…… 조금 바빴습니다.”

인한과 아나스타샤를 번갈아 본 이소영이 조금 뾰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인한에게 물었다.

“가끔 연락 좀 해요. 기다리다 목 빠지겠어요.”

“하하, 미안해요.”

웃으며 아나스타샤에게서 잔을 받아 든 인한은 시원하게 맥주를 원샷했다.

그 뒤로 시답지 않은 잡담이 오고 갔다.

곧 지쳐서 제풀에 쓰러진 임태호와 이창훈도 곧 해롱해롱한 상태로 자리에 앉았다.

“왔어?”

이정환이 지친 듯 한숨을 푹 내쉬며 인한을 반겼다.

“미안하다. 고생하네.”

“아냐. 뭐, 이 정도 가지고.”

인한이 솔로로 활동하는 동안, 사실상 해태 길드의 리더는 이정환이었다.

“이왕 오늘 만날 거, 이번 분기 서류 가져왔어. 이번에 재료값이 상당해. 그래도 수익이 꽤 났으니까 한번 읽어 보기라도 해. 아무리 날 믿어도 그렇지, 이런 건 직접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조금 떼어먹고 그러지 왜. 횡령 조금 하는 건 봐줄게.”

“횡령은 무슨 횡령. 지금 하고 있는 것만 해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다.”

인한이 피식 웃으며 서류를 받았다. 제작 팀의 현황과 자금 운용에 대한 서류였다.

결과만 따지면, 이번 2분기 수익이 58억 원이었다.

분배할 걸 다 분배하고, 인건비 줄 것은 다 준 다음에 세금 낼 것 다 내고 난 뒤의 금액이 그랬다.

한마디로, 길드장이자 해태 길드라는 기업의 사장인 인한의 돈이나 마찬가지였다.

“으음…… 제대로 챙겨 간 거 맞아?”

부산물 처리, 장비 판매, 그 외에도 인한이 레시피를 가지고 있던 자잘한 소모품들이 해태 길드의 수입원이었다.

아무리 해태 길드의 이름값이 나날이 상승하고, 아이템의 질이나 효과도 좋다지만 분기 순수익이 58억이라니.

1분기 때 10억 원 안팎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일단 보면 알겠지만, 소모품 판매가 상당히 잘되고 있어. 사람 쓸 때 알바로 쓰지 말라고 해서 직원들 고용해서 만들고 있는데, 그것도 수요가 너무 높아서 직원들이 부족할 정도야. 장비 판매가 굵직하게 돈을 벌 수 있기는 한데, 소모품은 지속적으로 이득을 볼 수 있어서 그 정도로 수익이 나오는 거지.”

“아아! 이제 일 얘기는 그만해요! 무슨 술자리까지 와서 일 얘기예요!”

이소영이 빽 소리를 질렀다.

이정환과 인한이 마주 보고는 피식 웃었다.

“우리 다 모였는데 건배도 한 번 안 한 거 알아요?! 거기 두 분! 얼른 잔 드세요!”

거의 녹초가 되어 있었던 임태호와 이창훈도 이소영의 재촉에 힘겹게 잔을 들었다.

“자, 짠!”

이소영이 밝게 외치며 잔을 부딪쳤다.

오랜만에 친구들끼리 모인 듯한 분위기였다.

인한이 오기 전부터 술 겨루기를 하다가 만취한 임태호와 이창훈은 제외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 도란도란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밤이 깊어져 갈 무렵, 겐지가 문득 물었다.

“형님, 그런데 웬일로 부르신 것입니까. 보통은 전화나 문자로 연락하셨는데 말입니다.”

“아니, 이건 얼굴 보고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

인한이 잔에 남아 있던 술을 다 마시고는 긴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여전히 그 좀비들이랑 마주치고 있나?”

좀비.

인한이 필드를 거닐 때마다 마주치는, 이미 죽어 있는 존재들.

그놈들을 지칭하는 데 좀비만큼 어울리는 단어는 없었다.

이정환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 계속 마주치고 있다.”

“흐음, 저도 수련을 하러 가는 길에, 분명 주위에 인기척이 없음을 확인했음에도 요괴같이 절 따라왔습니다. 형님, 대체 그놈들은 무엇입니까?”

겐지의 질문에 인한이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는 것은 세 가지뿐이었다.

놈들은 이미 죽었고, 어디에 숨든, 어디에 있든 나타난다는 것이며, 인한을 노리는 누군가에 의해 움직인다는 것이었다.

“내가 31층에 있을 때도 놈들이 찾아왔다.”

31층은 현재 인한만이 개척한 층수다.

물론, 발터 에스키엘처럼 행적이 밝혀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아무도 몰래 31층에 도착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좀비들처럼 수많은 인원이 오를 수는 없었다.

“역시…… 층수도 무시한다는 소리군요. 히든 던전에 있을 때도 나타나고, 메인 던전에 있을 때도…… 이러다 보스전 중에 나타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조심하라는 소리를 하려고 왔어. 이번에 21층에 잠깐 간 적이 있었는데, 상당히 대범하게 움직이더군. 수도 훨씬 늘어났고 말이지.”

인한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냥 그 말을 하려고…… 부른 거예요?”

이소영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자 이소영의 옆에 있던 아나스타샤가 움찔하는 게 느껴졌다.

물론, 인한은 한 번 고개를 갸웃하고는 끄덕일 뿐이었다.

“네. 뭐, 그냥 오랜만에 보고 싶기도 했고 말이죠.”

옆에서 그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아나스타샤가 갑자기 인한을 지그시 응시하며 말을 던졌다.

“인한, 그거 기억나요?”

아나스타샤가 은은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뭐요?”

“예전에 처음 만났을 때, 인한이 음식 해 줬던 거요.”

“아아.”

간단한 스튜에 레토르트를 해 줬던 기억이 났다.

그러고 보면, 저 얇은 몸에 아나스타샤는 굉장한 대식가이기도 했다.

“기억납니다. 잊을 리가 없죠.”

“그런가요?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때 인한이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이었을 거예요.”

아나스타샤가 배시시 웃었다.

그 아름다운 미소에 인한은 순간 심장이 크게 뛰었다.

하지만 그때.

“……?”

인한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이소영의 시선에 움찔 몸을 떨었다.

‘살기?’

조금 달랐지만 인한은 저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

이소영은 곧 눈을 돌리고 맥주를 마셨다.

하지만 여전히 정체를 알 수 없는 싸늘함이 느껴졌다.

“꼭 그날 일을 보답하고 싶었는데, 인한이 바쁘니까 시간이 안 되네요. 시간 나면 러시아 요리 해 줄게요. 제가 이래 봬도 요리를 꽤 잘하거든요.”

“그렇습니까?”

문득 블러디 아나가 떠올랐다.

그 악녀의 대명사 같았던 여성이 요리라…….

“그런데…… 우리 언제 봐요?”

커다란 아나스타샤의 눈동자가 인한을 지그시 응시했다.

인한이 경직됐다.

아나스타샤 정도의 미녀가 촉촉한 눈동자로 올려다보니, 얼굴이 후끈 닳아 오르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옆에서 듣고 있던 이소영이 갑자기 박수를 짝 치며 방긋 웃었다.

“아! 그럼 저도 불러 줄래요? 저도 러시아 요리 좋아하는데.”

“……소영 씨가요? 뭘 좋아하시는데요?”

아나스타샤와 이소영이 미소를 지으며 서로 응시했다.

“저는 오크러쉬카, 바레니키, 골롭쯔 좋아해요.”

“잘 아시네요.”

“이래 봬도 재벌가 딸인걸요. 러시아 갔을 때 먹어 보고 반했지 뭐예요, 호, 호!”

아나스타샤와 이소영, 두 미녀가 인한과 겐지는 신경 쓰지도 않고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그걸 보고 있던 겐지가 슬쩍 인한에게 귓속말했다.

“두 미녀가 저렇게 사이좋게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되게 보기 좋군요.”

“그런가……?”

인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의 옆에서, 이정환은 반쯤 정신이 나간 임태호와 이창훈을 보살폈고, 세릴은 여전히 감자튀김을 먹는 데 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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