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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127화 (127/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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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 127화>

솔로로 여기까지 오른 것은 인한을 제외하면 처음일 것이다.

그런 인한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겐지는 그저 싱글거렸다.

“히야, 그건 그렇고 정말 강하시더군요.”

겐지가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저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신 걸 느꼈는데, 이리도 간단하게 제압당해 버리다니요. 좀 더 정진해야겠군요.”

인한은 겐지의 말에 그저 어색하게 웃었다.

인한이 한 일은 다 큰 어른이 어린애를 제압한 것과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더 오랜 시간 쌓아 오고 사용해 온 힘과 노하우로 찍어 누른 것이다.

기술의 겨룸이나, 수 싸움에서 인한은 완벽하게 졌다.

“민감한 질문일 수 있겠는데,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인한의 말에 겐지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발터 에스키엘. 그와 싸웠다고 하셨습니다. 그와 비교했을 때…… 어땠습니까?”

인한의 말에는 묘한 열기가 있었다.

무신 발터 에스키엘.

인한과 같이 권사 카테고리의 헌터이며, 극체술을 익혔고, 인피니티 시리즈까지 가지고 있던 사내.

“예? 하하! 궁금할 만도 하군요. 두 분은 굉장히 비슷하니까요. 흐음, 글쎄요. 그분과 인한 님을 비교한다라…….”

겐지가 턱에 손을 얹은 채 고개를 갸웃했다.

“제 주제에 뭐라고 말하기가 그렇군요. 그저…… 발터 에스키엘, 그분은 정말 강했습니다. 강하다라는 것에도 종류가 많지만, 강하다는 것으로 똘똘 뭉친 듯한 사람이었습니다. 인한 님처럼 손속에 사정을 두는 것도 없었고, 특별히 기술을 쓰는 것도 없었습니다. 사람과 싸운다기보다는…… 동물과 싸우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 후 겐지는 인한을 올려다보았다.

“그에 비해 인한 님은, 분명 같은 압도적임이었지만 느낌이 다르더군요. 조금 더 노련하고, 으음,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가감 없이 해 주십시오.”

인한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아직 미완성된 것 같은, 어딘가 미성숙한 기분이었습니다. 발터 님께는 미세한 틈조차 보이지 않았는데, 인한 님께는 파고들 틈이 보였습니다. 뭐랄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보는 느낌이랄까요.”

묵묵히 듣던 인한의 표정에 미세한 일그러짐이 드러났다.

겐지는 정곡을 찔렀다. 아니, 인한은 원래 알고 있던 것을 굳이 겐지를 통해 들었다.

레오 뒤보아, 발터 에스키엘, 임태호, 이정환, 박철환, 그리고 니시야마 겐지까지…….

그들은 모두 회귀 전의 탑에서 알아주던 천재들이었다. 하나를 가르쳐 주면 열을 알고,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자신의 길을 걸었던 선구자들이었다.

그에 비해 인한은 센스도 실력도 부족했다.

다만 시도하고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한번 달려들면 포기하지 않는 끈질김으로 지금까지 어떻게든 버텨 온 것이었다.

‘난 안 되는 건가?’

인한이 낮게 혀를 찼다.

그때, 겐지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아! 제 말을 너무 귀담아듣지 마십시오! 제 주제에 감히 평가를 내리다니……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인한이 기분 나빠 하는 줄 알았는지, 겐지는 손을 휘휘 저으며 횡설수설했다.

인한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평소에 느끼고 있던 거니까요.”

“벽에…… 막혀 계신 겁니까?”

겐지가 조심스레 질문했다.

벽이라.

애초에 벽이란 걸 만난 적이 없었다.

인한은 벽을 만날 정도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저, 인한 님. 오해하지 마십시오. 제가 말한 건 인한 님께서 약하다거나 부족하단 게 아니라, 그저 맞지 않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예?”

“종목이 다르다고 해야 할까요? 인한 님의 전투 방식이 그렇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제법 몸이 유연하고 움직임이 빨라서 이렇듯, 일본도보다는 변화무쌍한 검을 더 잘 다룹니다.”

겐지가 검을 뽑아 들며 말했다.

“검 중에서도 단검이나 연검 같은 것보다는, 어느 정도 무게가 있고, 길이가 있는 장검이 맞는 편입니다. 키가 작은 대신 근육량이 꽤 높아서 무거운 검을 휘두르는 데에도 아무 지장이 없죠. 오히려 휘두를 때 힘을 더해 주고, 짧은 린치를 보완해 주는 장검 쪽이 더 좋습니다.”

겐지는 마치 취미에 대해 나누는 10대 청소년처럼 반짝반짝 눈을 빛냈다.

“그러니까 인한 님은 저로 치자면 어울리지 않는 싸움법을 택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저는 맨손 박투는 잘 모르기에 뭐라고 표현하기는 힘듭니다만…….”

길게 늘어뜨리는 겐지의 말을 들으며, 인한의 눈이 점점 더 커졌다.

‘나에게 맞지 않는 싸움법……?’

최인한이라는 헌터의 싸움법이 무엇일까.

공격을 몸으로 때우며, 묵직한 일격을 꽂는 것.

그것이 인한의 전투 방식이다.

레오와의 전투에서 깨달은 것이었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 왔다.

그것에 무언가 문제가 있던 걸까?

아니면 부족한 점이 있는 것일까?

“오히려 그렇게 맞지 않는 싸움법을 취하면서 그토록 강해지셨으니, 재능은 넘치도록 있는 것이 아닐까요?”

겐지가 싱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인한은 멍한 눈으로 겐지를 마주 보았다.

그러다가, 힘없이 픽 마주 웃고 말았다.

* * *

인한은 겐지와 함께 마을로 돌아왔다.

“탑은 계속 혼자 오르실 겁니까?”

“예, 아무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저는 강자와의 대결을 좋아합니다. 하나 팀에 있어선 그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겠지요. 자유롭게 움직이려면 혼자 오르는 게 최고입니다.”

평소에는 소년 같은 눈동자를 하고 있으면서, 무(武)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굳세고 날카로운 눈동자를 하는 겐지였다.

인한은 입을 꾹 다물고 겐지를 바라보았다.

‘탐나는군.’

미래에 천궁검이 될 재목이자, 기술만 보았을 때는 인한을 앞서 나간 사내다.

만약 천궁검이 앞으로의 인한의 일을 도와준다면, 천군만마와 같을 게 분명했다.

“혹시, 시간이 지나 동료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예?”

“해태 길드란 곳을 찾아가 보십시오.”

“해태 길드 말씀이십니까? 팀입니까?”

겐지가 고개를 갸웃했다.

“팀보다는 조금 규모가 크죠. 저는 길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제가 만들었죠. 사정상 지금은 저 혼자 움직이고 있지만, 저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오오.”

겐지가 흥미롭다는 듯 눈을 빛냈다.

“생각해 두고 있겠습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겠습니다.”

땅의 돌 앞에 도착한 인한이 악수를 건넸다.

그 순간이었다.

‘살기?’

인한이 흠칫 놀라 후방을 살폈다.

무언가 날카로운 단검 같은 게 목전을 스쳐 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인한만 느낀 것이 아니었는지, 같이 대화를 나누고 있던 겐지도 주위를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다!’

인한이 몸을 획 돌려 손을 뻗었다.

카득!

인한의 손에 날붙이가 잡혔다.

기습이 통하지 않은 탓인지, 인한을 노린 습격자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도망가고자 했다.

“감히 어딜!”

사내가 도망치려 하자 겐지가 득달같이 달려들어 사내를 제압했다.

붙잡힌 사내는 험악한 인상의 중년인이었다.

사내가 발버둥 쳤지만, 겐지가 체중을 실어 도망가지 못하게 짓누르면서 팔뚝으로 목을 꾹 눌러 제압했다.

“어디의 사주냐. 당장 말해라, 비겁한 놈!”

겐지의 눈에서 활하산 같은 분노가 치솟았다.

인한도 굳은 표정으로 사내의 앞에 다가왔다.

그런데 사내의 눈을 본 인한이 흠칫 놀랐다.

‘초점이 없다.’

사내는 만취했거나 약에 취한 것처럼 눈이 풀려 있었다.

기습이 실패했음에도, 마치 인형이나 로봇같이 감정이 일절 느껴지지 않는 무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사내의 고개가 획 돌아가 인한과 눈이 마주쳤다.

사내가 킥, 낮게 웃었다.

“이건 인사에 불과하다. 즐거운 시간이 될 거다, 왕의 사도여.”

어딘가, 외모와 어울리지 않는 젊은 목소리였다.

중년인은 갑자기 입을 쩍 벌리며 웃더니, 한순간 실 끊어진 인형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겐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다급히 사내의 맥을 짚었다.

“……죽었습니다.”

겐지가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인한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갑작스러운 습격, 영문 모를 인사, 아무런 전조 없는 죽음까지.

이해할 수 없고, 짐작조차 가지 않는 사건이 일어났다.

거기에 더해 왕의 사도라니.

소란을 느끼고 주위에 몰려든 자들의 웅성거림이 거리를 가득 채웠다.

인한은 굳은 표정으로 얼굴도 모르는 낯선 사내의 시체를 지그시 응시했다.

* * *

12층, 브라크리아.

햇볕 하나 들어오지 않는 지하에 위치한 지저(地底) 세계.

지금껏 새로운 필드에 들어올 때면 큰 감흥이 없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곳도 멸망한 어떤 세계의 일부.’

그리고 몬스터는 그 세계의 주민들을 카피한 모조품이었다.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지구도, 이렇게 될 운명이었다는 것이다.

인한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절대 지구만큼은 그렇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

100층의 보스도, 아발론의 왕들도.

모조리 다 쓸어버려야 했다.

-키엑!

때마침, 거대 거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인한에게 다가왔다.

그 웃음소리에 인한은 비릿하게 웃으며 마력을 끌어올렸다.

‘날 노리는 것들도…… 모조리 쓸어버리겠다.’

이곳은 검은 탑 12층.

그리고 앞으로 인한은 멈추지 않고 탑을 오를 예정이다.

그들이 누구고, 어떤 존재인지는 알 수 없지만, 탑에서 먹고 생활하며 본격적으로 층수를 올리는 데 전력을 다할 인한이 그들보다 느리게 움직일 것 같지는 않았다.

많은 일이 시작됐다.

길드도 움직였으며, 인한도 탑을 오르기 시작했고, 인한을 노리는 자들까지 생겨났다.

‘거기다 전투 방식에 대한 것도.’

앞으로 어떻게 싸워야 할지에 대한 고찰도 필요했다.

겐지의 말만을 곧이곧대로 들을 생각은 없지만, 그 부분은 이미 인한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던 바였다.

이제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레오와 싸울 때 얻은 깨달음은 분명 옳았다.

그때 자신을 되짚었던 것은 분명 적절한 과정이었고, 인한의 전투에 이로운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하나의 방식에만 집중하다 보니, 전체적인 전투의 양상에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일지도 몰랐다.

지금 인한에게 필요한 것은 그동안의 모든 전투를 복기(復棋)해 보는 것이다.

그동안 전투의 일부분이나 부족한 점들을 채우는 게 아닌, 잘못된 줄 몰랐던 것을 고쳐 내는 것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시작하자. 아무것도 모를 때부터 말이야. 내가 할 수 있는 걸 시작부터 되짚어 보자.’

몬스터가 달려들었다.

특별한 스킬도, 짙은 마력을 담는 것도 없이, 인한은 아주 평범한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슈욱! 쾅!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휘둘러진 일격에, 정면에 달려들던 몬스터가 풍선 터지듯 터져 버렸다.

굳이 ‘그 힘’을 다루거나 최고 출력의 마력을 뿜어내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힘을 어느 정도 선까지 억제하고, 움직이는 데에 집중했다.

하지만 그렇게 하더라도, 이미 강화될 대로 강화된 인한의 육체는 몬스터들을 일격에 터뜨리기에 충분했다.

‘그래, 지금부터다.’

깨달음은 전투에서 오는 법.

결국 모든 것은 이 탑에 있다.

인한이 주먹을 휘둘렀다.

“어디, 이제 제대로 시작해 보자고!”

인한이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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