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122화 (122/266)

# 122

<공략자들 122화>

결국 인한의 팀과 백호 공격대는 강릉 경포대 해수욕장에서 합류할 수 있었다.

“근데 왜 합류 장소가 경포대입니까? 형님, 해수욕하시게요?”

“……이제 대꾸하기도 귀찮다.”

이창훈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 인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합류 장소를 경포대로 정한 이유는 그저 경포대에 마지막 생존자 마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을에서 인수가 지냈을 뿐이다.

서쪽에서 출발한 인한의 팀 218명.

남쪽에서 출발한 백호 공격대 412명.

두 팀이 힘을 합쳐서 이때까지 강릉 지역의 생존자 마을에 나타나는 몬스터를 소탕했다.

물론 강원도에는 여전히 수많은 몬스터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생존자 마을과 주요 도시 지역의 대형 몬스터들은 모조리 소탕됐을 게 분명했다.

이제 남은 건, 자잘한 몬스터들을 군에서 현대식 화기를 통해 제압하는 일일 것이다.

생존자들을 이송하는 트럭과 함께 인한은 생존자 마을로 향했다.

지금 이들이 향하는 곳은 강릉에서 가장 큰 규모의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근처에 빈 군부대에서 무기를 획득한 마을 주민들이 마을을 직접 지키고 있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이 군대에 가는 대한민국답다면 대한민국다운 풍경이었다.

“자! 줄 서서 조심히 타십시오! 트럭에 칸이 부족하니 너무 많은 짐을 가지고 오시면 안 됩니다!”

강릉 생존자 마을은 워낙 인원수가 많아서 가지고 온 군용 트럭으로는 모두 다 이송하기에는 부족했다.

그래서 인한은 강릉 버스 터미널에서 상태가 좋은 버스 몇 대에 기름을 꽉 채워 가지고 왔었다.

그렇게 했어도 짐까지 모두 옮기기는 어려웠다.

인한은 줄을 서서 버스에 올라타는 생존자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너, 인수 아니니?”

길게 자란 머리를 뒤로 질끈 묶은 아주머니 한 분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인한이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이고, 너무 비슷해서 착각했네. 죄송해요, 총각…….”

“인수 형입니다.”

“네?”

“최인수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제 동생이 맞습니다.”

“어머, 어머!”

아주머니가 요란스럽게 박수를 치며 인한에게 뛰어왔다.

“어이구, 우리 인수, 멋진 형 뒀네. 군인들이랑 같이 오신 분이시죠?”

“네, 맞습니다. 저, 혹시 인수랑은…….”

“아아. 인수가 우리 집에서 지냈어요. 아들처럼 먹이고 재우고 했지. 애가 조금 불편했어도 성품은 참 고왔는데.”

아주머니는 만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보다, 인수는 어디 있어요? 혹시 걔가 군인들을 데리고 온 건가? 갑자기 가족들을 찾았다면서 검은 옷 입은 양반들이 데려갔는데…….”

“인수는…….”

인한이 목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한 번 삼키고 다시 말했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고, 그렇겠지. 이렇게 늠름한 형님이 있는데. 밖에 나가면 한번 데리고 와요. 내가 이 괴물들 없을 때는 음식 장사를 했었거든. 인수도 내 김치찌개 되게 좋아했어!”

“네, 알겠습니다.”

인한이 애써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이! 장 씨! 얼른 와!”

“어! 갈게! 곧 가! 에이, 뭐 이렇게 불러 대는지. 난 그럼 갈게!”

“저…….”

인한이 돌아서서 가려는 아주머니를 다급히 붙잡았다.

“응? 왜?”

“인수는…… 여기서 잘 지냈나요?”

아주머니는 주름진 눈가를 껌뻑이더니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럼! 잘 지냈지! 먹성도 좋고, 운동도 좋아하고, 마을에 있던 동생들도 잘 보살피고! 매일 웃고 다녔거든!”

“그렇군요.”

“장 씨! 나 먼저 탄다!”

“아! 간다, 가! 난 이제 진짜 가 볼게요?”

“네, 조심히 가십시오.”

인한이 고개를 푹 숙이자 아주머니가 손을 휘휘 저으며 버스 쪽으로 달려갔다.

인한은 고개를 돌려 바닷가 쪽을 바라보았다.

끈적끈적한 바닷바람이 인한의 머릿결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게, 총 10일에 걸친 강원도 위험 지역의 몬스터 소탕이 끝을 맺었다.

* * *

인한의 팀과 백호 공격대, 거기다 생존자들까지 전부 이동하기에는 이동 수단이 부족했다.

그래서 일단은 생존자들과 그들을 호위하기 위한 백호 공격대가 먼저 이동하기로 했다.

그렇게 남은 인한의 팀은 생존자 마을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부상자 없이 목적도 달성했고, 상당한 양의 부산물도 획득했기에 팀원들은 하나같이 전부 미소를 띠고 있었다.

성공적인 소탕을 자축하기 위해 그들은 마을에서 기르고 있던 돼지나 닭 등을 도축해서 바비큐를 준비했다.

그리고 여러 생존자 마을을 지나오며 주민들에게 받았던 술이나 음식들을 전부 꺼내서, 마을에는 파티 아닌 파티가 이뤄졌다.

-크르르릉!

마을 중앙의 널찍한 공터에 나무를 잔뜩 쌓아 두고 샐러가 불을 붙였다.

마른나무가 없어서 생목을 쌓아 둔 거였는데, 샐러의 화력이 워낙 강하다 보니 마른나무를 태우는 것처럼 활활 잘 타올랐다.

그렇게 조촐한 캠프파이어를 둘러싸고 인한의 팀은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별 일 없이 끝나서 다행이다.”

인한이 멀찍이 떨어져서 불꽃을 구경하고 있던 중이었다.

임태호가 옆에 다가오면서 말을 걸었다.

“별일 있으면 안 되죠. 제가 부탁해서 오시게 한 건데.”

“갑자기 위험 지역에 따라와 달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냐? 뭐, 수입 면에서 봐도 탑에서 버는 것보단 훨씬 많이 버니까 받아들인 거긴 하지만.”

위험 지역의 몬스터들은 하나같이 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몬스터들뿐이었다.

그런 몬스터들의 부산물이니, 값은 굳이 따질 것도 없었다.

거기다 30퍼센트의 세금이 있다고 하더라도, 부산물은 오성 그룹에서 좋은 값에 쳐주기로 했기 때문에 수입이 상당할 것은 당연했다.

“넌 돌아가면 뭘 할 거냐? 또 탑에 오를 셈이냐?”

“당장 급한 일이 없어서요. 그럴 생각입니다.”

“그렇구만.”

임태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인한은 한동안 임태호와 나란히 앉아, 활활 타오르는 캠프파이어를 바라보았다.

“야, 인한아. 나중에도 이런 좋은 일 있으면 불러 주라.”

“네?”

“뭐, 벌이도 좋고, 몸이야 힘들지만 보람도 있잖냐?”

임태호가 씨익 웃었다.

그의 미소에, 인한은 이전의 임태호가 떠올랐다.

생긴 건 산적 같아도, 예전부터 의협심 넘치는 사람이었다.

인한이 엷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다음에 같이 일을 할 때는, 한 지붕 아래였으면 좋겠네요.’

또 한 번 길드라는 틀 안에 함께 탑을 오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인한은 타닥거리는 불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소란스러운 위험 지역에서의 마지막 날 밤이 그렇게 지나갔다.

* * *

이른 아침, 인한의 팀도 이동을 시작했다.

다만, 정작 인한은 움직이지 않았다.

“네? 남겠다구요?”

이소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아직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금방 끝나고 돌아갈 겁니다.”

“그래도, 위험하잖아요!”

“어, 음…… 누님, 그건 좀…….”

이창훈이 어이가 없다는 듯 이소영을 쳐다보았다.

이창훈의 말에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쟤가 뭐 남겠다는데 뭘…….”

“근데 정말 궁금하긴 하다. 쟤도 미사일 맞으면 죽나?”

“미사일 터져도 상처 하나 없는 거 아냐?”

“그럼 핵폭탄은?”

“에이, 아무리 그래도 그건 못 버티지 않을까?”

“아니야, 혹시 몰라. 몬스터 웨이브 때 대형 몬스터들은 핵폭탄에도 버티고 그랬잖아.”

남자들의 바보 같은 대화에 이소영의 표정이 어색해졌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인한과 위험이라는 단어는 그렇게 어울리지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형님, 정환아.”

“응?”

“왜 그러냐?”

“돌아가면 꼭 해태라는 스트리머가 올린 영상을 보세요. 하나도 빠짐없이 다.”

“해태?”

이정환이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외쳤다.

“아, 그 사람? 나 알아. 보지는 않았는데.”

“그 사람이 나야.”

“어?!”

이정환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트리머가 뭐냐?”

인터넷과는 담을 쌓고 살아온 임태호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애들한테 들으십시오. 거기에서 제가 말한 정보들은 모두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정보를 올릴 거니까 거기에 올린 정보들, 모두 해 보십시오. 창훈이가 많은 걸 알고 있으니까 창훈이한테도 얘기를 들어보세요. 창훈아, 마력에 관한 건 좀 잘 얘기해 줘라.”

“옙! 형님!”

이창훈이 가슴을 쭉 피며 거만한 표정을 지었다.

탑의 밖이라 몬스터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지만, 사실 탑 내부로 한정 지었을 때 이창훈은 이 중에서 인한과 강성을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헌터였다.

물론, 곱린이와 리자가 있어도 가장 강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아나스타샤.”

인한이 아나스타샤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인벤토리에서 특이한 문양이 새겨진 나무 목걸이를 꺼냈다.

아나스타샤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거, 뭐입니까?”

“껴 보세요.”

“……?”

디자인은 그렇게 예쁘지 않았다. 그냥 손가락만 한 나무토막에 빨간 문양이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목걸이 줄도 특별할 것 없는 가죽에 불과했다.

그래도 아나스타샤는 자신에게 선물을 주는 인한의 마음에 고마움을 느꼈다.

“선물 고마워요, 인한.”

“그냥 평범한 목걸이가 아니에요. 뭐 달라진 걸 못 느끼겠어요?”

“어?”

아나스타샤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 알아 듣겠어요!”

“저도 제대로 들립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아직 한국어를 배운 지 얼마 안 된 아나스타샤는 쓰기는 어느 정도 됐지만 듣거나 말하는 게 어색했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이 고향인 사람처럼 말투나 억양까지 완벽했다.

“와! 신기해요! 이게 어떻게 되는 거죠?”

아나스타샤를 보고 있던 사람들은 곧 무언가 이상한 걸 느꼈다.

아나스타샤의 입모양과 들리는 소리가 달랐던 것이다.

“기껏해야 한 달 정도 가는 아이템이긴 한데, 탑에서처럼 밖에서도 언어를 자동으로 통역해 주는 아이템입니다. 한 달이 지나면 이걸 파여 있는 문양에 발라 주면 됩니다.”

인한이 빨간 가루가 가득 차 있는 작은 유리병을 건넸다.

그 나무 목걸이는 위그라노아의 마력 중계소의 가지에 마적목 가루를 새겨 넣은 것이었다.

대단할 것 없는 주술로 보이지만, 이래 봬도 회귀 전의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주술이었다.

“러시아어로 말해도 한국어로 바뀔 겁니다. 그래도 영구적인 아이템은 아니니까 자주 끼지는 마세요. 한국말 공부를 보조해 주는 정도로만 사용하세요.”

“알았어요! 정말 고마워요!”

아나스타샤가 활짝 웃었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은 하나둘씩 버스와 트럭에 올라탔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남았던 인한의 팀까지 이동하여 각자 돌아갔다.

인한은 끝까지 남아 그들을 배웅했다.

“저기요.”

마지막에 버스를 타게 된 클레아 팀의 팀원들이 인한에게 다가왔다.

“그, 놀이터에서 또 도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두 번이나 목숨을 빚졌습니다.”

“고마워요!”

이철중은 조금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래도 진심이 느껴지는 인사였다.

인한도 미소를 지었다.

“별 말씀을요. 동료인데요. 어서 출발하세요.”

“역시 영웅답게 성격도 좋으시네요. 고마워요!”

신설아가 싱긋 웃었다.

영웅이라는 호칭에 인한의 표정이 순간 일그러졌지만, 아무도 눈치를 채지 못했다.

신설아의 뒤로, 이철중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버스에 올라타며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전 포기 안 할 겁니다.”

“예?”

그렇게 클레아 팀까지 모두 탄 버스의 마지막 탑승객은 이소영이었다.

불만 가득해 보이는 이소영이 뚫어져라 인한을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쳤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인한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소영 씨, 조심히 가세요.”

“…….”

“소영 씨?”

“……흥.”

이소영이 인한을 한 번 노려본 뒤, 인사도 하지 않고 버스에 올라탔다.

인한이 눈을 껌뻑였다.

“왜 그러시는 거지?”

잘못한 일이 있었나 생각해 봤지만,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혹시 위험해서 말렸는데 억지로 가려고 하니까 삐진 것일까?

“으음…… 다음에 식사라도 한번 사 드려야겠네.”

인한은 태평하게 그런 생각을 하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한편, 버스에 탄 이소영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으으……. 저 인간, 선수야. 백 퍼 선수라고!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면서 어장 치는 거 봐! 아무리 필요한 거였어도 그렇지, 내가 바로 앞에서 보고 있는데 다른 여자한테 목걸이를 선물해?!’

죄 많은 남자, 최인한이었다.

* * *

팀과 헤어진 이후, 인한은 강원도 지역을 돌아다녔다.

위그라노아가 심어 둔 마력 중계소를 모조리 찾아서 잔여 마력을 흡수해 묘목에 주입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총 58개의 중계소의 마력을 모조리 흡수한 인한은 근처 평평한 공터에 세계수의 묘목을 파묻었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인한이 마력을 주입했다.

“이제 그만, 자고 일어날 때다.”

그동안 마력을 자아내던 방식과는 달랐다.

마치 마법을 사용하는 것처럼 일정한 규칙과 형식이 있는 마력 방출이었다.

우웅!

그리고 한순간, 세계수의 묘목이 강한 빛을 토해 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