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119화 (119/266)

# 119

<공략자들 119화>

일격은 정면이다.

요동치며 밀려오는 뿌리들을 걷어 낼 일격.

‘풍제는 안 돼.’

풍제는 좁은 범위에 폭발적인 힘을 터뜨리는 기술이다.

트리아스 액셀상의 기술도 안 된다. 숙련이 부족하기에 자칫하면 자멸할 수 있다.

‘그걸 해 보자.’

아직 이름은 짓지 않은, 미완성된 기술.

펼친 후에 치명적인 공백이 발생한다는 단점이 있기에 보완이 필요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그 위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한의 생각과 동시에 한 줄기 굵은 직선이 정면을 향해 뻗어 나갔다.

인한은 고민 없이 그 선 위에 손을 얹었다.

쿠웅-!

인한이 앞으로 발을 뻗었다.

지면에 파일 정도로 묵직한 일보(一步).

한 줄기 마력이 뻗어 나와 지면과 발을 한데 묶는다.

그리고 마치 탱크가 포탄을 장전하듯, 끌어당긴 주먹에 인한이 가진 모든 힘이 집약됐다.

-크하하하! 어리석구나! 그대로 나의 양분이 되어라!

콰가가가가가!

그런 인한의 정면에 뿌리의 파도가 덮쳐 왔다.

그 순간, 인한의 주먹이 뻗어 나갔다.

쿠구구구구구구!

그 일격은 한 자루의 창처럼 직선으로 쇄도하여 모든 것을 분쇄시켰다.

인한의 주먹과 마주한 뿌리들이 한순간 저항했지만, 이내 우그러지고 터지며 부서져 내렸다.

백색의 기둥이 쏘아진 자리.

힘의 여파가 사라진 공간에 거대한 고랑이 생겨났다.

그리고 인한의 정면으로는 일직선으로 이어진 공터가 만들어졌다.

어떤 신화 속, 바다를 가른 기적의 장면처럼 뿌리의 바다가 갈라졌다.

‘지금이다!’

위력적인 일격이기도 하지만, 그 여파로 마력 운용에 일시적인 공백이 생겨났다.

하지만 그건 위그라노아의 뿌리도 마찬가지.

인한은 지면과 발을 묶어 놓기 위해 사용했던 소량의 마력을 그대로 회수해 격발시켰다.

콰앙!

인한의 몸이 빠르게 앞으로 쏘아졌다.

마력의 힘이 다한 순간.

-끼이이익!

실리암이 인한의 몸에 날개를 달아 주었다.

등 뒤에서 불어오는 돌풍이 인한의 몸을 위그라노아의 근원이 숨겨져 있는 벽까지 움직여 주었다.

-네, 네놈!

위그라노아의 당혹스러운 외침이 들려왔다.

인한이 씨익 웃었다.

이 정도로 가까이 있으니, 안쪽에서 위그라노아가 다급히 자신의 근원을 움직이게 하려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둘 줄 알고?”

콰드드드득!

쭉 뻗어진 인한의 손이 수풀과 토사를 뚫고, 위그라노아의 근원에 닿았다.

-가, 감히이이이!

광기 섞인 목소리도 이제 끝이다.

인한의 손이 뿔을 그러쥐었다.

직후, 마력이 회복됐다.

“잘 가고.”

인한이 비릿한 미소와 함께 손에 오러와 정령력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언더 코어에서 출발한 마력이 미드 코어의 마력구를 거쳐, 오른손에 머문다.

흩어지며 흔들리던 마력이 응집되며 오러의 형태를 띤 순간, 샐러와 실리암의 힘이 오러와 뒤섞였다.

-크, 크아아아아악! 네놈, 무엇을 하려 것이냐!

위이이이이이이잉!

파멸의 힘이 인한의 손에 머물렀다.

그리고…….

위그라노아는 자신의 정신을 가로막는 제어가 풀린 것을 느꼈다.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썰물처럼 밀려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가 치솟았다.

‘아아, 탑! 탑이여!’

하나 정신을 제어 당했을 때와 달리 그 분노는 확실한 목표를 띠고 있었고, 동시에 짙은 회환과 절망을 품고 있었다.

위그라노아는 자신의 뿔을 사라지게 만들어 준 작은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뿔을 없애는 그 순간조차, 몸의 통제를 빼앗긴 상태였던 위그라노아는 작은 생명체의 몸을 난도질했다.

전신으로 수많은 공격을 받아들이면서도, 작은 생명체는 뿔을 없애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 세계의 생명은 이리도 찬란하고 강하구나.’

그의 고향의 은혜로운 태양만큼이나 아름다웠다.

의도치 않게 이 작은 생명체에게, 그리고 이 세계에 민폐를 끼치고 말았다.

‘그래, 이런 자가 있는 세계라면…….’

위그라노아는 점점 자신의 근원이 힘을 다해 가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파멸만이 남지 않았던 자신의 생에 한 줄기 볕을 가져다준 생명체.

위그라노아는 얇은 뿌리 하나를 움직여 생명체의 몸에 가져다 댔다.

이건, 그를 향한 자그마한 보답이었다.

* * *

순간, 정신이 까마득해졌다.

무언가 거대한 힘에 의해 눈앞이 까맣게 되어 버렸다.

‘설마 최후의 순간에…… 그런?’

예전 탑의 상위층을 공략할 당시 그곳의 몬스터들에게 정신 공격을 당했을 때와 비슷한 느낌.

마력을 꽤 많이 소진했기 때문에 정신 공격을 방어할 겨를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정신 공격을 받은 것 치고는 온전히 정신을 잃어버리지는 않은 것 같았다.

-너무 그리 긴장하지 말라.

“……!”

인한이 흠칫 놀라며 뒤를 바라보았다.

사방이 새하얀 공간.

온갖 식물로 이루어진 거인이 그곳에 서 있었다.

-왕의 사도여, 의도치 않게 그대와 그대의 세상에 폐를 끼친 것을 사과한다.

“아……!”

위그라노아는 지극한 현기를 띤 어조로 인한에게 말을 걸었다.

식물에게 미소란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한은 그가 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제야 인한은 그것이 정신 공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한의 기운과 위그라노아의 근원이 연결된 순간.

위그라노아가 모종의 방법으로 자신의 정신에 인한을 초대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제정신을 차렸다는 것은 인한의 가설이 맞아 들었다는 것이기도 했다.

거기까지 생각한 인한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굳이 이런 방법으로 날 초대한 거지? 정신을 차렸다면 밖에서…….”

-그건 어쩔 수 없다. 이미 내 생명이 경각에 달했기 때문이지.

“어째서? 내가 한 처치가 잘못된 것이었나?”

-아니다. 그저…… 내가 너무 오랜 세월 동안 뿔에 저항했기 때문이다. 뿔은 강대한 마력으로 기생하고 있는 자의 모든 것을 옥죄는 기생체이다. 나는 그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실낱같이 회복된 정신으로 계속해서 세뇌에 저항해 왔다. 그대와의 전투에서도 나는 나의 힘을 억제하기 위해 저항을 계속하고 있었지. 그러나 이 뿔은 그러한 것을 허용치 않는다. 뿔을 없앴든 없애지 않았든, 내가 죽는 것은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

인한의 표정에 경악이 물들었다.

다급한 표정의 인한이 다시 입을 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산더미처럼 많다. 시간이 없다면, 짤막하게라도 좋으니 대답해 줄 수 있겠나?”

-그러기 위한 공간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너무 다급해하지 않아도 된다. 이곳은 나의 정신, 나의 세계. 사죄의 뜻이라고 하기에는 빈약하지만, 내가 그대에게 검은 탑의 비밀의 일각을 보여 주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위그라노아의 말이 점점 아득히 멀어졌다.

그것과 동시에, 인한의 정신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갔다.

레오와의 전투 직전, 코어 스톤을 만졌을 때와 비슷한 감각이었다.

그 세계는, 위그드라실이라 불렸다.

세계의 중심에는 세계수(世界樹) 혹은 우주목(宇宙木)이라 불리는 거대한 나무가 자랐다.

그 나무에 의해 생명이 탄생하고, 죽은 생명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갔다.

녹색으로 가득한 조화로운 세계였다.

하나를 위해 세계가 존재했고, 세계를 위해 하나가 존재했다.

인한과 위그라노아는 아득히 높은 상공에서 그 세계를 내려다보았다.

‘맙소사.’

인한은 경악했다.

위그라노아는 자신이 가진 지식을 선별해, 인한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그 과정은 마치 천문에 의해 스킬을 익힐 때와 흡사했다.

그때, 회한이 섞인 위그라노아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그드라실은, 아름다운 세계였다.

세계는 평화로웠고, 어디에도 파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다.

녹음으로 가득한 세계에서 모든 존재들은 세계수의 밑에서 안전했고, 충만했다.

위그드라실에서 식물이란 지구의 인간과 비슷했다.

다만 그들은 세계수라는 어머니의 밑에서 태어나, 죽을 때 다시 세계수에게로 돌아갔다.

다툼도 분란도 있었지만, 그들의 세계는 언제나 조화를 추구했고, 다툼과 분란은 금세 없어졌다.

-나는 세계수의 신관이었다.

인한은 자신의 오감이 일그러지는 것을 느꼈다.

다섯 가지의 감각 기관에 몇 가지가 추가된 듯한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인한이라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각은 확실하게 느껴졌다.

처음 느껴 보는, 너무도 이상한 기분.

‘이건…… 위그드라실의 주민들의 감각인가?’

위그드라실에 사는 존재들이 느끼는 세계는, 인한에게는 실로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자신이라는 자아를 유지하면서, 세계수에서 태어난 모든 존재와 생각과 감각을 공유했다.

자신의 감정이 아닌데 자신의 감정처럼 느끼고, 자신의 생각이 아닌데 자신의 생각처럼 느꼈다.

그들에게는 인간이라면 태어나는 순간부터 느끼게 되는, 고독이라는 단어가 존재조차 하지 않았다.

좋고 말고를 떠나, 그들에게는 그것이 그들만의 삶이었다.

-신관이라 해도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그저 난 오랜 시간을 세계수로 돌아가지 않은 채 살아왔고, 그 덕분에 많은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신관으로서 내가 하는 일은 세계수에 사소한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해결하는 정도였다.

위그드라실의 풍경이 하나둘 눈에 들어왔다.

하늘은 어디서부터 뻗어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세계수의 거대한 나뭇가지가 뒤덮고 있었고, 지상에는 인한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수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이 세계의 주민이 아닌 인한조차 아름답다고 느낄 광경이었다.

하지만.

-탑이 나타났다.

위대한 어머니이자 세계의 중심인 세계수에 어느 날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백 개의 탑이 솟아났다.

-그리고 절망이 시작됐다.

몬스터 웨이브였다.

지구와는 달랐다.

탑이 생기자마자 수도 없이 많은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와 세계수를 휩쓸었다.

-침략자를 물리치기 위해, 우리는 검은 탑에 도전했다.

위그드라실의 생명체들은 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단 한 번도 그것이 ‘힘’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존재들이었지만, 탑을 오르며 자연스레 힘을 인지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식물을 자유자재로 조종했으며, 정신계 공격에 대한 높은 방어력을 지니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마력과 마법을 다뤄 왔고, 세계의 주민 모두가 세계수의 아래에서 정신을 공유했기에 높은 수준의 협력 작업도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한계가 있었다.

-우리는 싸울 줄을 몰랐지.

힘이 있었지만, 위그드라실의 주민들은 그것을 다룰 줄 몰랐다.

애초에 전투와 거리가 먼 생활을 해 온 그들이었다.

그들에게 분란과 다툼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해결될 일이었다.

그들은 모두이며 하나였고, 하나이며 모두였기에, 다른 존재와 전투를 한다는 것에 어색함을 가지고 있었다.

분투를 거듭했지만, 그들은 끝내 49층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고향은 멸망했다.

화악!

광경이 뒤바뀌었다.

위그드라실 세계의 근원, 세계수가 불타올라 붕괴되고 있었다.

세계는 위그드라실의 주민이 아닌, 몬스터로 가득한 세상이 되었다.

적은 수였지만 살아남았던 존재들조차 몬스터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그리고…… 멸망한 검은 탑은 세계의 정수를 흡수했다.

“세계의 정수?”

인한이 눈가를 찌푸렸다.

다음 장면은, 황폐화된 세계였다.

녹음으로 가득했던 세계는 아무것도 남지 않은 사막이 되었다.

“이럴 수가…….”

인한은 갑작스러운 변화에 경악했다.

아무리 생명체가 멸종했다지만, 세상이 이렇게 변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광경이, 정수를 갈취당한 세계가 맞이하는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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