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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118화 (118/266)

# 118

<공략자들 118화>

그 강대한 마력의 파동은, 이 주변 지역이 전부 놈의 일부였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큰일이군.’

인한은 어떻게든 뿔을 소멸시켜 반응을 보려고 했다. 중간에 펼친 기술이 그대로 먹혀들었기 때문에 가능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렇게 되어 버리면 답이 없어진다.

콰가가가가!

뿌리의 폭풍이 몰아쳤다.

벽, 천장, 바닥, 온갖 곳에서 뿌리와 풀들이 솟아나 인한의 손을 묶고, 발을 걸고, 몸을 두드렸다.

단순히 몬스터 한 마리와 싸우는 게 아니라, 거대한 세계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큭!’

간신히 공격을 피해 냈나 싶었는데, 몸을 피한 곳의 지면에서 두꺼운 덩굴이 솟아나 인한의 발을 걸어 버렸다.

몸의 균형이 무너지고, 그런 인한의 위로 뿌리가 휘둘러졌다.

인한이 다급히 주먹을 뻗었지만.

콰앙!

주먹을 채 휘두르기도 전에 정체 모를 단단한 나무껍질 같은 게 날아와 인한의 복부를 후려쳤다.

지면에 격돌한 인한이 비명을 질렀다.

“크으으윽!”

폐부가 쥐어짜이는 고통 탓에 쩍 벌려진 인한의 입에서 위액과 침이 뚝뚝 떨어졌다.

“후욱, 후욱.”

인한은 숨을 몰아쉬며 입가를 훔쳤다.

부웅!

쉴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또다시 해일처럼 공격이 몰아쳤다.

‘젠장…….’

최상층의 보스 몬스터들은 그 하나하나가 모두 세상을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진 것들이다.

인한의 힘으로서는 이렇게 버티고 있는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대체 왜 이 정도의 몬스터가 탑도 아닌 위험 지역에 나와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냥은 못 죽어 주지! 어디 한 번 끝까지 가 보자!’

인한이 이를 악물며 마력을 끌어올리며 생각을 거듭했다.

죽을 각오였지만, 실낱같은 희망이 하나 있었다.

바로 위그라노아의 뿔을 찾아, 그것을 뿔을 소멸시키는 것이다.

이곳에서 인한이 위그라노아의 공격을 모조리 버티고 이긴다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했다.

하지만 적어도 뿔만 노리는 것은 가능할 것 같았다.

“뿔……이라.”

인한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동안 인한에게 몬스터의 뿔은 그저 뿔일 뿐이었다.

단 한 번도 각석 이상의 의미를 부여해 본 적 없다.

전투 중 뿔을 부러뜨린 적은 몇 번이나 있었지만, 이상한 점은 느끼지 못했었다.

하지만 위그라노아를 보며 의문이 생겨났다.

어째서 몬스터도 종류가 다양하고, 특징이나 성향이 제각각인데, 모든 몬스터의 머리에는 뿔이 있는 것인가.

어째서 한낱 몬스터에 불과한 고블린과 오크 등의 인간형 몬스터가 상당한 수준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는 것인가.

어째서 상층 구간의 몬스터들 일부는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인간과 대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가.

어째서 단 한 마리의 몬스터도 고농도의 마력원인 뿔을 사용하지 않는 것인가.

만약 그것이 별것 아닌 의문이라면, 사용하지도 못할 뿔은 어째서 존재하는가.

어째서…… 탑의 존재임에도 아인종들은 뿔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인가.

위이이이이잉!

미드 코어가 강렬한 확신을 보내왔다.

뿔이다.

모든 의문의 끝엔 뿔이 존재한다.

아인종들은 뿔이 없기에 인간에게 적대하지 않는다.

몬스터들은 뿔이 달려 있기에 인간을 적대한다.

몬스터들의 마력 기관과 연결되어 있지도 않으면서, 고농도의 마력을 품고 있는 뿔.

적어도 뿔은 몬스터가 자체적으로 생성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뿔은 어떻게, 왜 만들어진 것이란 말인가.

-이건 다 유희에 불과하다.

100층의 보스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렇다.

부정하고 싶지만, 이 검은 탑은 아발론의 왕들의 유희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길한 가정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인한은 그 가정을 애써 부정했지만, 이미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서 눈을 돌릴 수는 없었다.

‘만약 그 가정이 맞다면…… 몬스터들은 단순히 우리 세계를 침략한 침략자가 아닐 수 있어.’

하지만 이것은 모두 추측에 불과하다.

가정을 증명하려면,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나려면 인한은 위그라노아의 뿔을 없애야 했다.

‘그저 자르거나 파괴하는 정도는 몇 번이고 해 봤다. 본체를 찾아서, 이 힘으로 소멸시켜 버린다.’

만약 그 일이 성공한다면, 인한은 탑의 비밀에 한 발자국 다가가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콰앙!

인한의 허벅지 크기 정도의 덩굴이 채찍처럼 휘둘러졌다.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가 마치 전투기의 엔진 소리처럼 울려 퍼졌다.

‘큭!’

실리암의 바람이 덩굴을 조각내고, 샐러의 불꽃이 잘라진 것들을 태워 버린다.

두 정령을 사용해도 처리할 수 있는 뿌리의 수는 기껏해야 두 개.

오러를 사용하며 체술을 전개해도 기껏해야 열 개 정도만 막아 낼 수 있다.

그에 비해, 위그라노아가 휘둘러 오는 뿌리의 수는 수백 수천을 넘어선다.

‘자, 이제 목표는 정했는데…….’

인한이 허망한 눈으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뿔은 대체 어디 있는 거냐.’

뱀이 고개를 치켜들 듯, 수십 수백의 나무뿌리들이 꿈틀거리며 인한의 정면에 솟아올랐다.

화악!

뿌리들이 인한을 향해 휘둘러졌다.

‘뭐가 보여야 없애든가 하지, 젠장!’

목표를 정했지만,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인한이 다시금 이를 악물고 주먹을 휘둘렀다.

‘으으…….’

위그라노아는 정신을 지배하려는 무언가에 계속해서 저항했다.

하지만 저항하면 저항할수록 그의 의식이 갉아 먹히는 속도도 빨라져만 갔다.

덕분에 그의 육체의 상당 부분은 이미 통제를 벗어난 지 오래였다.

-크하하하! 죽어라! 하등한 존재여!

위그라노아는 광기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

뇌리 가득,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를 향한 살의가 들끓었다.

하지만 위그라노아는 알고 있었다.

그 광기 어린 외침도, 자신의 감정도, 모두 무언가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저자를 죽게 해선 안 된다.’

위그라노아는 용케 자신의 공격에서 아직까지 도망치고 있는 생명체를 바라보았다.

의식이 흐릿해지고, 제대로 된 사고조차 이어지지 않지만, 위그라노아는 본능적으로 그 생명체에게 답이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최소한 나의 권능의 대부분은 꽉 쥐고 있겠다.’

그것이 위그라노아가 자신에게 대적하는 생명체에게 해 줄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이었다.

수풀을 조종하는 위그라노아의 능력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했다.

자신의 이름도, 자신의 고향도, 살아가는 목적도, 그 무엇 하나 알지 못하는 위그라노아였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의 권능은 강력하고 위험하다.

만약 처음부터 그 모든 것을 해방시켰다면 눈앞의 생명체가 아직까지 살아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부디…… 죽지 말라.’

또다시 정신이 흐릿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위그라노아는 그만의 싸움을 계속했다.

‘할 만해.’

인한이 눈을 빛냈다.

인한의 기억 속, 80층대의 몬스터 치고는 위그라노아의 힘은 어설프기 그지없었다.

최상층 구간의 몬스터들은 신화나 전설 속에서 등장하는 ‘세상을 멸망시키는 괴물’과 같은 힘을 가지고 있었다.

77층의 보스 몬스터, 삼두룡 드레지리아는 그저 호흡하는 것만으로 산을 녹게 만들었다.

80층의 보스 몬스터 파이몬은 수억 마리의 귀신들의 군단을 거느렸었다.

85층의 보스 몬스터 베헤모스는 상처를 입어 피를 흘리면 그 피에서 족히 500레벨대의 분체(分體)들을 무더기로 소환했다.

위그라노아 또한 보여 주지 않았을 뿐, 그에 비견될 정도의 힘을 가졌을 것이라 예상했기에 인한은 막막함을 느꼈던 것이었다.

하지만.

‘덩굴의 공격도 이제 눈에 익었다. 정면에서 맞지 않고 흘리면 크게 위험할 것도 없다. 거기다 공격이 묘하게 한 템포씩 늦어. 그걸 잘 계산하면…….’

인한은 생각을 이으며, 공격해 오는 뿌리를 피해 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위그라노아의 공격은 기민함이 떨어졌다.

인한이 갑자기 방향을 틀면 쫓아오지 못했다.

거기다 고레벨 몬스터인 주제에 뿌리를 통한 공격 외에 다른 공격은 해 오지 않았다.

고층에 가면 개나 소나 다 하는 정신계 공격도 없었고, 여타 특수 능력조차 발휘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나저러나 최악인 건 똑같군. 대체 뿔을 어떻게 찾…….’

또다시 뿌리가 휘둘러졌다.

인한이 땅을 박차고 회피하려고 한 순간.

“큭!”

욱신!

아무런 이유 없이, 갑자기 양쪽 눈이 짓눌리는 듯한 고통이 찾아왔다.

고통에 익숙한 인한조차 외마디 비명을 지를 정도의 통증이었다.

쐐애애액! 쾅!

그 탓에 회피가 늦었다.

휘둘러진 뿌리가 인한의 몸을 옆에서 후려쳤다.

허공에 부웅 떠서 지면에 처박힌 인한이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시발, 갑자기 이게 무슨…….”

인한은 눈가를 찡그린 채 욕지거리를 뱉어 냈다.

몸을 두드린 고통이야 별 게 아니었다.

대퇴골에 금이 조금 간 것 같지만, 그 정도 상처쯤 이제 금방 치유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갑작스러운 안구의 통증은 이상했다.

착각으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확연한 통증이었다. 눈을 칼로 쑤시는 것 같은 기분.

‘그냥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었지…… 역시 특수 능력을 가지고 있었나? 이러면 성가셔…… 어?’

우웅!

한순간, 인한의 눈에 하얀 빛이 서렸다.

그리고 인한의 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 보지 못하는 것을 비추기 시작했다.

오래전 씨앗을 흡수한 후 얻게 된 능력이 이곳에서 힘을 발휘한 것이었다.

모든 뿌리와 수목에 흐르는 위그라노아의 마력, 대지(大地)의 호흡, 공기에 가득한 마나의 움직임, 정령들이 남긴 속성력의 잔재, 인한 자신의 마력의 고동까지.

그저 느끼는 것에서 벗어나, 확연하게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 능력으로 뭔가를 발견한 인한이 눈을 빛냈다.

무언가가 솟아오른 촉수와 같은 뿌리와 벽을 뒤덮은 수풀과 토사(土砂)에 감춰져 있었다.

‘이건……!’

두꺼운 뿌리와 수풀 등이 둥그런 형태로 돌돌 뭉친 식물 덩어리.

‘찾았다!’

위그라노아의 근원이었다.

식물 덩어리를 감싸고 솟아 있는 수십 개의 뿔이 증거였다.

욱신!

안구의 안쪽에서 미약한 고통을 느꼈다.

인한은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보이던 것들이 다시 보이지 않았다.

“이미 충분해.”

이 ‘눈’의 지속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러나, 인한 정도의 헌터에게는 찰나의 순간이면 충분했다.

콰가가가가!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뿌리의 공격이 보였다.

인한이 오러와 정령술을 최대치로 끌어올렸다.

“이제 아낄 필요도 없어!”

두 번.

단 두 번 공격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

화악!

아주 오랜만에, 전투 중에 그 공간에 들어선다.

인한의 사고를 제외한 모든 것들의 시간이 극한으로 느려진다.

공기의 흐름, 먼지 한 톨의 움직임까지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집중력이 미친 듯이 증폭되고, 모든 감각이 예리하게 날이 세워진다.

그리고 그 공간에, 수많은 선이 모습을 드러낸다.

실타래 수십 개를 아무렇게나 풀어놓은 듯한 광경이었다.

전에 없을 정도로 수많은 선들이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들어왔다.’

트리아스 액셀을 얻고, 자기 자신의 힘을 가다듬으며, 인한은 이제 그 공간에 자의로 들어설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이제 끝을 보자.’

인한이 주먹을 그러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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