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5
<공략자들 115화>
위험 지역 진입 5일 차.
임시로 만들어진 팀이었지만, 진행은 굉장히 순조로웠다.
벌써 춘천시와 화천군의 대부분의 몬스터를 소탕했고, 그들은 이제 양구군을 거쳐 인제군으로 넘어갈 예정이었다.
인한이 김명준을 협박해 얻어 낸 현 정부의 최대의 치부이자, 강원도 생존자 마을의 위치가 적힌 지도 덕분에 현재까지 총 12개의 마을에서 3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을 구하는 데 성공했다.
밤이 되고, 팀은 넓은 공터가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에 자리를 잡았다.
혹시 몬스터가 올지도 몰랐기에 인한이 주술을 설치했고, 모두가 순서를 정해서 경계를 서기로 했다.
“이러니까 우리가 정말 영웅이 된 기분이구나, 흐흐.”
모닥불을 쐬고 있던 인한의 옆에 임태호가 오며 말했다.
인한이 피식 웃었다.
그러고 보면 임태호는 생긴 건 조직의 보스처럼 생겼으면서, 실은 영웅호걸에 대한 로망이 많은 양반이었다.
“실제로 영웅이긴 하죠.”
“아, 맞아. 그런데 대체 넌 뭐냐? 왜 군인들이 그렇게 깍듯하게 거수경례를 하는 거야? 너 뭐, 국가 소속이었냐?”
“그럴 리가요. 그냥…… 일이 좀 있었습니다.”
“흐음. 그래?”
팀이 구한 생존자들은 군부대의 호위를 받으며 위험 지역 밖으로 이송됐다.
생존자 마을을 발견하고, 주위 몬스터를 청소한 후 인한이 신호탄을 터뜨리면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군부대가 생존자들을 실어 나르는 구조였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병사들이 인한을 향해 깍듯한 예의를 갖췄다.
뭔가를 감추는 듯한 애매한 반응에 임태호가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보았다.
그런 눈빛이 부담스러워, 인한은 서둘러 말을 돌렸다.
“그것보다 저쪽에서 부산물 분배하고 있던데 안 가 보십니까?”
“슬슬 나도 가 봐야지.”
임태호가 손을 휘휘 저으며 운동장 중앙의 왁자지껄한 곳을 향해 걸어갔다.
수북이 쌓인 부산물들을 바라보며, 임태호가 혀를 내둘렀다.
“와, 이거 벌이가 엄청날 거 같은데?”
위험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몬스터들은 현재까지 공략된 층이 아니라, 위쪽 층에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몬스터들이 대부분이었다.
“에이, 그래 봤자 나라에서 30퍼센트를 세금으로 떼 가는데 그게 얼마나 남습니까?”
“그래도 양이 있는데. 어중간하게 필드 돌아다닐 바에 여기가 벌이는 훨씬 좋을 거 같다.”
군대와 군용 화기, 거기다 백호 공격대가 움직이는 대신, 김명준은 안쪽의 부산물 30퍼센트를 조건으로 제시했다.
사실, 70퍼센트를 가져가겠다는 것을 인한이 ‘죽고 싶습니까?’라고 협박해서 바꿔 버린 것이었다.
부산물을 뒤적이던 이창훈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각석은 안 나오네요. 진짜 엄청나게 잡아 댔는데, 보통 50마리 정도 잡으면 한 마리 정도 나오지 않아요?”
임태호가 픽 웃었다.
“야 인마, 원래 몬스터 웨이브 때 밖으로 나온 몬스터들은 각석 안 나와. 한 천 마리 잡아 봐라, 그러면 하나 나올까 말까 하겠다.”
“예? 왜 그래요?”
“나라고 알겠냐? 근데 뭐…… 이놈들이 밖에 나오면 갑자기 약해지는 거랑 비슷한 맥락 아니겠냐?”
“그런가…… 아, 좀 느낌이 이상한데…….”
“뭐? 왜 그러는데?”
이창훈이 입맛을 다시며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 요즘 싸우면서 느낀 건데, 최근 들어서 밖에 나오면 힘은 약해지기는 하는데, 좀 영리해지지 않았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오히려 강해진 거 같은데, 몬스터들.”
“영리하다고? 그런가……?”
임태호와 이창훈은 서로를 바라보다 미간을 찌푸렸다.
그렇게 위험 지역에서의 하루가 또다시 지나갔다.
* * *
인한은 또 한 번 무더기로 몬스터들을 죽이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국정원 청사 무너뜨릴 때, 그냥 몸만 축내는 짓인 줄 알았더니만…….’
인한이 몸 상태를 회복하고 천문을 확인했을 때, 트리아스 액셀의 숙련도는 3레벨이나 폭등한 상태였다.
‘거기다 오러랑 속성력의 융합도 수월하고.’
인한은 손끝에 머문 이질적인 힘을 바라보았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불꽃이 인한의 손에 머물러 있었다.
오러도 아니고, 정령술도 아닌 힘.
분명 손끝에 머문 힘은 마력이 실체화하며 만들어지는 마나 스킬의 오의, 오러라 불리는 힘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보통 오러는 이렇게 타는 듯한 형상을 취하지 않는다. 영화 속의 광선검처럼 빛의 응집체와 같은 형상을 취한다.
그 현상은 속성력이 작용한 탓이다.
불의 정령술과 합쳐진 오러가 이렇게 타오르는 듯한 현상을 취하게 되는 것이다.
‘이 힘은…… 위험하군.’
인한은 국정원 사건 때 처음으로 트리아스 액셀을 최대치로 전개했다.
그때는 제정신이 아니어서 그저 힘을 휘두를 뿐이었지만, 지금은 인한도 자신이 가진 힘의 위험성을 실감한 상태였다.
마력과 속성력이 융합된 이 힘은, 스치는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관용적인 표현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로 모든 것을 소멸시킨다.
불에 타든, 부서졌든, 아무리 파괴되었어도 흔적을 남기 마련이다.
불에 탔으면 재가, 부서졌으면 가루가 남는다.
하지만 인한의 힘에 스친 것은 흔적조차 남지 않는다.
그냥 너무 강한 힘이기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인한의 힘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는 마나조차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저 누가 말해 준 것이라면 믿지 않았겠지만…… 내가 한 것이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마나는 절대불변이다.
아무리 소모하고, 사용하더라도, 마나는 줄어들지 않는다.
마력으로 변환해 체내에 축적한다 한들, 결국 체외로 방출했을 때 마나로 환원될 뿐이다.
그런데 인한의 힘에 스치면 마나가 소멸된다.
마나도, 공기도, 모든 사물과 생명이 사라진 그 공간은, 아주 짧은 순간만큼은 완벽한 무(無)의 상태가 된다.
‘너무 잘 드는 칼을 얻은 기분이야.’
그렇게 위험한 힘이긴 하지만, 트리아스 액셀을 최대로 전개했을 때가 아니면 발생하지 않는 현상이기도 했다.
오러를 끌어올릴 때도 미드 코어와 언더 코어의 균형이 완벽하게 균형을 이뤄야 했고, 정령술과 오러의 융합도 정확한 비율로 맞아야 했다.
‘한동안 실험을 해 봐야겠어.’
오러가 활용도가 높은 힘인 데 비해, 이 힘은 그저 무언가를 파괴만 할 뿐이었다.
거기다 마력과 속성력의 소모가 너무나도 극심했다.
‘만들어 가는 기술도…… 이름을 붙여야겠군.’
트리아스 액셀을 얻은 후에도 인한은 자신의 전투 기술들을 정립해 가고 있다.
아직은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개념만 잡은 기술들이었지만 언젠가는 제대로 된 하나의 이름으로 합치고 싶었다.
“으아아악! 저거 뭐야!”
그때, 한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
대형 몬스터 한 마리가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맹렬한 속도로 접근 중이었다.
인한이 마력을 끌어올렸다.
위이이잉!
인한의 손에 세찬 마력의 폭풍이 휘감겼다.
* * *
“조금 이상하지 않습니까, 형님?”
“왜 그러는데.”
“아니…… 이거 한국 맞아요?”
인제군의 끝자락에 있는 생존자 마을로 향하던 중, 이창훈이 조심스레 인한에게 물어 왔다.
인한도 고개를 끄덕이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리 몬스터와 몬스터 웨이브의 영향을 받아 자연 환경이 바뀌었다지만, 이건 너무 심했다.
“이거…… 거의 탑 안쪽 아닙니까? 이것 좀 봐 주세요, 형님.”
이창훈이 작은 나무 조각 하나를 내밀었다.
[혈적목 조각]
[등급 : F]
[종류 : 재료 아이템]
[상세 설명 : 리아스틸의 숲에서만 자라는 나무의 조각]
“…….”
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인한도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
아무리 몬스터들이 살아 숨 쉬고 있다지만, 위험 지역은 탑과 비슷한 공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일까.
아무리 자연 환경이 뒤바뀌었다지만 이곳은 대한민국이고, 강원도였다.
“거기다…… 아무리 몬스터들이 있다지만 수백 년 지난 것도 아니고 십 몇 년 지난 건데…… 이렇게 바뀌어요?”
이창훈이 기분 나쁘다는 듯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곳은, 과거에 도시였던 곳으로 보였다.
주위에는 큰 상가들이 늘어서 있었고, 주인을 잃은 자동차들도 보였다.
그런데 그 인간의 흔적들이 불길할 정도로 짙은 수풀에 휘감겨 있었다.
아무리 관리를 하지 않더라도 현대 문명의 힘으로 지어진 건물들이, 밀림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건물은 외부와 내부 모두 정체를 알 수 없는 수풀에 휩싸여 거대한 하나의 나무로 보일 정도였고, 자동차들은 엷은 풀에 둘러싸여 차체가 우그러지고, 부서져 있었다.
아스팔트 도로는 애초에 토사와 잡초에 휩싸여 특유의 검은색이 보이지도 않았다.
“그 뭐지 흑인 나오는 그 영화. 다 좀비 돼서 개랑 둘이서 같이 지내는 영화 있잖습니까. 그 영화에서도 이 정돈 아니었는데 말입니다.”
이창훈이 으슬으슬 몸을 떨었다.
인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만약, 세상이 검은 탑에 의해 멸망하면 모든 곳이 이렇게 되는 것일까.
그때.
‘여기…… 뭔가 있군.’
인한은 기이한 존재의 기척을 느꼈다.
그저 감일 뿐이지만, 인한의 감은 무척 잘 맞는 편이다.
쿵!
아주 오랜만에, 미드 코어가 인한에게 위험 신호를 보내왔다.
인한도 신은 아니었다.
아무리 위험 지역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몬스터들이 인한의 눈에만 보이는 것도 아니고, 모든 몬스터를 사냥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인한의 목표는 생존자들의 구출에 있었다.
‘이제…… 두 개 정도 남았나.’
국정원에서 체크한 것 외에도 몇 개의 마을이 더 있다 보니 진행이 늦었다.
인한은 생존자들에게 두 번 세 번 물어봐서 혹시라도 놓친 마을이 있을까 살펴보았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팔순이 다 되어 가는 노파가 인한의 손을 꽉 붙잡고 연신 고개를 숙여 댔다.
“얼른 가 보세요. 조심하시고요.”
노파는 지팡이를 짚고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몸 상태여서 손자가 몸을 부축해야만 했다.
옆에 같이 서 있던 이소영이 흐뭇하게 웃으며 말했다.
“기특하네요.”
“그러게요. 귀엽네요.”
이번 마을의 생존자들 대부분이 이송됐고, 마지막 이송 트럭만 남았을 때였다.
군인 하나가 인한에게 다가왔다.
“충성! 일병! 박충식!”
“일일이 그렇게 관등 성명 댈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충성은 무슨, 내가 군인이라도 됩니까?”
“그, 그것이…….”
“됐고, 무슨 일입니까?”
“아! 그 아까 전 어르신 한 분을 부축하고 있던 소년을 기억하십니까?”
“네, 방금 지나간 아이 아닙니까?”
“그 아이가 꼭 전해야 할 말이 있다고…….”
군인이 힐끗 뒤를 바라보자, 소년이 군용 트럭 앞에서 불안한 시선으로 인한을 바라보았다.
인한이 천천히 소년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니?”
인한이 쪼그려 앉으며 눈을 마주했다.
소년이 우물쭈물하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아, 아저씨는…… 강하죠?”
“풋! 아저씨래! 큭!”
옆에 있던 이소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킥킥댔다.
인한도 피식 웃었다.
외면은 20대라지만, 내용물은 아저씨가 맞았기 때문이다.
“이 아.저.씨. 굉장히 강해. 여기도 이 아저씨가 혼자서 다 구한 거야!”
“그, 그래요?”
“저기요, 굳이 아저씨라고 강조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히히. 왜요, 아저씨!”
이소영이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내용마저 과장은 아니었다.
실제로 인한 혼자서 마을 주변의 몬스터를 몰살시켰으니까 말이다.
“저, 마, 말씀드릴 게 있는데. 그게 그러니까…… 그, 아무도 믿어 주질 않아서요…….”
소년이 고개를 푹 숙인 채 입을 뻐끔댔다.
공포에 질린 것처럼 보이기도, 용기를 내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혹은, 소심하지만 무언가를 하려는 모습이기도 했다.
인한의 표정이 묘해졌다.
‘꼭 나 같군.’
인한이 부드럽게 웃으며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말해 보렴. 이 아저씨가 믿어 줄 테니까.”
“그, 그게…… 제가 얼마 전에 마을 근처에서 말을 하는 몬스터를 만났어요.”
“뭐?”
“그, 그 몬스터가…… 사람 말을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