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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112화 (112/266)

# 112

<공략자들 112화>

인한은 인수의 시신을 수습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뒤로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인한은 알지 못했다.

난처했고, 참담한 심정이었다.

이대로 인수를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장례를 치러 줘야 했다.

인한이 상주가 되어야 한다.

어차피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지만, 적어도 가는 길만큼은 이 세상에서 최고의 것들을 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인한은 장례에 관한 지식이 전무했다.

고개를 푹 떨어뜨린 인한은 한참을 고민하다 스마트폰을 열고 이창훈의 번호를 눌렀다.

-혀, 형님? 좀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뉴스에서 형님 내용 사라졌던데…….

신호음이 두 번도 채 울리지 않았는데 바로 이창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인한은 힘겹게 웃었다.

“미안하지만 부탁 하나만 하자.”

인한의 목소리는 침울했고, 짙은 슬픔이 묻어 있었다.

인한의 그런 기색을 읽었음일까. 이창훈의 목소리도 절로 낮아졌다.

-무슨 일이십니까?

인한은 잔뜩 잠기고 갈라진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일단…… 이쪽으로 좀 와 주라.”

* * *

어느새 국정원 청사 주변은 경찰이며 응급 구조대가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대로 주위에 있다가는 누군가에게 들킬 염려가 있어서, 인한은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은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시간의 흐름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기력함에 휩싸여 있을 때, 이창훈의 연락이 있었다.

근처에 다 왔다는 전화였다.

인한이 이창훈을 인수와 있는 곳으로 데려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둑어둑해져 있었다.

비단처럼 하늘에 번져 가는 낙조를 등지고 있던 이창훈이 굳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대체 무슨 일이…….”

인한은 입을 꾹 닫은 채 말을 하지 않았다.

이창훈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난처하네요. 119를 불러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원래라면 바로 병원에 가면 되겠지만, 정상적인 죽음이 아니었으니까…….”

“…….”

그는 위로의 뜻으로 말한 것이겠지만, 인한은 울컥 분노가 치솟는 걸 느꼈다.

아직 살아 있을 국정원 요원들을 모조리 다 쓸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인수의 얼굴을 보니 분노가 가라앉고, 더 큰 슬픔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죄송하지만 저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경우엔 경찰들이나 과학 수사대가 오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인한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걸 본 이창훈이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후우, 가족이 죽었으니 당연하겠지만, 표정이 말도 아니시네.’

때때로 인한이 보여 주는 끝 모를 슬픔과 좌절의 감정.

그게 지금도 표정에 드러나고 있었다.

“일단 이대로 둘 수는 없으니 119에 연락하죠. 할 게 많아요, 형님. 정신 차리세요. 가는 길 잘 배웅해 줘야죠.”

이창훈의 말에 인한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이창훈을 바라보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오성…….”

인한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스마트폰을 열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와! 전화했다! 웬일이래? ……농담이구요. 무슨 일이에요?

이소영이 웃으며 물었다.

언제나처럼 쾌활한 목소리였다.

“소영 씨, 부탁이 있습니다.”

인한의 목소리가 정상적이지 않음을 눈치챈 것일까.

이소영의 목소리도 절로 가라앉았다.

-무슨 일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인한이 힘겹게 입을 뗐다.

* * *

장례식은 오성 그룹의 산하에 있는 오성 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루어졌다.

절차상의 문제에는 이소영의 도움이 컸다.

결코 떳떳한 방법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오성 그룹 회장의 딸이라는 이름은 상당한 힘을 발휘했다.

인수의 몸이 의사에게 넘어가고, 인한의 손에 고작 사망 진단서라고 적힌 종이 쪼가리 7장이 쥐어졌다.

이소영은 자신의 이름으로 최상급 상조 회사를 불렀다.

장례 지도사는 굉장히 정중한 손으로 굳어 가고 있던 인수의 몸을 바로잡았다.

이창훈이 안 보는 게 좋을 거라고 인한을 말렸으나, 인한은 미동도 않고 굳이 수시 과정을 모두 지켜보았다.

안치실에 인수가 안치되고, 인한은 장례 지도사와 함께 빈소와 장례 용품을 선택했다.

모든 걸 최상급으로 맞췄다. 수의, 관, 화환…… 모조리 제일 비싼 것으로 골랐다.

“이런 말을 해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인한 씨, 힘내세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예요.”

화려하게 장식된 빈소에 인한이 정장 차림으로 우두커니 섰다.

그 양옆으로는 이창훈과 이소영이 달라붙었다.

“고맙습니다, 소영 씨. 고맙다, 창훈아.”

인한의 목소리는 어느새 정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 침울함만큼은 도저히 지워지질 않았다.

“정말 미안하지만…… 혼자 있고 싶어. 창훈아, 갑자기 불러서 미안하다. 들어가 봐라. 소영 씨도요. 갑자기 부탁드렸는데도 이렇게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 형님. 저희 사이에 무슨…….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건 신경 쓰지 마시구요. 것보다 형님, 지금 상태가 진짜 아니에요. 조금 쉬시는 게 어떠십니까?”

“맞아요. 인한 씨, 대충 정리됐으니까 어서 진찰을 받아 봐요. 얼굴색이 정말 말이 아니에요.”

이소영이 걱정된다는 표정으로 인한을 바라보았다.

인한의 얼굴은 창백하다 못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의 인한은 겉으로 보이는 외상은 전혀 없지만, 내상이 심각했다.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내상을 품은 채 쉬지도 못했으니, 몸 상태가 어느 정도일지는 안 봐도 뻔했다.

“괜찮습니다. 여기를 비워 둘 수는 없잖습니까.”

인한은 빈소에 걸려 있는 인수의 영정 사진을 바라보았다.

사진이 아예 없었기 때문에, 인한이 가지고 있던 가족사진에서 인수의 얼굴만 확대해 걸어 둔 것이었다.

“안 돼요!”

공허한 인한의 말을 듣고 이소영이 버럭 외치며 인한의 팔뚝을 움켜쥐었다.

인한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인한 씨 얼굴이 어떤지 아세요?”

이소영의 눈가가 다소 촉촉하게 젖었다.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인한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대체 그녀가 왜 운단 말인가. 울 사람은 인한인데 말이다.

인한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맑아진 눈빛으로 인한이 이소영을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정말요? 그럼 바로…….”

“그래도 진찰은 필요 없습니다.”

“네?! 인한 씨!”

“그런 게 아니에요. 조금만 쉴 수 있으면 괜찮습니다. 약을 먹거나 치료를 받는다고 낫는 게 아니에요.”

“아…… 설마?”

인한이 이소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두 분 모두 들어가 보세요. 오늘 정말 감사했습니다.”

인한은 그렇게 말했지만, 이창훈과 이소영은 빈소를 떠나지 않았다.

어차피 올 사람도 없는 장례식이었다.

누굴 부를 생각도 들지 않았다.

인한은 빈소의 앞에 있는 의자에 앉은 채, 무거운 몸을 깊게 기댔다.

다음 날, 인한의 예상과 다르게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이고, 자식아…….”

대체 어떻게 안 건지, 새벽같이 임태호가 찾아왔다.

눈물을 글썽이는 임태호는 인한의 손을 한 번 꽉 쥐더니 터벅터벅 빈소로 가서 절을 했다.

그러더니 이창훈과 이소영의 앞에 떡하니 앉고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현철 회장, 이주호를 필두로 한 고등학교 동창들, 김만춘 아저씨까지.

모두 어떻게 소식을 들었는지, 빈소에 찾아와 주었다.

거기다 반가운 얼굴들도 찾아왔다.

“인한아.”

이정환과 서커스 팀의 팀원들이었다.

5층 이래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때때로 드루이드의 인형으로 연락은 했지만 만나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었다.

이정환의 마력은 차분하게 정제되어 있었고, 기세는 한층 더 깊어졌다.

강해진 것이다. 그것도 무지막지하게.

“저, 아니, 나……? 나도 왔습, 예요? 인한. 힘내요.”

어눌한 한국말을 하는 금발의 미녀, 아나스타샤도 있었다.

검은 탑의 내부가 아니다 보니 말이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어떻게?”

“제가 불렀습니다. 한국에서 사는 편이 그녀에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아서요.”

빚은 서커스 팀에서 활동하며 다 갚은 것을 연락받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설마 한국으로 이민 올 생각을 하다니.

그 뒤로도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너무 많은 사람이 찾아와, 외롭기만 할 것 같았던 빈소를 북적이게 만들어 주었다.

이창훈과 임태호, 이정환이 인한을 도와 이리저리 움직이며 손님을 맞이했다.

‘정신이 없군.’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익숙하지도 않은 일을 한 탓에 슬퍼할 겨를도, 생각에 잠길 겨를도 없었다.

몸 상태도…… 사실은 지금 당장 쓰러지고 싶을 정도였다.

“저예요.”

겨우 한숨을 돌린 인한이 의자에 앉아 쉬고 있을 때, 이소영이 다가왔다.

“네?”

“제가 범인이에요. 인한 씨 스마트폰을 봤거든요. 비밀번호 안 걸어 두셨더라고요.”

이소영이 인한의 스마트폰을 테이블 위에 올렸다.

인한은 한동안 그걸 바라보다가 힘없이 미소를 흘렸다.

“그렇군요.”

그제야 이해가 됐다.

그리고 고마웠다.

만약 이 넓은 빈소에 인한 혼자만 있었다면, 인한은 더더욱 헤어 나올 수 없는 감정의 늪에 빠졌을 것 같았다.

인한은 시선을 돌려 떠들썩한 빈소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 간직하고 있던 어둡고 침침하던 무언가가 녹아내리는 걸 느꼈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인한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인한은 언제나 조금씩 부족했다.

실패와 좌절이 꼬리표처럼 붙어 다녔다.

하지만, 인한이 부족한 만큼 이렇게도 좋은 사람들이 인한의 주위에 있었다.

인한은 삐걱대던 마음속 낡은 태엽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또르르, 한 줄기 물방울이 인한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인한은 이소영이 보지 못하게 바로 눈물을 닦아 내고 나직이 말했다.

“고마워요, 소영 씨.”

“알면 됐구요.”

배시시 웃는 이소영이 인한의 손을 천천히 쥐었다.

인한은 손끝에 닿은 온기를 느끼며, 긴 숨을 내쉬었다.

이제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대학생 시절의 동기들이 다녀간 직후였다.

인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

정체를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인한은 혹시나 지인일까 싶어 일단 수신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네, 누구시죠?”

목소리가 묘하게 익숙했다.

하지만 정확히 누군가가 떠오르진 않았다.

인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반갑네.

묵직하고, 힘 있는 목소리였다.

스마트폰 너머의 사내가 말을 이었다.

-나는 이 나라의 대통령, 김명준이라네.

* * *

장례를 치르는 3일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소영의 도움 덕에, 인한은 터 좋은 자리에 나무를 심고 인수의 유골함을 그 밑에 묻을 수 있었다.

“수고하셨어요.”

“수고했다.”

“형님!”

임태호와 이창훈과 이소영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인한에게 말했다.

인한이 극구 괜찮다고 했는데 세 사람은 끝까지 인한의 곁을 지켜 줬다.

“고맙습니다, 다들.”

“그래, 이제 얼른 들어가서 쉬어라.”

“맞아요. 인한 씨, 아직 몸도 안 좋잖아요.”

인한이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마력이 움직일 정도로는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마력로와 마력원의 상처가 심각했다.

상태만 따지면 레오 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다만 그때는 마나 스킬이 고작 3단계였기에 회복이 더 더뎠다.

지금은 마나 스킬 4단계인 데다, 트리아스 액셀이라는 희대의 스킬이 있다는 점에서 그때보다는 훨씬 좋은 상태였다.

‘수명을 몇 년은 깎아 먹은 것 같은 기분이야.’

인한이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형님, 진짜 제가 모신 이래로 최악의 얼굴입니다. 얼른 쉽시다. 모셔다드릴까요?”

“됐다. 나 혼자 갈게.”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도 이만 갈게요. 인한 씨, 정말 푹 쉬어야 해요? 전화하면 받고요.”

이소영은 떠나기 싫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사흘을 인한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꽤 무리를 한 모양인지 다급히 자리를 떴다.

“그럼 나도 찜질방이나 가서 푹 지져야겠네. 커흠!”

“엇! 형님! 저도 데려가시죠!”

“오? 좋지! 그럼 소주 한 잔 재끼고 가자!”

“좋습니다!”

어느새 호형호제하기 시작한 임태호와 이창훈은 어깨동무를 하고 인한에게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인한은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들을 배웅하고 몸을 돌렸다.

싸아아!

그리고, 마치 장막이 쳐지듯 인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인한은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대한민국의 국가 원수가 지내는 곳.

청와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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