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공략자들 110화>
‘헌인릉 인근이라.’
인한은 스마트폰으로 위치 검색을 끝내고 땅을 박찼다.
그 근처에 있는 것이 국정원이다.
국정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인한의 동생 최인수가 있었다.
훅! 훅!
인한은 그곳을 향해 서둘러 뛰었다.
택시나 버스를 타는 것보다 직접 뛰어가는 게 훨씬 빨랐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데에 시간을 허비할 수 없었다.
헌인릉에 도착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곧바로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사람이야 그렇다 치고…… CCTV가 몇 개야?’
아무리 인한이라지만 숨어 있는 CCTV의 위치까지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거기다 사방에 경찰들이며 정체 모를 병력까지 깔려 있었다.
기분 같아서는 신경 쓰지 않고 쳐들어가서 쓸어버리고 싶었지만…….
‘일단 인수부터 찾아야해.’
들키면 무슨 일이 생길지 몰랐다.
박재경에게 들은 바로는,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고 했다.
자폐를 가진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정신이 망가졌고, 영양실조도 걸려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인수는 알레르기성 천식을 앓고 있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몸 상태인데, 돌발 상황이 발생해서 인수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제길, 이런 생각하지 말자.’
인한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우웅!
그러고는 오러를 끌어올려 몸을 감췄다.
인한의 옆을 스쳐 지나간 경찰들이 있었지만 아무도 인한을 눈치채지 못했다.
인한이 방금 몸을 숨긴 방법은 종로에서 불가살이의 본부를 초토화시킬 때 펼친 기막과 비슷한 스킬이었다.
인한은 마력을 사방에 퍼뜨려 박재경이 말해 줬던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걸음을 옮길 때마다 생이별했던 동생을 향한 그리움과 이제 곧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감에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금방 간다, 동생아.’
아무리 시간이 지났다지만, 아니, 오히려 시간이 지났기에 더욱 기뻤다.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많은 걸 해 주고 싶었다.
인한은 이제 능력이 있고, 평범한 사람은 하지 못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비싼 옷, 비싼 차, 비싼 집, 맛있는 음식들과 멋들어진 삶을 동생에게 해 주고 싶다.
“하아, 하아…….”
저도 모르게 달려온 것 같았다.
인한은 박재경이 말한 장소와 똑같은 장소를 발견했다.
“아이씨, 뭐 이런 산에다가 사람 가둬 놔서 주차장까지 한참 걸어야 하잖아. 이게 무슨 때아닌 등산이냐고.”
“같이 온 나는 뭔 죄냐.”
“흐흐, 친구 아이가!”
하얀 약봉지를 들고 조잡한 조립식 건물로 들어가는 두 청년이 보였다.
‘박재경한테 저건 고마워해야겠군.’
박재경이 목숨을 구걸하며 주절댔던 것들 중에 인수의 몸 상태 때문에 급하게 약을 만들었다는 내용이 있었다.
아마도 저 약봉지는 인수의 천식을 위한 약일 것이다.
인한은 은신을 유지한 채 청년 둘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쪽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지하로 내려가는 문 하나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청년 둘이 문에 무언가를 대더니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인한도 재빨리 두 청년 뒤에 따라붙었다.
‘일단 천식부터 고쳐 주자. 오러라면 충분히…… 안 되면 엘릭서를 구해서라도. 정신 쪽도…… 검은 탑이라면 답이 있을 거야. 그 전에 인수를 돌봐 줄 사람도 구하고…….’
머릿속에서 그런 생각들이 두서없이 얽히고 있을 즈음에 청년들이 두꺼운 철문 앞에 멈춰 섰다.
인한이 그제야 은신을 풀었다.
“안내 고맙다.”
“헉? 뭐, 뭐야!”
“시발, 깜짝이야!”
퍽! 퍼억!
깜짝 놀란 청년들이 미처 방어를 취하기도 전에 둘을 가볍게 기절시킨 인한이 철문을 천천히 열었다.
‘윽.’
문을 들어선 인한이 눈가를 찌푸렸다.
대체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를 얼마나 피워 댄 건지 코가 아릿할 정도로 담배 냄새가 가득했다.
“인수야!”
철문을 활짝 열고 인한은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인한의 밝은 목소리는, 곧 당황으로 바뀌었다.
“이, 인수야? 인수야!”
깜빡이는 나트륨등 아래에 인수가 의자에 묶인 채 쓰러져 있었다.
인한이 황급히 뛰어가 인수를 묶고 있던 케이블 타이를 끊어 내고 인수를 자신의 팔에 기대게 만들었다.
자신의 동생의 얼굴을 바라본 인한은, 그 상태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어……?”
빼빼 마른 얼굴은 파랗다 못해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충혈된 두 눈은 부릅뜬 채 감기지 않았다.
마치 죽기라도 한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인한이 이를 꽉 한 번 깨물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다.
“야……. 인마, 정신 차려. 형 왔다고. 몇 십 년 만인데…….”
인한은 인수를 툭툭 쳤다.
정신이 이상해졌다더니, 참 이상한 모습으로 자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잘 건데. 이 건방진 자식이, 형이 너 구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인한이 인수를 꽉 끌어안았다.
영양실조가 심하다더니 몸이 앙상했다.
그래서 그런 건지 인한에게 안긴 채로 팔다리를 축 늘어뜨린 채 움직이질 않았다.
분명, 그럴 터다.
그래야만 했다.
“…….”
인한이 고개를 툭 떨어뜨렸다.
인수를 꽉 끌어안은 인한의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빠드득!
인한의 꽉 물린 이에서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잔뜩 힘이 들어간 두 팔은 터질 듯한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인한은 비틀거리며 인수를 안은 채 느리게 일어섰다.
“크, 크윽! 뭐가…….”
그때, 한 청년이 정신을 차리고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너, 너 뭐야! 대체!”
청년이 인수를 들고 있는 인한을 덜덜 떨며 물어왔다.
인한이 천천히 청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콰아아아앙!
청년의 몸이 터져 버렸다.
마치 풍선이 터지듯 온몸의 장기와 뼛조각을 다 토해 내며 청년은 이내 쓰러졌다.
인한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청년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퍼엉!
또 하나의 풍선이, 터져 나갔다.
* * *
중년의 남성이 테이블에 앉아 펜을 놀렸다.
잔털 하나 없이 정리된 반백의 머리에, 똑바른 자세,
주름 진 얼굴을 보면 적어도 환갑은 되어 보이건만, 강렬한 눈빛과 단련된 체구 덕에 굉장히 건강해 보이는 사내였다
그 사내가 앉아 있는 테이블 앞쪽에 있는 명패에는 사내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국정원장, 이현강이라고.
과거에는 육군 참모 총장을 역임하고, 이번 정권에 들어서 국정원장에 취임하게 된 사내.
이현강은 언제나처럼 결재를 끝낸 서류를 그의 비서에게 건넸다.
그의 비서가 서류를 챙겨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이현강이 돌연 입을 열었다.
“잠깐.”
“네, 왜 그러십니까?”
“박 대장에게 연락 온 건 없었나.”
“예? 아, 없었습니다.”
“늦는군.”
이현강이 눈가를 찌푸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연락해 볼까요?”
“아니, 내버려 둬. 아직 일이 끝나지 않은 모양이군. 나가 보게.”
이현강은 그렇게 말하며 손짓했다.
비서가 나가자, 이현강은 길게 숨을 내쉬며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댔다.
‘실패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현강이 눈이 깊어졌다.
현대 사회에서 국력을 표현하는 수단은 더 이상 탱크의 개수나 미사일의 개수가 아니게 됐다.
이제는 헌터의 수가 곧 국력이었다.
아직까지는 핵과 미사일이 힘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게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지금은 헌터의 시대다.
-랭커급의 헌터는, 이 세상의 새로운 규칙이 될 것이다.
미 국방부 장관 행크가 말한 말이다.
랭커급의 헌터는 수십 수백억을 들여 만들어 낸 수많은 무기보다 더 많은 일을 더 효율적으로 해낸다.
수백의 총을 든 부대보다 한 명의 칼을 든 헌터가 더 위협적인 시대다.
거기다 검은 탑의 총 층수는 100층.
거기다 아직 검은 탑은 10층까지밖에 진행되지 않았다.
20층, 30층…….
탑을 오르면 오를수록 헌터들은 끊임없이 성장할 게 분명했다.
하나, 현재 세계는 국가 단위로 헌터를 탑에 들여보내는 행위를 금지시키는 국제 조약을 만들어 낸 상태였다.
비밀리에 군인을 헌터로 육성해 부대를 만든 국가도 있겠지만, 기껏해야 대대급일 것이다.
중국, 미국, 러시아 정도나 연대급일까.
‘우리는 힘이 필요하다.’
한국에는 랭커의 숫자가 극도로 부족하다.
국가 소속의 랭커는 기껏해야 세 명뿐이고, 민간의 랭커라고 해 봤자 다섯 명 정도에 불과했다.
스무 명에 가까운 랭커를 보유하고, 육룡과도 밀접한 관계를 유지 중인 미국과는 참 다른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에 인재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그저 검은 탑의 비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자인 줄 알았건만, 불가살이 소속의 랭커를 포함한 요원을 단번에 제압하는 힘까지 가지고 있었다.
거기다 얼마나 지났다고 10층의 보스존을 클리어하는 기염을 토하기까지 했다.
‘조금 거친 수를 쓰더라도 상관없어. 애초에 그만한 힘을 가지고 국가를 위해 힘을 사용하지 않는 건 죄에 가깝다.’
이현강이 조금은 섬뜩해 보이는 미소를 보였다.
사람들은 이현강을 표현할 때, 군인다운 군인이라고 말한다.
별의별 구설수가 많이 들려오는 장성들과는 달랐다.
참모총장 시절에 자잘한 사건은 있었지만, 적어도 안보와 국방에 있어서만큼은 야당 지지자들에게도 인정을 받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타협하지 않고, 굳건한 자세를 유지하는 그는 국가의 안보를 위해 불철주야 헌신했다.
애국, 충성.
이현강을 표현할 때, 이 두 글자가 빠진 적이 없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현강은 국가를 위해 살아왔다.
돈도, 명예도, 가족도, 사생활도, 그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일신의 영달보다 조국의 안녕이 바로 그의 행복이자 목표였다.
그렇기 때문일까.
인권, 다양성, 민주주의…… 이현강에겐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들이 중요하단 것을 부정하진 않겠지만, 국가를 위해서라면 그런 것들은 다소 무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현강은 집무실에 있는 크리스탈 잔에 물을 담아 마셨다.
조급해해서는 안 된다.
박재경은 유능한 부하이고, 그가 제출한 계획은 분명 가능성이 있었다.
일은 잘 풀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백호 공격대와 언론사까지 끌어들였다.
내일쯤이면 여당에서 지원 사격도 해 줄 것이다.
거기다 놈의 가족까지 인질로 데리고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이 불안한 것은 왜일까.
‘후후, 나도 늙었군.’
이현강은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콰아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지면이 거세게 흔들렸다.
“크윽!”
이현강은 볼품없이 지면에 충돌했다.
콰앙! 콰앙! 콰앙!
한동안 폭음이 멈추질 않았다.
‘폭격인가!’
절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믿을 수 없었다.
북한 놈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렇게 뜬금없이 전투기를 띄운단 말인가?
“원장님!”
벌컥!
문이 열리고 비서가 다급히 들어왔다.
그도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에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렸지만, 간신히 이현강을 부축해 일어났다.
“괜찮으십니까?”
“그것보다 상황 보고. 대체 무슨 일이냐!”
“그, 그것이…….”
비서가 당혹스럽다는 듯이 말끝을 흐렸다.
“빨리 대답해!”
“치, 침입자입니다. 한 사내가…… 닥치는 대로 모든 걸 부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뭐?”
한 사내? 침입자?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란 말인가.
콰아아아아아앙!
그때, 전에 없이 강한 폭음이 울려 퍼졌다.
화들짝 놀라 창가로 시선을 던진 이현강의 눈에, 국정원의 건물을 모조리 박살 내며 쏘아지는 새하얀 빛의 기둥이 보였다.
“저, 저게 도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