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공략자들 108화>
빌딩의 앞.
요원 박웅이 눈가를 찌푸렸다.
‘쯧! 뜬금없이 무슨 본부에서 위험 상황이야.’
몇 분 전, 불가살이 소속의 요원들에게 위험 상황에서만 쓰이는 회선으로 지원 요청이 있었다.
‘본부’가 아닌 외부에서 활동하는 요원들은 그런 연락을 받으면 정해진 위치로 모여야 했다.
그리고 그 위치는 보통 검은 탑의 특정 층의 특정 지역이거나, 그도 아니면 안가(安家)로 정해져 있었다.
그런데 최고 위험 상황이라면서 뜬금없이 본부로 소집 명령이 내려진 것이다.
박웅이 혀를 차며 본부 빌딩을 올려다보았다.
‘지금 저게 위험 상황이라고?’
하지만 그의 눈에 ‘본대’가 있는 5층짜리 빌딩은 도저히 위험 상황이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평온했다.
“돌입할까요?”
부하 한 명이 다가와 물어 왔다.
소집된 병력 중 가장 직급이 높은 것이 박웅이었다.
이렇게 위험 상황이 와서 외부 요원들이 소집되는 일이 발생하면 명령권자는 불가살이의 대장이 아니라 박웅이었다.
“얼마나 왔다 그랬지?”
“1조, 2조는 전원 도착했습니다. 3조와 4조는 5분 정도 늦는다고 연락 왔습니다.”
박웅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략 100명 정도의 남자들이 작은 빌딩 앞에 옹기종기 모여 있으니, 무슨 일이라도 난 줄 알고 사람들이 기웃거리고 있었다.
절로 한숨이 나는 광경이었다.
이렇게 이목을 끌어 버렸으니, 본부 위치를 바꾸게 될지도 몰랐다.
‘이 또라이 같은 팀장 새끼. 또 훈련이랍시고 똥개 훈련시킨 거면 이번에야말로 들이박는다.’
박웅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신경질적으로 땅바닥에 던지고는 손을 들고 나지막하게 말했다.
“돌입.”
인원이 많다 보니 1조부터 움직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웅이 돌연 눈가를 찌푸렸다.
‘뭐지?’
묘한 기분이 들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건물을 향해 접근하는 1조를 보며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데, 그 이상함의 정체를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잠깐, 왜 저것밖에 안 돼?’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1조의 수는 48명.
그런데 박웅의 눈에 보이고 있는 1조의 수는 채 10명이 되지 않았다.
‘아니다. 전원이 제대로 다 있어.’
하지만 집중하고 자세히 보니 다시 인원수가 제대로 보였다.
박웅의 눈이 잘못된 게 아니라, 분명 눈에는 보이고 있는데 뇌가 인식하지 못하는 기분이었다.
계속 의식하고 1조 요원들을 바라보지 않으면 건물에 다가서는 놈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시야에서 사라지는 현상이 계속됐다.
박웅은 무언가 잘못되어 간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나도 들어간다.”
“예? 뒤에 안 오시고요?”
“네가 애들 잘 끌고 와라.”
적당히 타이밍을 보고 들어가려던 박웅은 생각을 바꿔 1조의 바로 뒤를 따랐다.
‘윽?’
그가 건물에 일정 거리 다가선 순간.
박웅은 자신이 얇은 수막을 통과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뭐지?’
고작 한 걸음의 차이건만, 안쪽과 바깥의 공기가 달랐다.
공기가 들끓고 있었다.
절로 몸에 긴장이 들어갔다.
어이없는 소집 명령이라고 투덜대던 박찬웅은 자신의 생각을 뜯어고쳤다.
지금 이 빌딩은, 분명히 위험했다.
콰아아앙!
그때, 갑자기 거친 폭음이 빌딩 내부에서 울려 퍼졌다.
박웅을 포함한 1조 조원들이 경직했다.
“어서 진입해!”
박웅이 외쳤다.
그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1조의 가장 앞에 있던 요원 둘이 빌딩에 하나뿐인 입구인 유리문 앞에 서서 여기저기를 살폈다.
혹시 모르는 부비 트랩을 체크한 것이었다.
“깨끗합니다. 열겠습니다!”
정면의 요원 둘이 양쪽에서 문을 활짝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서걱-!
섬뜩한 소음과 함께, 한 줄기 예리한 풍압이 지나갔다.
걸음을 옮기던 두 요원이 우뚝 멈춰 섰다.
“어이, 뭐야.”
스르륵! 촤아악!
요원들은 박웅의 부름에 대답하지 못했다.
가장 앞에 있던 요원 둘의 머리가 땅바닥으로 떨어지고, 평평하게 잘린 단면에서부터 선혈이 솟구쳤다.
“이 새끼들! 깨끗하다며!”
하지만 이상했다.
아무리 와이어를 설치했다고 해도, 저렇게 예리하게 목이 잘릴 수가 있는가?
화륵!
그때, 박웅은 건물의 입구에 버티고 서 있는 불타는 사자의 형상을 발견했다.
‘몬스터?! 언제 나타난 거지?’
위압적인 그 모습에, 1조를 포함한 박웅의 움직임이 멈췄다.
불을 휘감고 있는 사자형 몬스터라니!
-크르르르르…….
사자가 으르렁대며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다들 전투 준비!”
박웅이 다급히 외쳤다.
하지만 그 순간, 허공의 바람이 뭉치더니 녹색의 독수리 하나가 사자의 앞을 가로막았다.
-끼익! 끼이이익!
독수리가 날개를 파닥이며 금방이라도 뛰쳐나갈 것 같은 사자를 말렸다.
-크릉! 크릉!
사자는 한동안 힐끗대며 박웅 쪽을 노려보았지만, 독수리의 강권에 못 이기듯 다시 문 안쪽으로 물러났다.
‘수문……장?’
그 모습에 박웅은 절로 그 단어를 떠올렸다.
동시에 직감했다.
저 두 몬스터를 넘어서지 않는 이상, 그들에게 빌딩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이대로 대기해야 하나?’
콰앙! 콰앙!
그런 생각을 하자마자 건물 내부에서 거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에 박웅의 표정이 굳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옆에 있던 1조 조장이 물었다.
박웅은 숨을 훅 내쉬고, 외쳤다.
“씨발, 진입한다. 그래 봤자 몬스터 두 마리야!”
박웅은 인벤토리에서 그의 무기인 장검을 꺼냈다.
-크릉! 크르르!
어째서일까.
검을 뽑아 드는 자신을 보며 사자형 몬스터가, 즐겁다는 듯 섬뜩하게 웃는 것 같았다.
* * *
과거, 해태 길드가 창설되고 꽤 시간이 지났을 무렵.
해태 길드는 어떤 길드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세우며 맹렬한 속도로 검은 탑을 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거슬리는 일이 하나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은 별일 아니었다.
국세청에서 세무조사가 들어왔다.
헌터 관리법상 길드는 사업체와 동등한 취급을 받기 때문에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다행히 해태 길드는 이익을 추구하는 길드가 아니었고, 대부분의 업무를 김만춘을 통해 처리했기 때문에 자잘한 미납금을 제외하면 큰일은 없었다.
세무 조사가 들어온 지 이틀 뒤, 탑의 밖에 있을 때 절도 행위를 했던 팀원의 신상이 SNS에 뿌려졌다.
해당 팀원은 교도소에서 죗값을 다 치르고 나온 상태였고, 그 일에 대해 반성도 하고 있었다.
뒤를 이어 말 같지도 않은 각종 루머와 팀원들이 숨겨 왔던 과거의 일들이 인터넷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여론이 묘하게 흘러가는 것을 느꼈지만, 큰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대한민국에서 명성과 인기를 얻는다는 것은, 반대로 그만큼의 악플과 안티에 시달려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팀원 중에서 신입으로 영입한 헌터 다섯이 돌연 탈퇴를 선언한 것이다.
이유를 물어봐도 일체 답하지 않았고, 결국 인한은 ‘그런 쪽’으로 능력이 있었던 팀원을 통해 뒤를 캐도록 했다.
신입들이 탈퇴를 한 이유는 바로, 불가살이 때문이었다.
가족들을 인질로 잡고, 숨기고 싶었던 개인의 비밀을 뿌린다고 협박한 것이다.
그제야 인한은 그동안의 모든 이상한 흐름이 불가살이에 의한 것임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것이 불가살이가 그동안 해 왔던 ‘길드 길들이기’의 일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불가살이는 언제나 그런 식으로 일을 진행해 왔다.
하지만 인한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아무리 명성을 얻어 가고 있는 해태 길드라지만 일개 헌터들의 모임이었기 때문에, 불가살이의 행사에 그저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사건이 발생했다.
필드 정찰을 나갔던 길드원들이 중상을 입은 채 널브러져 있는 게 발견된 것이다.
범인은 볼 것도 없었다.
분노에 찬 임태호가 대검을 치켜들고 습격한 불가살이의 요원들을 추격해 전부 쓸어버렸고…….
뉴스에, 국가 공격대를 공격한 길드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서특필됐다.
관련 사건의 수습과 재판에 이리저리 휘둘리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공략이 늦어져 버렸고, 5차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났다.
막대한 절망이, 죽음이, 비극이 지구에 퍼져 나갔다.
인한은 그 날의 일을 잊지 않았다.
일격.
단 한 명도 인한의 일격을 받아 내지 못했으며.
단 한 명도 인한에게 일격을 성공해 내지 못했다.
고작 5분이었다.
인한이 1층에서부터 4층까지 모여 있던 헌터들을 모조리 무너뜨린 것은.
3층에서 제대로 오러를 터뜨린 이후로는, 마치 파리 쫓아내듯 가볍게 팔을 휘두를 때마다 요원들이 힘도 못 쓰고 쓰러졌다.
“으, 으으으으악!”
요원 하나가 공포에 못 이겨 창문 밖으로 몸을 던졌다.
국정원 요원으로서 훈련된 데다가, 헌터로서 강화된 신체까지. 고작 4층 높이는 그리 큰 위험이 아니었다.
단순히 높기만 하다면 말이다.
콰아아아앙!
창문을 깨고 밖으로 몸을 날린 사내는 폭염과 삭풍에 휩싸여 절명했다.
“대, 대체 어떻게…….”
요원들은 더더욱 절망에 빠졌다.
평소 타인들의 절망을 먹으며 살아왔을 요원들이, 이제는 압도적인 절망 앞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렇게 인한이 4층을 정리했을 때였다.
당황한 표정의 중년인이 뛰어 내려와 덜덜 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이게 무슨…….”
인한은 그를 보며 비릿하게 웃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미래에는 국정원장까지 꿰찼던 놈이자, 국내 모든 헌터들에게 욕이란 욕은 다 들었던 쓰레기.
이 시기부터 그는 불가살이의 대장이었던 것이다.
‘조직이 개판인 이유가 있었군.’
인한이 쳐들어오고 이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몇 분 되지는 않았다만, 그래도 지금에서야 기어 내려오는 윗대가리라니…….
차라리 부하들을 수습해서 인한을 상대하기 위해 대비했던 3층의 놈이 더 나아 보였다.
“너 이 새끼! 최인한!”
박재경이 인한을 발견하고 눈에 불을 켰다.
인한의 눈가가 꿈틀댔다.
“어이, 버러지.”
“버, 버러지?”
“혓바닥 조심히 놀려. 저 밑에 있는 놈은 그거 잘못 놀려서 온몸을 터트려 버렸으니까.”
인한의 기세에 박재경이 움찔 몸을 떨었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이루어졌다.
‘다…… 쓰러진 건가.’
건물 전체가 고요하다.
거기다 인한을 막아서고자 나서는 이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뻔했다.
‘최인한…… 이 정도로 강했던가.’
본부에는 요원이 그리 많지 않다. 전투 요원만 따지면 기껏해야 6, 70명 정도다.
하지만 본부라는 이름답게, 대부분이 최소 5층에서 최대 랭커까지 이름을 올린 엘리트들이다.
그런데 고작 혼자서…… 그들을 전부 쓰러뜨렸다니.
오판이었다.
아무리 강하다 한들, 그래 봤자 상위 랭커급일 거라고 예상했거늘.
인한이 느릿하게 박재경을 향해 다가갔다.
박재경이 흠칫 떨며 발악하듯 외쳤다.
“나, 날 건들면 네 동생 놈은 뒤질 줄 알아라! 이, 이거 보이냐?!”
박재경이 팔목에 감긴 스마트워치를 들어 보였다.
“여기 이 통화 버튼 누르면 바로 네 동생은 뒤지는 거야, 인생 하직하는 거라고. 알았어? 거기다 내가 이것만 준비했을 줄 아냐! 네 동료! 이창훈! 정말 네 주변 인물한테 우리 요원이 한 명도 안 붙었을 것 같냐?!”
인한이 우뚝 멈춰 섰다.
박재경이 덜덜 떨며 외쳤다.
“그, 그래! 그대로 있어! 크, 크흐!”
역시 운은 그의 편이었다.
인한은 예상대로 가족애 따위에 얽매이는 놈이었다.
박재경이 그렇게 생각하며 웃고 있을 때, 인한이 입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