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공략자들 107화>
인한은 그 날의 일을 마치 방금 전에 일어난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했다.
갑자기 전국에 나타난 이형의 생물체들.
국내에 세워진 세 개의 검은 탑에서, 소위 몬스터라 불렸던 괴물들이 쏟아져 나와 세상은 공포에 휩싸였다.
그 바람에 TV도 나오지 않아,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라디오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인한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라디오에서도 한 채널만 간신히 나왔고, 그곳에서는 아나운서의 말소리만이 흘러나왔다.
[집 밖에 나오지 마시고,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
가족들은 전부 그 말을 믿고 집 안에서 기다렸다.
전화기와 인터넷은 끊긴 지 오래였고, 집 밖에는 난리법석이었기에 라디오에서 나오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믿은 것이다.
그 때문이었다.
대형 몬스터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도망치지 못한 것은.
콰르르르르릉!
그 몬스터는 고깃덩어리를 대충 버무려 인간의 형태로 만든 듯, 괴기한 모습이었다.
집의 한쪽 벽을 무너뜨린 놈의 이름은 ‘구울’.
놈에게선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했고, 전신에 누런 진물이 뚝뚝 떨어졌다.
“인한아! 도망쳐!”
아버지는 호신용으로 가지고 있었던 야구 배트를 휘두르며 놈에게 저항하다…….
콰득!
인한의 눈앞에서, 몸의 반쪽이 잘라져 버렸다.
“꺄아아악! 인한 아빠!”
면전에서 남편이 처참하게 죽어 가는 모습을 본 어머니는 정신을 놓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러나 인한은 어머니마저 잃을 수는 없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동생을 챙겨 피눈물을 흘리며 뒤로 달아났다.
아버지의 남은 반신을 먹느라 바빴던 구울 덕에, 어머니와 인한과 동생인 인수는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뒷산을 통해 도망가던 셋은 운 좋게 피난 행렬에 합류했다.
근처 군부대가 호위하는 피난 행렬은 고양시를 지나쳐 강원도를 향해 나아갔다.
정부에서는 피난민들 중 전투 인력으로 쓸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동원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인한은 당시 예비군이었기 때문에, 차출되었다.
“왜 강원도입니까?”
“탑이 세워진 곳이 대부분 대도시거든요. 그리고 사람이 적은 곳에는 몬스터가 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건 헛소리였다.
오히려 자연이 보존되어 있는 강원도를 향해 고블린과 오크 등의 몬스터들이 몰려들었다.
거기다 피난 행렬을 조용히 쫓아온 소수의 높은 지능의 몬스터들도 자연히 강원도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학살이 일어났다.
그곳에서 어머니를 잃었다.
비행형 몬스터 하피에 의해 어머니의 사지가 찢겨지는 걸 두 눈으로 보았다.
사방으로 도망치는 혼란 속에서 동생과도 떨어졌다.
소총을 지급받았던 인한은 그 아수라장 속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래, 그랬었지.”
순간, 감성에 젖었다.
인한의 표정은 전에 없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사내를 그렇게 방치해 둔 뒤에, 인한은 바로 종로로 향했다.
종로 3가 옛 파고다 공원이 있던 자리에는 이제 검은 탑 관련 팀 사무실과 헌터 소개소가 자리를 잡았다.
불가살이의 사무실도, 그곳에 있었다.
신식 건물들 사이에 위치한, 어디에나 있을 법한 빌딩이었다.
인한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뚜벅뚜벅 안으로 들어섰다.
5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은, 밖에 걸린 간판을 보면 다 다른 팀이 운영하는 사무실처럼 보였다.
신라 팀, 무적 팀, 궁극 팀…….
하지만 인한은 알고 있었다.
이 건물 안에 있는 사람은 모두, 불가살이의 요원이란 것을.
“어떻게 찾아오셨습니까?”
1층에 돌아다니던 직원 하나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아마 인한의 얼굴조차 모르는 말단일 것이다.
“샐러, 실리암.”
인한은 요원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크르릉…….
-끼이익!
불의 사자와 바람의 독수리가 인한의 양옆에 나타났다.
“헉!”
요원이 눈을 커다랗게 뜨며 경악했다.
인한은 요원에게 관심 주지 않고, 말했다.
“이 건물에서 내 허락 없이 나가는 자도, 들어오는 자도 없게 만들어라.”
-쉬악-!
-크라라-!
샐러 와 실리암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요원도 눈치라는 게 있다.
그가 다급히 품에서 권총을 뽑아 들더니 인한에게 겨눴다.
“이봐! 당신 누……! 크헉!”
퍼어어엉!
무언가 번쩍이는 순간, 사내의 몸이 거대한 폭음과 함께 벽면에 처박혔다.
만화책의 한 장면처럼 벽면에 파묻힌 사내는 순식간에 전신이 피로 범벅되었다.
“무, 무슨!”
“무슨 일이야!”
한발 늦게 1층에 있는 요원들이 우르르 쏟아져 나왔다.
인한이 싸늘한 눈빛으로 그들을 훑어보며 말했다.
“서두르지 않아도 전부 사이좋게 뒈질 텐데 왜 그렇게들 기어 나와.”
차갑고, 또한 뜨거웠다.
1층에 모여든 헌터들은 등골이 오싹하고 오한이 드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인한에게서 쏟아지는 업화와 같은 기세에 몸을 움츠렸다.
우우우웅!
인한의 몸에서 들불같이 오러가 피어올랐다.
새하얀 광휘를 몸에 두른 인한이 한 발자국 앞으로 뻗었다.
* * *
불가살이의 공격대장, 박재경은 입에 담배를 문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후후, 역시 하늘은 내 편이야.’
그는 국정원 소속의 평범한 말단 요원이었다.
전투 능력을 인정받아 국정원에 스카우트되었지만, 영화 속 첩보 업무 같은 건 한 번도 겪지 못했었다.
그러던 중, 검은 탑이 나타났다. 그리고 박재경은 1세대 헌터가 되었다.
그는 쾌재를 불렀다. 자신이 성공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강해졌다.
사람도 몇몇 죽였다.
사실 몬스터를 사냥하는 것보다 사람을 사냥하는 편이 쉬운 데다, 보상도 좋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강해지고, 1세대 헌터임과 동시에 10층까지 오른 헌터로서의 공적을 인정받아 불가살이 공격대의 대장을 맡게 됐다.
그는 승승장구했다.
하늘은 그의 편이었다.
웬만한 임무란 임무는 대부분이 성공했다.
승진에 승진에 거듭했고, 줄을 잘 선 덕에 라인도 잘 타고 올라갔다.
그런데 그런 그의 머리를 아프게 만드는 놈이 등장했다.
하얀 마스크, 아니, 이제는 자이언트라 불리는 놈, 최인한.
윗선에서는 포섭, 그도 아니면 사살하라 명령했다.
하지만 대부분이 실패.
거기다 최근에는 10층을 공략하며 여론조차 인한의 편을 들어 주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 와중에 놈의 가족이 손에 들어오다니.’
웃음이라도 터트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박재경, 그는 인한 같은 사람을 아주 잘 알고 있다.
대의, 이상, 정의 따위의 쓸모없는 것만을 바라보며 앞으로 나아가는 종자들.
그런 종자들의 특징은 필요도 없고 도움도 안 되는 가족이나 동료 따위에게 얽매인다는 것이었다.
‘놈은 동생을 포기하지 못해.’
거기다 거절하지 못하게 여론에 밑밥도 뿌려 놨다.
이대로 질질 끌어서 몇 가지 약점을 잡고, 놈을 자신의 밑으로 끌어당기면 만사가 해결된다.
거기에 혹시나 놈의 실력과 지식을 이용해 탑의 정보를 독식할 수만 있다면…….
“흐, 흐흐…….”
갑자기 아랫도리가 뻐근해져 오는 기분이었다.
이 우월감!
남들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알고, 하지 못하는 것을 했을 때 오는 희열!
‘이거, 오늘은 야근일 거 같다고 연락해야겠구만.’
그 야근은, 아마도 강남의 단골 술집에서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쿵! 콰아아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건물이 진동했다.
때때로 요원들끼리 손을 섞다가 소음이 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박재경은 그저 눈가를 찌푸렸다.
“이 새끼들이 뭔 짓을 했길래 이런…….”
콰아아앙!
그런데 그 뒤로 소음이 이어졌다.
그제야 조금 이상한 걸 느꼈다.
아무리 손을 섞었다 하지만, 폭탄이라도 터진 듯한 이런 소음이 난 적은 없었다.
“야! 뭐야!”
삐빅!
박재경이 인터폰을 누르고 외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묘한 기분을 느낀 박재경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체…….”
박재경은 사무실의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갔다.
* * *
인한은 손속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 불가살이를 지운다.’
윗선에서 방해를 해 온다면, 그 윗선까지도.
국정원의 위치는 인터넷 검색만 해도 나온다.
그들이 숨어 있으면?
알아낼 때까지 잡아 족치면 된다.
아직도 이 썩어 빠진 윗대가리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인한이 힘이 없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하고자 한다면, 인한 혼자 서울을 폐허로 만들어 버릴 수도 있다.
허세라고?
과연 그럴까.
10년 전, 몬스터 웨이브 때 20층 구간에 나오는 대형 몬스터 하나가 단독으로 일산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리고 적어도 인한은 ‘고작’ 20층 구간에 나오는 놈과 비교할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이 개새끼!”
한동안 달려드는 놈이 없다 했는데, 3층으로 향하는 문을 열자 서른 명 정도의 요원들이 한데 모여 인한에게 소총을 겨눴다.
“혼자서 우리를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고작 일개 헌터 주제에……!”
인한의 미간이 꿈틀댔다.
“개새끼?”
인한이 손을 허공에 한 번 휘저었다.
직후.
콰앙!
인한에게 욕을 했던 요원이 무언가에 얻어맞아 벽면에 처박혔다.
벅에서 천천히 떨어져 내린 사내의 상태는 참혹했다.
전신의 뼈란 뼈는 모조리 부러진 듯했고, 안면의 뼈가 모조리 함몰되어 형태를 알아보기가 힘들었다.
인한이 으르렁대며 말했다.
“혓바닥 조심히 놀려. 곱게 뒈지기 싫으면.”
인한의 서릿발 같은 기세에 상사로 보이는 자가 흠칫 놀라며 외쳤다.
“바, 발포해! 어서!”
두두두두두두!
다급한 상사의 외침과 함께, 인한에게 총알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피어오르는 화약 냄새, 빗나간 총알이 만들어 내는 먼지에 인한의 모습이 사라졌다.
하지만 공포에 물든 요원들은 그저 정신없이 총을 쏘고, 장전하고, 다시 쏘고를 반복했다.
“중지! 중지!”
한동안 그렇게 미친 듯이 총을 쏴 댄 후였다.
사무실에 정적이 흘렀다.
침 삼키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적막한 순간이었다.
요원 하나가, 정적을 뚫고 멍하니 중얼거렸다.
“해, 해치웠나……?”
그 순간, 모래 먼지가 훅 걷혔다.
안개 너머로 인한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 어떻게……!”
육체 강화계 헌터라 하더라도, 입고 있는 옷까지 강화할 수는 없다.
그런데 지금 인한은 옷깃 하나 그을림이 없었다.
‘저건 뭐지?’
그러던 중 요원의 눈에 인한이 서 있는 바닥에 만들어진 누런 쇳물이 보였다.
그 쇳물 사이로, 작은 알갱이가 보였다.
‘설마 저거…… 탄환?!’
그 알갱이는 분명 5.56미리 K-2 소총의 탄환의 조각이었다.
“대, 대체 어떻…….”
요원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인한은 앞으로 뻗었던 손을 거둬들였다.
그러자 인한의 앞에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던 둥그런 막이 사라졌다.
오러였다.
그깟 총알 조금 스친다고 멍도 들지 않는 인한이지만, 옷은 다르다.
그가 지금 입고 있는 것은 애써 이소영이 골라 준 옷들이었다.
비싼 돈 주고 사 입은 옷에 흠집이라도 나면 아깝지 않은가.
그렇기에 인한은 오러를 펼쳐, 탄환을 모조리 녹여 버렸다.
“이제 내 차롄가?”
인한이 차갑게 말하고 주먹을 끌어당겼다.
알 수 없는 불안감에 요원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위이잉!
응축된 오러가 인한의 주먹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더, 덮쳐! 어차피 저놈은 혼자야! 죽여 버려!”
상사의 명에 덜덜 떨던 헌터들이 어쩔 수 없다는 듯 땅을 박차고 인한에게 저마다의 장비를 휘둘렀다.
인한은 픽 웃고, 끌어당겼던 주먹을 그대로 정면으로 뻗었다.
콰아아아아아앙!
빛의 기둥이 쏘아졌다.
건물이 뒤흔들 정도의 폭음과 함께, 달려들던 요원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처럼 힘없이 튕겨져 나갔다.
화아악!
과연 그것이 사람의 손에 의해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일까.
인한으로부터 일직선상, 제대로 된 형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없었다.
사람들은 폭풍에 휩쓸린 듯 사지가 뒤틀려 사방에 널브러져 있었고, 천장과 바닥은 박살이 나 뼈대가 훤히 보였다.
휘이이익!
벽에 뚫려 버린 거대한 구멍을 통해서는 바깥 풍경이 전부 보였다.
“쿨럭! 쿨럭!”
곳곳에서 신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인한은 그들에게는 조금의 시선도 주지 않고, 느린 발걸음으로 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왕 손을 썼으면, 끝까지 써야 한다.
분리수거도 안 될 쓰레기들…… 모조리 태워 버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