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105화 (105/266)

# 105

<공략자들 105화>

인한은 이창훈이 가져온 장비를 확인했다.

[현자의 지팡이]

[등급 : S(성장형)]

의심할 여지없는 인피니트 시리즈였다.

확인한 후 인한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허탈하게 웃었다.

‘이 자식이 인피니트 시리즈를 얻었다고?’

검은 탑 역사에서도 5명 정도밖에 얻지 못한 전설의 아이템을 고작 이창훈 주제에…….

‘거기다 나보다도 빨랐어.’

석상들은 보지도 않고 헛짓을 한 인한과 달리, 이창훈은 바로 발견한 모양이었다.

분명 증거가 코앞에 있으니 믿을 수밖에 없지만, 이창훈이 했다고 하니 왠지 모를 짜증이 올라왔다.

“너, 시련들은 어떻게 통과한 거냐?”

“예? 아 그냥 운이 좋았달까? 예, 뭐, 그렇죠?”

아이템을 받겠다는 일념으로, 이창훈은 모든 시련을 극복해 냈다.

사실 난이도만 따지면 시작의 신전보다 별로 어려운 것 같지도 않았다.

그걸 그대로 말한 이창훈을 보며, 인한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저걸 그냥 운으로 봐도 되는 건가?’

절대 아니다.

검은 탑이 어디 운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공간이었던가.

그럼 분명 이창훈의 재능과 실력이라는 건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인한을 보며, 이창훈이 불안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저…… 형님, 장비 주셔야죠? 헤헤.”

“쯧!”

“으앗!”

인한이 획 현자의 지팡이를 던졌다.

그에 기겁한 이창훈이 개구리처럼 펄쩍 뛰어올라, 현자의 지팡이를 움켜쥐고 땅바닥을 굴렀다.

살이 조금 찢어졌는지 핏물이 조금 맺혔는데 정작 상처에는 신경도 안 쓰고 지팡이만 쓰다듬었다.

“헤헤, 현지야.”

“현지? 이름까지 붙였냐?”

“예. 현자의 지팡이니까 현지. 헤헤.”

순간, 인한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더 기운 빠지기 전에 서둘러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그만 가자.”

“예! 알겠습니다! 그런데 어디로 가십니까?”

“이제 공략을 시작할 거다. 잘 따라와.”

“흐흐! 알겠습니다.”

인한은 힐끗 이창훈을 바라보았다.

사실 진짜 예외성 넘치는 건 인한이 아니라 이창훈일지도 몰랐다.

인한과 이창훈이 떠난 자리.

한 사내가 나타났다.

“기껏 열쇠를 넘겨줬더니 하필이면 저놈 손에 들어가게 만들다니.”

사내의 정체는 다름 아닌 박철환이었다.

박철환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뒷머리를 벅벅 긁은 다음 허공에 손을 뻗었다.

박철환의 손에 잡힌 것은 무한의 열쇠였다.

무한의 금고로 이동한 박철환은 통로를 통해 금고 입구까지 뚜벅뚜벅 걸어 이동했다.

걷는 동안 인한처럼 시련이 발동됐지만, 그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곧 입구까지 도착한 박철환은 힐끗 입구에 적힌 문구를 바라본 뒤 바로 문을 열었다.

끼이익!

마치 원래부터 금고를 알고 있었다는 듯 거침없이 이동한 박철환이 한 석상 앞에 섰다.

새하얀 검신을 가진 검을 허리춤에 차고 있는 석상이었다.

날카로운 턱선과 또렷한 이목구비,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미소를 입가에 드리우고 있는 석상의 모습은, 지극히 박철환과 닮아 있었다.

“이걸 또 들게 되는군.”

박철환의 손이 검을 잡았다.

[구원의 검]

박철환의 손에서 구원의 검이 밝은 광채를 토해 냈다.

그 빛을 보며 박철환은 씨익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 * *

11층에 도착한 인한과 이창훈은 바로 필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창훈이 쉬자고 징징댔지만, 들어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지만 그때, 누군가가 뒤에서 다급하게 다가오는 바람에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저, 저기요! 인한, 인한 씨!”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와 함께 수선화의 향이 코끝을 간질였다.

인한이 등 뒤를 바라보지 않은 채 이창훈에게 말했다.

“가서 리자랑 곱린이 챙겨.”

“네? 아, 넵.”

이창훈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서둘러 뛰어갔다.

인한은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숨을 길게 내쉬었다.

‘괜찮다.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어.’

그러고는 뒤로 돌며, 애써 웃으면서 말했다.

“오랜만이네요, 하영 씨.”

하영이 복잡한 눈동자로 인한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심장이 크게 한 번 뛰어오르는 기분이었지만, 인한은 들리지 않게 숨을 길게 한 번 내쉬는 것으로 마음을 진정시켰다.

“기다렸어요. 인한 씨가 올라오는 것.”

“그렇습니까.”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영은 땅의 돌 근처에 있던 작은 텐트를 가리켰다.

텐트 앞에는 작은 의자와 테이블이 있었다.

“제 텐트예요. 일부러 땅의 돌 앞에 자리를 잡았어요. 필드 탐색이 없는 시간에는 땅의 돌을 바라보고 있었거든요.”

인한이 소환되자마자 알아챈 것은 우연이 아니었던 것일까.

하영이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요.”

한동안 입을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던 하영이, 갑자기 힘없이 웃었다.

“그런데, 막상 뭐부터 물어봐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런가요?”

“먼저 인사부터 해야겠죠.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영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별일 아니었습니다.”

“진작 했어야 할 인사인데, 이렇게 지나고 나서 하게 됐네요.”

인한이 어색하게 웃었다.

다 인한이 그 자리를 벗어난 탓이었다.

“어째서…… 바로 떠나신 건가요? 그리고 클라우스 씨와의 일은 대체…….”

사실, 그때의 일은 11층에 도착해 있는 공략자들에게는 꿈이나 환상처럼 여겨지는 일이었다.

공략 중인 던전의 문을 박차고 난입해 압도적으로 블러드리드를 쓰러뜨리고, 그 뒤로 수십 수백의 공략자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클라우스를 두들겨 팬 사내의 이야기.

분명 현실이지만 믿을 수 없는 장면들이었다.

덕분에 클라우스와 매지션즈를 향한 의혹은 흐지부지 넘어갔다.

11층의 공략자들은 대부분 그날의 일을 입에 담지 않았다.

“그는 그럴 만했습니다.”

인한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랬다.

죽이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한다.

그 자리에서, 인한은 분명 클라우스의 목숨을 가져갈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다만 놈에게 씨앗을 가져가는 것이 더욱 큰 처벌이 될 것 같아 숨을 붙여 놨을 뿐이었다.

물론, 평생 죽만 먹어야 할 테고, 침대에 누워서만 생활하게 되겠지만.

“그렇군요.”

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영이 무언가 결심한 듯 꾹 입을 닫더니, 인한을 직시하며 말했다.

“인한 씨, 연합으로 들어오지 않으시겠습니까?”

“예?”

“아니, 연합이 아니죠. 저희는 ‘길드’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조직을 만들 생각이에요. 정확히는 이미 만들었습니다. 달의 검 팀이 주축을 이뤘어요. 검은 탑, 이 미지의 공간을 오르기 위해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팀보다는 조금 더 체계화되고 큰 규모의 조직이에요.”

하영의 눈은 강하고, 올곧았다.

인한의 기억 속 하영과 한없이 같고, 그러나 조금은 다른 그런 눈이었다.

“인한 씨의 힘이라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제가 들어가선, 조직의 연대만 해칠 뿐일 겁니다.”

“아, 아니에요! 제가 충분히 설득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인한이 고개를 저었다.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닌 것 같습니다.”

“…….”

하영이 입을 꾹 닫았다.

인한은 굳은 표정의 하영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지었다.

‘이때도 넌 강했구나.’

그런 무서운 일을 겪고도, 앞으로 걸어갈 방법을 찾는다.

강하고, 아름답고…… 하영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와의 인연은 여기까지로 해야 했다.

그녀에게 더 이상 인한은 필요하지 않다.

그녀는 그녀의 길을 걷고 있다.

과거에 사로잡혀 있는 인한이 그녀의 옆에 있으면, 그녀는 인한을 향한 알 수 없는 감정에 휘둘릴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지금의 너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과거의 너를 보고 있는 거구나.’

인한이 아는 하영과 지금의 하영은 다르다.

그러니 여기까지.

이제 더 이상, 인한이 하영에 얽매여 있어선 안 된다.

그것은 인한에게도, 하영에게도 좋은 일이 아닐 터였다.

인한은 느리게 입을 뗐다.

“그럼 이만 가 보겠습니다.”

“……아.”

하영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인한은 고개를 살짝 숙이고, 힘겹게 몸을 돌렸다.

그때, 하영의 손이 인한의 팔을 잡았다.

“잠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왜 그러시죠?”

“말도 안 되는 건 저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인한 씨, 인한 씨는 저를 알고 계시죠?”

언젠가 들었던 질문이었지만, 지금의 질문에는 묘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인한 씨의 눈은…… 저를 처음 본 눈이 아니었어요. 저를 닮은 사람을 보는 것도 아니었어요. 지금도…… 그래요.”

인한은 숨이 멎는 듯했다.

아주 잠깐, 저도 모르게 호흡을 멈췄다.

모든 걸 말해 버리고 싶었다.

목젖까지 차오른 수많은 말들이 인한의 감정을 뒤흔들었다.

방금 전의 결심은 어디로 갔는지, 머리가 새하얘지는 기분이었다.

“대답해 주세요.”

인한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떴다.

아무리 흔들려도, 인한의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아닙니다. 저는 하영 씨를 10층의 땅의 돌, 그 앞에서 처음 봤어요. 그건 하영 씨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인한의 팔을 쥐고 있던 하영의 손에 힘이 스르륵 풀렸다.

“그렇군요. 죄송……해요. 말도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힘없이 축 늘어진 하영을 보며, 인한은 어느새 입을 열고 있었다.

“딱 세 번.”

인한이 허공에서 드루이드의 인형을 꺼내 하영에게 건넸다.

“아무런 조건 없이, 어떤 부탁이든 하영 씨의 부탁을 들어 드리겠습니다.”

“네?”

“어디에 있든, 언제든.”

이건 인한의 미련이었다.

다 쳐 내지 못한 감정의 파편들.

“제 작은 힘이나마 하영 씨에게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불러 주세요.”

“네? 대체 왜…….”

인한은 그 물음에 답하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인한이 작별 인사와 함께 몸을 돌렸다.

납득할 수 없는 이야기.

의문투성이인 마지막이었다.

하영이 번뜩 정신을 차리고, 등을 돌려 걸어가는 인한을 바라보았다.

“인…….”

하지만, 인한의 커다란 등을 바라본 순간, 저도 모르게 그 말을 삼키고 말았다.

인한은 어느새 모습을 감췄다.

하영은 우두커니 그곳에 선 채, 드루이드의 인형을 만지작거렸다.

* * *

인한이 녹빛을 띠고 있는 거대한 점액질의 몬스터를 바라보았다.

슬라임처럼 생긴 그 거대 몬스터는, 느려 보이는 외견과는 다르게 엄청난 속도로 인한에게 달려들었다.

“후우우…….”

인한이 길게 숨을 내쉬며 주먹을 당겼다.

마치 대포의 포탄처럼, 장전된 인한의 주먹이 한순간 힘을 토해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지축이 흔들렸다.

점액질의 피부가 터져 나갔다.

동시에 방출된 마력이 수많은 와류를 일으켰다.

그리고 한 줄기 알람이 떠올랐다.

[11층 보스 몬스터 ‘씨그랜’을 처치했습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

인한이 나직이 한숨을 토해 냈다.

“약하네.”

누가 보면 어처구니없어서 욕지거리를 내뱉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인한.

[타이틀 효과 <최초의 도전자>가 적용됩니다. 아래의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

11층 보스 몬스터를 일격에 처치한 인한을, 옆에 서 있던 이창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보았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저 괴물.’

곱린이와 리자가 굳이 어그로를 끌 필요도 없었다.

분명 9층까지만 해도 보스 공략에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10층 공략전 이후로는 그런 것도 필요 없어졌다.

인한이 그냥 가서 툭 치면 보스 몬스터가 쓰러졌다.

‘아니, 뭐 그거야 원래부터 괴물 같은 사람이었으니 그렇다 쳐도, 대체 11층 생태는 어떻게 아신 거지?’

이창훈은 목에 걸고 있는 녹색의 목걸이를 만지작댔다.

[씨그랜의 목걸이]

[사용 기한 : 7일]

[효과]

-씨그랜의 독 무효화.

필드의 중심부를 넘어서자마자 인한이 옥색의 돌을 깎아서 넘겨준 목걸이였다.

갑자기 무슨 아이템인가 싶어 거절하려 했지만, 반드시 필요하다며 인한이 강제로 끼워 줬었다.

그때는 대체 왜 그러나 했는데,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11층의 필드 ‘드라우닝’은 흔히 지구에서 밀림이라 말하는 지역과 닮아 있었다.

수풀이 우거지고, 수많은 동식물이 살아 숨 쉬는 공간.

다만 드라우닝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위험했다.

‘이거 없었으면 진작 죽었겠는데.’

외곽은 그렇지 않았는데, 중심부부터는 마시는 공기, 실수로 밟은 버섯에서 터져 나오는 포자, 수풀에 맺힌 축축한 물기까지 전부 독이었다.

11층의 보스 몬스터 ‘씨그랜’은 슬라임처럼 전신이 점액으로 된 몬스터였는데, 그 씨그랜은 드라우닝에 하나뿐인 수원(水原)에 살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드라우닝 전역의 모든 동식물은 씨그랜의 독을 품고 있었다.

‘대체 이 인간은…….’

인한이 중심부에 들어가기 전에 목걸이를 만들어 뒀다는 것은, 한마디로 중심부가 독으로 가득한 곳이란 걸 알았다는 뜻이었다.

그러고 보면 이상한 점이 많았다.

처음 만났던 7층에서부터 최전선의 공략자들, 아니, 랭커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경험해 보지 않은 던전의 공략법을 알고 있지 않나, 연고나 물약부터 공략에 필요한 아이템까지 별의별 것들을 제작하기까지 했다.

시작의 신전이나 무한의 금고처럼 아무도 모르는 스페셜 던전마저 알고 있었으니…….

‘말도 안 되긴 하는데, 누가 보면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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