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공략자들 104화>
-절망을 극복하라.
-나약함을 극복하라.
-자신을 극복하라.
세 번의 시련이 있었다.
한계에 도달했던 첫 번째 시련을 제외하면 나머지의 것들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나약함을 극복하는 것.
그것은 인한의 인생이었다. 익숙하기도 익숙하거니와, 몇 번이나 극복해 봤기에 오히려 쉬운 축에 속했다.
그리고 마지막의 자신을 극복하라는 시련은, 말해 무얼 할까. 시작의 신전에서 이미 찍어 누른 경험이 있었다.
‘자, 이제 가 볼까.’
또 한 번,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인한은 환상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
시련을 끝낼 때마다 인한은 조금씩 앞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 이동했을 때, 거대한 문이 인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한의 금고]
거창한 이름 치고는 굉장히 조잡한 철문이었다.
휘갈긴 듯한 필치로 몇 줄의 문장이 음각되어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그저 크고 두꺼운 철문이었다.
-신은 무한하다.
문의 입구에 적힌 글은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필멸자들은 그저 유한할 뿐이지.
필멸자, 필히 멸할 존재라는 뜻이다.
아무리 피하고 싶다지만 인간…… 아니, 길고 짧을 뿐이지 모든 생명을 가지고 있는 존재에게는 죽음이라는 끝이 존재한다.
죽음이 과연 나쁘기만 한 건지, 종착역인지, 시작점인지, 돌아가야 할 곳인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무한을 허락하였다. 원한다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인간에게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인한은 느릿하게 손잡이를 쥐었다.
그리고 묵직한 철의 감촉을 느끼며, 천천히 잡아당겼다.
-이 문을 여는 자여, 무한을 향한 여정을 시작하는 그대에게 작은 도움을 주겠다.
문이 활짝 열렸다.
그곳에는 무한한 재보가 쌓여 있었다.
[무한의 금고의 모든 시련을 클리어하셨습니다.]
[3단계 무한의 금고에서 한 가지 아이템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선택하는 순간, 무한의 금고에서 추방됩니다.]
인한은 금고에 들어서자마자 허탈하게 웃었다.
‘인피니트 시리즈만 있는 게 아니었어?’
문 안쪽은 그야말로 장비의 산이었고, 바다였다.
장비들만 모아다 펼쳐 놔도 월드컵 경기장을 가득 채울 것만 같았다.
시련을 겪었던 밖은 분명 어두침침한 미로였는데, 금고 내부는 서양의 고대 건축물을 연상시키는 웅장하고 세련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지구에서는 볼 수 없는 복잡한 건축 양식.
거기다 내부에 있는 재보를 지키려는 의도인 것일까.
벽면에는 진시황릉의 병마총처럼 수없이 많은 기사들의 석상이 서 있었다.
인한은 그 장엄한 광경을 살피다, 천천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어느 것 하나 범상치 않아 보이는 장비들이었다.
가다가 발에 툭 치이는 것들만 봐도 B등급이나 B+등급의 장비들이었다.
인한은 수북이 쌓인 장비의 산에서 삐죽 튀어나와 있던 단검의 천문을 확인해 보았다.
[레골라스의 단검]
[레벨제한 : 없음]
[등급 : A]
[힘 : 175]
[민첩 : 160]
[내구도 : 1000/1000]
[효과]
-모든 스킬 레벨을 2레벨 상승.
-모든 암살자, 검사 카테고리 스킬 사용 시 피해량이 150퍼센트 증가.
-레골라스에 의해 입은 피해는 마력에 의해서만 회복.
그야말로 사기적인 효과들.
추가 스테이터스도 힘과 민첩을 상당히 많이 올려 주는데, 스킬 레벨 상승, 피해량 증가, 거기다 상태 이상까지.
이런 사기적인 아이템인데 사용 제한이 없기까지 했다.
이와 같은 아이템이 금고 사방에 굴러다녔다.
인피니트 시리즈가 아닌 아이템이 이런데 대체 인피니트 시리즈는 어느 정도란 말인가.
‘그건 그렇고…….’
인한은 숨을 훅 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많은 아이템 속에서 어떻게 찾아……?’
인한은 눈앞에 펼쳐진 아이템의 바다를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창훈에게 내려진 시련은 인한의 것과 달랐다.
“끄아아아악!”
이창훈은 발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달렸다.
“살려 줘! 무슨 인도 존스 찍냐!”
콰가가가가!
이창훈의 뒤로 거대한 구가 굴러 내려왔다.
이창훈이 맞이한 시련의 내용은 이랬다.
-허상을 간파하라.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더니, 갑자기 공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체력 스테이터스가 3 point 상승했습니다.]
[민첩 스테이터스가…….]
[힘 스테이터스가…….]
덕분에 때아닌 스테이터스 노가다가 진행됐다.
이창훈은 입에서 단내가 나는 걸 느끼며 망연자실했다.
‘모, 못해. 이제 못 뛰어. 절대, 네버!’
이창훈이 땀이 범벅된 채 숨을 몰아쉬다 힘겹게 뒤를 돌아보았다.
‘에라이! 이판사판이다!’
이창훈이 손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작은 양의 마력이지만, 분명 뛰어난 힘이긴 했다.
“오라!”
짐짓 이야기 속 영웅이라도 된 듯 외친 이창훈이 양손을 앞으로 쭉 내민 채 눈을 질끈 감았다.
쿠과가가가!
그 거대한 공은 육중한 중량감을 드러내며 맹렬히 돌진해 왔다.
그리고…… 이창훈을 지나쳤다.
이창훈이 눈을 껌뻑였다.
“어?”
갑자기 거대한 공이 사르륵 허공에 녹았다.
이창훈은 멍하니 공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았다.
“……어?”
* * *
인한은 천천히 장비들의 바다를 거닐었다.
하나하나 확인하려면 평생 걸려도 다 못할 게 틀림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아무리 제한 시간이 없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자.’
과거, 이 무한의 금고에서 인피니트 시리즈를 가져간 자들이 있었다.
그렇다는 건, 뭔가 방법이 있다는 것이었다.
인한은 그 방법을 생각하며 금고를 뒤졌다.
그렇게 1시간 뒤.
인한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
마력을 흘려 보기도 하고, 정령을 소환해 거닐어 보기도 했다.
혹시 숨겨진 방이나 장치가 있을까 해서 마력을 통해 벽에 묻은 먼지 한 톨까지 살펴보았지만, 특이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
‘차라리 다 뒤져 봐?’
혹시라도 운 좋게 손에 잡히지 않을까?
앞으로 인피니트 시리즈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꼭 얻기는 해야 했다.
단순 작업은 인한의 특기였다. 그러니…….
‘무슨 생각이냐.’
인한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뭔가, 뭔가를 놓치고 있는데…….’
인한은 B+급 아이템 위에 주저앉은 채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하! 모르겠다!”
이 넓은 공간에서 나는 소음이라고는 오직 인한뿐이었다.
인한의 목소리가 메아리치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문득, 인한의 머릿속에 문 앞에서 보았던 문구들이 떠올랐다.
‘신은 인간에게 무한을 허락했다.’
인한은 그 문장들을 단어 하나하나 곱씹었다. 혹시라도 입구에서 보았던 문구에 힌트라도 있을까 해서였다.
“그럴 리가 없지.”
인한은 피식 웃으며 재보들 위에 드러누웠다.
그런 인한의 눈에 일정한 간격으로 나열되어 있는 전사의 석상이 보였다.
전사는 검신을 땅바닥에 박은 채 검의 손잡이를 쥐고 있었다.
“잠깐?”
인한이 이상한 점을 눈치채고 벌떡 일어섰다.
“석상에 쥐어 주는 무기를…… 돌이 아니라 쇠로 만드나?”
인한은 석상에 손을 가져다 댔다. 돌의 딱딱한 감촉이 손끝에 느껴졌다.
그런데 그가 쥐고 있는 검은 밋밋한 디자인에 녹슬어 있는 철제 검이었다.
“신…… 무한…… 인간……?”
이 거대한 공간에 있는 인간.
외부인인 인한을 제외하면, 인간의 형상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석상들뿐이다.
인한이 벌떡 일어나 철제 검에 손을 가져다 댔다.
[천검]
[레벨제한 : 없음]
[등급 : S(성장형)]
[힘 : ??]
[민첩 : ??]
[체력 : ??]
……
[내구도 : 없음]
[효과]
-사용자와 함께 성장.
-사용자의 힘에 맞춰 능력 각인.
[소유자]
-아직 각인되지 않았습니다.
“찾았다!”
인한이 외쳤다.
천검이라면 이셴이 사용했던 무기였다.
인한은 몸을 움크리고, 지면을 박찼다.
순식간에 수십 미터의 거리를 튀어 오른 인한의 눈에 무한의 금고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인한은 벽면에 쭉 나열된 수많은 전사들의 모습을 보고 입이 찢어져라 웃었다.
저들이 입고 있는 것, 쥐고 있는 것이 전부 인피니트 시리즈였다.
‘어차피 여기까지 들어왔는데 굳이 이런 짓을 해야 했나…….’
좋긴 했는데 금고 제작자의 변태성에 화가 확 뻗쳐 오르는 기분이었다.
덕분에 시간을 얼마나 허비한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떠나갈 줄 모르는 미소를 지으며 인한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인한이 노리는 아이템은 하나였다.
발터 에스키엘의 천룡의.
전신을 가려 주는 장포 형식의 옷이었던 천룡의는, 상상 이상의 공능을 발휘했다.
천룡의를 사용하는 발터 에스키엘은 사실상 일인 길드에 버금갔다.
‘그래도 구원의 검에 베였지.’
결국 랭킹은 박철환이 1위였다.
인한은 울컥 솟아오르는 살심을 애써 누르고, 석상에 걸쳐 있는 인피니트 시리즈들을 확인하며 나아갔다.
‘찾았다.’
아무런 특별할 것 없는 갈색의 로브를 걸치고 있는 석상이 보였다.
로브의 이름은 천룡의.
주인과 함께 외견도 변하는 것일까. 아직은 조잡해 보였다.
‘그 정도야 내가 성장시키면 되는 것.’
인한의 손에 천룡의에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우웅-!
인한의 마력이 공명했다.
인한은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천룡의를 걸치고 있는 석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얇은 장갑이 진동하고 있었다.
인한은 마치 이끌리듯 그곳으로 향했다.
[용왕의 이빨]
눈에 들어온 아이템을 본 인한은 다른 아이템들에게선 느낄 수 없었던 강한 끌림을 느꼈다.
‘날 부르는 거냐?’
인한은 석상에서 장갑을 벗겼다.
장갑의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마치 살아 있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박동했다.
그리고 신기한 것은, 인한도 이 ‘용왕의 이빨’에 묘한 인연을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걸 선택하겠다.”
[무한의 금고에서 아이템 ‘용왕의 이빨’을 선택하셨습니다.]
[사용자가 각인됩니다.]
[능력치가 동기화됩니다.]
그런 알람을 끝으로 무한의 금고 곳곳에서, 처음 이곳에 들어왔을 때와 같은 빛이 터져 나왔다.
눈을 뜬 순간, 인한은 자신보다 먼저 던전을 탈출한 이창훈을 발견했다.
“어우! 이 자식이! 주인님 말을 뭘로 알고! 야! 그거 안 가져와!”
-키에에에엑!
“얌마!”
언제나처럼 곱린이와 드잡이질 하고 있는 이창훈을 보니, 왠지 전신에 들어가 있던 긴장이 탁 풀리는 기분이었다.
그걸 한심한 듯 바라보는 리자는 어디서 난 것인지 작은 고깃덩이 하나를 씹고 있었다.
인한은 그들을 힐끗 바라보다가 손에 쥐고 있는 용왕의 이빨을 살폈다.
[용왕의 이빨]
[레벨 제한 : 없음]
[등급 : S(성장형)]
[힘 : 190]
[민첩 : 180]
[체력 : 190]
[마력 : 89]
[효과]
-사용자와 함께 성장
-권사 카테고리 스킬 사용 시 피해량 300퍼센트 상승
-트리아스 액셀의 효율이 200퍼센트 상승.
-중독 면역과 마법 면역 스킬의 레벨이 5레벨 상승.
-강룡(强龍) 이하의 위계를 가진 용족에게 패시브 스킬 ‘위압’ 발동.
[소유자]
-최인한
사기였다.
그 말 외에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후우…….”
인한은 조심스레 장갑을 손에 껴 보았다.
용왕의 이빨을 장착한 순간, 전신에 미증유의 힘이 차올랐다.
“어? 형님 오셨어요?”
“그래, 왔다.”
“올, 형님도 건지셨나 보네. 표정 겁나 좋아요.”
인한이 히죽 웃었다.
계속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감출 수 없었다.
“너는?”
“아, 예. 똑바로 가져왔습죠. 후우, 형님 제가 그 아이템 얻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십니까. 공에 쫓기고, 몬스터들과 부딪치면서……! 이건 정말 간단히 얘기할 수 없는 감동 스토리…….”
“시끄럽다.”
“……크흡.”
인한이 째려보자 이창훈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걸 가져왔겠지?”
“흐흐, 대박입니다.”
이창훈이 히죽 웃었다.
“무려 성장형 아이템입니다.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그 입구에 적힌 문구 보고 석상을 살펴봤는데, 외견만 좀 별로지 완전 사기 아이템이 제 손에 들어왔다 아닙니까?”
인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석상이라고?”
“네? 왜 그렇게 놀라십니까? 예, 뭐…….”
“보여 줘 봐.”
인한의 요구에 이창훈 고개를 끄덕이고 외쳤다.
“야, 곱린아! 가져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