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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101화 (101/266)

# 101

<공략자들 101화>

오성 그룹 본사는 영등포에 위치했다.

타임 스퀘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 고층 빌딩에 큼지막한 글씨로 오성이라는 단어가 각각 한글, 영문, 한문으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와, 저 사람 누구지?”

“면접 보러 왔나?”

“이 시기에?”

사람들이 힐끗힐끗 인한을 쳐다보며 수군댔다.

이소영의 코디로 구매했었던 캐쥬얼한 느낌이 나는 정장은 인한의 큰 키와 다부진 몸매와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를 발휘했다.

거기다 인한 특유의 차분히 가라앉은 분위기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당기기에 충분했다.

“저기, 실례합니다.”

인한은 데스크로 향해 물었다.

여직원이 인한을 보고는 생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무슨 일을 도와 드릴까요?”

“약속이 잡혀 있어서요. 여기.”

여직원이 인한이 건넨 명함을 받아 들며 인한을 슬쩍 바라보았다.

‘우와, 슈트 핏 좀 봐. 위아래로 거의 5백만 원은 걸치고 있는데? 어디 좋은 집 자제분이신가…….’

명품은 티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여직원은 인한이 건넨 명함으로 시선을 돌렸다.

‘응? 뭐야, 이게.’

새까만 디자인에 금박으로 그려져 있는 오성이라는 한글 표기. 그리고 사인 하나만 달랑 있는 명함이었다.

보통 직원들이 들고 다니는 명함과는 달랐다.

검은 탑을 의미하는 새까만 바탕의 명함은 오성 그룹의 특징이긴 했다.

하지만 보통 부서명이나 이런저런 문양이 그려져 있기 마련이었는데, 인한이 건넨 명함에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응?’

곧 여직원은 그 밑에 적혀 있는 글자를 발견했다.

[이현철 Lee Hyun Cheol Chairman]

‘체어맨? 이현철?’

체어맨이라는 단어와 이현철이라는 이름 석 자.

‘이, 이현철 회장님?!’

여직원은 그제야 비서실에서 받았던 연락을 떠올렸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직원은 다급히 인터폰을 들었다.

* * *

회장이 쓰는 엘리베이터는 따로 있는 것인지, 인한은 이지적인 인상의 비서와 함께 금색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이거 설마 진짜 금인가?’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하던 인한은 곧 엘리베이터가 멈추자 밖으로 나왔다.

“10층? 회장실이 10층에 있는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신기하네요. 원래 회장실은 가장 꼭대기에 있는 줄 알았는데.”

오성 그룹의 빌딩은 총 27층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데 회장실이 고작 10층이라니,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는 달라 신기했다.

“아버지 지침이에요. 지시를 내리면 위로도 아래로도 적당히 빠르게 오고 갈 수 있을 거라고. 거기다 오르내리실 때 시간도 절약되고요.”

어느새 옆에 다가온 이소영이 말했다.

깔끔한 정장 차림의 이소영이 그러고는 어색하게 웃었다.

“어서 와요. 조금 일찍 왔네요?”

“어떻게 소영 씨는 볼 때마다 스타일이 확확 바뀌네요.”

“……저도 정장 불편해서 싫어하거든요. 안 어울려요?”

“아뇨, 상당히 잘 어울립니다.”

“흠흠!”

이소영이 겸연쩍은 듯 단정하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그보다 저랑 산 옷 입고 왔네요?”

“제가 가진 옷 중에 제일 좋아서요. 저랑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흐음.”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그 말에 기분 좋은 듯 이소영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요, 김 비서님. 들어가서 일 보세요. 제가 같이 들어가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이소영이 인한의 옆에 서 있던 김 비서에게 말했다.

김 비서는 그림으로 그린 듯한 90도 인사를 보이며 이소영을 배웅했다.

회장실의 문은 열려 있었다.

인한과 이소영은 바로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에 중년의 남성이 무언가를 바쁘게 써 내려가고 있었다.

머리카락 사이사이에 희끗한 흰머리가 보였고 짙은 주름도 보였지만, 돋보기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강렬하고 자세가 꼿꼿해서 상당히 젊게 느껴졌다.

중년 남성의 시선이 인한과 이소영에게 향했다.

“아, 왔는가?”

“안녕하십니까.”

사내가 펜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떤 힘이나 능력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는 순간 인한은 정체 모를 기세를 느꼈다.

“반갑네.”

이현철은 인한에게 악수를 건네며 미소를 지었다.

“오성 그룹 회장, 이현철이라고 하네.”

“딸이 신세를 졌다고 들었네. 정말 고맙네, 하하!”

이현철은 생각보다 소탈한 분위기의 남성이었다.

하대를 하고 있지만 어투에 정중함이 서려 있어서 기분 나쁘지 않았다.

“한 가지 말해 보게. 내가 이래봬도 꽤 능력이 있는 사람이네. 꼭 보답하고 싶어서 그래.”

“아닙니다. 이미 소영 씨가 충분한 선물을 주셨습니다.”

“그래도! 내가 천하의 이현철이야! 뭐든 말해 보게!”

“정말 괜찮습니다.”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닐 텐데…….”

이현철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인한이 난처한 표정으로 맞은편에 앉은 이소영을 바라보았다.

이소영은 한숨을 푹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걸 본 이현철이 갑자기 눈을 빛냈다.

“지금 뭘 한 겐가?”

“예?”

“내 딸과 눈빛 교환한 건가? 호, 혹시 자네! 안 돼! 내 딸과 교제는 절대 안 되네!”

“아빠! 뭐라는 거야!”

“그러고 보니 내 딸과 요즘 만나고 다니는 모양이던데…… 안 되네! 소영이는 누구에게도 주지 않아! 내 딸을 가질 거면 날 넘어서…… 끄아으윽!”

이현철의 말이 끝에 가서 갑자기 비명으로 바뀌었다.

이소영의 킬 힐에 가까운 높은 구두 굽이 인정사정없이 이현철의 발등을 찍어 눌렀다.

“소, 소영아! 발! 아빠 발!”

“호호! 아버지, 인한 씨가 난처해하시잖아요. 조금 진정하세요.”

분명 웃고는 있는데 눈이 웃고 있지 않았다.

짧은 응징이 끝나자 이소영이 다시 싱긋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요, 인한 씨. 그보다 어디까지 말씀하셨죠, 아버지?”

“지독한…….”

“네?”

“아, 아무것도 아니다!”

인한은 짧은 만담을 본 것 같은 느낌에 저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흘렸다.

참 재밌는 부녀지간이었다.

“크흠, 뭐, 미, 미안하네. 하지만 정말 보답을 하고 싶은 건 진심이라네. 뭐든지 말만 하게나.”

“맞아요, 인한 씨. 그냥 확 말해 버려요. 우리 아빠 돈 많으니까 막 던져요.”

“저, 저기 소영아…….”

“흥!”

인한이 눈을 깜빡였다.

돈이라.

돈은 인한도 많이 번다.

거기다 딱히 보상을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다. 이소영에게 보답을 받기도 했고.

‘하지만, 기껏 온 기회를 차는 것도 예의가 아니지.’

인한이 엷게 웃으며 입을 뗐다.

“그럼…… 나중에 제 부탁 하나만 들어주시겠습니까?”

“흐음?”

이현철이 눈을 빛냈다.

“사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게 없습니다. 돈도 나름 벌고 있어서 부족한 걸 못 느끼고요.”

“그렇군.”

이현철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한 것만 부탁하지 말게. 그럼 정말 난처해질 테니까.”

언뜻 들으면 농담 같았지만, 무게감 있는 말이었다.

“자! 그럼 얘기나 좀 들어 볼까. 정말 궁금했었네! 10층에서의 일! 들려줄 수 있겠나?”

뭔가 맘에 안 드는 듯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이소영도 흥미가 동하는 듯 눈을 빛냈다.

인한으로서는 순식간에 난처해져 버린 상황이었다.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지?’

그 당시에 상황을 목격했던 사람들도 믿지 않고 의심했었는데, 들려준다고 해서 곧이곧대로 믿을 것 같지가 않았다.

인한은 어쩔 수 없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조금…… 각색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각색?”

“워낙 다급해서 잘 기억이 안 납니다. 거기다 제가 말주변이 좋은 편이 아니라서요.”

“괜찮아!”

“그럼…….”

인한이 각색을 포함한 무용담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각색이 6, 70퍼센트에 달한 것은 비밀이었다.

“대단하군. 그래, 마력이라 했는가? 자네가 말해 준 정보 덕에 오성 공격대에도 마력을 키우도록 지시했다네.”

“그렇습니까?”

그건 좀 놀라운 일이었다. 일개 헌터가 전한 정보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다니.

물론 이소영의 입을 통해 전달됐기 때문이겠지만 쉽게 보기 힘든 일이었다.

“우리 공격대뿐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마력 스테이터스에 투자하려는 자들이 늘어나고 있지. 인터넷 방송 채널이 자네 소유라고 하더군? 그 영상 덕이 컸네.”

“그렇군요.”

그 뒤로도 한동안 대화가 오고 갔다.

인한은 비서가 가져다준 커피를 다 마실 때쯤, 천천히 입을 열었다.

“탐색은 이쯤이면 충분하실 것 같습니다.”

“으응……?”

“회장님도, 저도 시간이 그리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인한의 말에 이현철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하, 하하!”

이현철이 시원스럽게 웃고는 옆에 앉아 있는 이소영에게 말했다.

“소영아, 미안하지만 자리를 비켜 주겠니?”

“……왜요?”

“남자끼리 단둘이 얘기할 게 있을 것 같구나.”

이소영이 인한과 이철현을 번갈아 가며 봤다.

그러다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현철은 이소영이 밖으로 나가자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힘을 보태 줄 수 있는가?”

이현철 회장은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왔다.

“오성에 들어오게. 자네와 같은 인재는 언제나 환영이라네.”

“죄송하지만, 저는…….”

인한이 거절하려고 입을 열었지만, 이현철이 말을 끊으며 조건을 제시했다.

“자유를 보장하겠네. 임원급의 대우도 받게 될 거야. 원한다면, 내 주식도 어느 정도 넘겨줄 수 있네. 필요 없겠지만 경호와 비서도 붙여 주겠네.”

인한의 눈이 조금 커다래졌다.

그야말로 파격적인 대우였다.

그리고…… 솔깃하기까지 했다.

‘만약 길드를 만들게 된다면…….’

오성의 이름 아래 길드를 만든다면, 귀찮은 일들이 대폭 줄어들 터였다.

거기다 사람을 모으는 것도 쉬워질 게 분명했다.

인한은 단칼에 거절하지 못하고 물었다.

“제게 왜 그런 제안을 하십니까? 거기다 직접 회장님께서 나서시면서까지.”

“자네는 가치가 있는 인재니까.”

“그래봤자 저는 일개 헌터입니다.”

“일개 헌터가 아니지. 자네는 영웅이라고 불리고 있으니까.”

“운이 좋았던 것이죠.”

“하하!”

이현철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인한이 의아한 듯 그를 바라보자, 이현철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이 상황이 재밌지 않나? 나는 자네를 높이 평가하기 위해 안달이고, 자네는 자기 자신을 깎아내리기에 안달이지. 어째 역할이 바뀐 것 같군?”

“…….”

인한이 입을 꾹 다물었다.

이현철이 말을 이었다.

“……난 꽤 소문에 밝은 편일세. 랭킹에도 오르지 못했건만 육룡 중 하나를 두들겨 패고, 10층의 보스 공략 최고 공헌도를 달성한 이가 자네라는 것을 알고 있지.”

이현철이 다리를 꼬고는 깍지를 껴서 무릎 위에 얹었다.

“이유야 모르겠지만, 탑은 예외가 가득하니 공간이니 그럴 수도 있는 거겠지.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게나. 오성에 들어와도 자네가 실질적으로 할 일은 변하지 않네. 탑을 오르고 싶을 때는 오르며, 그저 문제가 생겼을 때 내게 힘을 보태 주면 되는 것뿐이야.”

인한은 지그시 이현철을 응시했다.

그리고 이현철의 눈에서 끝 모를 욕심을 보았다.

어쩌면, 그는 인한에게서 어떠한 가치를 발견했을지도 몰랐다.

이현철의 주위에 인재가 많기로 유명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일까.

“고민이 되는 모양이군.”

“예, 조금 그렇군요.”

인한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쐐기를 박아 볼까. 자네는 자신이 얼마나 주위에서 노려지고 있는지 알고 있는가?”

“예?”

“자네의 가치는 자네가 더 잘 알고 있겠지. 비단 국내뿐이 아니야. 해외의 수많은 집단에서 자네를 노릴 걸세. 그리고…… 그놈들이 어떤 일을 해 올지는 아무도 모르지.”

다소 가벼운 어조로 이현철이 말했다.

‘그렇군.’

인한이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인한은 자신을 숨기지 않고 움직여 왔다.

거기다 이번 10층의 일은 인한을 일약 스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귀찮은 일들이, 분명 생길 거란 의미였다.

“오성은 우산이 되어 줄 수 있네. 그것도 굉장히 견고한 우산이.”

인한은 이현철의 강렬한 눈빛을 직시했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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