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공략자들 98화>
“예?”
“싫다고.”
인한이 그렇게 답하고는 클라우스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데이빗이 당황해 되물었다.
방금 전만 해도 관둘 것 같이 굴던 인한이 상반된 말을 하니 어쩔 줄 모른 것이다.
“도,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십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내 목숨 노린 놈을 살려 둬야 하나?”
“목숨을 노렸다고요?”
“이 얘기는 여기까지야. 막고 싶으면 직접 막아.”
말을 아낀 인한은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컥!”
빠각!
클라우스의 얼굴이 끝내 내려앉고 말았다.
인한이 아차 한 얼굴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너무 세게 때렸군.”
그걸 보고 있는 데이빗이 어처구니없는 듯 탄성을 내질렀다.
‘도대체 이 미친놈은 뭐지?’
당최 알 수 없는 얘기만 내뱉는 사내였다.
대화가 안 통함을 깨달았다.
통하지 않음을 깨달은 데이빗이 팀원들에게 말했다.
“가서 막아!”
“예? 하, 하지만 저 사람…….”
그런데 템플 팀의 팀원들이 쭈뼛거리며 나서질 않았다.
“뭐 하는 거야?”
데이빗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팀원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사람, 엄청 강하잖아요. 우리가 나선다고 막을 수나 있겠어요?”
“…….”
블러드리드를 쓰러뜨린 게 조작된 연출이라고 하더라도, 분명 그가 보여 준 힘은 인간을 초월한 것이었다.
거기다 여기에 있는 공략자들은 모두 지치고 다치지 않았던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냐!”
그때 소리를 치며 나타난 이는 바로 매지션즈 팀 소속 랭커였다. 블러드리드의 충돌 때 기절했었던 그였지만 금세 정신을 차린 모양이었다.
그가 인파를 헤집고 나타나 인한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당장 팀장님을 놔라!”
그러나 인한은 그 사내를 힐끗 보고는 무시했다.
“이익! 한 번만 더 주먹을 휘두르면 힘을 쓰겠소!”
그 말마저 무시한 인한은 말없이 다시 주먹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사내가 인벤토리에서 구르카를 꺼내더니 휘둘렀다.
“어어! 저거!”
구르카는 정확히 인한의 목을 노리고 날아가고 있었다.
인한은 피할 생각도 않고 계속해서 주먹을 휘둘러 갔다.
명백히 목이 잘릴 위험천만한 상황!
하지만.
텅!
구르카가 튕겨져 나갔다.
쩌적!
아니, 오히려 부러져 버렸다.
사내가 중간이 뚝 부러져 땅바닥을 구르는 구르카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매, 매지션즈! 이자를 막아라!”
사내가 황급히 외쳤다.
매지션즈 팀원들이 서로 눈치를 보다가 슬금슬금 인한의 쪽으로 달려들었다.
“우리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일단 말리고나 봅시다.”
그 황당한 광경을 보고 있던 연합의 팀장들도 인한에게 맞서려 뛰어들었다.
그리고 진풍경이 펼쳐졌다.
“으, 으아아악!”
“날아간다!”
인한이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그 주먹을 막으려고 붙잡았던 헌터들이 튕겨져 날아갔다.
각자의 무기를 휘두르는 헌터들도 있었는데, 그 헌터들의 무기는 대부분이 부러지거나 무의미하게 휘둘러졌다.
그때였다.
쐐애애액! 퍽!
어디선가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화살 한 대가 인한의 등에 박혔다.
모두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생각지도 못하게 공격이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툭!
화살은 힘없이 땅바닥에 툭 떨어졌다.
“……?”
인한이 살짝 따끔한 느낌에 허리를 펴 주위를 한 번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갸웃하고 다시 클라우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인한은 주위에는 전혀 관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어 말리고 있는데, 인한은 미동조차 없었다.
말도 안 되는 광경이었다.
힘 스테이터스 200은 족히 찍은 헌터들이 수십 명이 한 사람을 막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다 그렇게 많은 공격을 받고도 생채기 하나 나지 않다니.
“……비싼 아이템을 걸치고 있나 보군.”
“저거 안 보이세요……?”
“뭐가?”
“저 티셔츠 뒤에…… V자 모양이요…….”
“…….”
“그냥 평범한 스포츠 브랜드 셔츠입니다.”
헌터들이 인한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때, 누군가가 인한의 행동을 멈추게 만들었다.
“혀, 형님 그만하세요.”
이창훈이었다.
이창훈은 인한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
인한이 눈을 가늘게 뜬 채 클라우스에게 주먹을 휘두르려다, 멈췄다.
“아, 아무리 형님이 강해도 그렇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등 돌리고 살 수 있어요? 제발! 저도 있으니까!”
이창훈이 귓속말로 말했다.
“싫어.”
“아 제발요 형님! 형수님이 일어나서 형님 이런 모습 보면 무슨 생각 하겠습니까!”
“……뭐? 형수님?”
“그 여자분 말이에요. 형님이 구해준.”
순간 힐끗 하영이 있는 쪽을 바라본 인한이 얼굴을 팍 일그러뜨렸다.
“아니다.”
“예? 뭐가요?”
“그 형수님이란 거. 아니야.”
“예에? 그렇게 붙어 놓고? 에이, 형님. 저한텐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형님 아우 사이 아닙니까!”
“……하아.”
인한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창훈과 떠들고 있으니 뭔가 전부 다 바보같이 느껴졌다. 이렇게 때리고 있는 자신도, 화를 내고 있는 자신도.
인한이 천천히 주먹에 힘을 풀려던 때였다. 어눌한 목소리로 천천히 클라우스가 입을 열었다.
“주, 죽여라…….”
그야 죽고 싶을 정도로 맞기는 했다.
육신의 색이 살색보다는 푸르뎅뎅하거나 붉거나 둘 중 하나였으니 말이다.
인한은 그런 클라우스를 보며 피식 웃었다.
헌터들이 자신을 막고자 애를 쓰는 것을 그도 알았다. 하지만 멈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인한이 이렇게 무리하게 일을 진행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본보기다.’
분노한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경고의 의미였다.
현 검은 탑의 최강자들인 육룡을 두들겨 패는 신인 헌터.
날파리들이 꼬이는 건 이제 질렸다.
무시당하는 것 또한, 진절머리가 났다.
이런 쓰레기들이 설치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거기다…… 나 때문이었다.’
과거의 역사에서는 이런 일은 없었다.
그놈의 ‘제물의 의식’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아마도 인한에 의해 일어난 일이리라.
인한이 뿌린 씨앗은, 인한이 치워야 했다.
“그런데 마음에 안 드네. 네가 뭔데 죽여라 말라야. 그렇게 남들 머리 위에 서고 싶냐?”
퍼억!
인한이 손을 들어 따귀를 내리쳤다.
클라우스의 귀에서 주륵 피가 흘러내렸다. 고막이 터진 게 분명했다.
“크흐흐! 너는 안 그러나? 힘을 얻기 위해서다. 검은 탑은…… 크억! 원하는 힘을 원하는 만큼 얻을 수 있지. 궁금하군! 그 힘, 이 검은 탑에서 그 정도의 힘은 이미 그 자체로 정도(正道)에서 벗어났을 텐데…… 넌 그 힘을 얻기 위해 대체 뭘 포기한 거지? 크흐흐!”
클라우스가 피를 게워 내며 말했다.
인한은 그 말에 인상을 찡그리고는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너 같은 쓰레기랑 엮지 마. 난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크흐흐! 크흐흐…….”
클라우스가 미친 듯 웃음을 토해 냈다.
“나는 선택받았다. 선택받은 거야…… 힘을 위해서…….”
“정말 궁금하군. 이 세계를 멸망시킨 놈들이 가지고 온 탑이다. 그런데 그런 놈들의 선택을 받은 게 그렇게 기쁜가?”
“그게 무슨 소리지?”
클라우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눈을 커다랗게 떴다.
“크, 크흐흐! 그렇군! 넌 아무것도 모르는군!”
클라우스가 몸을 비틀며 웃음을 터뜨렸다.
“역시, 역시 난 선택받았다. 크흐흐! 그래, 그런 내가 이들을 이끄는 게 뭐가 문제라는 거지……?”
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더 이상 대화를 나눌 가치가 없었다.
“네놈은 죽는 것보다 이쪽이 더 좋을 것 같군.”
“……?”
인한이 손을 뻗어 클라우스의 심장 위에 손을 올렸다.
“네놈, 뭘 하려는…….”
우우웅!
인한의 손에 힘이 집중됐다.
인한의 손에서 뻗어 나간 ‘무언가’가 클라우스의 근원에 있는 힘을 잡아냈다.
“크륵!”
클라우스가 눈을 까뒤집고 비명을 질렀다.
인한의 손에 새하얗게 빛나는 빛의 결정이 잡혔다.
씨앗이었다.
“아, 안 돼! 안 돼!”
정신을 차린 클라우스가 발악하며 인한에게 손을 뻗었다.
“그, 그것만큼은-!”
클라우스가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미 씨앗은 인한에게 흡수된 후였다.
“안 돼!”
클라우스는 그것과 함께 기절했다.
인한은 기절한 클라우스를 내던지고 몸을 돌렸다.
“가자. 창훈아.”
“예, 형님.”
11층에 가서 등록을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인한의 뒤로 이창훈이 조심스레 따라왔다.
그때 인한의 앞을 매지션즈 팀이 막아섰다.
“지금 팀장님께 무얼 한 거지?”
“대답할 이유 없다. 꺼져.”
“어딜 가는 거냐! 멈춰라!”
인한이 차가운 눈으로 돌아보았다.
“거기까지만 해라.”
인한의 기운이 울컥 튀어나와 사방을 잠식했다.
“더 하면, 봐주지 않아.”
순식간에 사방을 잠식하는 엄청난 기세에 매지션즈 팀뿐만 아니라 연합의 모든 헌터들이 굳어버렸다.
“가자.”
“아, 예, 예에…….”
인한과 이창훈은 그렇게 보스존을 벗어났다.
뒤에 남은 연합은 그저 멍하니 떠나가는 인한을 볼 뿐이었다.
* * *
결국 인류는 3차 몬스터 웨이브의 위험에서 벗어났다.
탑의 밖에서는 난리가 났다.
무엇보다 한국에서는 그 위험을 불식시킨 것이 다른 누구도 아닌 최인한이라는 한국인 헌터라는 보도가 연일 뉴스에 나왔다.
연일 치솟던 물가와 패닉 상태에 가까웠던 사회는 안정을 되찾아 갔다.
10층 보스존 공략과 관련된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문들이 돌아다녔지만, 대부분은 인한의 업적에 화제가 되지는 못했다.
한편.
그 화제의 주인공인 인한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와…… 생각보다 괜찮네요?”
집들이에 온 이창훈이 탄성을 질렀다.
탑의 밖에 나온 후, 인한은 평창동에 있는 집 하나를 구했다.
집주인이 자살했다는 이유로 집값이 좀 떨어진 매물이었다. 거기다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래 봤자 억 소리 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 굳이 싼 집을 사려고 한 건 아니고, 밖에서 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담이 높은 집을 사려고 한 건데 마침 고른 집이 그랬던 것이었다.
같이 집을 보러 다녔던 이창훈은 귀신이 산다는 소문을 듣고서 극구 반대했다.
몬스터면 질리도록 보고 다니는 사람이 뭔 귀신을 무서워하는 건지 인한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귀신이면 질리게 봤으니까.’
일반인들이야 귀신이 무서울 수 있겠지만, 검은 탑에서 유령류의 몬스터를 워낙 많이 만났던 인한에게는 탑 밖의 귀신은 귀엽기까지 했다.
“형님, 근데 집 살 정도로 돈 많이 버십니까……?”
이창훈이 은근슬쩍 물었다.
사실, 최전선의 공략자들이 1년에 수십억씩 벌기는 한다. 아이템도 아이템이고, 기업의 의뢰를 받고 움직이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한은 그러지 않았음에도 이렇게 비싼 집을 한 번에 살 돈이 있다는 게 이창훈은 놀라웠다.
“그냥, 이번에 쟁여 뒀던 아이템 다 처분했거든.”
인한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10층 클리어를 통한 보상으로 인한은 꽤 좋은 아이템을 얻었다.
[블러드 울프의 어금니]
[등급 : B]
[종류 : 재료]
[10층의 보스 몬스터 블러드 울프의 어금니이다.]
블러드 울프는 전신이 혈액으로 되어 있다.
그런 놈의 어금니가 보상으로 나온 게 조금 이해할 수 없기는 했지만, 실제로 현재 등장한 재료 아이템 중에서는 상당히 고급스러운 아이템이었다.
거기다 이제는 발동된 것도 까마득한 <시작하는 자>의 타이틀 효과까지 발동했다.
[오각석]
[등급 : A+]
인한은 검은 탑 등장 이래 최고의 각석을 얻어 냈다.
당연히, 경매에 올렸다.
그런데 이게 무려 하나에 70억에 가까운 돈에 낙찰됐고, 본 적 없는 해외의 연구소에 팔렸다.
거기다 미처 처분하지 못했던 장물들을 김만춘에게 다시 소개를 받아 처분할 수 있었다.
이것으로, 10억에 가까운 돈이 손에 들어왔다.
“……부럽다.”
이창훈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부럽다! 부러워 미치겠다! 으아아악!”
이창훈을 보며 인한이 피식 웃었다.
가구가 아직 덜 들어와서 삭막하지만, 이창훈으로서는 이 정도 소비는 꿈도 꿀 수 없었기에 부럽기 그지없었다.
‘뭐…… 그래도 나도 한탕 땡겼으니까.’
이창훈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뒷머리를 긁적였다.
인한이 계좌로 넣어 준 돈을 제외하더라도, 이번에 인한을 따라다니면서 부산물로 번 돈이 1억이 조금 넘었다.
한 달 정도 고생하고 번 돈이 자그마치 1억이다.
과거의 이창훈으로는 상상도 못할 돈이었다.
“형님, 그럼 전 이만 가겠습니다. 또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하십쇼.”
“그래, 고맙다.”
인한은 이창훈과 함께 마당까지 나갔다.
그러자 이창훈이 멋쩍어하며 말했다.
“에이, 형님. 이렇게 나오실 필요 없는데…….”
“너 배웅하는 거 아닌데?”
“예?”
“마당에서 할 게 있어서. 잘 가라.”
“…….”
냉정하게 작별을 고한 인한이 얄미워, 이창훈은 구시렁대며 문을 열고 나갔다.
인한은 그런 이창훈의 뒷모습을 보며 피식 웃고, 마당에 앉았다.
적당히 따뜻한 태양에, 적당히 낀 뭉게구름에, 볕이 기분 좋게 내리쬈다.
그렇게 한참 숨을 고르며 명상을 하던 중이었다.
인한이 마력을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인한을 중심으로, 넓은 공간에 기막이 펼쳐졌다.
인한은 숨을 짧게 훅 내쉬고, 아공간 결계에 갇혔을 때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쏟아져 나오는 기억의 편린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보았다.
마치 머리에 무슨 장치가 되어 있었던 건지, 인한은 미드 코어의 정체를 깨달았을 때, 알고 있었음에도 떠올릴 수 없었던 것들을 기억해 냈다.
인한의 호흡이 흔들렸다.
잔뜩 찡그린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그대로 대변했다.
인한은 머릿속에 떠올린, 분명 자신이 경험했고 자신의 기억일 터인 이미지들을 되짚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아발론에 간 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