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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93화 (93/266)

# 93

<공략자들 93화>

인한은 매지션즈와 협력해 공략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이미 천궁검 니시야마 겐지가 육룡이라는 오래된 순위를 부숴 버린 상태였고, 마력 스테이터스에 대한 정보가 퍼지며 랭킹 구도에도 큰 변화가 찾아왔던 시기였다.

클라우스는 얻기 힘들다고 악명 자자한 마법사 클래스의 소유자였고, 재능 또한 있었지만 그 흐름에 휩쓸려 최상위권 랭킹에서는 밀려난 사내였다.

오히려 랭킹만 따지면 임태호보다도 낮았기에, 당시 인한은 그를 은연중에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공략에 들어갔을 때, 인한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눈에 담았다.

-키이이익!

-케에엑!

-캬악!

내리치는 전격에 랭커 한 명은 붙어야 상대가 가능했던 스켈레톤 워리어가 잿더미가 되고, 타오르는 화염에 정신을 현혹시키던 레이스가 산화했다.

수많은 함정이 채 발동하기도 전에 파괴되었고, 재생을 거듭하던 좀비와 구울들은 바람 마법에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리치의 무덤이라는 던전이었다.

수많은 언데드와 불사체(不死體)라 불리는 언데드와 생명체를 반반 섞은 듯한 몬스터들이 가득 차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높은 물리 방어력과 마법 방어력까지 가지고 있는 데다, 공격을 당하면 좀비화되는 저주까지 가지고 있어서 수많은 공략자들의 목숨을 앗아 갔다.

승승장구하던 당시의 해태 길드조차 진행률 50퍼센트도 가지 못한 채 멈춰 섰을 정도였다.

그런데 매지션즈의 협력이…… 아니, 정확히는 클라우스의 등장에 형세가 역전됐다.

클라우스라는 마법사는, 개인의 힘으로 무투가 수십 수백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해냈다.

임태호와 인한이 한 명의 적을 확실하게 쓰러뜨릴 수 있는 저격총이라면, 클라우스는 다수의 적에게 피해를 입히는 대포와 같았다.

그때의 공략은, 당연하게도 성공했다.

인한은 그 뒤로 매지션즈와 부딪치게 될 일을 최대한 피했다.

다른 길드와 적대하는 일이 있더라도, 결코 매지션즈와는 부딪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과거의 일이다.

어떤 조건에서 싸우더라도, 인한은 클라우스에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10층 보스존의 앞, 안전지대에서 다소 거리가 떨어진 숲속.

인한과 클라우스가 마주 섰다.

‘어우, 이 쌈닭.’

싸늘하게 식어 가는 인한의 표정을 보며, 이창훈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클라우스는 힐끗 이창훈에게 시선을 던졌다가 다시 인한을 바라보았다.

“절 아십니까?”

“알다마다. 탑을 오르는 헌터 중에 당신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인한의 말투에 이죽거림이 묻어 있었지만, 클라우스의 표정은 여전히 온화했다.

클라우스 두비취는 얼굴이 가장 많이 알려진 육룡이었다.

몬스터 웨이브 이전에 독일에서 무역 상사를 운영하던 그는 헌터가 되기 전에도 매스컴에 얼굴이 많이 알려졌던 사내였다.

거기다 자신을 숨기는 다른 육룡들과 다르게 그는 많은 매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그것을 잘 이용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얼굴인데, 어느 팀 소속입니까?”

클라우스가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싱긋 웃었다.

하지만 인한은 코웃음을 쳤다.

“가식은 그만 떨지.”

“……?”

“네가 보낸 사냥개들한테 들을 거 다 듣고 왔으니까.”

클라우스가 의아하다는 듯 눈을 커다랗게 떴다가 한순간, 가면을 바꿔 끼우듯 표정을 싹 지었다.

“그래, 네가 자이언트였군.”

클라우스가 눈을 빛냈다.

그 모습에 인한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체 왜 날 노린 거지? 난 딱히 네게 피해를 입힌 적이 없었는데?”

“알 필요 없다. 고작 일개 헌터가 알아도 되는 내용이 아니야.”

클라우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인한은 그 태도에 어깨를 으쓱했다.

“뭐, 말할 마음 없으면 말하고 싶게 만들면 될 일이니까.”

“너는 날 공격하지 못한다.”

“개소리.”

인한이 가볍게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딛었다.

쿵!

그런데 들리는 소리는 거대한 암석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였다.

인한의 의지에 따라 마력이 피어올랐다.

클라우스와 인한과의 거리는 고작 2, 3미터. 인한에게는 코앞이나 마찬가지인 거리였다.

인한이 손을 쓰려는 순간.

“여기서 날 공격하면, 넌 어떻게 될까?”

클라우스의 말이 인한의 귀를 파고들었다.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날 단숨에 죽일 수 있다면 괜찮겠지. 하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너는 저 수많은 공략자들의 공격을 받게 될 거다. 거기다 이래 봬도 명색이 육룡이다. 얕보지 않았으면 좋겠군.”

클라우스의 차가운 시선이 안전지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연합 쪽을 향했다.

인한이 가만히 선 채 미간을 찌푸렸다.

그를 본 클라우스가 속으로 조소했다.

‘숫제 꼬리를 내린 개로군.’

그렇게 살벌한 기세를 뿌리며 언제든지 달려들 것처럼 하더니, 결국 상황을 보며 몸을 사린다.

클라우스는 아주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때, 인한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왜 내가 소란을 일으키지 않고 죽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지?”

“뭐?”

화악!

순간, 클라우스의 코앞에 무지막지한 힘이 날아들었다.

“실드!”

순간의 기지로 방어 마법을 펼친 클라우스지만, 인한은 주먹을 멈추지 않았다.

쩌저적!

송곳처럼 날카롭게 벼려진 인한의 일격이 아무런 저항 없이 실드를 뚫어 버렸다.

“쿨럭!”

클라우스는 폐를 쥐어짜는 듯한 기분에 연신 기침을 토해 냈다.

인한은 차가운 눈으로 클라우스를 내려다봤다.

“내가 다 민망하군. 센 척은 있는 대로 다 해 놓고 땅바닥을 기고 있으니.”

인한의 일격은 풍선 터지는 정도의 소리만 냈을 뿐이었다.

실드는 저항조차 못하고 비닐 뜯기듯 갈라져 버렸다.

그런 상황에, 격투 계열의 스킬을 익혔을 리도 없는 클라우스가 지근거리에서 뻗어진 공격을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육룡의 칭호는 허명이 아니었다.

클라우스는 금방 정신을 차리며 외쳤다.

“마력 증폭, 회복!”

차분한 외침에 클라우스의 몸에 푸른빛이 감도는가 싶더니 그가 곧 벌떡 일어서서 뒤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공간의 뒤틀림.”

우웅-!

클라우스의 모습이 아지랑이처럼 일그러졌다.

인한이 미간을 찌푸리며 주먹을 뻗었지만, 어느새 클라우스는 10미터가 넘는 공간을 도약해 있었다.

인한이 다소 놀란 표정을 지었다.

“공간 마법?”

클라우스의 클래스는 마법사 카테고리 속, 히든 클래스인 ‘공간의 탐구가’라는 것이었다.

클래스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공간과 관련된 수많은 마법을 사용했다.

“호오…… 공간 마법까지 알고 있는 건가?”

“공간 마법을 익혔으면 10층 보스존 공략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인한은 클라우스를 이해가 가질 않는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10층의 보스, 블러드 울프.

놈은 5층짜리 건물 정도의 크기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크기만 하면 공략자들이 고전할 이유도 없지만, 놈에게는 특수한 능력이 있었다.

바로 육체가 피로 되어 있다는 것.

어떤 방식으로 어떻게 공격을 펼쳐도 소용이 없다. 검으로 베여도 핏물이 잘려 나갈 뿐이고, 마법을 포함한 갖은 종류의 공격을 퍼부어도 다시 회복할 뿐이다.

현재 공략자들 사이에서 놈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알려진 것은, 놈이 공격할 때 순간적으로 몸이 단단해지는 타이밍을 노려 공격을 욱여넣는다는 것이다.

물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타격기에 의한 손상은 극히 미비하다.

놈을 상대하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

놈에게 먹히면 된다.

사실 블러드 울프의 육체는 인한의 팔뚝만 한 핵과 그걸 감싸고 있는 혈액으로 이루어져 있다.

먹힌 후, 놈의 내부에서 모종의 약물을 뿌리면 놈의 핵을 제외한 혈액 부분이 흩어진다. 그때 전투를 벌여 핵을 제압하면 승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공간 마법이 있으면 공간째로 도려내면 돼.’

블러드 울프는 한번 놈의 몸에서 떨어진 혈액을 다시 사용하지 못한다. 그러니 공간 마법으로 차근차근 줄여 나가다 보면, 답은 나오는 것이다.

“그 말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 역시 넌 블러드 울프를 쓰러뜨릴 수 있나 보군.”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지?”

“역시 넌 예외라는 판단은 옳았다.”

클라우스는 말을 끝낸 후 천천히 손을 들어 인한에게 뻗었다.

클라우스가 나직이 읊조렸다.

“염사자(炎獅子).”

콰르르릉!

클라우스가 손을 뻗은 위치로 커다란 화염이 타올랐다. 주황빛으로 타오르는 그 화염은, 사자의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가라!”

염사자가 지면을 박차며 인한에게 달려들었다.

과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펼칠 만한 위력의 마법이었다.

몇 미터나 떨어져 있는 인한에게까지 그 열기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 봤자 불이었다.

“하필 화염 마법이야?”

콰아앙!

염사자가 인한을 덮쳤다.

거친 폭음과 함께 인한이 있던 곳을 화염이 휩쓸었다.

하지만 염사자는 인한의 머리카락도 건들지 못했다.

-크르르릉!

인한은 태연한 표정으로 불을 휘감은 채 씨익 웃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황백색으로 타오르는 사자가 있었다.

염사자의 화염을 모조리 먹어 치운 샐러는 우렁찬 포효를 토해 내고는 인한의 옆에 섰다.

“……!”

그 모습을 눈에 담은 클라우스의 포커페이스가 처음으로 깨졌다.

“염사자? 아니, 조금 다르군. 설마 너도 마법사였던 것인가?”

“어떨 거 같아?”

클라우스가 일그러진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클라우스는 강자다. 그리고 강자인 만큼 자신의 한계도 확실하게 알고 있다.

‘역시 씨앗 보유자였는가.’

마법에 비슷한 힘, 그럼에도 강력한 근접 전투까지.

사실 그것은 씨앗과는 하등 상관없는 힘이었지만, 클라우스는 그렇게 판단했다.

‘일대일로는 승산이 없군.’

염사자는 그가 보유한 마법 스킬 중에서도 가장 상위 스킬 중 하나였다. 그런데 그 스킬이 막힌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이 정도로 소란스럽게 전투가 이루어졌다. 곧 안전지대에서 사람들이…….

‘나오지 않는다?’

몇몇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 있는데도 정작 다가오는 자들이 없다.

클라우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게 뭐지?’

클라우스는 그제야 넓은 범위에 투명한 막이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기막(氣膜)이라는 기술이지. 빛이랑 소리를 굴절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런가.”

클라우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한순간, 클라우스가 허공에서 스태프를 꺼내 들며 말했다.

“되도록 이건 나중을 위해 아껴 두고 싶었지만, 네가 이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어쩔 수 없겠지.”

이상한 분위기를 감지한 인한이 본능적으로 땅을 박찼다.

클라우스의 스태프가 지면을 내리치기 전, 인한의 주먹이 먼저 클라우스의 스태프를 향해 휘둘러졌다.

하지만.

쩌엉-!

측면에서 갑작스러운 공격이 들어왔다.

가죽 갑옷 차림의 여성이었다.

그 여성은 안개처럼 허공에서 갑자기 나타나더니 인한의 손에 송곳처럼 얇고 긴 검을 쑤셔 넣었다.

“내가 설마 아무런 준비 없이 거리를 내주었을 것 같나?”

결국, 클라우스의 스태프가 지면을 내리쳤다.

투웅!

푸른빛으로 빛나는 마법진이 지면에 거대하게 퍼져 나갔다.

기하학적인 문양들이 인한을 옭아매고, 거대한 압력이 인한의 전신을 짓눌렀다.

그리고.

쿠웅-!

인한의 눈앞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인한은 다급히 몸을 날렸지만, 투명한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가고 말았다.

“함정이었군.”

인한은 혀를 차며 말하고는 천천히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아 자신의 몸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가로 세로로 5미터 남짓한 그 공간이 인한을 둘러싸고 있었다.

‘설마 이거?’

인한은 이 공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아공간.

마법사들이 창조해 내는 원세계와 단절된 독자적인 공간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아공간을 생성하려면 적어도 마나 스킬 5단계, 3차 클래스 업그레이드는 끝내야 가능하다.

공간 마법을 익혔다 하더라도, 이렇게 빠르게 아공간을 창조해 낼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때, 공간 전체를 울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째서 그 타이밍에 내가 딱 네 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하지? 그게 우연일 것 같은가?

“…….”

-그림자들이 쓰러졌을 때, 난 이미 준비를 해 두고 있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기껏해야 나흘밖에 가지 않는 공간이다. 나오면 그때 다시 처리해 주지.

“어이.”

-……?

인한이 천천히 주먹을 그러쥐며 말했다.

“내가 이따위 아공간 하나 부수지 못할 것 같아?”

-안일하군. 그건 물리력으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힘이 강하다 한들, 공간을 베어 낼 수 있을 것 같은가?

“그건 해 보면 알 일이고.”

인한의 주먹이 아공간을 향해 휘둘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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