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84화 (84/266)

# 84

<공략자들 84화>

[메모리 스톤]

[등급 : A]

[종류 : 소모품]

[효과 : 모든 정보를 저장할 수 있습니다.]

인한이 메모리 스톤에 손을 댄 순간, 저장된 정보가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검은 탑의 정보다!’

수많은 정보가 인한의 머릿속을 잠식했다.

정보는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검은 탑의 정체.

검은 탑은, 아발론의 일부다.

‘그리고…… 이건 왕을 만드는 시험 장소였다.’

왕이 되기 위해 자신을 증명하는 곳.

그것이 탑이었다.

‘이상해.’

하지만 이곳에 적힌 정보와 인한이 짐작했던 바가 달랐다.

아발론에는 이계의 침입이 있었다.

왕들은 내려왔고, 이계의 존재들, 즉 찬탈자들이 왕이 되었다.

찬탈자들은 결코 검은 탑을 통해 왕이 된 게 아니다. 억지로 왕들을 끌어내려 왕이 된 것이다.

‘그렇다면 마왕은?’

코어 스톤에서 마왕이라는 문구를 보았다.

왕들은 알겠는데, 마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니, 애초에 무엇이 사실이며, 무엇이 거짓인가.

인한은 굳은 표정을 한 채, 메모리 스톤을 바라보았다.

* * *

인한은 약속 장소에서 이소영을 기다렸다.

조금 늦는다는 문자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이소영이 문을 열고 다급히 뛰어오는 게 보였다.

‘와.’

인한은 이소영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원래도 굉장한 미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보면서 조금 더 그 생각이 강해졌다.

회귀 후의 만남은 전부 검은 탑에서 봤거나 탑에서 나온 직후 본 것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캐쥬얼한 복장에 옅은 기본 화장만 한 모습만 봤는데, 지금 이소영은 한껏 멋을 낸 모습이었다.

컬이 들어간 채 길게 풀어 낸 갈색 머리카락, 다소 짙은 면이 있지만 이목구비를 강조하는 화장, 은은하게 나는 꽃향기의 향수까지.

평소에는 활력 넘치고 청순한 매력을 뽐내는 이소영이었지만, 오늘은 조금 더 고혹적이고 성숙한 매력이 느껴졌다.

“조금 늦었죠?”

이소영이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기며 말했다.

뒷머리에서 목선을 타고 내려오는 라인이 굉장히 예뻤다.

“오늘 되게 예쁘시네요.”

“네, 네?”

순식간에 이소영의 볼이 화악 빨개졌다.

“그, 그래요? 고마워요…… 흠흠, 사실 미팅이 있어서…… 아! 일적인 미팅이요! 그런 미팅 아니라. 저, 절대 일부러 신경 써서 꾸민 건 아니고요.”

이소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손부채질을 했다.

‘우, 우와…… 갑자기 무슨 소리를…….’

자연스레 넘기려고 했는데 점점 더 더워지는 기분이었다.

이소영이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말을 돌렸다.

“식사는 하셨어요?”

“아니요. 아직.”

인한은 천안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 밥부터 먹죠.”

이소영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에는 곱창집이었다.

좁은 고깃집 안에는 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예쁜 꽃무늬 원피스 입고 있는 엄청난 미녀가 먼저 가자고 끌어당길 것 같은 곳은 아니었다.

여러 가지 의미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인한이 피식 웃으며 물었다.

“곱창도 먹어요?”

“얼마나 맛있는데요?”

이소영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어! 소영이 왔어?”

“사장니이임!”

설마 여기도 단골인 것일까.

후덕한 인상의 남자 사장이 반갑다는 듯 소영을 툭 치며 인사했다.

“자, 자, 저기 조용한 데 앉아. 얼른 내줄게.”

“고마워용-!”

이소영은 싱긋 웃고는 인한을 끌고 구석 자리로 향했다.

인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소영을 바라보았다.

“응? 왜 그렇게 봐요?”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 맞다. 사장님!”

“어! 왜!”

“소주 두 병만요!”

이소영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곱창엔 소주죠!”

이소영이 잔을 쥔 듯한 시늉을 하고는 손을 튕겼다.

그 모습에 인한이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곧 상이 차려지고 주문한 나왔다.

이소영은 소주를 까더니 인한의 잔을 채워 줬다.

그러면서 둘은 한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다.

별로 공통점도 없고, 인한이 말을 잘하는 편이 아니라 재미도 없을 텐데, 이소영은 시종일관 웃으며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인한도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도 모르게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놀라기도 했다.

그 와중에 곱창이 다 구워졌다. 이소영이 먼저 젓가락으로 하나 집어 들었다.

“으음, 맛있다!”

이소영이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인한도 곱창을 입에 넣고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고개를 끄덕였다.

“맛집을 많이 아네요?”

“흐흠! 제가 이래 봬도 먹방도 자주 찍거든요.”

이소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유명 스트리머라 다른가 봐요?”

“흐음, 조회 수만 보면 인한 씨가 훨씬 인기가 많긴 하지만요.”

“그래요?”

“조회 수 확인 안 해 봤어요?”

“가끔 하죠.”

“저는 제일 조회 수 많이 나간 게 오백만이거든요. 근데 인한 씨는 억 단위잖아요. 얼마 전에 외국 유명 헌터 스트리머가 인한 씨 방송 홍보했어요. 그거 때문에 인한 씨 방송 조회 수 폭발적으로 늘어났구요. 쳇! 후배한테 밀렸어!”

인한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쩐지 조회 수가 껑충 뛰어 있길래 무슨 이유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이소영과 인한의 술병은 점점 늘어 갔다.

한 잔 두 잔 마시던 게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다가, 벌써 다섯 병째 술병의 뚜껑을 따고 있었다.

‘흐음.’

이소영은 술잔을 만지작거리다 기분 좋게 웃었다.

요즘 마셨던 술중에 제일 기분 좋게 마시는 것 같았다.

이소영은 인한을 힐끗 바라보고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왜 그러세요?”

“아니에요, 헤헤.”

“……?”

의아해하는 인한을 모른 체 하고, 이소영은 추가로 주문한 된장찌개를 한 숟가락 떠먹었다.

“아, 그리고 인한 씨 하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었어요.”

“네, 뭐죠?”

“혹시 제 정체를 알고 계셨나요?”

인한이 순간 멈칫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 재벌과의 관계라면, 네, 알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사실 뒤늦게 생각해 보니까 제가 오성 공격대 권유를 했을 때 별로 놀랍게 생각하지 않으셔서요.”

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이 시대에는 아직 안 알려졌겠구나.’

인한의 무덤덤한 반응에 이소영이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뭐 물어볼 거 없어요?”

“네?”

“아니 뭐…… 왜 오성 그룹 따님이 헌터를 하고 있냐든가, 왜 스트리밍을 하고 있냐든가…….”

“말하고 싶지 않은 것 아닙니까?”

인한의 말에 이소영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러고는 베시시 웃으며 짐짓 새침하게 물었다.

“됐어요. 그냥 나한테 관심이 없는 거죠?”

인한도 피식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소영은 소주를 한 잔 마시고 인한을 조심히 살폈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럼 알고도 접근한 건가?’

하지만 이소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오히려 접근 좀 해 줬으면 할 정도였다.

이소영이 엷게 웃었다.

인한은 지금껏 만난 사람들과 달랐다. 그는 신비로운 분위기의 사내였다.

오성 그룹의 따님이라는 걸 안 사람들은 보통 그녀에게 과도한 친절을 베풀었다. 아니면 철저하게 배척하거나.

하지만 인한은 변하질 않는다. 오히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무덤덤하다.

‘특이한 사람이야.’

지닌 바 압도적인 무력도, 가지고 있는 사상도 그렇지만, 다른 세상을 살고 다른 것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것을 느낀다.

문득 아득한 거리감을 느꼈다.

이소영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 맞다, 까먹고 있었네요.”

이소영이 허공에 손을 뻗어 뒤적였다.

“자요. 이게 선물.”

이소영이 작은 상자를 건넸다.

인한이 궁금해하며 상자를 받았다.

“뜯어봐도 됩니까?”

“그럼요. 그러라고 준 건데.”

인한은 바로 상자를 개봉했다.

[오성 S시리즈 글러브]

[레벨제한 : 30]

[등급 : C-]

[종류 : 장갑]

[내구도 410/410]

[방어력 : 20]

[힘 : 31]

[민첩 : 23]

[효과]

-권사 카테고리 스킬 사용 시 공격 속도 20퍼센트 증가

-권사 카테고리 스킬 사용 시 피해량 20퍼센트 증가

“이건?”

어두운 남색 빛깔을 띠고 있는 얇은 장갑이었다.

가죽 장갑일 텐데, 겉면에 나이테를 연상시키는 물결 문양이 튀지 않게 그려져 있었다.

“탑을 오를 때 아버지한테 받은 아이템이에요. 비밀인데, 오성 그룹에서 몰래 장인들을 육성하고 있거든요. 그 시제품이에요.”

주식하는 사람들이 눈을 커다랗게 뜰 법한 정보를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이소영이었다.

“저희 팀을 도와주신 답례예요.”

“예? 그건 분명 저번에 옷이랑…….”

“아아! 그런 거는 공짜로도 해 줄 수 있거든요? 제대로 보답하게 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인한이 미소를 지었다.

아직 장비가 필요한 시기는 오지 않았지만, 있으면 좋은 게 장비였다. 더 강해진다고 나쁠 건 없으니까.

거기다 이런 귀중한 선물을 준 이소영에게 고마웠다.

“저야 권사도 아니고, 드롭템도 하나 있어서 굳이 필요가 없거든요. 인한 씨, 그때 보니까 장비도 별로 좋은 거 안 쓰시던데, 이거라도 꼭 쓰세요.”

“정말 감사합니다. 잘 쓸게요.”

“아! 그리고 이거 하나 부탁인데…… 혹시 시간 있을 때 저희 아버지 한 번만 만나줄 수 있나요?”

“예? 아버지를요”

“네, 보고 싶다고 하셔서요.”

“그러죠, 뭐.”

오성 그룹의 회장이라.

이번 생에서 인한의 위치가 참 많이 변했다.

“자, 그럼 그런 의미에서 짠?”

이소영이 마주 웃으며 잔을 슬쩍 들었다.

인한도 피식 웃으며 잔을 들었다.

* * *

“형님! 간만입니다! 하하하!”

인한은 이창훈을 바라보다 한숨을 푹 쉬었다.

그 많이 번 돈을 전부 장비에 투자한 모양이었다.

속된 말로 ‘삐까번쩍’한 장비들이 그의 몸에 잔뜩 둘러져 있었다.

이창훈은 기분 좋게 다가오다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어? 형님, 머리 하셨습니까?”

“응? 아, 그래.”

“올…… 간지 나네요. 무슨 머립니까?”

“……너도 근육질에 너보고 오빠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두 시간 동안 붙잡혀 있으면 이런 머리를 가질 수 있다.”

“예……? 뭡니까, 그게?”

인한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다시 주눅 든 이창훈이 슬쩍 질문했다.

“아, 그런데 형님, 이제 저희 뭐 합니까? 역시 본격적인 공략 시작?”

그렇게 말하며 이창훈이 눈을 빛냈다.

“그래, 지금부터 10층까지 달릴 생각이야.”

“1, 10층까지 말입니까? 달린다면…… 계속요?”

“그래. 족히 한 달은 탑에서 생활할 생각이다.”

“저, 저는 집에 생활비 줘야 하는데…….”

이창훈이 탑을 오르는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다.

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가 이씨 집안의 가장이다.

웨이브 때 피난하면서 머리를 크게 다친 아버지에게 많은 병원비가 들어간다.

어머니는 현장을 돌아다니며 일당을 받지만 당연히 얼마 되지 않는다.

남동생이란 놈은 건방지게 매일 개기지만, 그래도 학원 보내면서 대학교까진 다니게 해 주고 싶다. 자신과 다르게 공부는 잘하니까 뭘 해도 될 놈이기 때문이다.

인한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가족들이랑 같이 쓰는 통장 없어?”

“네? 그거야 있죠. 제 명의로 된 카드가 어머니 손에 있습니다.”

지금 통장 안에 2백만 원 정도 있지만, 이창훈을 제외하더라도 3인 가족이 한 달을 쓰기에는 부족하다.

아버지 병원비만도 장난이 아니다.

“번호 찍어 줘.”

이창훈이 의아해하며 인한에게 계좌 번호를 보냈다.

인한은 그 즉시 1억 원을 송금했다.

이체 한도는 없었다. 이미 VIP 회원을 찍은 인한이었으니까.

“응?”

때마침 울리는 스마트폰의 알람에 이창훈이 눈을 껌뻑이며 문자를 확인했다.

“이, 이게 무슨……! 일, 십, 백, 천…… 헉! 천만 원!?”

“넌 숫자도 못 세냐?”

“예?”

이창훈이 다시 돈을 바라보았다.

“억!”

이창훈이 숨을 멈췄다.

“가족한테 연락이나 해.”

미안한데, 이제 인한에게 1억은 별로 큰돈이 아니다. 이미 바퀴들이나 킬러들 창고 털면서 엄청난 양의 자금을 손에 얻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결국 처리를 못했네.’

몬스터피스에 올린 아이템이야 두 달을 기한으로 잡아 뒀으니까 상관없지만, 바퀴들에게 장물을 처리하지 못했더니 인벤토리 칸이 조금 부족할 것 같았다.

‘잠깐 5층에 들려야겠군.’

아무래도 인벤토리 칸을 늘려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이창훈의 인벤토리도 늘려야 하긴 했으니, 같이 올라가면 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런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창훈은 숫제 절이라도 할 것처럼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인한에게 고개를 연신 숙여 댔다.

“혀, 형님! 충성을 받치겠습니다!”

한창 오버하는 이창훈을 진정시키고, 인한은 비로소 탑에 들어섰다.

도시의 텁텁한 공기가 사라짐을 느낀 순간, 1층 마을의 상쾌한 공기가 인한을 휘감았다.

그런데 분위기가 요상했다.

“어째…… 굉장히 혼란스럽네요?”

전쟁이라도 난 것처럼 난리법석이었다.

여기저기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오고, 헌터들이 다급히 밖으로 뛰쳐나가고 있었다.

인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였다.

천문이 떠올랐다.

[3차 몬스터 웨이브가 시작됩니다.]

[몬스터 웨이브 카운트다운 : 4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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