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공략자들 82화>
“쓰레기들.”
인한은 서류들을 살피며 눈가를 찌푸렸다.
뜯어낼 대로 뜯어낸 후, 인한은 금고에 있었던 서류를 살펴보았다.
장부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나온 건 더 충격적인 것이었다.
[104번 실험 결과]
-드레미르의 풀
[326번 실험 결과]
-클레리타인
“또 이 짓이군.”
인체 실험이었다.
검은 탑의 아이템들은 보통 효과가 명시되어 있다.
다만, 직관적이게 표현되어 있는 반면에 상세한 설명은 없다.
예를 들어, 인한이 시시때때로 씹고 다니는 독초가 있다.
마비 독, 신경 독 등등 명칭이야 그렇게 부르지만, 마비 독에도 현상이 제각각이고, 신경 독도 해당하는 신경이 제각각이다.
즉, 그런 상세한 효과를 알기 위해 인체 실험을 자행하는 것이다.
‘그 덕분에 검은 탑 관련 지식이 발전한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건 마루타나 마찬가지다.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아직도 이런 짓을 하고 있다니.
인한은 혀를 찼다.
‘어쩌면…… 검은 탑의 몬스터나, 우리 인간이나 별로 다를 게 없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우리야말로 괴물과 다를 바 없어.’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일.
하지만 인간이기에 할 수 있는 일.
인한이 혀를 찼다.
“실험실 어디야.”
“……?”
“한 번에 알아들으라고 했을 텐데?”
“히, 히익!”
우드득-!
비로소 황보영춘의 한쪽 손가락이 전부 부러졌다.
“난 사람을 잘 죽이지 않는 편이야.”
“흐으, 흐으으…….”
황보영춘이 신음 소리를 흘렸다.
“왜냐면, 병신이 된 사람의 삶이 죽음보다 더 좆같기 때문이거든.”
그건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이었다.
인한의 말에 사내가 화들짝 놀라며 부러진 손가락으로 힘겹게 주소를 적어 내려갔다.
인한은 주소를 보고 혀를 찼다.
“나이도 있는 사람이 글씨는 괴발개발이네. 요즘 초딩들도 이렇게 안 쓰겠다.”
인한이 다시 손을 내밀었다.
사내가 눈에 띄게 두려워하며 눈가가 부르르 떨렸다.
“이따구로 쓰면 내가 알아보겠어? 제대로 써야지.”
“히야아악!”
우드득-!
괴기한 비명과 함께 또 하나의 손가락이 부러졌다.
그 후.
인한은 꼼꼼히 자신의 흔적이 남았을 법한 것들을 없앴다.
마지막으로 CCTV 파일을 모조리 삭제한 인한이 힐끗 땅바닥 쪽을 노려보았다.
“으, 으으……!”
그곳에는 황보영춘이 간헐적으로 몸을 꿈틀대며 기절해 있었다.
인한은 놈의 손가락을 모조리 부러뜨려 버렸다.
혹시라도 치료되지 못하게 가루를 내 버린 다음, 인한은 사무실에 있는 전화기를 들었다.
[112]
“워, 우엇으 아여 오…….”
마침 정신을 차린 건지 황보영춘이 눈을 떴다.
핏기 가득한 입가로 중얼대는 모습은 사뭇 기괴하기까지 했다.
“뭘 하려 하냐니. 당연히 신고지. 선량한 시민은 못 되겠지만, 이 정도는 해 줘야 하지 않겠어?”
“아, 아애! 으어!”
“아무리 나라도 그건 뭐라는 건지 못 알아듣겠군.”
안 그래도 건물에 일어난 진동 때문에 경찰들이 들이닥칠 터였다. 거기다 신고까지 해 주면 조금 더 빨리 올 거라는 생각이었다.
인한은 금고를 활짝 열어 둔 채 사내에게 다가갔다.
“오, 오이마! 오이마!”
황보영춘이 덜덜 떨며 뒤쪽으로 기어갔다.
인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오이를 왜 여기서 찾아?”
“아, 아애……!”
퍼억! 빠각!
인한이 황보영춘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이제 그는 평생 다리를 절고 살게 되었다.
애애애앵-!
얼마 뒤에 사이렌 소리가 인한의 귀에 들려왔다.
적어도 수백 미터는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감각이 강화된 것이 이런 면에서 좋았다.
인한은 경찰들이 안까지 들이닥치는 걸 느낀 후, 자리를 벗어났다.
* * *
실험실의 장소도 경찰들이 알게끔, 다른 서류들 사이에 장소를 알려 주는 서류를 하나 끼워 넣어 두었다.
하지만 인한은 경찰들이 움직이기 전에 먼저 그곳으로 직접 향했다.
실험실의 위치는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한 창고였다.
밖에서 보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류 창고로밖에 여기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다만, 경비로 보이는 놈들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는 것 빼고는 말이다.
별로 숨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인한은 정면에서 터벅터벅 걸어갔다.
“이리로 오지 마십쇼. 여기 사유지……! 크헉!”
터엉! 우득!
인한은 사정없이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안면이 걸레 조각처럼 일그러진 사내가 그대로 쓰러졌다.
인한은 바로 창고의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그대로 주먹을 뻗었다.
콰아아앙!
철판으로 되어 있는 창고의 외벽이 종잇장처럼 순식간에 우그러지며 입구가 뻥 뚫려 버렸다.
“뭐야!”
“무슨 소리야!”
소란을 느낀 자들이 서둘러 뛰어왔다.
그들의 손에는 총이나 칼, 몽둥이가 제각각 들려 있었다.
평범한 물류 창고면 저런 자들이 있을 리가 없다.
인한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주먹을 쥐었다.
‘전부 헌터들인가.’
인한은 그들이 일반인을 넘어선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감지해 냈다.
물론 그래 봤자, 한주먹 거리도 안 됐다.
콰앙! 콰앙!
일격에 한 명.
파죽지세란 인한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족히 수십 명이 달려들었는데도 인한이 벌레를 쫓듯 팔을 털 때마다 건장한 헌터들이 허공을 훨훨 날아다녔다.
결국 사내들은 인한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거리를 벌린 채 대치했다.
“안 오게? 그럼 내가 가지.”
대략 서른 명 남짓 있었던 헌터들이 처리되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인한은 바로 실험실 안으로 들어섰다.
실험실 내부에는 마치 진짜 창고처럼 수많은 아이템들이 사방에 놓여 있었다.
그 중에는 원재료가 되는 아이템들도 상당했다. 일단 탑에 있는 것들은 모조리 쓸어 담은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대부분이, 인간이나 몬스터에게 해로운 효과를 지닌 것들이었다.
인한은 창고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인한이 예상하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피 냄새.’
넓은 공간에 펼쳐진 철창들.
안에서는 신음 소리와 숨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철창의 앞에는 흉물스러운 기구들과 두꺼워 보이는 가죽 벨트가 치덕치덕 달려 있는 침대가 있었다.
“너, 넌 뭐, 뭐야!”
덥수룩한 수염에 살이 뒤룩뒤룩 찐 사내가 덜덜 떨며 인한에게 권총을 겨눴다.
하지만 인한은 그 사내의 밑에 있는 자그마한 소녀에게 눈이 갔다.
“…….”
소녀는 나체인 상태에서 초점이 없는 눈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전신에 멍이 가득했고, 잘 못 먹은 것인지 홀쭉한 얼굴엔 버짐이 가득 펴 있었다.
인한의 표정이 전에 없을 정도로 굳었다.
“이런 상황에서까지 그러고 싶나?”
목소리에 분노가 뚝뚝 떨어졌다.
힐끗 바라본 철창에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이 처참한 상태로 누워 있었다.
으득!
분노와 함께, 짙은 회의감을 느낀다.
이런 세상을 구하기 위해 탑을 올랐단 말인가.
‘아니.’
세상은 원래 이랬다.
납치해서 장기를 빼 가고, 사람을 통나무처럼 만들어 버리는 일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오, 오지 마! 오지 말라고!”
타앙!
총알이 인한의 어깨를 맞고 우그러졌다.
인한은 어깨를 툭툭 털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
“뭣! 무슨!”
탕! 타앙!
총알이 인한의 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타격도 주지 못하고 모조리 땅바닥에 맥없이 떨어질 뿐이었다.
틱! 틱!
총알을 몇 발이나 쐈는데 남아날 리가 없다.
인한은 몸을 낮추고 소녀와 시선을 맞췄다.
소녀가 인한을 올려다보았다.
“괜찮니?”
소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 막고 다른 데 가 있어. 금방 끝날 테니까.”
소녀가 귀를 막더니 어딘가로 도망가 숨었다.
인한은 자리에서 일어나 살찐 사내의 앞에 섰다.
“사, 살려 주세요. 제, 제발 살려 주세요. 저는 위에서 하라는 대로 한 거예요. 먹이라 그래서 먹이고, 마시게 하라 그래서 마시게 하고…….”
“그래서 저 어린애를 강간해?”
“그, 그건……!”
“그리고 걱정 마. 안 죽여.”
인한이 사내의 미간에 손을 얹었다.
“적어도 나는.”
우웅-!
그리고 마력을 사내에게 주입했다.
“끄르르르륵! 크륵!”
우득! 뿌드드득!
사내의 눈동자가 뒤집어지며 몸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감각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이제 놈은 팔을 움직이던 감각으로 다리를 움직여야 하고, 다리를 움직이던 감각으로 목을 돌려야 하게 될 것이다.
끼기기기긱!
인한은 철창을 모조리 우그러뜨려, 열어 버렸다.
지친 표정의 사람들이 인한을 올려다보았다.
인한은 그들의 사이로 이 살찐 사내를 던져 놓았다.
“마음대로 하십쇼.”
사람들의 눈이 사내에게로 향했다.
사내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인한은 바로 땅을 박찼다.
이놈은 몸이 무거워 도망치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 외에 도망간 자들이 기감에 잡혔다.
인한은 한 놈도 놓칠 생각 없었다.
인한은 모조리 추격의 저주를 걸어, 한 명도 빠짐없이 잡아다 데려왔다.
“더러운 새끼들.”
“더러운 새끼? 큭, 크하핫!”
그때, 인한에게 잡혀 왔던 중년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곳의 우두머리라는 사내였다.
“미쳤나?”
“어이, 뭐 하나만 물어보지.”
인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 네 가족이나 친구가 있었나?”
“아니.”
“그럼 왜 우리를 방해하는 거지?”
“그걸 말이라고 묻는 건가?”
“같잖은 정의감인가? 하하! 웃기는군.”
중년인의 말에 인한이 한 발자국 다가갔다.
중년인은 체념한 듯 부러진 팔을 축 늘어뜨리더니 말했다.
“네놈, 헌터지? 그렇다면 잘 생각해 보라고. 장기 매매랑 똑같은 일이야. 한 명이 통나무가 되면 죽어 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장기를 이어받고 살 수 있지. 결국 우리가 실험해서 만들어 낸 아이템이나 약들도 네놈들 헌터나 이 세상 사람들을 구한다 이 말이지. 그런데 뭐? 더러운 새끼들? 크하핫!”
인한이 피식 웃으며 중년인에게 다가갔다.
쪼그려 앉아 중년인과 눈을 마주친 인한이 중년인을 보며 말했다.
“개새끼가 사람 말 배웠다고 사람 되는 건 아닌데 말이야.”
“……?”
“제 주제를 모르는 개새끼는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인한이 주먹을 뻗었다.
* * *
-아, 예! 그럼 그렇게 알겠습니다, 형님!
인한은 이창훈에게 연락해 내일 점심에 만나기로 했다.
그리고 탑 밖에서 할 마지막 일로, 금고를 열기로 했다.
‘열렸으면 좋겠는데.’
이 금고도 역시 아이템이었다.
정해진 방법으로 여는 게 아니면 내부를 소각시켜 버리는 부가적인 효과가 있어, 무턱대고 열 수가 없었다.
거기다 다이얼 방식이 현대식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동그란 다이얼에 아라비아 숫자가 나열되어 있는 게 아니라, 사각형, 오각형, 육각형의 면들이 겹쳐져 있었다.
‘솔직히 마음엔 안 들지만.’
인한도 바퀴가 추천해 준 곳을 가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입단속의 측면도 있고, 찾아간 금고 기술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기 때문도 있었기에 결국 바퀴가 추천한 곳으로 향했다.
금고상의 위치는 천안이었기 때문에 인한은 영등포에서 기차에 올라탔다.
그때, 인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이소영?’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인한 씨. 잘 지냈어요?
“소영 씨?”
-그래요. 그런데…….
이소영이 살짝 삐진 듯한 말투로 말했다.
-어떻게 연락 한 번을 안 할 수가 있어요?
“네?”
-꽤 용기 내서 연락처 준 건데 문자도 한 통 안 보내 주는 건 너무한 거 아니에요? 거기다 저, 되게 늦게 집에 들어갔는데 잘 들어갔냐는 문자 한 통 해 줘도 되잖아요. 요즘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데.
타박하듯이 말하지만 목소리에서 장난스러움이 느껴졌다.
‘세상이 얼마나 위험하냐니…….’
인한은 허허 웃었다.
웬만한 일반인 남성 수십 명은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여자가 할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걸 직접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처리해야 할 일이 조금 있었거든요.”
-아! 그러시구나. 그럼 제가 다음에 연락드릴까요?
“지금은 괜찮습니다. 무슨 일이에요?”
-그냥 해 봤어요. 바빠요?
당당한 말투에 오히려 인한이 당황했다.
“바쁘진 않습니다.”
-그럼 잠깐 볼 수 있어요? 선물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