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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80화 (80/266)

# 80

<공략자들 80화>

‘새끼, 진짜 오랜만이네.’

이주호는 역 앞에서 피식 웃었다.

최인한. 그의 고등학교 시절 단짝.

죽은 줄로만 알았다.

검은 탑의 등장 이후, 연락이 안 되는 상태라는 건 즉, 죽음을 의미했으니까.

그런데 살아 있단다.

기쁨에 절로 미소가 흘러나왔다.

툭툭!

그때, 이주호의 어깨를 누군가가 건드렸다.

“야.”

“응? 누구……?”

캐주얼한 슈트에 슬림한 슬랙스, 안쪽에는 와이셔츠 대신 와인색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었다.

키가 워낙 크고 비율이 좋아서 슈트 차림이 너무 잘 어울렸다.

얼굴은 조금 평범한데 멋들어지게 가르마를 타고 펌이 들어간 머리카락 덕에 댄디해 보이기도 했다.

‘뭐지?’

이주호는 눈을 껌뻑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눈에 이런 멋 부리고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야, 내가 알아봤는데 니가 못 알아보면 어떡해.”

“어? 어엇! 너 설마!”

“오랜만이다.”

인한이 씨익 웃으며 이주호에게 손을 내밀었다.

술자리는 떠들썩했다.

인한의 고등학교는 남녀 공학이었던 덕에 남녀가 서로 부대끼며 떠들고 먹고 마셨다.

거기다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인한의 귀환도 있었다.

“아, 진짜 미쳤다, 미쳤어. 야, 얘 이렇게 변한 거 실화냐?”

“그러니까. 최인한 이 새끼, 왜 이렇게 잘생겨졌어?”

이주호는 배신당했다는 듯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와…… 인한아, 너 뭐 운동해?”

옆에 앉아 있던, 사실 이름도 까마득한 여자 동기가 인한의 팔뚝을 툭 건드리며 물었다.

“그냥저냥, 뭐.”

운동이라고 표현하기에는 좀 살벌하긴 했다.

이주호가 소주잔을 탁 내려놓더니 말했다.

“와, 근데 이거 몇 년 만이냐? 검은 탑 생기고 한 번도 연락이 안 됐으니까…… 사실상 10년이 넘었잖아? 하아, 진짜 그땐 우리 다 죽는 줄 알았는데…….”

“에이씨, 이주호! 뭐 그런 말을 하냐! 우울해지게!”

“크흠, 미안, 미안.”

이주호가 여자 동기의 말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래서? 넌 요즘 뭐 하고 지내냐?”

“탑 올라. 헌터야.”

“……어!?”

순간 분위기가 변했다.

인한은 눈을 껌뻑였다.

“허, 헌터? 몇 층까지 올랐어?”

“7…… 아니, 4층이야.”

인한의 말에 뒷 테이블과 옆 테이블에 있던 동기들도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야! 인한이 탑 오른다는데? 벌써 4층이래!”

“뭐어? 진짜?”

동기들이 우르르 모여들었다.

“진짜야? 너 헌터하고 있어?”

“벌써 4층이라니…… 대단하다!”

“팀원들은? 몇 명이야?”

쏟아지는 질문에 인한이 허탈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면, 일반인들에게 탑은 그야말로 재앙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야생, 거기다 그곳에 있는 건 짐승이 아닌 몬스터다.

‘사실은 7층에 있는 데다 솔로로 올라가고 있다고 말하면…….’

1층도 가 보지 못한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믿을 수도 없을 테다.

“야, 야! 뭘 그렇게 마냐! 비켜봐, 인마!”

“형이 또 소맥 하나는 기가 맥히게 만다. 줘 봐, 인마.”

“술이 들어간다! 쭉! 쭉, 쭉쭉!”

밤이 깊어졌지만 분위기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술 게임을 하거나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자리가 있으면, 조용한 곳도 있었다.

“와…… 탑이 그렇게 위험한 곳이구나.”

인한이 있는 테이블의 이야기는 당연히 검은 탑에 대해서였다.

“근데…… 인한아, 너는 왜 취하지도 않아?”

여자 동기가 물었다.

인한은 어색하게 웃었다.

[중독 면역이 활성화됩니다.]

알코올도 일종의 독으로 인식하는 건지, 중독 면역이 활성화된 인한의 몸은 술기운이 올라오지 않았다.

“내가 원래 말술이거든.”

인한은 씨익 웃었다.

안주는 그리 특별한 게 없었지만, 술자리는 즐거웠다.

안주의 맛보다는 주고받는 이야기가 더 즐거웠다.

인한도 어느새 연신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술보다는, 분위기에 취하고 있었다.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

“어어, 그래!”

인한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화장실로 향하다, 문득 고개를 돌려보았다.

술 못 마신다고 손을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 안주만 먹다가 타박받는 사람, 술 게임에서 져서 울상이 된 사람…….

탑에서는 볼 수 없는, 즐겁고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그래.’

탑을 오르는 의미가 이곳에 있다.

이방인 같이 느꼈던 공허함이 서서히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해태 길드를 만들었을 때, 동료들과 함께 꿨던 꿈이 이것이었다.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일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해태 길드의 목표였고, 인한의 꿈이었다.

“그래도 인한이 돈은 잘 벌겠다.”

“뭐, 부족하지 않을 만큼은 벌어.”

2차로 옮긴 뒤에도 술자리는 계속됐다. 그 자리의 주인공은 단연 인한이었다.

“그럼 인한아, 너는 팀에서 포지션이 어디야?”

“포지션? 음…….”

인한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

솔로로 오른다는 건 거짓말처럼 여길까 봐 대충 팀에 소속되어 있다고 말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탱커라고 보면 돼. 앞에서 공격 분산시켜 주는 역할이지. 그리고 적당히 오더도 내리고 있고.”

“오더? 그럼 네가 리더야?”

“뭐…… 그런 셈이지?”

거짓말도 하면 할수록 늘어나는 기분이다.

그것보다 리더라니…… 저도 몰랐는데, 친구들한테 어깨에 힘 좀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까 현수도 헌터야.”

“현수?”

인한이 고개를 갸웃했다.

“현수, 이현수 말이야. 와, 너 진짜 다 까먹었냐?”

잠깐 화장실을 다녀왔던 이주호가 인한의 옆에 털썩 앉으며 말했다.

“왜, 고등학교 때 맨날 애들 괴롭히고 다녔던 새끼 있잖아.”

이주호가 턱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인한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창회에서 가장 떠들썩한 테이블이었다.

그곳에 덩치가 있는 동기 하나가 얼굴이 벌게져선 짙은 화장을 한 여자 동기를 건들고 있었다.

여자 동기는 싫은 듯 손을 밀어내면서도 자리를 피하진 않고 있었다.

인한의 눈살이 절로 찌푸려졌다.

“쟤도 원래 놀던 애야. 현수는 벌써 5층 보스존까지 갔다니까 돈도 엄청 벌 테고, 그러니까 붙어 있는 거지.”

“맞아! 저 여우 같은 년. 나는 돈을 아무리 벌어도 저런 놈은 싫다!”

“현수 쟤는 동창회 때마다 애들을 건드려. 하아, 오늘은 좀 그냥 넘어갔으면 좋겠다.”

역시 술자리에 뒷담화가 빠지면 섭하다.

인한은 이현수 쪽 테이블을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그때, 이현수의 눈이 인한과 마주쳤다.

인한은 굳이 눈을 돌리지 않았는데, 이현수가 미간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벌떡 일어났다.

“야, 뭘 꼬나보냐?”

이현수가 비틀대며 걸어와, 인한의 테이블에 털썩 앉았다.

“잔이나 한잔 따라 봐. 우리 대단하신 헌터님 술잔 한번 받아 봐야지!”

인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야, 야! 현수야! 너 취했어!”

“꺼져, 새끼야. 고작 4층 언저리에서 뭉그적대는 놈이 목에 힘이나 들어가 있고 말이야. 뭐? 벌만큼 벌어? 새끼야, 탑은 5층부터 시작이야!”

이현수가 인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킬킬댔다.

분위기가 천천히 식었다.

떠들썩하던 곳곳의 테이블도 은근한 분위기로 인한과 이현수를 응시했다.

인한은 무심한 표정으로 술병을 쥐었다.

“그럼 한잔 받아.”

“오? 따라 주게?”

또르르!

인한은 소주병을 기울였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얌전히 술이나 마시고 꺼져.”

“뭐?”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을 느낀 이주호가 다급히 일어나 이현수에게 다가왔다.

“워워, 현수야, 인한아. 너네 진짜 많이 취한 것 같다. 어차피 애들도 슬슬 일어날 거 같은데 2차 가자.”

“아니, 자꾸 꼽사리야, 이 새끼는!”

퍼억-!

이현수가 팔을 휘둘렀다.

“윽!”

이주호가 팔에 얻어맞아 땅에 주저앉았다.

그리 강하게 친 건 아니었지만, 술에 취한 탓인지 바로 균형을 잃었다.

그 모습에, 인한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야! 너 뭐랬냐? 꺼져? 이 새끼가 고등학교 때는 눈도 못 마주치던 자식이…….”

이현수가 벌떡 일어나 인한을 내려다봤다.

상당한 덩치에 눈빛도 형형한 이현수의 모습은, 일반인이라면 충분히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제야 동기들이 인한과 이현수를 중재하기 시작했다.

“야, 야, 좋은 자리까지 와서 이게 뭐 하는 짓이냐. 둘 다 취했다. 그만 하자, 그만.”

“놔 봐. 놔 보라고!”

남자 동기들이 이현수를 힘겹게 끌고 원래 테이블로 되돌려 놓았다.

인한은 이현수에게 등을 돌렸다.

주호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욕봤다.”

“신경 안 써. 너야말로 좀 괜찮냐?”

“그냥 엉덩이만 찧은 거야. 안 다쳤어. 에이, 분위기 이상해졌네! 한잔 받아라.”

등 너머로 이현수의 시선이 느껴졌다.

인한은 무시하고 술잔을 들이켰다.

결국 3차를 가기 전에 취한 여자 동기들 몇 명이 갈라지고, 4차에선 대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동창회는 파장되는 분위기였다.

이주호는 인한을 배웅했다.

“야, 그, 연락도 하고 그래라, 인마.”

“그래, 연락해 줘서 고맙다. 반가웠어.”

인한이 이주호를 툭 건드렸다.

이주호는 슬쩍 인한에게 다가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야, 그, 설마 따라오기까지 할까 싶은데…… 조심해라.”

“뭐?”

“너는 등지고 있으니까 못 봤겠지만 현수 그 새끼가 너 계속 노려봤어.”

알고 있다.

굳이 신경 쓸 가치가 없어서 무시했었고.

“조심해라. 알았지?”

막차가 끊긴 탓에 이주호는 택시를 타며 말했다.

인한은 이주호를 배웅하고 몸을 돌려 골목길로 들어갔다.

새벽녘의 골목길은 인적이 드물었다.

안 그래도 이 주변은 인가가 드물어서 더욱 어두컴컴했다.

인한은 더 깊숙한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때였다.

부웅!

고요한 새벽 공기가 갈라졌다.

인한은 보지도 않고 고개를 획 피했다.

“큭! 새끼가!”

이현수였다.

제힘을 가누지 못하고 앞으로 꼬꾸라진 이현수가 표정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운은 좋네. 시발 새끼.”

“…….”

인한은 차가운 눈으로 이현수를 바라보았다.

이현수가 관절을 꺾으며 인한에게 천천히 걸어왔다.

“4층이면 아직 클래스도 못 얻었을 새끼가. 너, 존나 개기더라? 근데 어떻게 하냐. 너 오늘 나한테 죽을 텐데. 여기 사람 잘 안 오는 건 아냐?”

이현수가 이죽댔다.

클래스를 얻기 이전과 후는 큰 차이를 보이는데, 그걸 믿고 그러는 것 같았다.

“너, 뭐 하나 오해하고 있는 거 같은데.”

“……?”

“여기까지 널 데려온 건 나야, 병신아.”

“뭐? 이 개새끼가!”

거센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미친 듯이 주먹을 휘두르는 이현수였지만, 인한은 몸만 조금씩 트는 것으로 그걸 모조리 피해 버렸다.

그리고 한순간.

퍼억!

인한의 주먹이 이현수의 턱을 가볍게 건드렸다.

이현수가 순간 발이 풀리며 털썩 주저앉았다.

“시, 시발……?”

“적당히 설쳐. 기분 좋은 날 너 같은 버러지한테 엮이고 싶지 않으니까.”

인한은 코웃음을 흘리고 몸을 돌렸다.

멍하니 인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현수가 부들부들 떨었다.

“이, 이, 이 좆같은 새끼가아아아!”

이현수가 비틀거리며 벌떡 일어섰다.

그가 인한에게 달려들며 허공에 손을 뻗는 순간, 그의 인벤토리에서 기다란 대검이 뽑혔다.

콰앙!

대검이 벽면을 후려치고, 시멘트 담벼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인한이 아닌 사람이 맨몸으로 맞았으면 뼈가 부러지는 걸로 끝나지 않았을 공격이었다.

이현수가 비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방심해서…… 그래, 방심해서 한 대 맞은 거야, 시발놈아. 어딜 가, 아직 안 끝났어. 제대로 시작하자고…….”

“미친 새끼가…….”

인한도 참을 만큼 참았다.

인한은 천천히 이현수에게 다가갔다.

이현수는 낮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크큭! 그래, 한 수 재간 있는 건 알겠어. 그래 봤자 도망치는 것 하나지? 그래, 근데 말이야…… 탱커라는 새끼가 그래도 되냐?”

“……?”

“새끼가 존나 촐싹거리면서 도망이나 다니고 말이야. 설마 너 던전 오를 때도 그러냐? 말이 탱커지 존나 내빼는 거 아니야? 킥킥! 리더란 새끼가 도망만 치고, 존나 너 같은 놈이 리더라니, 너희 팀은 오래 못 가겠다.”

순간.

인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애꿎은 너희 팀원들은 참 불쌍하네! 얼마 안 가서 다 뒤질 테니까! 크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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