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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79화 (79/266)

# 79

<공략자들 79화>

“마음 같아선 저희 팀원으로 받아들이고 싶지만…… 오성 공격대 쪽이 훨씬 좋을 거예요.”

“죄송합니다만, 거절할 수밖에 없군요. 어디에 소속될 생각이 없습니다.”

“……물론 인한 씨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겠네요. 사실 거절하실 것 같았어요.”

이소영은 살짝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정말 강하시더군요. 데스 시커 정도의 강한 몬스터에게 상처 하나 입지 않으신 건…… 역시 스킬인가요?”

“예, 그렇습니다.”

딱히 숨길 이야기도 아니었다. 애초에 당연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인한은 솔직하게 답했다.

“엄청나게 대단한 스킬인가 봐요. 휴우, 정말 검은 탑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네요. 그 괴물의 공격을 맨몸으로 막아설 수 있게 만드는 스킬이라니. 저는 아직 한참 약한데…….”

이소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금방 강해질 겁니다.”

“……네?”

“충분히 자질이 있어요. 너무 조급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미래의 이소영은 강했다. 최상층 구간에서는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70층까지는 공략자로서 활동했었다.

“흠흠, 가, 감사하네요.”

이소영은 얼굴을 붉히며 커다란 깍두기를 한입에 넣고 아작아작 씹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인한을 보며 물었다.

“아, 맞다. 저기, 그런데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뭐 하나 여쭤 봐도 될까요?”

“뭐죠?”

“흠흠, 이게 사실 물어보기 좀 그렇긴 한데…… 저, 혹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 채널 운영하시나요?”

인한은 잠시 망설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보셨군요. 네, ‘해태’는 제가 운영하는 채널입니다.”

“아! 그, 그럼!”

이소영이 눈을 반짝였다.

“거기 나온 것들, 다 사실이에요?”

“네, 제가 직접 경험한 것들이니까요.”

“그렇군요!”

이소영이 손뼉을 쳤다.

“그, 혹시 실례가 안 되면 그 마력이란 걸 볼 수 있을까요? 사실 그게 제일 의문이었거든요. 저도 초기에는 마력 스테이터스를 찍었는데, 어느 시점부터 오히려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몇 포인트나 찍으셨죠?”

“음, 잠시만요……. 24포인트네요.”

인한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몸 상태가 안 좋아지는 기분은 마력 스테이터스에 의해 막혀 있던 마력로가 조금씩 열리며 생기는 현상이다.

사람에 따라 반응이 다르지만, 복통이나 발열을 동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적어도 100포인트, 재능이 있어도 50포인트는 찍어야 일어나는 현상이다.

‘상당히 감이 좋은 건가?’

24포인트에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마력과의 친화력이 꽤 좋은 편일지도 모른다.

“그건 몸이 마력을 받아들이며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오히려 그 현상을 넘기고 나면 육체의 능력이 상승하죠.”

인한은 손바닥을 내밀었다. 새하얀 마력이 올올이 풀려 나와 인한의 손바닥에서 새하얀 구를 만들었다.

“우와…….”

아름다운 그 광경에 이소영이 넋을 잃고 바라봤다.

“마력은 많은 걸 할 수 있죠. 사실, 검은 탑에서 제일 가능성이 많은 능력입니다.”

인한이 자신의 그릇에 응집된 마력을 가져다 댔다.

부르르!

뚝배기가 살짝 진동하는가 싶더니, 국물이 금세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인한이 손을 뗐다.

이소영은 살짝 놀라면서도 걱정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지금부터라도 늦지 않을까요?”

“물론이죠.”

인한은 그렇게 말하고 한 숟가락을 먹었다.

이소영은 음식이 식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런데 인한 씨는 이런 걸 왜 알려 주시는 거죠? 엄청난 정보잖아요. 마력뿐만 아니라 다른 것들도 그렇구요.”

인한은 이소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했다.

“소영 씨는 검은 탑을 뭐라고 생각합니까?”

“검은 탑이요? 음…… 솔직히 아무런 별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그냥 받아들였죠.”

“검은 탑은 재앙입니다.”

인한이 단호하게 말했다.

“돈벌이 수단이나, 아이들의 놀이터가 아니죠. 끝내야 하는 재앙이나 재해와 같은 겁니다. 그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끝난다면 전 뭐라도 할 겁니다.”

“그, 그렇군요.”

인한에게서 묘한 기백을 느낀 이소영은 순간 말을 잃었다.

그 뒤로도 간단하게 대화를 나눈 이소영과 인한은 식사를 끝내고 밖으로 나왔다.

이소영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럼 이걸로 퉁치는 거예요?”

이소영은 장난조로 싱긋 웃으며 말했다.

이소영은 농담이었겠지만, 인한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하죠.”

“예, 예?”

“아까도 말했지만, 굳이 보답을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부담 갖지 않으셔도 돼요.”

“자, 잠깐만요! 저, 농담이었는데!?”

“밥 한 끼 얻어먹었으면 됐죠, 뭐. 정말 맛있었거든요. 충분합니다.”

“잠깐, 스톱! 제가 아무리 인한 씨보다는 약하더라도, 이래 봬도 꽤 능력 있거든요! 원하는 건 다 말해요! 다 들어줄 수 있으니까!”

이소영은 씩씩 소리를 내며 외쳤지만, 이내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닫고 몸을 움츠렸다.

“저, 정말 이상한 것만 빼고요…….”

“하하!”

인한은 오랜만에 크게 웃었다. 반응이 워낙 다채로워서 귀여웠다.

이소영이 웃지 말라고 툭 쳤다.

인한은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

“정말 괜찮아요. 딱히 바라는 거 없습니다.”

“안 돼요!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밥 한 끼라고요? 거기다 저희는 인한 씨를 버리고 도망가기까지 했어요!”

이소영이 인한의 손목을 탁 잡으며 외쳤다.

인한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쉽게 물러날 것 같지가 않았다.

“음, 그럼……. 아!”

적당한 걸 생각하던 인한이 번뜩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소영 씨 옷 잘 봐요?”

“네? 옷이요?”

인한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 * *

인한은 옷이 없다.

통장에 수억씩, 거기다 인벤토리에도 수억이 있는 사람에게서 나올 말은 아니지만, 인한은 정말 옷이 없다.

있는 것이라곤 추리닝이나 검은색과 흰색의 티셔츠뿐이다. 애초에 탑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인한에게는 옷이 필요한 일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어쩌다보니 내일 동창회가 잡혔다.

몇 년 만의 동창회인데 추리닝 차림으로 갈 순 없지 않은가?

이소영은 허탈하게 웃었다.

‘와, 천하의 이소영을 지금 코디로 끌고 다니는 거야?’

인한과 이소영은 근처에 있는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명품숍이 있긴 하지만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백화점이었다.

‘풋. 저 사람, 뭐 하는 거야.’

백화점 입구에 진열된 ‘특가 세일 50%!’라고 되어 있는 가판을 보는 인한을 바라보던 이소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뭐예요. 센스 완전 아재네요. 얼굴이랑 몸이 아까워!”

“네, 네?”

인한은 마음에 들었던 남방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은데……?’

줄무늬가 들어가 있는 남방이었다. 색이 좀 밋밋하긴 하지만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요즘 초딩들도 그렇게 안 입거든요?”

“…….”

그렇게 심한 걸까.

인한이 남방을 천천히 내려 두었다.

“가격도 싼데…….”

“네에?”

이소영이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렸다.

“인한 씨, 돈도 많이 벌면서 2만 원짜리 남방 입고 동창회 갈래요?”

이소영도 인한의 정확한 수입은 모르지만, 그래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5인 팀 기준으로 6, 7층에서 사냥을 하는 팀들이 평균적으로 한 달에 2억 원에서 3억 원은 족히 번다.

즉, 한 사람당 월 6천만 원은 번다는 소리다.

드물게 각석이 뜨거나 희귀한 부산물을 얻으면 수입이 껑충 뛰기도 한다.

그런데 혼자서 던전을 돌면서도 수십 명의 헌터 팀 정도의 화력을 지닌 인한이 돈을 못 벌 리가 없다.

“대체 돈 다 어디다 쓰는 거예요?”

사실 인한의 모습은 누가 보면 동네 백수로 보일 것 같았다.

머리도 덥수룩하고, 수염도 삐죽삐죽 자란 데다 옷도 추리닝 차림이니.

“저금…… 하는데요.”

이소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안 되겠다. 인한 씨, 저랑 어디 좀 같이 가죠. 시간 있죠?”

“네, 시간이야…….”

“그럼 따라와요.”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인한은 이소영을 따라다니며 수십 벌의 옷을 입고, 벗고, 샀다. 그중에는 명품이 아닌 것도 많았다.

그렇게 다니면서 이소영이 말했다.

“명품이라고 무조건 다 좋은 건 아니에요. 오히려 보세 옷 중에서도 예쁜 게 엄청 많죠. 솔직히 상표 하나 붙이고 수십에서 수백까지 받아 처먹는 명품은 살 필요 없다고 봐요, 저는.”

옷 한 벌을 맞추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제 헤어지려고 생각했을 때.

“아직 안 끝났어요. 머리하러 가요.”

“머리요?”

이소영은 의아해하는 인한의 팔을 잡고 이끌었다.

그리고 인한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차를 끌고 오더니 인한을 태웠다.

고급 세단이나 슈퍼 카라도 끌고 올 줄 알았는데 의외로 평범한 국산 차였다.

‘아니, 평범한 건 아닌가? 마력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니까.’

소리 소음 없이, 마치 미끄러지듯 출발한 자동차는 다름 아닌 각석이 주원료인 차량이었다.

족히 5년은 있어야 상용화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런 차를 이소영이 끌고 온 것이었다.

고효율에 친환경.

전기의 시대가 가고 마력의 시대가 다가오는 증거였다.

“아, 원장님. 네, 오랜만이에요. 에이 왜 그러세요. 그래요, 언제 한번 술 한잔해요. 아! 그것보다 부탁이 있는데 조금 있다 예약 좀 잡아 주실 수 있어요? 호호! 감사해요.”

이소영이 향한 곳은 강남의 한 3층짜리 건물이었다.

외벽이 불투명한 유리로 디자인된 그 건물은 보통의 건축물과 달리 직선보다는 곡선 위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사실상 건물보다는 예술품 같았다.

“들어가요.”

마찬가지로 기하학적인 형태로 뒤틀려 있는 정문을 열자.

“자기-! 정말 오랜만이다. 왜 이렇게 소식이 뜸해!”

“원장님! 오랜만이에요!”

근육질의 대머리 사내가 끈적끈적한 목소리를 내며 이소영을 반겼다.

한동안 수다를 계속하던 둘이었지만 곧 대머리 사내 쪽이 인한을 힐끗 바라보며 야릇하게 눈을 빛냈다.

“어우, 야. 이 오빠야?”

‘오빠?’

인한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네, 이분이에요. 어때요?”

“크흠, 머리가 무슨…… 와우! 근데 비율이 아주 예술이네? 근육 덩어린데 아주?”

헐렁하긴 하지만 살짝 안이 비치는 옷인 탓에 인한의 근육이 그대로 드러났다.

“흠흠, 제 은인이니까 잘해 줘야 해요!”

“걱정 마! 오빠, 얼른 이리로 와 봐요. 아! 내 이름은 크리스챤 장이라고 해요. 장이라고 불러 줘요?”

“아, 네. 최인한이라고 합니다.”

인한은 떨떠름해하며 걸음을 옮겼다.

그 모습을 보던 이소영이 킥킥 웃었다.

인한을 의자에 앉힌 장은 한동안 자신의 턱을 문지르며 인한을 바라보다 손가락을 딱 튀겼다.

“각 나왔네, 나왔어.”

그리고 장은 인한의 머리에 분무기로 물을 뿌리더니 빗질을 시작했다.

안 그래도 덥수룩한 머리가 물의 무게를 받아 내려가니 앞머리가 코까지 가렸다.

“이, 이이! 요즘 투블럭 정도는 애들도 다 하는데! 이 오빠, 마스크도 나쁘지 않은데 너무 아깝다!”

“그쵸!”

이소영이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사내는 말을 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약간 직모네. 짧게 치면 뻗칠 것 같은데. 9밀리는 너무 기니까 우리 3밀리로 가자. 이거 펌도 해야겠는데?”

그렇게 인한의 덥수룩했던 머리카락이 점점 바뀌고 있었다.

서서히 변하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며 인한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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