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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77화 (77/266)

# 77

<공략자들 77화>

다시 탑 밖에 나온 인한은 그대로 김만춘이 준 쪽지를 펼쳐 보았다.

“예전부터 여기였나?”

[서울시 중구 명동 XX길 XX]

[박정철]

이 위치면 인한도 기억한다.

인한은 그대로 버스를 타고 명동으로 향했다.

“여긴 변한 게 없네.”

이것저것 부서지고 무너졌었건만, 오히려 재건이 빠르게 진행되어 지금의 명동은 현대 도시의 미관을 자랑했다.

그렇게 둘러보다가 잠시 출출한 기분이 들어 유명 만두집에 들어간 인한은 교자와 칼국수를 시켜 식사를 끝내고, 바로 걸음을 옮겼다.

“흐음…….”

도착한 곳은 열쇠고리며 장난감 등을 판매하는 조그마한 팬시 잡화 상점이었다.

인한은 안으로 들어서 왼쪽으로 향했다.

위쪽에 진열되어 있는 피규어들을 만지작대고 있으니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그거 파는 거 아닙니다. 만지지 마세요.”

“그럼 뭘 팝니까?”

의자에 앉은 채 과자를 먹던 사내가 자세를 바꾸더니 인한과 시선을 마주쳤다.

“뭘 찾으시는데요?”

“안경 닦이요.”

“안경 안 끼셨는데?”

“눈을 가리고 있어서요.”

사내가 인한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살피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쪽으로 오십쇼.”

사내는 문을 잠그고 팻말을 ‘CLOSED’로 바꾸고는 인한을 안쪽으로 안내했다.

그가 이끈 곳은 창고로 보이는 곳이었는데, 그 안에는 박스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사내가 박스를 치우고 진열대를 밀어내자 작은 문이 드러났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사내가 문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소개를 받아 왔습니다.”

“소개요? 누구의?”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합니까?”

“뭐, 말하기 싫으시면 상관없지요.”

문 안쪽에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협소하고 좁은 계단이 있었다.

어둑한 통로는 눅눅한 공기가 가득했고, 머리 위에 낡은 나트륨등만 깜빡댔다.

기껏해야 한 명만 드나들 수 있는 좁은 통로라, 인한은 사내의 뒤를 따라갔다.

곧 인한은 2층에 도착했다.

2층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바닥에는 융단이 깔려 있었고, 조명은 따뜻했다. 벽에는 화려한 벽지와 분위기 있는 장식품들이 걸려 있었다.

“이쪽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인한은 사내가 안내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초로의 남성이 테이블 앞에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군. 여기는 어떻게 찾아왔지?”

“지인한테 소개받았습니다.”

“뭘 하고 싶은가? 파는 것도, 사는 것도, 감정하는 것도 가능하다네. 중요한 건 가격일 뿐이지.”

사내가 눈을 빛냈다.

나이에 맞지 않게 상대를 압박하는 강렬한 눈빛이었지만 인한이 주눅 드는 일은 없었다.

“팔려고 왔습니다.”

“굳이 우리들을 찾아온 것을 보니, 장물이겠군.”

인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 물건을 볼까?”

남성의 말에 인한은 난처한 듯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여기선 보여 드리기 힘들 것 같군요.”

“……그게 무슨 의미지?”

“여긴 조금 비좁아서요.”

“비좁다? 양이 많나?”

“예, 제법.”

“잠시만 기다리게.”

사내가 테이블 위에 있는 스피커에 버튼을 눌렀다.

“4번 방으로 간다. 문 열어 줘.”

-알겠습니다.

스피커에서 대답이 들리고, 사내와 인한은 방에 있던 뒷문을 통해 다시 새로운 방에 들어갔다.

“이 정도면 됐나?”

아마 이곳에서 가장 넓은 방인 듯, 인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이템을 꺼내겠습니다.”

인한이 인벤토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철그럭!

쇳덩이 하나가 툭 떨어졌다.

그걸 보고 있던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데스의 투구인가. 유럽 놈들이 장비는 참 잘 만들지.”

텅!

칼이 하나가 떨어졌다.

“일본 놈들 거군. 날카로운 건 좋은데, 물러서 금방 부러져.”

그걸로 시작이었다.

하나하나, 천천히 떨어지던 장비들이 어느새 물을 쏟아 내듯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감정을 하고 있던 노인도 당황한 듯 말을 더듬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보통 인벤토리 하나에 들어갈 양이 아닌 것도 그렇지만, 이 정도 양의 장물이 개인의 손에 있는 것도 이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흐음, 이 정도면 충분하겠군요.”

“이, 이 많은 걸 어디서……?”

장비 하나는 최소 수백만 원에서 최대 수억까지 간다. 탑 밖에서 제작된 장비라도 그렇다.

그런데 아무리 장물이라도 이 정도 양이라니, 사내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것까지 말해 줘야 합니까?”

“크흠…….”

사내가 침음성을 내며 감정을 하기 위해 숙였던 허리를 쭈욱 폈다.

사내는 턱을 말아 쥐며 생각에 잠겼다.

‘무리를 하면 다 매입할 수는 있겠지만…….’

욕심이 들었다. 무리하지 않고, 충분한 이득을 볼 방법을 떠올리고 싶었다.

“미안하네만, 이 정도의 양을 우리가 처리할 수는 없네. 이걸 다 사들일 만한 현금을 우리는 가지고 있지 않아. 따로 원하는 건 없는가? 우리는 제법 많은 장비를 가지고 있네만.”

장물이기에 값이 확 떨어지기는 하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양이 너무 많았다.

가치를 모르는 멍청이라면 가격을 후려치기라도 하겠는데 아무리 봐도 만만해 보이지가 않았다.

애초에 이 정도의 장물을 가져왔는데 어중이떠중이일 리가 없었다.

거기다 관리가 잘된 탓인지 상태도 좋다. 개중에는 소위 잡템으로 불리는 아이템들도 있지만 대부분이 명품 축에 드는 아이템들이었다.

“죄송하지만, 없습니다.”

아직 제작 클래스를 얻은 사람들이 없으니, 인한이 질 낮은 탑 밖의 아이템을 쓸 이유가 없다.

거기다 현재는 무가치하다고 여겨지는 정수나 정령석을 이들이 가지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기에 인한이 이들에게 요구할 다른 것은 딱히 없었다.

‘이걸 어떻게 한다.’

사내가 입을 다셨다.

이걸 전부 처리할 수만 있으면 제법 돈이 된다. 암상인을 시작한 이래로 가장 큰 규모의 거래다.

갈등이 됐다.

무리를 해서 매입할 것인가?

최대한 다른 방법을 강구해 볼 것인가?

‘후후, 그래, 방법이야 많지.’

이내 결정을 끝낸 사내가 탐욕으로 눈을 빛냈다.

“잠시 시간을 줄 수 있겠나?”

“시간?”

“일주일…… 아니, 3일이면 돈을 마련해 주겠네. 대신 아이템의 삼 할만 미리 팔게.”

“흐음, 알겠습니다.”

인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번뜩 뭐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혹시 금고를 열 수도 있겠습니까?”

“금고?”

사내가 의아해했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못하지만 내가 그쪽으로 기술자를 한 명 알고 있네. 소개라도 원하나? 금고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그놈이 못 여는 금고는 본 적이 없거든.”

“부탁드립니다.”

“내 그럼 그건 서비스로 해 드리지.”

사내가 메모장에 주소를 적어 건넸다.

“내가 연락을 해 둘 테니, 가서 명동 최 씨가 보냈다고 하게.”

“감사합니다.”

“그래, 그럼 일단 셈을 할까?”

물량이 물량이다 보니, 흥정에만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인한은 가치가 그리 높지 않은 아이템들 위주로 처분을 했다.

결국 2시간에 가까운 흥정 끝에 가격이 결정됐다.

“젊은 사람이 징하군그래.”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욕이야.”

지급은 현금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으로 사과 박스란 걸 받아 본 인한은 눈을 껌뻑였다.

‘기분이…… 묘하네.’

사실 금액 자체는 김만춘과 거래를 했을 때가 더 컸는데, 현금으로 받으니 느낌이 달랐다. 같은 돈인데 심장이 뛰는 기분이었다.

그대로 돈을 인벤토리에 밀어 넣고 인한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사내가 빙그레 웃으며 인한에게 손을 뻗었다.

“그럼 3일 후에 보세나.”

“알겠습니다.”

인한은 밖으로 나와서 비릿하게 웃었다.

‘잘못된 선택은 하지 않길 바라는데 말이야.’

인한은 지옥 같은 탑의 안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사람이다.

시종일관 눈을 빛내며 사내가 인한을 탐색하는데 인한이 눈치채지 못했을 리가 없다. 그런 종류의 기색은 웃음으로 숨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뭐, 30퍼센트만 팔았는데도 돈이 꽤 되네.’

짧은 시간 안에 2억 원 조금 넘는 거금이 손에 들어왔다. 그것도 현금으로.

이 정도의 현금을 융통할 수 있으면 나머지 70퍼센트도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역시 바퀴들은 믿을 수가 없었다.

인한은 그대로 집으로, 아니, 폐허가 된 옛집으로 향했다.

인한의 집은 4인 가족이었다. 동생과 부모님, 그리고 인한.

부모님은 눈앞에서 대형 몬스터에게 잡아먹혔고, 동생은 강원도로 도망치던 와중 악마형 몬스터에게 빼앗겼다.

그나마 죽음을 확인하지 못한 건 동생뿐이지만…… 살아 있을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착잡한 마음이 들긴 하지만, 이곳만큼 조용하고 사람의 눈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곳은 드물다.

인한은 그대로 인벤토리에서 캠코더와 킬러들의 창고에서 얻었던 아이템을 꺼냈다.

후두둑!

전부 탑 안에서만 얻어지는 아이템, 소위 드롭템이라 불리는 것들이었다.

이것들을 굳이 김만춘에게나 바퀴들에게 팔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경매에 붙여야지. 굳이 바퀴들이나 오성 그룹에 팔 이유가 없지.’

인한은 씨익 웃었다.

검은 탑이 출현하고 아이템의 중요도가 높아진 지금, 경매라는 방식으로 전 세계 헌터들이 사용하는 사이트가 생겨났다.

이름은 ‘Monster Piece’.

마스터피스의 언어유희로 만들어진 사이트였다.

아마 현재 국내에 있는 모든 검은 탑 관련 경매 사이트 중에 제일 규모가 큰 사이트일 것이다.

인한은 아이템들의 사진을 찍고 PC방으로 향했다.

‘자, 그럼.’

인한은 정보를 적고 가입을 한 후, 아이템의 천문을 그대로 적어 넣고 사진도 찍어 올렸다.

이곳에서 가장 인기 많은 아이템의 항목은 당연, 장비다. 거기다 그 장비가 탑 밖에서 만들어진 기성품이 아닌 드롭템이라면 그 가치는 수직 상승한다.

거기다.

‘약 오르지?’

인한은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만약 헬 하운드 간부들이 이걸 본다면?

자기들 아이템이 털리고 거기다 경매까지 붙여서 팔리는 걸 보면 기분이 어떨까?

모르긴 몰라도, 그리 좋지만은 않을 게 확실했다.

‘자, 등록하기.’

인한은 별생각 없이 등록 버튼을 눌렀다. 그것이 얼마나 큰일인 줄 모르고.

미래에서 회귀한 인한만큼 세상 물정을 잘 아는 사람은 드물지만, 미래에서 왔기에 체감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모든 헌터들을 통틀어 드롭템을 가진 사람은 고작 1퍼센트도 안 된다는 것.

거기다 킬러들이 얻어 낸 보스 아이템이라면…… 그 가치를 상상도 못할 것이란 사실을 말이다.

* * *

유튜뷰의 영상을 올리고자 PC방을 찾은 인한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5억?’

편당 조회 수가 그 정도였다. 올라간 영상이라곤 몇 개 없지만 그래도 5억에 달했다.

구독자들이 자막을 달아 준 탓일까, 한국말로 했는데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게다가 사실상 조회 수는 국내보다 국외에서 더 많이 올라가 있었다.

‘설마 이렇게까지 유명해졌던 거야?’

인한이 한동안 멍하니 눈을 껌뻑이다 피식 웃었다.

많이 봤다면 그 자체로도 반갑다. 어차피 그러라고 올린 영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만큼 인한의 영상이 영향력 있어졌단 소리였다.

‘그러고 보니 영상 광고료도 들어온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 정도면 한두 푼 문제가 아니었다.

인한은 허허 웃다가 미리 준비해 두었던 두 개의 영상을 업로드하고 PC방에서 나왔다.

사실 밀렸던 일들을 처리하려고 나온 밖이었건만, 전부 돈과 관련된 일들이었다.

‘벌어도 쓸데가 없는데 말이지.’

사실, 통장에 이렇게 돈이 쌓이고 있었지만 어떻게 굴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제대로 써 본 적도 없고, 이 정도로 벌어 본 적도 없다 보니 어색했다.

인한이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띠리링-!

인한의 핸드폰이 울렸다.

‘창훈인가?’

번호를 확인했는데 모르는 번호였다.

인한은 눈가를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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