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75화 (75/266)

# 75

<공략자들 75화>

랭킹 48위, 브랜든.

랭킹 63위, 쭈위.

랭킹 89위, 엘리엇.

인한의 앞을 막은 헬 하운드의 간부들이었다.

‘저 자식은 뭐지?’

씨앗 보유자이자 인한과 마찬가지로 희귀한 권사 클래스의 킬러, 브랜든의 사지가 공포감에 굳었다.

달려드는 수십 명의 킬러들을 마치 어린아이 다루듯 한 명, 한 명 처리하는 인한.

브랜든이 그 무지막지한 강함을 두 눈에 담은 순간, 그의 정신이 공포에 휩싸였다.

‘안 돼. 부딪치면 죽는다. 1분…… 아니, 30초도 못 버텨!’

그는 구소련의 잔재였다.

과거에 심취한 어떤 정신병자들의 조직에 의해 탄생한 인간 병기, 그게 바로 브랜든이었다.

검은 탑에서 그는 시작점부터가 일반인들과 달랐다. 애초에 그러기 위한 기술을 익혀 왔다.

그렇기에 그는 빠르게 강해졌고, 씨앗의 축복을 받았으며, 히든 클래스까지 얻어 냈다.

그러나 그 모든 게 부질없게 느껴진다.

터엉-!

가죽 북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킬러 하나의 몸이 붕 떠 브랜든의 발치에 떨어졌다.

지금 본 게 정말 현실이란 말인가.

사람이 주먹으로 사람을 가격해, 수십 미터를 날려 보내는 게 정말 가능하단 말인가.

구역질이 날 것만 같다.

브랜든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린 채 몸을 부르르 떨었다.

“브랜든, 시간이라도 끌어야 한다. 가자.”

쭈위가 그의 무기인 폭 넓은 도를 꺼내며 말했다.

브랜든은 쭈위의 말에 안색이 창백해졌다.

‘시간을 끌어?’

우드드득!

인한이 뻗는 주먹에 또 한 명의 킬러가 목숨을 잃는다.

‘저런 괴물한테……?’

브랜든은 당장 주먹을 뻗어 쭈위의 아가리를 틀어막아 버리고 싶은 욕구가 들었다.

몸이 부르르 떨려 왔다.

‘눈이 없는 건가? 지금 시간을 끌겠다는 말이 나와?’

그때, 브랜든의 모습을 보던 엘리엇이 눈을 커다랗게 뜨고 경악했다.

“브랜든? 지금 떠는 거야?”

브랜든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턱을 떨었다.

그러고는 앨리엇의 말에는 대꾸도 않은 채 숨을 훅 들이마시더니 엘리엇을 밀치고 뒤로 뛰었다.

“응? 어, 어디 간 거지?”

쭈위가 당황하여 외쳤다.

그 순간이었다.

투웅-!

폭탄이라도 떨어진 듯한 소음과 함께 소리가 난 곳에서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브랜든은 지면에 내리꽂힌 정체불명의 물체에 밀려나 땅을 굴렀다.

“늦었어.”

확 피어오른 흙먼지 속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망칠 거였다면 기회가 있었을 때 도망쳤어야지.”

브랜든은 그 묘하게 차분한 목소리가, 악마의 속삭임처럼 느껴졌다.

그는 머리가 새하얘지는 것을 느꼈다.

언제 어느 때라도 행동에 옮길 수 있도록 훈련해 왔건만, 몸이 작동을 멈춘 기계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투확!

직후, 무언가가 흙먼지를 걷으며 그를 향해 뻗어져 왔다.

* * *

장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이, 이게 대체…….”

폭격이라도 맞은 듯한 광경이었다.

수많은 텐트들이 주저앉아 있었고, 곳곳에 중상을 입었거나 이미 죽은 킬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너, 넌 인형으로 밖에 나가 있는 팀들을 불러 모아라. 간부들부터 모아! 어서!”

“네, 넵!”

보고하러 왔던 킬러가 다시 되돌아갔다.

‘최인한…… 이 정도로 강했던가.’

사실 장은 레오에게 열흘 전 인한과 있었던 전투의 전말을 듣지 못했다.

그가 전해 들은 거라곤 긴장해야 할 거라는 이야기뿐이었다.

걸음을 옮기던 장이 창고를 보고는 멈칫했다.

“이, 이……!”

결코 열려 있어선 안 될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 돼!”

장이 허겁지겁 창고로 뛰어갔다.

앞쪽을 막고 있던 킬러들의 시체를 발로 걷어차고 문을 활짝 열었지만.

“……!”

장을 반기는 것은 적막한 이미 다 털려 버린 창고의 풍경뿐이었다.

‘이것들은 상관없어!’

장은 다급히 창고 안으로 뛰어들어 갔다.

창고의 진열대에 있던 것들은 전부 눈속임이다. 정말로 가치 있는 건 중앙에 숨겨 둔 금고에 다 들어가 있었다.

하지만 장의 실낱같은 희망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장의 눈에 비친 것은 금고가 있어야 할 창고 중앙의 바닥에 휑하니 구멍이 뚫려 버린 모습뿐이었다.

“크아아아악!”

콰앙!

장이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으로 진열대를 걷어찼다.

“제기랄! 안 된다. 그놈을 꼭 잡아야 해! 놓치면 절대 안 된다!”

장은 창고 밖으로 뛰쳐나갔다.

놈을 잡아서 토해 내게 해야 했다.

그야말로 혹시나 모를 일을 대비해 인벤토리가 아닌 금고에 숨겨 둔 아이템들이었다.

이 탑의 비밀을 품고 있는 그야말로 무가지보(無價之寶)이거늘!

“으, 으으!”

그때, 죽은 줄 알았던 킬러 하나가 꿈틀대며 움직였다.

“사, 살려…….”

킬러가 장의 발목을 잡았다.

장이 힐끗 그를 내려다보았다.

피를 울컥 토해 내긴 했지만 그리 큰 부상인 것 같진 않았다. 잔해를 치워 내면 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시간 낭비야.’

퍼억!

장은 발로 킬러의 안면을 걷어차, 손을 풀게 했다. 그리고 곧장 걸음을 옮겼다.

“아, 안 돼…… 가지, 가지 마……!”

나무에 깔려 있던 사내는 팔을 뻗다가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며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 * *

전투가 한층 더 수월해진 기분이었다.

레오와의 전투 이후 수련했던 건 사실상 마나 스킬뿐이었는데, 오히려 기술적인 부분이 일취월장한 기분이었다.

‘왜지?’

스킬의 숙련도 부분에서 변화는 없었다.

딱히 기술적인 부분에도 깨달음은 없었다.

그러나 인한은 곧 이유를 깨달았다.

‘눈높이가 달라졌군.’

인한이 바라보는 곳은 이제 산의 중턱이 아니라 아득히 높은 정점이 되었다. 이미 완성되어 있던 레오의 검격들이 인한을 개안시켜 준 셈이었다.

고작 30분 정도가 지나자, 인한에게 달려드는 킬러들은 없어졌다.

그때였다.

번쩍!

뒤쪽에서 눈부신 갈색빛이 터져 나왔다.

고개를 돌린 인한의 눈에 코어 스톤에서 쏟아져 나오는 킬러들의 모습이 보였다.

빛이 번쩍일 때마다, 몇 명에서 수십 명에 달하는 킬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저건 땅의 돌과 같은 기능도 하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인한의 눈에 뭔가가 들어왔다.

‘저거 설마…….’

한 금발의 사내가 코어 스톤에서 나온 킬러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 사내의 모습이 묘하게 눈에 익었다.

우웅!

인한은 눈에 마력을 집중시켰다.

순식간에 시야가 넓어지고, 마치 망원경을 쓴 것처럼 먼 거리의 광경이 확대되어 보였다.

‘역시…… 있었군.’

눈가에 길쭉이 난 상처, 날카로워 보이는 인상.

인한은 한눈에 그를 알아볼 수 있었다.

‘장 플뢰르.’

결국 이렇게 보게 되는 건가.

‘될 수 있다면 지금 처리하고 싶은데.’

인한이 손을 꿈틀대며 살기를 흘렸다. 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며 살기를 거뒀다.

현재의 자신으로서는 지금도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킬러들의 숲을 뚫고 장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응?’

그때, 묘한 신경이 느껴졌다.

쏟아져 나온 킬러들 중 족히 2, 300미터는 떨어진 거리에서 인한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자가 있었다.

‘꽤 강하군.’

브라이언 정도로 거구의 동양인 사내가 눈을 도발하듯 눈을 마주쳤다.

그래 봤자 인한에겐 피라미로 보일 뿐이다.

인한은 고개를 획 돌렸다.

“이 건방진 새끼가!”

사내가 숫제 짐승이라도 되는 듯 거친 고함을 토해 냈다.

“도망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거구의 사내는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

그런 와중에도 코어 스톤이 멈추지 않고 빛을 번쩍이며 킬러들을 토해 냈다.

인한의 입장에서는 조금 긴장될 법도 한 상황이건만.

‘더, 더 와라. 더.’

인한은 그들이 그저 반가울 뿐이었다.

“하하! 이제 도망칠 생각은 그만뒀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거구의 킬러가 뒤쫓아 오는 게 보였다.

인한은 피식 웃고 손을 앞으로 뻗었다.

“샐러.”

-쉬익!

샐러가 인한의 몸을 휘감고 피어올랐다.

이제는 귀엽다기보다는 늠름한 모습이 된 샐러가 인한의 몸을 휘감으며 재롱을 피웠다.

인한이 샐러에게 말했다.

“원래 구경 중에 제일 재밌는 구경이 불구경이야.”

거기다 태우기 아까운 나무들이 아니라 하등 쓸모없는 쓰레기들이면 더 좋다.

인한이 섬뜩하게 웃으며 속성력을 쏟아부었다.

잠시 후.

콰아아아아아아앙!

거친 폭음과 함께 킬러들의 마을 곳곳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헬 하운드 간부, 카케야마 쿠레토는 이를 바득 갈았다.

‘졸렬한 조센징 새끼. 감히 신성한 싸움을 앞에 두고 등을 돌리다니!’

그는 전투란 신성한 의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내였다.

상대가 명백히 기세를 뿜으며 도발했는데 도망치는 모습은 그의 관점에선 그야말로 남자의 수치이며, 무사의 명예 따위는 모르는 행동처럼 보였다.

‘역시 조센징들의 그 썩어 빠진 민족성은 어딜 가지 않는구나! 내가 처단해 주마, 버러지 같은 자식!’

쿠레토는 그의 이동 스킬 <신속>을 발동시켰다.

순식간에 이동 속도가 상승했다.

덕분에 뒤를 쫓아오던 동료들과의 거리는 멀어졌지만, 별로 상관은 없었다.

‘흥! 역시 버러지라 그런지 도망치는 솜씨 하나는 일품이군그래!’

쿠레토는 점점 멀어지는 인한을 보며 마른땀을 흘렸다.

그의 이동 스킬 <신속>은 히든 클래스 ‘무사’의 스킬이었다.

순간적으로 이동 속도를 200퍼센트 상승시켜 주는 스킬이건만, 인한과의 거리는 쉽게 좁혀지지가 않았다.

‘큭! 이러다간…….’

인정하기 싫지만 놓칠지도 몰랐다.

벌써 인한이 협곡의 끝자락에서 높은 경사면을 타고 수풀로 숨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멈췄어?’

자신을 도발하려는 걸까.

수풀 사이에서, 쿠레토는 인한의 모습을 발견했다.

“하하! 이제 도망칠 생각은 그만뒀나!”

사나이로서 일말의 자존심은 있는 모양이다.

쿠레토는 호탕하게 웃으며 인한에게 접근해 갔지만, 곧 인한의 눈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대체 뭐를 보고 있는 거지?”

인한의 뒤편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붉은 생물이 나타났다.

그 직후, 쿠레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 * *

장은 지옥을 보았다.

표현이 아니라, 정말 상상 속 지옥을 그대로 현실에 재현한다면 이런 광경이 아닐까 싶었다.

화염의 바다가 마을을 집어 삼켰다.

화르륵!

창고, 식료품 텐트, 거주 지역에서부터 레오가 거주하는 통나무집까지 모든 게 다 타올랐다.

쿠르릉!

그 순간, 그가 철야를 하며 처리했던 서류들이 있을 통나무집에까지 불이 옮겨 붙었다.

간신히 잡고 있던 장의 평정심이 깨졌다.

“최인하아아아아안!”

그 많은 물자들이 불에 타오르고 있다.

이 손실을, 이 손해를 대체 어떻게 계산하란 말인가!

“잡아! 저 새끼를 잡으라고!”

장이 발악하듯 외쳤지만, 미친 듯이 타오르는 화마(火魔)를 뚫고 인한에게로 뛰어갈 용기 넘치는 킬러들은 없었다.

한참을 발광하던 장은 이를 빠드득 갈았다.

‘어째서 주인님은 이럴 때에…….’

장은 갑자기 사라진 레오를 떠올리며 허탈한 심정을 느꼈다. 그러고는 주먹을 꾹 말아 쥐며, 토해 내듯 한 글자씩 내뱉었다.

“지금부터…… 진화 작업에 들어간다. 사람들을 모아라.”

“네, 알겠습니다!”

“예!”

다행히 땅의 돌 근처에는 불이 다가오질 않았다.

장은 부들부들 떨며 일렁이는 화염을 노려보았다.

‘최인한…….’

헬 하운드를 만들기 전, 아직 팀 단위로 행동했을 무렵, 그와 간부들, 그리고 레오가 탑의 비밀들에 도전하며 얻었던 수많은 아이템들이 일시에 사라졌다.

신뢰와 계약의 의미로 개인이 소지하지 않고 창고에 숨겨 둔 것이었는데.

‘이럴까 봐 그렇게 말해 드렸거늘!’

허술해도 너무나 허술하게 보관했다.

쿠레토가 쫓아가긴 했지만, 그로선 인한에게 역부족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그래……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다. 얼른 화재를 진압해야 해. 그래도 처음 타오를 때보단 불길이 약해졌으니…….’

마침 하늘이 우중충한 것이, 비라도 올 것 같았다.

화재는 곧 진압될 것이다.

* * *

“……라고 생각하겠지.”

인한이 섬뜩하게 웃었다.

아주 크나큰 오산이다.

비는 올 것이다. 그것도 꽤 많이.

참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쿠레토는 덜덜 떨며 불에 타오르는 킬러들의 마을을 바라보았다.

“네, 네 녀석…… 네 녀석이 한 거냐?”

“보면 몰라? 눈치도 없나?”

“이 쓰레기 새끼가!”

쿠레토가 땅을 박차며 인한에게 달려들었다.

인한이 다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일본인에, 이 정도로 특징이 많은데 내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지고, 쿠레토가 인한을 덮쳤다.

하지만 인한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말을 끝까지 내뱉었다.

“너는 미래에는 그냥 엑스트라거나 진작 죽을 놈에 불과하단 거야.”

인한이 주먹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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