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공략자들 67화>
‘전투 집중! 바람의 가호!’
[10분 동안 집중력이 비약적으로 상승합니다.]
[10초간 민첩 스테이터스가 20 증가합니다.]
세릴과의 일전 이후 얻은 타이틀 ‘독보’의 세 번째 효과인 액티브 스킬 전투 집중, 바람의 장화의 액티브 스킬 바람의 가호까지 발동됐다.
‘오지 않는 건가……!’
아주 가끔, 인한조차 알 수 없는 순간에 찾아오는 정체 모를 힘의 공간.
전신의 감각이 전에 없이 최고조로 달아오르는 순간이건만, 인한은 그 새하얀 선이 가득한 공간에는 진입하지 못했다.
무언가, 그곳에 들어서기 위한 조건이 따로 있는 것일까.
‘상관없어. 어차피 해야 할 일은 똑같다!’
인한은 눈을 부릅뜨고, 태풍처럼 몰아치는 검격의 흐름 속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샐러! 너도 도와!’
-쉬이익!
화르르르르르륵!
거센 화염이 인한의 팔을 타고 솟구쳤다.
“하하! 처음 보는 것들 투성이로군!”
촤자자자자자자자작!
레오가 검격의 속도를 올렸다.
인한이 입고 있던 옷은 넝마가 된 지 오래고, 결코 뚫리지 않을 것 같았던 몸에도 피가 흐르고 멍이 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물러서지는 않는다.
물러설 힘이 있으면 한 발자국 더 내딛는다.
한 방.
그거면 된다.
선이 보이지 않더라도, 축적된 경험이 인한에게 길을 보여 주고 있었으니.
“흐음.”
변화를 알아챘음일까. 레오가 눈을 빛낸다.
‘그래, 그렇게 방심하고 있어라!’
마지막에 웃는 것은 자신이다!
인한이 주먹을 끌어당겼다.
힘 조절? 필요 없다.
레오는 죽어 마땅한 자. 마음을 일단 다잡았으면,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한다.
그렇게 주먹에 담기는 하나의 스킬. 그 이름은.
파검식, 첨인형(尖忍形).
촤아아아아아아악!
한 줄기의 일격이 빗살처럼 쏘아졌다.
그야말로 한 자루의 송곳. 막아서는 검격들이 맥없이 튕겨 나간다.
레오의 표정에 처음으로 경악이 서렸다.
허공에서 다급히 검을 뽑아내지만, 튕겨 나간 손의 위치는 어떻게 해도 인한의 일격을 막을 수 있는 각도가 아니다.
콰아아아-!
결국, 그 일격이 레오의 가슴을 꿰뚫었다.
막강한 마력과 화염의 폭발은 지면까지 그 여파를 전달했다.
뿌연 먼지와 많은 부스러기들이 확 솟구쳐 오르고, 뜨거운 열기가 순식간에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큭!”
그리고 먼지 속에서 들려오는 신음.
억눌린 신음을 흘리는 자.
그건 다른 누구도 아닌 인한이었다.
“도대체…….”
푸욱-!
인한은 뜨거운 감촉에 무언가가 옆구리를 베어 낸 것을 느꼈다.
피가 왈칵 쏟아져 나왔다.
옆구리를 스친 것, 다름 아닌 레오의 검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분명 첨인형은 확실하게 들어갔고, 레오의 검은 어떤 각도로도 인한을 찌를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는데.
‘……!’
그 의문의 답을 찾아낸 인한의 얼굴에 경악이 서렸다.
레오가 검을 휘두를 수 있는 궤도가 하나 있었던 것이다.
사람이라면, 알고는 있지만 본능적으로 하지 않게 되는 궤도.
레오는, 자신의 검과 인한의 사이를 가리고 있던 자신의 팔과 함께 인한의 옆구리를 베어 낸 것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인한은 말을 끝내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
지혈을 위해 마력을 끌어올렸으나, 흐름이 뚝뚝 끊긴다.
그래도 애써 마력을 움직여, 상처 쪽으로 가는 혈류를 제어했다.
‘레오는, 죽는다.’
인한의 상처도 상당한 중상이지만, 레오는 확실한 치명상이었다.
그의 가슴뼈가 흉측하게 내려앉아 있다.
저 상처가 뼈로만 끝났을 리도 없는 바, 뻗어 나간 충격은 내장을 휘저었을 것이다.
거기다 팔뚝 어림에서 잘려, 피가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한쪽 팔은 그 자체만으로 치명상이었다.
안 그래도 창백한 피부가 지금은 파랗게 보일 정도다. 지금 저렇게 일어서 있는 것도 기적이었다.
“쿨럭! 오랜만이군……. 이 기분은 참 오랜만이야.”
레오는 피를 한 번 울컥 토해 내더니 씨익 웃으며 입가를 닦았다.
인한은 순간 흠칫했다.
저 표정이 과연 이제 곧 죽을 사람의 표정이란 말인가? 거기다 오랜만이라니.
미쳐도 단단히 미쳤다고밖에 볼 수 없는 발언이었다.
“……?”
우웅!
그런데 이상했다.
인한의 새롭게 생성된 심장의 마력원이 다시금 경고를 보내온다.
어째서? 아직 제법 시간이 남았고, 레오의 상처는 확실하게 죽을 정도의 상처인데.
“쯧, 멀리도 떨어져 나갔군.”
레오가 움직였다.
도저히 움직일 수 있는 상태가 아닌데, 태연히 발을 움직여 걸어간다.
방향은 자신의 팔이 떨어진 커다란 암석.
그리고.
“무슨……!”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길 때마다 레오의 상처가 회복된다.
우그러졌던 가슴의 뼈가 꿈틀거리며 제자리를 찾아 움직이고, 멍들고 찢어졌던 피부가 서서히 이어 붙으며, 창백했던 안색은 제 색깔을 찾아간다.
인한의 극체술도 회복력에 있어서는 엄청난 힘을 발휘하지만…… 저건 회복력 같은 간단한 현상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재생.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내가 아까 물었지.”
꾸드드득!
레오가 팔을 주워 들더니 잘려 나간 단면에 가져다 댔다.
근육이, 신경이, 뼈가, 피부가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붙어 갔다.
“코어 스톤에서 무엇을 얻었냐고, 말이야. 내가 얻은 걸 알려 주지.”
레오가 핏물을 가득 머금은 입가를 그대로 비틀어 웃어 보였다.
“나는, 불사를 얻었다.”
인한이 경악하며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이제 2차전이다.”
* * *
“나는 게임을 좋아해.”
레오가 말했다.
“딱히 자판을 두드리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게임만 말하는 건 아니야. 규칙이 있고, 경쟁 상대가 있고, 승자가 있는 건 모두 좋아하지. 물론, 그렇다고 컴퓨터 게임이나 게임기를 싫어하는 건 아니야. 오히려 제일 좋아하는 편이지.”
“큭!”
뒤를 점했던 인한에게 검이 짓쳐들었다.
레오가 자신의 복부를 관통시켜 검을 찔러 온 것이다.
“미친놈…….”
간신히 얻은 공격 기회를 놓친 인한은 뒤로 훌쩍 뛰어오르며 씹어 내듯 말했다.
레오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입에 미소까지 띄우며 복부에서 검을 뽑아냈다.
“흐음, 미친놈이라. 미안하지만 난 지극히 정상이야. 너희들이 뭘 제대로 모르는 거겠지. 난 그 누구보다 인간답다.”
말하는 순간, 순식간에 재생된 복부.
레오가 다시 달려들었다.
“컥!”
쾅!
좌측 상단에서 사선으로 휘둘러진 검.
피하지 못했다.
인한이 신음을 흘리며 나가떨어졌다.
“혹시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요한 호이징가를 아나? 많이 알려진 사람은 아니니 모를 수도 있겠지만…… 그가 집필한 호모 루덴스, 즉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책에 보면, 인간의 행위와 발달 양식에는 그 근저에 ‘놀이’라는 것이 깔려 있다는 말이 있지. 놀이, 플레이란 즉 게임이야. 흐음, 이거 말로 설명하려니 어렵군. 꼭 한번 읽어 보라고.”
인한은 어금니가 시큰할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참으로 기괴한 전투 방식이었다.
인간이란 본능적으로 자해를 하는 것을 기피한다.
그게 아무리 결과적으로 문제가 없더라고 하더라도, 괜찮을 걸 알더라도, 자신의 몸에 피해가 올 걸 알기에 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다.
그렇지만 레오는 아니다.
그는 웃는 얼굴로 자신의 팔을 도려내고, 몸통에 칼을 쑤셔 넣고, 뼈를 부러뜨리며 검을 휘두른다.
아무리 경이적인 재생력을 갖고 있더라도, 인간인 이상 고통은 느낄 텐데 아무렇지도 않게 자해를 통한 공격을 펼쳐 온다.
“이 검은 탑도 그렇다. 이 세상은 한없이 게임에 가까운 세상이지. 아니, 이 세계 자체가 거대한 하나의 게임이다!”
인한은 참담한 심정으로 가쁜 숨을 토해 냈다.
뒤쪽에서 서서히 킬러들이 접근해 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앞에는 생채기 하나 없는 레오가 우뚝 서있다.
‘제길.’
인한은 욱신거리는 옆구리의 상처를 틀어막으며 신음을 흘렸다.
‘인정하기 싫지만…….’
인한은 입술을 잘근 씹었다.
격차를…… 느꼈다.
그 기괴함은 둘째로 치더라도, 레오는 자신이 가진 힘과 능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전투법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재능의 차이인 것인가.
아니, 아니다.
인한과 비슷해 보이는 나이에 저 정도의 완성도라면, 재능도 재능이지만 그것은 뼈를 깎는 노력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직 최하층이건만, 레오는 이때부터 벌써 완성을 향해 달려가는 한 자루의 예리한 검이었던 것이다.
그에 비해 인한은.
‘나는…… 약해.’
경험도, 능력은, 힘도, 인한은 모든 면에서 레오에게 앞선다.
하지만 인한은 레오를 이길 수 없다.
레오에게 있는 재생력이 사기적이기 때문에?
그것은 핑계다.
편법으로 따지자면, 인한을 따라올 사람이 없다.
근본적인 문제다. 인한의 전투법이 레오와 비교해서 뒤떨어진다.
회귀 전의 인한의 전투법과 회귀 후의 인한의 전투법은 다르다. 과거의 인한과 다르게 인한은 극체술이란 단단한 반석 위에 새로운 것들을 쌓아 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한의 전투 방식은 회귀 전과 달라지지 않았다. 비효율의 극치였고, 부족함투성이었다.
첫 번째 재생 이후 인한은 두 번 레오에게 치명상을 입혔지만, 그것조차 억지로 힘을 쏟아부어 만든 결과였다.
가공할 힘을 발휘하는 마력, 그것을 다루는 최상위 마나 스킬, 그리고 누구도 얻지 못한 높은 단계의 공격 스킬.
인한은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가지고, 단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했다.
‘안일했다.’
그것은 하나의 깨달음이었다.
마음이 급해, 그동안 얻었던 힘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부족함을 알고 있었고, 해야 할 과제도 알고 있음에도, 인한은 그저 더 많은 것을 얻는 데 급급했다.
그래선 안 됐다.
아무리 단단한 벽돌을 쌓아 올려도, 모래사장 위에 쌓은 누각은 쓰러지기 마련인데.
콰앙!
레오가 검을 휘둘러 왔다.
인한도 이를 악물며 검에 저항했다.
하지만 맥이 끊긴다.
하나의 흐름에서 다른 흐름으로 넘어갈 때, 아무리 빠르게 전환된다 한들 순간의 경직은 따르기 마련.
레오는 그걸 파고든 것이다.
-시이익! 시익! 시익!
‘걱정 마, 샐러. 내가 포기할 리가 없잖아.’
샐러가 인한의 주변을 휙휙 돌아다녔다.
그래, 알고 있다.
절망적이고, 힘든 상황이란 것을.
하지만 0과 1은 다르다.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힘든 일일 뿐이다.
‘제일 익숙한 걸로 돌아간다.’
그러기 위한 방법이다.
다량의 마력을 소모하며,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파검식은 접어 둔다.
펼치는 것은 폰 체술.
인한의 눈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 순간.
화악-!
그 공간이 인한에게 진입을 허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