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65화 (65/266)

# 65

<공략자들 65화>

인한은 마을 외곽을 돌며 다각도로 그 암석을 살폈다. 그리고 그것이 땅의 돌이라는 것을 확정지었다.

‘주변에 몬스터가 없는 것도 설마 저거 때문인가?’

말은 됐다. 아니, 그것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역시 저 사이즈는…….

‘아니, 커 봤자 어차피 땅의 돌은 땅의 돌이겠지. 효과는 같아.’

정말 ‘평범한 땅의 돌’이라면 말이다.

머릿속에 문득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전생에서 헬 하운드는 단 한 번도 본거지를 들킨 적이 없었다.

철저하게 점조직으로 움직인 점, 조직의 말단은 거의 헬 하운드에 대해 아는 게 없는 점 등등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과하리만큼 비밀스러웠다.

인한은 그 이유가 저 땅의 돌과 연관되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확인해 봐야겠어.’

마을에 침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워낙 큰 규모의 텐트촌이고 킬러들의 차림새도 제각각이기 때문에 인한이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았다.

인한은 곧장 땅의 돌로 보이는 암석으로 향하지 않고 마을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서 말을 건네는 킬러들에겐 적당히 대꾸해 줬다.

‘엄청난 숫자군.’

이 정도의 단일 조직이 벌써 탑에 존재할 줄은 몰랐다.

거기다 그게 킬러들이고, 곧 대사건을 일으킬 것이라니…… 위기감이 피부로 다가왔다.

‘일단 더 둘러보자.’

마을을 돌아다니던 인한의 눈에 무언가가 포착됐다.

위에서 봤을 때는 몰랐는데, 통나무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단층집 크기의 창문 하나 없는 작은 목조 건물이 있었다.

특이하게 그곳에는 경계를 서고 있는 킬러도 있고, 입구에는 자물쇠도 걸려 있었다.

어딜 봐도 창고였다. 그것도 꽤 귀중한 것들이 있을 법한.

‘그리고 저건…… 식료품 창곤가?’

인한은 몸을 돌려, 다시 걸음을 옮겼다.

마을의 중심부에 평범한 텐트의 열 배는 더 커 보이는 텐트가 몇 개나 나란히 세워져 있었다.

그 거대 텐트에 킬러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모습이 보였다.

나오는 자들의 손에는 꼭 맥주며 양주며 간단한 먹거리들이 들려 있었다.

인한도 킬러들에 섞여 텐트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허, 이건.’

인한이 감탄했다.

상상 이상이었다. 대형 마트 하나를 통째로 옮겨 둔 것 같은 광경이었다.

일렬로 쭉 나열되어 있는 진열대에는 수많은 식료품들이 놓여 있었고, 텐트의 중앙에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거대한 냉장고가 돌아가고 있었다.

딸깍!

냉장고의 안에는 육류부터 어류, 주류, 음료 등 수많은 종류의 물품들이 쌓여 있었다.

나란히 서 있는 거대 텐트 다섯 개도 마찬가지였다.

생활필수품들이 놓여 있던 마지막 텐트에서 나온 인한의 표정이 조금 일그러졌다.

‘누가 뒤를 봐주고 있는 건가?’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물량이 아니었다.

막장 인생을 사는 킬러들이 건설적으로 미래를 생각하며 십시일반 돈을 모아 이런 물량을 갖추었을 것 같진 않았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성가시겠어.’

헬 하운드.

크게 위협적이라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쩌면 지금 검은 탑에서 제일 위험한 건 몬스터들이 아니라 킬러들일지도 몰랐다.

‘일단 이 생각은 여기까지.’

본 목적으로 돌아가야 했다. 어차피 거대 텐트 외에는 특별한 게 없었다.

‘슬슬 가 볼까.’

절로 온몸에 긴장이 들어갔다.

사방이 적이라서?

아니, 천 명에 가까운 킬러들은 위협적이지만, 그저 위협적인 데 불과하다.

개미는 수천 마리가 모여도 개미일 뿐이다.

인한이 긴장한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땅의 돌의 옆에 우뚝 서 있는 통나무집. 텐트촌의 전경이 내려다보이는 위치에 지어진 건물.

누가 봐도 우두머리가 있을 법한 곳이었다.

그리고 헬 하운드의 보스는…… 한 명뿐이다.

‘레오 뒤보아.’

장 플뢰르가 있는 곳엔 무조건 레오 뒤보아가 있다.

수많은 헌터들의 적이자, 공포였던 독보적인 킬러.

인한은 순간 바싹 목이 타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고개를 휘휘 저어 정신을 차렸다.

‘천문만 확인하고 몸을 빼면 들킬 염려는 없어.’

지금의 인한은 과거의 인한이 아니다.

아무리 인간 같지 않은 최상위 랭커 중 하나인 레오 뒤보아라도 지금의 인한이 상대하지 못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땅의 돌과 통나무집 주변에는 킬러들이 다가가지 않았다. 때문에 땅의 돌이 발하는 미약한 빛 외에는 그곳에는 어둠의 휘장이 내려와 있었다.

땅의 돌 근처에는 빛과 어둠의 경계선이 그어져 있었다.

고작 몇 발자국의 거리이건만 이쪽과 저쪽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인한은 마나 스텔스를 펼치며 어둠 속에 스며들었다. 묘족에게 받아온 검은색 갑옷은 어둠에 잘 물들었다.

위이이이잉-!

땅의 돌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기운의 반응이 점점 더 심해져만 갔다.

인한은 힐끗 통나무집을 살피고는 돌의 뒤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깊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서, 손을 땅의 돌에 가져다 댔다.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의문의 기운이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씨앗이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접속 코드가 인식되었습니다,]

[코어 스톤 접속 권한을 획득했습니다.]

[사용자 ‘최인한’이 코어 스톤에 접속합니다.]

그리고, 인한은 의식을 잃었다.

* * *

인한은 기이한 환상을 보았다.

번쩍!

한 번도 본 적 없는 공간이었다.

그 광경 속에 있는 인한은 마치 정말로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공기의 냄새도, 침의 맛도, 푹신한 대지의 촉감도, 귓가를 스치는 바람의 소리도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여긴…….’

지구와 모든 게 비슷하지만 모든 게 낯선 곳이었다.

의문을 떠올릴 새도 없이 자연스레 머릿속에 정보가 들어왔다.

이곳은 인간과 아인종, 용과 요정이 함께 하는 세계.

아발론.

그곳엔 일곱 개의 왕좌(王座)와 그 왕좌의 주인들, 그리고 누구도 앉지 않은 무관의 왕좌가 하나 있었다.

왕좌의 주인에겐 군주를 상징하는 관이 주어졌으니, 그것은 권능을 상징하는 옥쇄이며, 군주의 힘과 능력을 구현한 상징 그 자체였다.

번쩍!

인한의 눈앞에 또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아발론을 중심으로 수많은 세계가 팽창해 간다.

아발론은 세계의 씨앗이었다.

허나 아무리 밑바닥이 보이지 않는 샘물이라 한들 결국 한계란 있는 법이다.

너무 많은 것을 소모한 아발론은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저건?’

아주 작은 틈이었다.

인간들이 사는 한 산골 마을의 공중에 거미줄 같은 금이 그어지고, 이내 세계의 한 부분이 부서져 내렸다.

고작 쥐새끼 한 마리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작은 구멍이었지만 그 구멍을 통해 쏟아진 것은 이세계의 존재들이었다.

‘도대체 무슨…….’

왜 이런 것을 보여 주는 것일까.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번쩍!

아발론에 수많은 이방인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언제나 우호적이지만은 않았으니, 그들의 방문에 세계가 비명을 질렀고, 결국 왕들마저 그들의 권능을 박탈당했다.

합당한 자격을 갖추지 못한 자들이, 군주가 되었다.

‘윽!’

치직!

그때, 돌연 환상이 크게 흔들렸다.

눈으로 보이는 것뿐 아니라 모든 감각이 흐릿해지며 아득하게 멀어진다.

환상에 맺힌 균열이 번져 갈 때쯤.

[관리자 권한에 의해 코어 스톤 접속이 강제 차단됩니다.]

인한은 무언가 격류에 휩쓸리는 듯한 감각과 함께 눈을 떴다.

“큭!”

튕겨 나가듯 인한이 손을 떼며 주저앉았다. 머릿속에 쇠막대기를 넣고 마구잡이로 휘저은 듯한 기분이었다.

지끈거리는 두통과 함께, 이곳에선 느낄 리 없는 감각들이 전신에 떠올랐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미각에 맵고 짠 맛이 재생되고, 복부에는 칼에 찔렸을 때와 같은 고통이, 눈을 감고 있는데도 어느 필드의 한 풍경이…… 끊임없이 인한의 오감이 잘못된 정보를 받아들였다.

‘크윽…….’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붕 뜬 듯했던 감각이 하나 둘씩 제자리를 찾아갔다.

자신의 몸이 자신의 몸이 아닌 듯한 감각 속에서 인한은 혼란을 느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지?’

인한은 탑을 오르며 수많은 경험을 했다.

하지만 이런 감각은 처음이었다.

‘접속 코드? 관리자 권한……?’

인한은 문득 천문으로 보았던 내용들을 떠올렸다.

천문에서는 처음 보는, 지극히 현대적인 용어들이었다.

저런 것들은 컴퓨터에만 있는 것 아니었나?

‘도대체 천문은 뭐지……?’

불현듯 천문에 대한 의문을 떠올리는 인한이었다.

천문은 세계의 모든 기록을 읽는 기술이라 하였다.

정말, 그런 것인가?

인한은 침을 삼키고는, 다시 한 번 땅의 돌에 손을 가져다 댔다.

[코어 스톤]

[등급 : EX]

[종류 : 에테르 크리스탈]

[관리자 : 라스틴]

[효과]

1. 접속 권한이 있는 경우, 코어 스톤에 저장된 기록을 획득합니다.

2. 코어 스톤 접속 권한을 획득합니다.

[상세설명 : 땅의 마왕의 힘을 결정화한 아이템.]

[접속 권한 (3 / 5)]

1. 박철환

2. 레오 뒤보아

3. 최인한

4. 없음

5. 없음

처음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떠오른 것은 의문투성이인 천문.

EX 등급과 에테르 크리스탈이란 듣도 보도 못한 아이템의 종류, 거기다 이해할 수 없는 효과까지.

‘거기다 땅의 마왕이라니. 지금껏 왕은 있었지만 마왕은……,’

남은 것은 의문뿐이었다.

하지만 그 의문의 끝을 볼 새도 없이, 인한은 아래쪽에 떠오른 하나의 이름을 보며, 주먹을 그러쥐었다.

‘박철환!’

인한보다 선행하여 접속 권한을 획득한 레오 뒤보아, 그리고 그보다 먼저 권한을 얻은…… 박철환.

‘도대체 너는…….’

인한은 끓어오르는 듯한 분노도 잠시, 어떤 정체 모를 심연을 내다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고 보면 박철환은 의아한 사내였다.

믿을 수 없이 강한 무력, 교활한 머리, 그러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친화력, 최초로 S급 무기를 보유했으며, 수많은 퀘스트를 클리어했고, 최상위 타이틀 [천무]까지 얻은 자.

그리고 이번, 코어 스톤의 접속 권한까지.

생각해 보면 박철환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었다.

배신하기 전까진 동료였기 때문에 제법 대화도 많이 나눴던 것 같은데, 그가 말해 주었던 과거나 가족 관계나 꿈이나 취미 등은 무엇 하나 특별한 게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평범한’ 사내였다.

‘응?’

두근!

그 순간.

인한은 전에 없이 신비한 감각을 경험했다.

‘뭐지……?’

일종의 예감과 비슷한 느낌.

하지만 좀 더 구체적이고, 선명한 감각이다. 느끼고 있는 인한 자신도 이해할 수 없지만, 기감과도 다른,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확신처럼 떠오른다.

‘위험해?’

이곳은 위험하다.

누구에게 설명할 순 없지만 그런 확신이 든다.

인한은 벌떡 일어나 주위를 살폈다.

달라진 건 없다. 느껴지는 인기척도 없고, 마을 쪽에도 변화는 없다.

하지만 심장이 빠르게 박동하며 머리가 경종을 울려 댔다.

대체 무엇이 위험하단 말인가. 자기 자신이 느낀 것임에도 정체를 알 수 없다니.

‘일단.’

이곳이 적지인 것은 확실하다.

인한은 본능에 따르기로 하고 바로 몸을 피했다.

그러나.

인한의 도주는 성공하지 못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