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공략자들 59화>
“쯧.”
인한은 혀를 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안 보이네.”
인한이 있는 곳은 7층 필드 북쪽, 헌터들에게 데스 시커가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라고 알려진 곳이었다.
인한은 데스 시커를 찾고 있었다.
더 정확히는, 그 데스 시커의 주인을.
‘그런 놈을 필드에 방생해 두다니.’
테이밍을 한 몬스터는 일반 몬스터보다 훨씬 더 강해진다. 보통의 몬스터들과는 달리 테이머에 의해 빠르게 성장하기 때문이다.
데스 시커는 인한의 예상대로 돌연변이 몬스터는 맞겠지만, 테이밍 이후의 성장으로 더 강해진 케이스인 게 분명했다.
그런데 그 데스 시커를 아무렇게나 풀어 뒀다.
7층 마을에서 들은 바로는, 놈에게 당한 헌터가 모르긴 몰라도 두 자릿수를 넘어갈 것이라고 했다.
악질 중에서도 악질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내 예상이 맞다면…….’
인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몬스터는 사람을 잡아먹으면서 성장한다.
그것은 종속된 몬스터도 마찬가지여서, 사실 몬스터보다는 사람을 사냥하는 게 성장에는 더 도움이 된다. 거기다 사람을 죽였을 때 떨어지는 보상은 테이머에게 많은 보상을 가져다 준다.
하지만 그걸 알아도, 하는 자는 드물다.
몬스터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명령시키는 자, 거기다 공략 초창기인 지금 시기에 데스 시커 정도로 강력한 몬스터를 종속시킬 정도의 재능을 가진 자.
‘장 플뢰르.’
헬 하운드의 수장인 레오 뒤보아의 최측근이자, 악마의 재능이라고 불리는 실력의 몬스터 테이머.
수십 차례에 걸친 헬 하운드 토벌전에서 수십 마리의 보스 몬스터를 내세우는 그는 고작 사람 하나가 전황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자기도 했다.
‘놈이든 놈이 아니든, 확인해야 해.’
그리고, 처리해야 한다.
놈은 후일 커다란 위협이 된다.
‘후우, 그건 그렇고…… 데스 시커까지는 찾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인한은 혀를 찼다.
테이머를 찾기는 어려운 일이니, 일단 데스 시커라도 처리하려고 했다.
찾는 일이 어려운 건 아니었다. 예리할 대로 예리해진 인한의 감각은 데스 시커 정도의 거구라면 금방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드를 하루 종일 이 잡듯 뒤지고 다녔는데도 데스 시커는 흔적도 보이질 않았다.
‘추격의 저주가 박혔으면 간단했는데.’
인한에게는 5층에서 얻은 스킬, ‘추격의 저주’라는 스킬이 있었다.
하지만 도망치는 데 급급해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 천문이 나타났다.
[밤이 되었습니다. 몬스터들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인한은 한숨을 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완전히 어두컴컴해지진 않았지만 해는 먼 산에 걸쳐, 모습을 완전히 감췄다. 짙은 노을만이 하늘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7층은 밤이 빠르게 찾아왔다.
원래는 시간대를 신경 쓰지 않고 탑을 돌던 인한이지만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다 보니 금세 피곤해진 것도 사실이었다.
‘오늘은 이만 쉬어야겠군.’
인한은 미리 봐 두었던 동굴을 향해 갔다.
크고 작은 산으로 이루어진 7층 필드 용의 협곡에서 안전지대는 보통 동굴이나 물가에 만들어졌다.
인한은 평소처럼 주술을 쓰려다 그만뒀다.
5층과 6층에서 몇 번 쓰다 보니 마적목 가루도 거의 다 써서, 한두 번 정도 쓸 만큼밖에 남지 않았다.
‘어차피 안전지대니까 괜찮겠지.’
인한은 고개를 끄덕이고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 * *
간단하게 밥을 먹고, 잠에 들고 얼마 지나지 않을 무렵이었다.
푹!
뭔가가 찌르는 듯 따끔한 느낌이 들었다.
그 뒤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고 인한의 수면을 괴롭혔다.
‘으음, 뭐가…….’
피곤한 탓일까. 잠에서 일어나는 건 별로 어렵지 않아하는 인한임에도 쉽게 눈을 뜨질 못했다.
그렇게 잠에 든 것도, 깬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에서 꿈과 현실을 오가던 인한은, 순간 발이 덜컥하고 위로 들렸다 떨어지는 느낌에 비로소 눈을 떴다.
“으음……?”
-키릭.
초록색 피부에 작은 키, 노란색으로 빛나는 초록색 눈동자.
“고블린? 몬스터가 안전지대에 어떻게?!”
찬물을 끼얹은 듯 몽롱했던 정신이 바로 맑아졌다.
그런 인한의 눈에 보인 것은, 고블린이 들고 있는 가죽 신발.
“내 장비!”
-키에에엑!
고블린은 인한이 신고 있던 바람의 장화 두 쪽을 품에 안고 냅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인한은 잠이 덜 깬 와중에도 몸을 일으켜 손을 뻗었지만, 그대로 넘어지듯 땅에 쓰러졌다.
“큭!”
[강한 마비독에 중독되었습니다.]
인한은 신음을 흘렸다.
머리가 몽롱했던 게 잠의 여운 때문이 아니라 독 때문이었던 것이다.
“젠장. 극체술을 어떻게 뚫은 거지?”
지금 보니 허리께에 독침 하나가 박혀 있었다.
뾰족한 끝부분만 간신히 피부를 뚫었을 뿐이지만, 데스 시커의 공격도 맨몸으로 막아 내던 인한이 고작 독침 따위에 당한 것이었다.
-키엑! 키이익!
고블린은 울음소리를 내며 안전지대를 빠져나갔다.
그런데 뛰쳐나가다 간신히 아랫도리만 가렸던 놈의 가죽 쪼가리가 살짝 들리는 게 인한의 눈에 띄었다.
가죽 쪼가리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 펄럭이는 가죽 사이로 드러난 반짝이는 문자가 중요했다.
“각인!”
테이밍된 몬스터의 증거.
장 플뢰르의 흔적이다!
인한의 눈이 불을 뿜었다.
“놓칠 줄 알고!”
인한은 땅을 박차고 몸을 날렸다.
벌써 3레벨에 오른 중독 면역에 한 단계 오른 극체술의 마나 스킬까지.
미안하게 됐지만, 인한은 이제 치사성 없는 독 정도는 가볍게 씹어 삼킬 정도의 괴물 같은 해독 능력을 갖게 됐다!
터엉!
인한이 땅을 디딘 순간 지면이 폭발하듯 튀어 올랐다.
뒤편을 바라보던 고블린의 콩알만 한 눈이 찢어질 듯 커다래졌다.
-키엑!?
하지만 고블린은 쉽게 잡히지 않았다.
나무와 나무, 암석과 암석 사이를 뛰어다니며 고블린은 날렵하게 인한의 손길을 피해 다녔다.
‘성가시게!’
인한은 고작 한 끗 차이로 놓친 고블린을 보며 혀를 찼다.
독 기운이 남아 있는 것도 있지만, 놈의 도주 실력이 비정상적으로 뛰어났다.
하지만 의아했다.
몬스터 테이머는 기본적으로 몬스터를 테이밍할 때 ‘테이머의 성향’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파괴적인 몬스터인 데스 시커에 이어 이런 영리한 고블린이라니?
뭐가 됐든 일단 잡아 봐야 한다.
맹렬한 속도로 움직이던 인한의 다리에 백색의 마력이 맺혔다.
순간, 스프링처럼 나선형으로 회전한 마력이 앞으로 뻗는 인한의 발에 맞춰 지면을 향해 쏘아졌다.
콰앙!
그 한 번으로 족히 10미터는 떨어져 있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혔다.
고블린이 콩알만 한 눈동자를 화등잔만 하게 치켜뜨며 도망치려고 했지만.
-캬악! 키엑!
“잡았다, 요놈.”
그때는 이미 인한의 손에 잡힌 뒤였다.
목덜미가 잡힌 채로 위로 들린 고블린은 쇳조각을 긁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며 버둥거렸다.
-키엑! 키에에엑!
인한은 일단 바람의 장화를 놈에게서 뺏었다.
놈은 바람의 장화가 자기 목숨이라도 되는 양 꼭 끌어안고 놓지 않았지만, 인한이 주먹을 들어 보이자 공손하게 장화를 내밀었다.
‘흐음, 역시 테이밍된 몬스터라 그런지 특이하게 생겼군.’
인한은 고블린의 모습을 이리저리 허공에서 돌려 보며 살펴보았다.
덩치는 일반 고블린에 비해 머리 하나는 더 컸고, 팔도 원숭이처럼 길었다. 몸의 곳곳에도 탄탄한 잔 근육이 붙어 있었다.
지형지물과 긴 팔을 이용하는 도망치는 솜씨, 인한을 마비시키고 아이템을 빼앗으려는 행동 등을 보아하니 지능도 꽤 높은 편인 것 같았다.
‘각인은…… 역시 있군.’
착각은 아니었다.
‘아무리 그래도 의아한데.’
몬스터의 성질이 다른 것도 그렇지만, 그 장 플뢰르가 고작 좀도둑질이라니.
‘하긴, 이 시대에 와서 만난 블러디 아나도 내가 알던 사람과는 정반대였으니까.’
이정환과 브라이언은 각각 좋은 의미로 나쁜 의미로 그대로였지만 말이다.
인한은 눈을 감았다.
마법사를 포함한 몇몇 클래스들은 스킬 발현 조건 중 하나로 소량의 마력을 필요로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몬스터 테이머가 몬스터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도 마력을 통한 염파로 이루어진다.
마나 스킬이 2단계였다면 좀 애를 먹었겠지만, 이제 3단계가 된 인한에게 숨겨지지 않은 마력의 잔향을 되짚어 가는 정도는 식은 죽 먹기나 마찬가지였다.
인한은 곧 고블린에게 이어진 마력의 선을 한 줄기 잡아냈다.
미래에는 마력을 사용한 흔적을 숨기는 스킬도 발견되지만, 이 시대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줄줄 새는 마력의 흐름을 캐치한 인한이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 * *
이창훈은 소위 1세대 헌터라고 하는, 몬스터 웨이브에 떠밀려 처음 탑에 오르게 된 헌터였다.
그는 육룡처럼 전투에 괴물 같은 재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탑을 오르기 전부터 몸을 쓰는 데에는 자신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생존할 수 있었다.
솔로로서 활동도 하고, 같은 1세대 헌터들과 팀을 이루기도 하며 탑을 오르던 그는 어렵지 않게 4층까지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5층에서 일어났다. 5층에 도착하자마자 운 나쁘게 들이닥친 대형 몬스터 때문에 팀원들과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사실 여기까지는 큰일이 아니었지만, 진짜 문제는 그 직후, 숨어 있었던 유적지에서 얻게 된 클래스였다.
‘젠장. 왜 그때 이딴 걸 한다고 해서.’
몬스터 테이머가 된 그에게 이런 천문이 뜬 것이다.
[몬스터 테이머 클래스 관련 스킬을 제외한 공격의 위력이 25% 감소합니다.]
25퍼센트. 무려 사분의 일이다.
말이 위력 감소지, 거의 스킬에 모든 걸 맡기고 있던 그의 던전 공략이 몇 배는 더 힘들어졌다.
거기다 몬스터 테이머라는 희귀 클래스의 특성상 팀에 들어가기도 힘들었다.
테이머라는 걸 알려도 대부분이 믿지 않는 데다, 믿더라도 몬스터 테이머를 얻을 수 있는 던전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해 위협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이창훈은 7층 필드에서 수풀에 숨은 채 눈가를 찌푸렸다.
‘곱린이 이 새끼는 왜 이렇게 안 와!’
그가 5층에서 간신히 종속시킨 몬스터 곱린이(라고 이름 붙인 고블린)가 지금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진 상태였다.
‘아 정말, 설마 삐진 건가? 그냥 돈 되는 거 좀 가져오라고 소리쳤을 뿐인데, 어디까지 간 거야, 이 자식. 밤이라 위험한데…….’
이창훈에게 검은 탑은 생계의 현장이었다. 웨이브 이후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그의 수입이 집안의 유일한 버팀목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벌이가 시원찮았다. 그 원인의 대부분이 고블린의 실수 때문이어서 곱린이에게 조금 다그쳤었다.
그런데 그대로 획 사라져 버리다니.
-키엑!
그때, 그의 염파에 고블린의 의식이 잡혔다.
‘아! 너 어디야! 걱정했잖아! 빨리 돌아와!’
-키엑! 키리리릭! 키에에에!
‘응? 왜 그렇게 다급해하는 건데?’
아무리 종속시킨 몬스터라고 해도 몬스터의 말을 모두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대충 하고 싶은 말의 뉘앙스나 감정 따위를 이해하는 정도였는데…… 지금 곱린이는 묘하게 다급해하고 있었다. 그래, 마치 누군가에 쫓기는 것처럼.
‘곱린아?’
-키엑!
그때, 수풀을 헤집고 곱린이가 튀어나왔다.
“왜 이렇게 늦었어! 어디 갔다 온 거야? 응? 뭐냐, 너.”
명령 안 들은 게 괘씸해서 혼 좀 내려는데…… 곱린이의 표정이 이상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수시로 뒤를 힐끗힐끗 바라보는데, 누가 뒤에서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얌마, 뭘 그렇게 무서워하는데?”
-키엑!
순간, 곱린이 후다닥 달려와 이창훈의 다리를 끌어안으며 뒤로 숨었다.
쿵!
직후 무언가가 허공에서 뚝 떨어졌다.
포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지면이 묵직하게 울리고, 흙더미가 튀어 올랐다.
“……어?”
사내였다.
관록이라고 해야 하나, 차분함이라고 해야 하나.
굳이 말하자면 카리스마라고 할까?
사내에게서 차분히 가라앉은 아우라가 풍겼다.
‘잠깐. 그것보다 이 사람, 지금 어디서 나타난 거야?’
그야말로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나? 지금?
지가 무슨 슈퍼맨이야?
그때 사내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