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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58화 (58/266)

# 58

<공략자들 58화>

“요상한 소문이 있었어요. 혹시 자이언트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헌터에 대한 이야기 아세요?”

“자이언트?”

최민수가 몇 가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솔로로, 거기다 무기 하나 없이 맨손으로 탑을 오르는 사람이 있다니. 거기다 경이로운 공략 속도까지.

“최근에 보인 게 5층에서였다는데 며칠 만에 7층에 나타난 거죠. 특징으로 보나, 뭐로 보나, 저는 그 사람이 자이언트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그럼…… 그 사람, 살았을까?”

“살았을까가 아니라 분명 살아 있을 거예요. 애초에 솔로로 보스존에 돌입하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의아하긴 해요. 저 정도면 육룡에도 비견될 수 있을 텐데…… 왜 랭킹에는 진입하지 못했을까요?”

이소영이 이야기를 듣다가 턱을 집게손으로 잡은 채 잠시 침묵했다. 그녀가 생각에 잠길 때면 종종 하는 버릇이라 모두 그녀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이거 영상 편집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

“올리시게요?”

“응, 생각이 좀 있어서.”

“어떻게 원하시는데요?”

“그냥 현장감이 있는 게 좋을 거 같아. 자막만 달고 초반 루즈한 부분 몇 초만 자르자. 그리고 영상 마지막에 내가 찾고 있다는 말 몇 마디 녹음해서 이어 붙이고.”

“네?”

모두가 눈을 껌뻑였다.

모두가 영문을 몰라 눈만 껌뻑이는 가운데, 이철중만 차분하게 물었다.

“그 사람이 영상을 보긴 할까요? 그 정도 실력자라면 탑밖에 관심 없을 텐데. 저희 구독자 중에 진지하게 공략에 임하는 사람들 없잖아요. 다 좆문가들인데.”

“혹시 모르지. 그 사람, 날 알고 있었잖아. 영상을 본다면 꼭 만나고 싶어. 나도 내 나름대로 그 사람 찾고 있는 중이고.”

“자, 잠깐, 잠깐. 언니, 찾고 있다고? 그게 무슨…… 언니 설마?”

신설아가 놀라 하며 이소영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이소영과는 다른 모습에 신설아는 조금 당황했다.

지금껏 이성에 관심이 전혀 없던 그녀라지만, 자신을 구해 준 상대에게 묘한 감정을 품는 건 말이 되는 이야기였으니…….

“풋! 무슨 생각을 하는 건데?”

“아니, 그, 언니도 그럴 수 있는 건 아는데…….”

이소영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이상한 착각하지 마. 당연히 최대한 노력해서 그 사람을 찾아야지. 우린 그 사람한테 목숨을 빚졌어. 처음에 우릴 도와주려고 했는데 우린 무시했지. 거기다 마지막에는 그 사람을 데스 시커의 제물로 던져 버렸어. 우리 정말 인간 쓰레기 짓 한 거야. 보답해야 해.”

“아, 응…… 맞아, 언니 말이.”

신설아가 숙연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의 일 때문에 신설아는 최근 악몽에 시달렸다.

물론, 반 정도는 데스 시커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지만, 나머지 반은 정체 모를 사내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건 비밀이지만…… 솔직히 모르겠어.’

이소영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리며 생각했다.

‘그냥, 솔직히 궁금한 것도 있어서. 그 사람.’

기절하기 직전에 들었던, 묘하게 친근했던 목소리.

그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쉽게 떠나질 않았다.

자신을 아는 걸까?

‘하지만 아는 사람 중에 그런 사내는 없었는데…….’

처음 보는 타인에게 이런 관심이 생기는 게 처음이었다.

팀원들은 1시간 정도 병실에 있다 떠났다.

떠들썩했던 병실이 조용해지자, 이소영은 창문 밖을 바라보다가 자신을 구해 줬던 사내의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보았다.

‘으음, 잘 기억이 안 나네.’

난처하게 고개를 휘휘 저은 이소영이 입을 다셨다.

못생긴 얼굴은 아니었지만, 왠지 우울한 듯 가라앉은 눈동자 말고는 특별히 기억에 남을 법한 얼굴은 아니었다.

‘다시 한 번 보고 싶은데.’

어디 가서 못생겼다는 이야기는 듣고 살지 않았으니, 그래도 보고 싶다고 하면 관심 정도는 가져 주지 않을까?

만약 관심도 주지 않으면 좀 우울해질 것 같은데.

‘아! 모르겠다!’

이소영은 눈을 감으며 침대에 털썩 누웠다.

* * *

“주인님.”

얼굴에 칼자국이 있는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이지?”

한 번 얼굴을 보면, 남녀를 불문하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 외모의 미남자였다.

그의 이름은 레오 뒤보아. 비밀리에 만들어진 킬러들의 연합체, 헬하운드의 총수였다.

“저번에 말씀하신 놈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잠깐, 이제 보스전이야. 조금만 기다려.”

레오는 소파에 깊게 몸을 파묻은 채 게임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쾌한 음악과 함께 게임기의 화면에 ‘HIGH SCORE’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레오는 그 화면을 만족스럽다는 듯 잠시 응시하다가 게임기를 뒤로 휙 던져 버렸다.

콰득!

벽에 부딪쳐 박살이 나는 고가의 게임기를 보며 사내가 물었다.

“주인님, 그렇게 즐겨 하시면서 왜 매번 클리어한 후에는 부수시는 겁니까?”

“별다른 이유 없어. 게임은 즐겨야 의미가 있지. 나는 한 번 끝낸 게임을 즐길 수 없을 뿐이야. 지금 막 내가 전 세계에서 최고로 높은 스코어를 기록했거든.”

“그럼 기록만 삭제하면 될 일 아닙니까. 굳이 게임기를 통째로 부수는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그냥. 나 돈 많잖아?”

레오는 정말 부서진 게임기에 일말의 아쉬움도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어 사내에게 물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지?”

“일전에 말씀드린 놈을 찾았습니다.”

“그래?”

“수련 중이셔서 보고가 늦어졌습니다. 사실 벌써 이틀 전에 7층에 들어섰습니다.”

“5층에서의 일이 한 달도 안 됐는데…… 괴물 같은 놈이군. 안 그래?”

마치 신나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레오의 새빨간 입술이 미소를 그렸다.

그를 보고 있던 사내는 마른침을 삼켰다.

레오는 그 애송이를 괴물이라 표현했지만, 그의 눈에 진정한 괴물은 다른 누구도 아닌 레오였다.

검은 탑을 오르기 시작한 지 3년 만에 10층까지 돌파하고, 몇 년 전부터는 7층에서 은거한 채 킬러들을 규합하는데 집중하고 있건만 육룡과 랭킹 2위의 자리에서 한 번도 떨어진 적 없는 괴물.

사실상 육룡을 제외하면 세계의 그 어떤 것도, 그 누구도 레오를 이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죽이는 걸 전제로 생각한다면…….

‘못 죽여. 아무도.’

레오는…… 불사신이다.

“죄송하지만, 한 가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

“뭘 알고 싶지?”

“놈에게 왜 그렇게 큰 관심을 갖고 계신 것입니까?”

레오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말했다.

“그냥. 재밌으니까.”

“재미 말씀이십니까……?”

“별거 아니야. 이제 육룡들이 질렸을 뿐인 거지. 클리어하진 못했지만…… 재미가 없는 게임 같거든.”

“…….”

게임? 질렸다고? 클리어?

육룡들과 있었던 살육전이 고작 레오에게는 그런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었던가?

“그래서? 어떻게 했지?”

“……일단 위치만 계속 파악하고 있습니다만, 언제 놓칠지는 모르겠습니다. 놈이 워낙 감이 좋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정체 모를 조직에서도 놈에게 붙은 것 같습니다. 그쪽은 정말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5층에서의 ‘그 사건’ 이후, 레오는 브라이언을 쓰러뜨린 의문의 사내에 대한 과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브라이언을 쓰러뜨린 사내가 모습을 숨겼거나 아래층으로 내려간 랭커거나, 랭커가 아니더라도 상층에 있는 헌터라고 예상했지만, 레오는 그 사내가 탑을 새롭게 오르고 있는 자라고 확신하는 듯 했다.

그렇기에 그 의문의 사내를 찾아내고자 레오는 7층 땅의 돌 주변과 필드로 나가는 동서남북 네 곳의 문에 수하들을 배치해 뒀었다.

그리고 정확히 이틀 전에 놈이 땅의 돌을 통해 나오는 것이 발견된 것이다.

‘굳이 시간 낭비를 하려고 아래층에 내려가 다시 오르는 게 아니면, 정말 처음으로 탑을 오르는 놈이라는 거겠지.’

레오가 물었다.

“조직이 있다고?”

“아마도 한국 정부 쪽 헌터들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애초에 미행을 하는 건지 의아할 정도로 조심스럽게요.”

“흐음.”

사내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사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는데 도착한 날 제 몬스터와 부딪쳤습니다.”

“흐음, 데스 시커였나. 요란스러운 이름이야. 그래서?”

“조금…… 실망스러운 결과였습니다. 결론만 말하자면 도망쳤습니다.”

“흐음.”

레오가 흥미롭다는 듯 콧소리를 내고는 입을 열었다.

“자세히.”

“네, 주인님. 7층 땅의 돌에서 나타난 바로 직후의 일입니다. 그 당시에 주위에 4인조의 팀이 하나 있었는데 그들을 도망치게 하려고 부딪친 모양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몇 번의 공방을 계속하다 몸을 돌려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도망쳤다고 한 거군.”

“예, 주인님.”

레오가 픽 미소를 지었다.

“역시 대단한 놈이군.”

“예?”

“모르겠나?”

레오가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네가 한 말이 사실이라면, 놈은 며칠 만에 필드를 돌파하고 보스전마저 치룬 후, 한 층 위의 필드로 곧장 진입한데다 네 몬스터와 부딪치기까지 한 거다. 그 와중에 헌터 팀을 도망치게 하고 놈 자신도 큰 피해 없이 도망치기까지 했지.”

사내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렇게 볼 수도 있는가. 아니, 이게 맞을 터다.

그렇다면…… 놈도 엄청난 실력자다. 어쩌면 육룡 이래로 등장한 가장 강력한 신진일지도 몰랐다.

“그렇군요. 그래서 그렇게…….”

“뭐가 걸리는 게 있는 것 같군?”

“이곳저곳을 들쑤시며 데스 시커에 대한 정보를 찾는 다는군요. 방금 전 받은 보고로는 필드에 나섰다고 합니다. 설욕전을 할 생각인 모양입니다.”

“그렇겠지. 충분히 잡을 실력이 있을 거야.”

“그럼…… 문제가 되지 않겠습니까?”

데스 시커는 이곳의 문지기나 마찬가지다.

쉽게 들키지 않을 곳에 은신처를 만들기는 했지만, 거의 일천에 가까운 사람들이 지내는 곳이기에 어쩔 수 없이 흔적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데스 시커가 주변을 돌아다니며 혹시 모를 헌터들을 쫓아내고 있다.

그런데 그 문지기를 놈이 잡을 수 있다면 이곳이 밝혀지는 것도 금방이리라.

거기다 데스 시커는 이렇게 가볍게 포기하기 아까운 개체기도 했다. 필드 몬스터에 불과한데 보스 몬스터급의 파워를 가진 놈이니까 말이다. 물론, 레오가 명령한다면 가차없이 버리기야 하겠지만 말이다.

“문제가 되면, 되면 되겠지. 그건 그것대로 재밌을 거다.”

“계획에 차질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슬슬 인원도 다 모였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시작하면 될 뿐인 일이야.”

“…….”

사내는 입을 다물었다. 여기서 그가 설득한다고 레오가 고집을 꺾을 리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물고 늘어진다면…… 그는 몸 성히 여기서 빠져나갈 수 없을지도 몰랐다.

레오는 그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이번에는 얼마나 즐길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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