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공략자들 57화>
검은 탑은 위험하기 짝이 없는 곳이긴 하지만, 동시에 무한한 가치를 가진 곳이기도 했다.
검은 탑의 환경은 대부분이 지구와 비슷하지만 그 안에는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는 수많은 물질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고농축 에너지원이라 불리는 각석이나 몬스터의 부산물은 표면적인 것일 뿐이었다.
일례로, 1층에서 발견된 ‘어떠한 독초’에는 인간의 면역력을 높여 주는 성분이 발견되었다.
4층의 암석 지대에는 지구의 레어 메탈과 비슷하거나 더 좋은 효율을 낼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되는 새로운 금속 원소가 발견되었다.
사업가도, 정치가도, 학자들도, 세계 전체가 검은 탑이라는 공간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검은 탑의 주권은 어디까지나 인간보다는 몬스터의 것이다.
그렇기에 최근 탑을 조사하기 위해 기업, 혹은 국가에서 헌터들을 모아 ‘공격대’라는 것을 만들고 있었다.
공격대는 검은 탑을 오르는 집단이란 부분에선 헌터 팀과 비슷하지만, 규모적인 부분에서도 추구하는 목적에 있어서도 성격이 다른 집단이었다.
한국에도 공격대가 있었다.
현재 한국의 공격대는 3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었다.
군 소속의 공립 공격대, 백호 공격대.
오성 그룹의 사립 공격대, 오성 공격대.
창천 그룹의 사립 공격대, 창천 공격대.
사실 여기에 국정원 소속의 공격대가 하나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돌고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공적으로 알려진 공격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강력한 것은 이 세 공격대였다.
그 중 가장 대우가 좋다고 알려진 것은 다름 아닌 오성 그룹의 오성 공격대였다.
검은 탑 관련 사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오성 그룹은 누구보다 먼저 공격대를 설립해 검은 탑 관련 조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제법 많은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쯧.”
그 오성 공격대의 대장이자 국내 몇 안 되는 랭커, 강성은 침대를 내려다보며 혀를 찼다.
그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 다름 아닌 이소영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하……. 오랜만이에요, 삼촌.”
“난 아니다만? 자주 유튜브로 자주 본다만?”
“윽…….”
“그렇게 인기 끌고 있는 헌터이자 스트리머인 이소영이 오성 그룹 따님인 걸 알면 기자들이 퍽 좋아하겠어. 그지?”
“으, 으윽…….”
강성은 이소영을 노려보다 픽 웃었다.
“에휴, 녀석아. 말도 좀 들어 처먹어야지. 혼자 사라질 땐 걱정 말라고 그렇게 다짐을 하더니. 내가 회장님한테 얼마나 까였는지 아냐?”
“미안해요. 저 때문에 아버지한테…….”
“그래, 좀 미안해해라.”
강성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을 이었다.
“에효……. 오성의 따님이 탑을 오르는 것도 말도 안 되는데, 7층까지 올라선 헌트리스라면 누가 믿기나 할까?”
그랬다.
이소영.
그녀는 다름 아닌 오성 그룹 회장의 세 명의 자식 중 하나였던 것이다.
“아버지가 걱정 많이 하셨죠?”
“말도 마라. 병원 선생들 멱살 잡으면서 닦달을 하는데 내가 다 부끄럽더라. 어휴…….”
“휴우. 스케줄 있어서 다행이네요. 언제 오신대요?”
“한 일주일 걸릴 거다. 그것도 일정 다 취소한다는 거, 한 비서님이 끌고 간 거다.”
“오빠들은…….”
“몰라, 그 시커먼 것들. 복수하겠다면서 탑 오르겠다고 깽판 피웠던 모양인데……. 그것도 한 비서님이 잠재웠다.”
“……한 비서님, 보너스 줘야겠네.”
“보너스는 무슨. 사실상 오성에서 회장님 다음인데.”
“쩝…….”
“한 비서님이 잠깐 보자고 하시더라.”
“윽!”
이소영이 눈가를 찌푸리며 울상을 지었다.
강성은 그걸 보며 픽 웃음을 흘렸다.
며칠 전, 이소영이 입원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했다.
이소영이 검은 탑에 오르기 시작한 지 딱 4년째였다.
아직 그룹의 규모가 그렇게 커지진 않았지만, 오성은 사실상 검은 탑 관련 사업을 독점하고 있다.
그렇게 빠르게 성장 중인 오성 그룹의 금지옥엽이 스트리머로 활동하면서, 거기다 검은 탑을 오른다니…… 재벌가의 위신과 권위가 있지, 아무도 믿지 않을 이야기였다.
‘공격대가 반쯤은 요 코딱지 호위하라는 이유였다면 더 아무도 안 믿겠지.’
강성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오성 공격대의 시작은 물론 그룹 차원에서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하지만 절차 같은 건 싹 다 무시하고 번갯불에 콩 볶듯이 빠르게 공격대가 만들어진 것은 다름 아닌 이소영 때문이었다.
뭐, 덕분에 다른 기업보다 빨리 검은 탑을 조사할 수 있었지만.
‘그런데 잠깐 눈을 뗀 사이에 몇 명이서 7층까지 돌파하다니.’
오성 공격대는 최근 2층과 3층에서 본사의 조사대를 호위하고 있다.
원래 이소영도 이곳에 속해 있었는데,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더니 팀까지 꾸려 버렸다.
“그래도 크게 다친 게 아니라서 다행이다. 난 또 어디 하나 못 쓰게 됐을까 봐…….”
“헤헤, 걱정하셨어요?”
“그래, 인마.”
“말했잖아요, 많이 안 다쳤다고. 잠깐 정신 차렸을 때 천문으로 확인했어요. 그래서 걱정하실까 봐 병원도 안 오려고 했는데…… 팀원들이 데려왔네요. 그냥 뼈 두 대 정도 부러지고 내장 좀 찢어져서 내출혈 있는 정도였어요. 중상도 아니라니까요?”
“……그걸 평범한 사람들은 중상이라고 한다만.”
“에이, 그게 무슨.”
“애가 탑을 오르면서 이상해졌어.”
강성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렇게 걱정하실 거면서 그냥 하고 싶은 거 하게 두라니 말이다.”
“아버지요?”
“그래. 그러면서 공격대는 공격대대로 만들게 하고……. 억지로 끌고 오겠다니까 자유롭게 하게 두라고 하고. 무슨 장단에 맞추라는 건지.”
“뭐…… 아버지잖아요.”
“…….”
매스컴에서야 이 회장이 흙수저 물고 태어나 혼란 속에서 그룹을 키운 입지전적이고 영웅적인 인물로 포장하지만…… 아는 사람은 알았다. 이회장의 ‘유별남’을.
“7층이면 할 만큼 했는데, 이제 그만둘 생각은 없냐?”
“당연히 없죠. 오를 수 있는 데까지 오르고 싶어요. 스트리밍도 물론 그만둘 생각 없구요.”
“어휴.”
“언니!”
드륵!
그때 병실의 문이 벌컥 열렸다. 신설아였다.
신설아는 반쯤 들어오다가 강성을 발견하고는 흠칫 놀랐다.
“죄, 죄송…….”
“괜찮습니다, 하하. 그래도 노크 정도는 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치 가면을 쓰듯 옆집 아저씨 같은 말투에서 신사 같은 젠틀한 말투로 변한 강성이 싱긋 웃었다.
“아, 마, 맞다. 노크.”
곧 다급하게 문을 닫고 나간 신설아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이소영과 강성이 서로를 바라보다 어색하게 웃었다.
“귀여운 친구구나.”
“믿음직한 동료기도 해요.”
“그럼 난 이만 가마.”
“네. 고마워요, 삼촌.”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쉬거라.”
“알았어요. 아, 그리고 부탁한 것 좀 해 주세요.”
“이미 하고 있다. 그런데 너무 막연해서 말이지……. 탑을 오르는 사람 중에 그런 사람이 한둘이냐?”
강성은 툴툴대며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서 기다리던 신설아를 보며 강성이 미소를 지었다.
“반가웠습니다. 들어가시죠.”
“아, 네, 네…….”
신설아가 고개를 푹 숙이자 강성이 귀엽다는 듯 픽 웃고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뒤에 있던 최민수와 이철중도 쭈뼛거리며 들어와, 고개를 숙였다.
“왔어?”
“……언니 저 사람, 강성 아니에요? 오성 공격대 대장!”
“맞아요! 언니! 진짜 뭐 하는 사람이에요? 설마…….”
“그래, 언니 이 1인실도 그렇고…….”
“됐거든? 알면 다쳐. 나 그냥 일반인이거든? 그리고.”
이소영은 평소처럼 농담으로 말한 거지만, 팀원들에게 그 알면 다친다는 말은 그렇게 농담으로 들리지는 않았다.
“와, 근데 여기 진짜 좋네. 무슨 호텔 같네. 올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야.”
“진짜 너는!”
주변을 둘러보는 최민수의 옆구리에 신설아의 팔꿈치가 꽂혔다.
‘억!’ 하고 비명을 지른 최민수가 옆구리를 끌어안으며 컥컥 숨을 몰아쉬었다.
신설아는 이소영의 앞에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몸은 어때요, 언니?”
“괜찮아. 그래도 완치되기 전까지 한 달 정도는 탑에 못 오를 거 같다. 미안해서 어떻게 하지?”
“에이, 미안하긴요. 오히려 저희가 억지를 부려서…….”
신설아가 이소영을 보며 고개를 푹 숙였다.
“너희는 좀 괜찮아?”
“저희야 괜찮죠. 언니 회복할 때까지는 5층 아래쪽 필드에서 간간이 벌이만 할 생각이에요.”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이야?”
“그건 제가 설명드릴게요. 으윽!”
그때, 최민수가 한 발자국 다가오다 옆구리를 끌어안으며 표정을 찡그렸다.
“야! 너 무슨 엄살이 그렇게 심해!”
“너, 씨, 힘 스테이터스 몇이야! 보통 100 넘는 스테이터스로 사람 치면 죽거든!”
“……지금 나보고 힘세다고 한 거야?”
“……!”
“시끄러워. 그만 떠들고 본론으로 들어가.”
이철중이 낮은 목소리로 제지하자, 그제야 최민수가 투덜거리며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여기요. 이것 때문에 왔어요.”
“폰은 왜?”
“이 안에 부서졌던 카메라의 영상이 담겨 있으니까요.”
이소영이 눈을 빛냈다.
“복원했어?”
“네, 보시겠어요?”
이소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최민수가 영상을 재생했다.
콰앙! 콰앙!
영상의 질은 굉장히 안 좋았다.
초점이 맞춰졌다 흐려지기를 반복했고, 영상이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거친 폭음과 충격파와 함께 캠이 땅바닥에 떨어지며 화면이 기울고 금이 생기기도 했다.
하지만 이소영은 눈을 가늘게 뜨며 영상에 집중했다.
영상에는 집채만 한 몬스터인 데스 시커를 맨손으로 상대하는 헌터의 뒷모습이 비쳤다.
“엄청 빠르잖아?”
이소영은 중얼거렸다.
직접 볼 때는 실감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잔상만 남기며 어디선가 훅 나타난 사내는 데스 시커의 속도와 비슷한…… 아니, 그보다 더 빠르게 몸을 놀리며 데스 시커를 상대했다.
그가 주먹을 휘두를 때마다 새하얀 빛무리가 흘러나오는데,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모습이었다.
이소영이 말했다.
“이 사람, 혹시 랭커일까?”
아니, 확실하게 랭커다. 그것도 최상위권의.
한국에도 수는 적지만 랭커는 있다.
이소영도 세계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렇게 높은 수준은 아니지만, 국내에선 아슬아슬하게 두 자리 수 안에 드는 실력을 갖고 있기도 했다.
“그건 아닐 거예요, 언니. 한국인 랭커가 딱 10명 있는데 맨손인 사람은 한 명도 못 봤어요. 혹시나 해서 어제 1층의 땅의 돌에서 확인도 했는데 변동된 것도 없었구요. 그러니까 한마디로, 이렇게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데 레벨이 낮다는 걸 거예요.”
“말도 안 돼. 레벨이 낮은데 이럴 수 있어? 이건 거의 육룡에 버금갈 정도야!”
이소영이 화면을 가리키며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