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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56화 (56/266)

# 56

<공략자들 56화>

인한이 다급하게 땅을 박찼다.

쐐애애액!

하지만 데스 시커의 팔뚝은 이미 인한이 막을 수 없는 위치까지 휘둘러져 있었다.

‘안 돼…….’

이소영은 멍한 눈으로 자신을 향해 휘둘러지는 데스 시커의 두꺼운 팔뚝을 바라보았다.

시간이 느려지기라도 하는 건지, 아니면 주마등인 건지, 머리 위로 드리워지는 데스 시커의 흉악한 손톱이 두 눈에 들어온다.

‘말도 안 돼…….’

그랬다. 정말 말도 안 됐다.

혹시 꿈이 아닐까?

탑에서는 잠자리가 좋지 않아서 언제나 엎드려 자느라 꿈자리가 사나웠는데. 이것도 꿈이 아닐까?

만약 꿈이었으면…… 얼른 깼으면 좋겠다.

“언니!”

콰앙!

찰나의 순간에 검을 들이민 것은 거의 본능적인 행동일 것이다.

이소영의 검이 산산조각 나, 허공에 파편을 흩날렸다.

체공한 채로 핏물이 한 줄기 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이소영의 몸을 인한이 간신히 받아 냈다.

“쿨럭!”

인한은 다급히 이소영의 상처를 살폈다.

‘다행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검을 밀어 넣어 조금이나마 충격을 막은 덕분인지 눈에 띄는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몸 안쪽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쿨럭…….”

이소영이 피를 게워 냈다.

누군가가 자신을 받아 냈는데, 시야가 뿌옇게 변해서 그게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내가 결정을 잘못했어!’

이소영은 절망감에 눈물을 흘렸다.

뿌연 시야에 신설아와 최민수에게 달려드는 데스 시커의 모습이 보였다.

데스 시커를 막을 힘이 신설아와 최민수에겐 없다.

‘내가 가야 한다!’

이소영은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그때.

“늦게 도와줘서 미안하군. 하지만 지금은 가만히 있어.”

털썩!

어딘가 무게가 느껴지는 한마디의 말과 함께, 이소영은 자신의 몸을 지탱하던 무언가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동시에 그 무언가가 바로 옆을 빠르게 지나갔다.

콰아아앙-!

충격파에 대기가 비명을 질렀다.

이소영의 눈이 서서히 크게 떠졌다.

‘맨손으로?’

그녀의 눈에, 무기도 갑옷도 없이 맨손으로 괴물을 상대하고 있는 사내의 모습이 비췄다.

* * *

“……!”

인한이 교차시킨 두 팔로 데스 시커의 팔뚝을 막아선 채 신음을 흘렸다.

생각 이상으로 일격이 무거웠다.

끼긱, 끼긱.

팔뚝에 기분 나쁜 소리가 들려왔다.

콰앙!

또다시 치고 들어오는 후속타를 피해 내며 인한이 외쳤다.

“팀원 챙겨서 꺼져!”

“어, 윽?”

하지만 신설아와 최민수는 정신을 못 차리고 멍한 눈으로 인한을 볼 뿐이었다.

인한이 혀를 차고 다시 한 번 외쳤다.

“다 죽고 싶어? 빨리 들고튀라고!”

“가, 감사…….”

먼저 냉정함을 되찾은 건 신설아였다.

신설아는 옆에 있던 최민수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했다.

신설아가 먼 곳에 눕혀 있는 이소영을 챙기고, 최민수가 나무에 기대어져 있던 이철중에게 다가갔다.

콰앙! 콰앙!

그 순간에도 데스 시커가 미친 듯이 공격을 퍼붓고 있었다.

지면에 파괴적인 흉터가 그려지고, 주변에 있던 나무들이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운 좋게 생각해. 이소영 아니었으면 안 도와줬으니까.’

짧은 인연이지만, 같은 길드원이었다.

‘오늘 정말 재수 옴 붙었군. 시발.’

-크르르륵!

인한이 주먹으로 놈의 꼬리를 쳐 내고, 휘둘러진 팔뚝을 피했다.

인한은 이를 으득 갈았다.

떨어진 체력, 부족한 마력.

조금만 휴식을 취했다면, 극체술을 운용할 시간이 있었다면.

‘아니, 아니야. 핑계다.’

말 그대로다.

지금의 자신은 마력에 너무 많은 걸 의존하고 있다.

더 정확히는, 마력을 너무 소모적으로 사용한다.

사용한 마력을 다시 회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극체술은 깊은 산과 같은 마나 스킬.

인한의 실력이 부족했기에 극체술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다.

‘일단 지금은!’

인한이 찍어 내리듯 팔을 휘두르는 데스 시커에게서 몸을 뺐다.

그때쯤 뒤쪽에서 신설아의 외침이 들렸다.

“다, 당신도 도망쳐요! 지금 어떻게 하게요!”

그래도 양심은 있는 건지 자신을 걱정해 준다.

인한은 힐끗 데스 시커를 보고 목청을 높였다.

“나까지 도망치면 다 죽어! 어서 도망쳐!”

쿠웅-!

데스 시커가 입을 쩍 벌렸다.

‘또 기름이냐!’

알면서도 당해 줄 생각은 없었다.

인한이 전광석화처럼 지면을 박차, 놈의 턱에 니킥을 꽂았다.

-크으르르흑!

뿜어내던 기름이 억지로 삼켜진 탓인지, 데스 시커의 목울대가 꿀렁였다.

인한은 곡예처럼 데스 시커의 아가리를 발로 차서 거리를 벌리며 지면에 착지했다.

“후욱, 후욱.”

인한은 뜨겁게 달아오른 숨을 내뱉었다.

그렇게 몸을 움직인 것도 아닌데 전신이 축 늘어질 것처럼 피곤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으로 따지면 며칠간 쉬지 않고 필드를 횡단하고, 5시간 정도 메인 던전을 공략하고, 고작 2시간 전에는 보스전까지 치룬 셈이었다.

그러고 나서 곧장 보스에 준하는 몬스터와 싸우게 된 것이다.

인한은 주변을 한 번 훑어보고 숨을 내쉬었다.

‘어쭙잖게 도와준다고 설치지 않은 건 고마운데…….’

남았으면 성가셨겠지만, 아무리 자신이 도망치라고 했어도 지들만 쏙 내뺀 게 괘씸했다.

뭐, 그거야 그렇고.

‘마력이라니…….’

인한은 붉은 빛이 은은히 맺혀 있는 데스 시커의 비늘을 바라보았다.

몬스터는 의식적으로 마력을 움직여야 하는 헌터와 다르게 태생부터 마력을 품고 태어난다.

언뜻 들으면 좋을 것 같지만, 의식적으로 마력을 축적하기에 그것을 다룰 수 있는 인간과 달리, 몬스터들에게 마력은 피처럼 당연하게 몸에 흐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할 줄 모른다.

간혹 마력을 사용하는 몬스터도 있지만, 적어도 최하층 구간에서 나오진 않아야 했다.

-크르어어어!

데스 시커가 다시 한 번 달려들기 시작했다.

인한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파공권!’

꽈르릉!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데스 시커가 몸을 휘청였다.

적은 마력이지만 이미 인한의 힘 스테이터스는 궤도에 오른 상태였다. 거기다 상위 스킬들까지.

마력이 없어도 인한은 충분히 강했다.

“응?”

추가타를 날리려던 인한이 주먹을 휘두르다 말고 눈을 커다랗게 떴다.

데스 시커의 목 쪽에서 빛을 발하는 기묘한 문양이 보였다.

처음에는 마력이 연소되는 빛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마력의 빛과는 느낌이 달랐다.

‘설마?’

인한이 경악했다.

‘각인? 테이밍한 몬스터인가!?’

-크라라아아!

인한이 그 문양에 한눈이 팔린 사이, 데스 시커가 파공권의 충격을 해소하고 거리를 벌렸다.

하단을 노리며 휘둘러지는 꼬리에 인한이 다급하게 뒤편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크르르…….

‘한눈팔다 기회를 놓쳤어.’

방심한 순간을 노리려 했는데, 그만 틈을 주고 말았다.

놈은 이제 완전히 인한을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히든 클래스 ‘테이머’의 각인을 눈앞에서 봤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안 되겠다.’

인한은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벗어나는 쪽으로 결심했다.

“후우…….”

인한은 숨을 길게 내쉬며 마력량을 점검했다.

마력량은 총량의 10퍼센트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이 정도면 어떻게든…….”

인한은 중얼거리며 자세를 잡았다.

데스 시커가 긴장을 더하며 인한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인한이 취한 자세는 전투를 위한 자세라기보다는…….

쾅!

인한의 몸이 데스 시커의 반대쪽 방향으로 쏘아졌다.

육상 선수들이 달리기 직전에 취하는 자세였다.

인한이 몸을 획 돌려 땅을 박찼다.

타오르던 투지는 어디 가고, 등을 돌린 채 몸을 날렸다.

인한이 발을 뻗을 때마다 흙더미가 뒤쪽으로 후드득 튀어 올랐다.

순간 움찔해서 반응이 늦었던 데스 시커가 멍하니 눈을 껌뻑이다가.

-그르어어어어!

굉음을 지르며 인한의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이소영은 몸이 위아래로 흔들리는 걸 느끼며 서서히 눈을 떴다.

“어, 언니? 괜찮아? 뭐라도 말해 봐!”

그러나 이소영은 고막이 터진 건지, 아직 정신을 덜 차린 건지 잘 알아듣질 못했다.

한참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이소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떻게…… 된 거……야.”

“흐엉! 언니, 우리 살았어…… 흑흑!”

신설아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

이소영은 그제야 자신이 최민수의 등에 업혀 있다는 것, 분명 기절했던 이철중이 옆에서 같이 뛰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어떻게?’

상황 파악이 잘 안 됐다.

머리를 송곳으로 콕콕 쑤시는 듯한 두통에 생각이 뚝뚝 끊겼다.

‘내가 왜 업혀 있는 거지……?’

자신이야 그렇다 치고, 동료들까지 만신창이다.

그 순간, 이소영은 목전에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욱!”

고개를 돌려 땅바닥에 토악질을 하자, 새빨간 핏물이 쏟아졌다.

팀원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언니!”

“누님!”

“괜찮아. 오히려 조금 시원해졌어.”

기분은 안 좋지만, 피를 토해 내고 나자 정신이 맑아졌다.

그제야 이소영은 하나둘씩 지금 상황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한국인 청년, 그리고…… 데스 시커.

이소영의 눈이 점점 커다래졌다.

“어떻게 된 거야!”

“악! 누님! 흔들지 마요!”

“잠깐 멈춰 봐.”

“안 돼요, 도망쳐야 해요. 놈이 따라올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그럼 이대로 말해. 어떻게 된 거야?”

“그건…….”

“언니.”

훌쩍이던 신설아가 눈을 소매로 벅벅 비비고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 그 우리가 무시했던 사람…….”

“응……?”

머릿속을 스치는 기억의 편린.

한 사내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사람이 도와줬어…… 훌쩍! 데스 시커를 그 사람이 혼자 막고, 우리보고 도망치라고…….”

“뭐?”

“그래서 제가 철중이 챙기고, 설아가 누님 챙겼어요.”

“그, 그게 무슨…….”

그건…… 그건 그야말로 제물로 던진 게 아닌가!

“도, 돌아가야 해!”

“안 돼요! 우리 다 죽어요! 그리고 그 사람…… 강했어요. 도대체 어떻게 한 건진 모르겠는데 데스 시커의 공격을 맨몸으로 몇 번이고 막아 냈어요.”

물론 그건 이소영도 봤다.

그렇다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을 뒤에 두고 오다니?

“그래도! 도움을 받았는데…… 윽!”

이소영은 무슨 말을 하려다 갑자기 전신을 짜르르 울리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언니!”

팀원들의 표정이 또 한 번 일그러졌다.

“빠, 빨리 1층으로 가자. 제길! 땅의 돌은 층수가 벌어질수록 오래 걸리는데…….”

“조세프가 효과가 없는 거 같아.”

“큰 벼, 병원으로 얼른. 타, 탑에서 가까운 대학 병원이 어디지……? 아, 이, 일단 119 불러야 하나!?”

이소영은 급속도로 정신이 흐려지는 걸 느끼면서도 애써 말을 이었다.

“어서 그 사람…….”

“누나! 그만 말해요!”

“으윽.”

이소영은 결국 정신을 잃었다.

신설아가 당황해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어, 언니!? 잠깐 멈춰 봐!”

“여기서 쉬면 정말 못 돌아가! 해도 지고 있다고! 빨리 뛰어야 해!”

우물쭈물하던 신설아가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소영 팀은 결국 필드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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