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53화 (53/266)

# 53

<공략자들 53화>

“무슨 일이죠?”

“헌터 관리법을 아십니까?”

“예, 압니다.”

“등록을 안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위법이란 말씀입니다.”

상당히 고압적인 어조였다.

인한의 눈썹이 꿈틀댔다.

“아직 등록 마감까지 날짜가 제법 남았을 텐데요.”

“일반적인 경우엔 그렇지요.”

“일반적인 경우?”

“뉴스를 제대로 보지 않은 모양이군요. 연락이 갔을 텐데…… 받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인한 씨의 경우는 특별합니다. 현재 5층을 넘어선 헌터들의 경우엔 3개월 이내에 신고하도록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요?”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지금 이곳에 계신 것만으로도 위법이란 소리죠.”

사내가 싱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말이 미소지, 무언의 압박이었다.

인한이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딱히 인한이 아나키스트인 건 아니다.

아니, 어쩌면 그럴 지도 모른다. 세계의 끝을 본 인한으로선,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를 아는 인한으로선 그런 것들이 같잖게 느껴지니까.

거기다 법이 법 같아야지. 안 그래도 보스존 뚫고 오느라 피곤해 죽겠건만…….

“잠깐 동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자, 이쪽으로.”

인한은 우두커니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김문석이 눈을 껌뻑였다.

“뭐 하시는…….”

“간다고 한 적 없는 것 같습니다만.”

“다시 말씀드리지만…….”

“등록, 여기서 하시죠. 저도 바쁜 사람이라.”

김문석의 표정이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하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하, 그렇군요. 사실 대외비로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나눠야 할 필요가 있어서요. 그리고 아무리 헌터라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으로서, 의무와…….”

인한은 구구절절 흘러나오는 대사를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연기 참 잘하네.’

인한은 이자의 정체를 알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 실제 소속을 알고 있다고 할까.

탑 관리부 같은 곳에 속해 있을 리가 있나.

공무원인 것도 속인 거라면 모르겠지만, 만약 국가에 소속된 관리라면 답은 하나다.

국가 정보원 소속 공격대, 불가살이.

‘너희들 수법 내가 다 안다, 쓰레기들아.’

탑 초창기 때부터 악명 자자했던 조직이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무래도 아직 여러 가지가 시작 단계에 있기 때문에…….”

“일단 이야기는 들어 보죠.”

“감사합니다.”

사내가 싱긋 웃었다.

* * *

‘그래, 한 실력 한다 이거지.’

김문석은 인한을 살피며 눈을 빛냈다.

안정된 발걸음에 규칙적인 호흡. 거기다 풍기는 기세 또한 만만치 않다.

‘그래 봤자 일반적인 헌터지. 이쪽에는 랭커가 있어.’

랭커.

전 세계에서 탑을 오르는 헌터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헌터들을 의미한다.

랭커는 진정한 의미의 초인들이다.

특이한 능력, 숙련된 기술, 타고난 감각들을 가진 자들만이 랭커가 되었다.

‘요즘 자이언트라고 불리면서 조금 인기 있다고 코가 높아진 거 같은데. 어디, 언제까지 그렇게 있나 보자.’

몬스터 웨이브에 의해 많은 것들이 무너졌다고 한들, 지금은 21세기다.

수많은 목격담, 소문처럼 도는 이야기, 전국에 가득한 CCTV, 유튜브의 영상 분석…… ‘최인한’이라는 사람이 자이언트이며, 세계를 뜨겁게 달군 유튜브 영상의 주인공이라는 걸 특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하지만 의아하단 말이지. 분명 그 전까지의 기록을 보면 딱 평범한 대학생, 그 이하도 이상도 아니었는데…… 딱히 운동에 소질도 없었고, 공부도 그럭저럭이었고…… 탑을 오르고 갑자기 이렇게나 강해졌다? 거기다 사실상 랭커보다 네임 밸류가 높아질 정도였고.’

그뿐이 아니다.

최초의 튜토리얼 공략자부터 시작해서, 유튜브 채널에 올린 정보들도 하나같이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대단한 것들뿐이었다.

“그런데, 대화를 한다면서 상당히 으슥한 곳으로 데려가시는군요. 누가 보면 남산 데려가는 줄 알겠습니다.”

“남산…… 이요?”

“왜 그렇게 긴장하십니까? 농담입니다만.”

김문석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설마? 아니, 아니야. 농담이겠지.’

김문석은 힐끗 인한을 바라보았다.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인한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싸가지 없는 새끼. 내가 저놈 삼촌뻘인데…….’

결국 도착한 곳은 마을에서 별로 떨어지지 않은 필드의 한구석이었다.

인한이 조소를 흘렸다.

‘필드에선 얼마 안 떨어졌다고 해도, 뒤로는 높은 오르막길이 막고 있고, 양옆으로는 숲이고…… 누가 도와줄 수도, 도망치기도 애매한 자리군.’

여기가 탑만 아니라면 데이트하러 오기 딱 좋은 장소겠지만…….

“자, 그럼 이쯤에서…….”

“본론만 말하고 끝냅시다. 이거 끝나고 바로 필드로 나가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사실 저희는 탑 관리부에서 찾아뵌 것이 아닙니다.”

“계속하시죠.”

“여기, 제 정식 명함입니다.”

새하얀 바탕에 김문석이란 이름 석 자, 메일 주소와 번호만 적혀 있는 명함이었다.

“전 국정원 소속의 요원입니다.”

“국정원 요원은 이런 명함 안 주는 거 아닙니까?”

“필요한 경우가 있어서 말이죠. 지금 같은 순간 말입니다.”

“흐음. 그렇군요.”

심드렁한 표정의 인한이 명함을 아무렇게나 허공에 던졌다. 인벤토리로 들어가는 명함.

다소 무례한 행동에 김문석의 눈가가 꿈틀댔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갈무리하더니 다시 차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그래서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국정원에 들어오시죠. 그러면…….”

이럴 줄 알았다.

인한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싫습니다.”

“면세 혜택과 대기업 공격대가 아쉽지 않은 고액 연봉…… 예?”

“거절하겠습니다. 원래 정체 밝히신 것 보니까 등록도 굳이 본론이 아닌 듯한데, 그럼 이만.”

“자, 잠깐만요.”

몸을 돌리는 인한의 앞을 김문석이 가로막았다.

“이야기는 끝까지 들어 보시지 그러십니까. 나쁜 제안은 아닐 텐데요.”

“기껏해야 나오는 얘기는 돈 많이 주고 편하게 살게 해 주겠다는 이야기인 것 같군요. 죄송하지만 혼자일 때가 편하고, 돈은 지금도 충분히 벌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인한은 그렇게 말을 끝내고 다시 몸을 돌렸다.

김문석은 순간 넋을 놓고 있다가 인한의 어깨를 움켜쥐었다.

“잠깐.”

“대체 왜 이렇게까지 날 잡으려 그러는 지 모르겠군요. 내가 어느 정도 가치 있다는 건 부정하지 않겠지만,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정도입니까?”

“당연하죠.”

김문석이 잔뜩 긴장한 채 말을 이었다.

“인한 씨는 탑에 대해 굉장히 많은 걸 알고 있죠. 그렇죠?”

“……그렇다면?”

“저흰 인한 씨를 굉장히 높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아는 것뿐 아니라, 자이언트라고 불릴 정도의 뛰어난 실력까지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알고 있으니까요.”

인한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밝혀진 상태였군.’

굳이 숨기지 않았으니 금세 밝혀질 줄은 알았지만, 영상이 올라간 것도, 자이언트라고 불리기 시작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두 개가 동시에 나온 건 꽤 놀라웠다.

“좋게 봐 주는 건 고맙군요. 하지만 그래도 안되겠습니다. 어디에 속해 있는 건 힘들어서요.”

김문석이 미간이 꿈틀댔다.

‘대우해 주니까 머리끝까지 기어 오려고…… 후우.’

김문석이 인한의 어깨를 쥐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

“저기요, 인한 씨.”

“예, 말씀하시죠.”

“헌터는…… 아니, 헌터들은 위험합니다. 그냥 내버려 둘 수 없죠. 어린아이에게 총을 쥐어 준 격입니다. 당연히 규제가 필요하고, 그 규제로 부족하기에 국가가 통제하겠다는 겁니다. 그런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응당 국가에 헌신하고 충성하며, 국민을 위해 봉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인한이 눈을 껌뻑였다.

순간 넋을 놓았던 인한이 짜증 섞인 어조로 말했다.

“뭐라구요?”

“왜 그러시죠? 제가 무슨 이상한 말이라도 했습니까? 그런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국가의 위상을 위해서 헌신하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 텐데요.”

“제가 왜요?”

심각한 가치관의 차이를 느꼈다.

국가에 충성하고, 헌신하고, 봉사하라?

좋은 말이다. 그리고 맞는 말이고.

하지만 그건, 국민이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지 강요받아야 할 것이 아니다.

“싫습니다만.”

“하하! 인한 씨가 아직 어려서 잘 모르나 본데, 제가 나이 조금 더 먹었으니까 한마디 하죠. 대한의 자식으로서 나라에 충성하는 건 결국…….”

“그렇죠. 필요할 때 내 아들, 뭔 일 터지면 남의 아들일 뿐이지.”

“뭣…….”

“몬스터 웨이브 사태 때 방공호에 틀어박혀서 헌터가 되는 것과 잔재한 몬스터 처리하는 것을 권장했었던 자들이 지금은 힘겹게 얻은 힘을 규제하려고 하는군요.”

김문석이 미소를 지었다.

“아, 그 일 말이군요. 그걸로 몬스터 세대들이 기성세대들을 더욱 싫어하게 된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벌써 정권이 몇 번이나 바뀌었는데요.”

몬스터 세대. 몬스터 웨이브 이후의 신세대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인한이 조소했다.

“정말 바뀌었다면, 지금도 이렇게 억지로 잡고 있지 않겠죠.”

인한은 그 말을 끝으로 정말 몸을 돌렸다.

김문석이 다시 한 번 앞을 가로막으며,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부디 현명하게 선택하시죠. 굳이 과격한 방법은 쓰고 싶지 않으니까. 이곳에 저만 있을 것 같습니까. 당신을 고문해 정보만 빼내도 저희는 별로 상관없어요. 대신 아까운 인재를 잃게 될 테니까 이런 귀찮은 방법을 사용한 겁니다.”

“본색을 드러냈군.”

인한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애초에 과격한 방법 안 쓸 생각은 있었나? 나무 뒤에 두 명, 돌 뒤에 한 명, 땅 밑에 한 명, 에이 저건 너무 티 나네. 한 2, 300미터 정돈가? 스나이퍼까지. 인원 배치 다 해 놓고.”

김문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 눈치챘다고?’

인한이 싸늘한 눈으로 김문석을 응시했다.

“경고하는데, 날 건들지 마. 난 당신들 불가살이를 굉장히 싫어하니까.”

“어, 어떻게 그걸! 네놈, 설마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접근한 거냐!”

김문석이 이를 악문 채, 뒤로 몸을 띄우며 외쳤다.

“시작해!”

“어딜 혼자 내빼려고.”

“컥!”

어느새 거리를 좁힌 인한이 김문석의 목덜미를 잡아챘다.

채 몸을 날리기도 전에 땅바닥에 쓰러진 김문석이 두려움에 찬 눈으로 인한을 올려다보았다.

“말했지,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윽! 이, 이거 놔!”

김문석도 국정원 요원이고, 거기다 노련한 1세대 헌터다.

애초에 어떤 성향의 인물인 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다는 것부터가 개인의 무력에 자신이 있어서였다. 있어서였는데…….

“당신들이 먼저 시작했어.”

우드드득!

팔을 놓게 하려고 김문석이 휘두른 주먹은 돌덩이에 휘두른 듯 튕겨 나가고, 인한이 휘두른 주먹은 마치 각설탕이라도 부수듯 간단하게 김문석의 어깨뼈를 박살 냈다.

“크아아악!”

타아아앙!

그 순간 어디선가 총성이 들려왔다.

인한이 피식 웃더니 허벅지를 손으로 툭툭 털었다.

팅!

우그러진 탄환이 땅바닥을 굴렀다.

김문석이 경악했다.

“어, 어떻게……?”

총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라도 되는 것인가!

“준비한 거 있으면 지금 다 꺼내. 아니면 너흰 오늘 사지 멀쩡하게 돌아가지 못할 테니까.”

“건방진 애새끼…… 크으윽!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가…… 좆같은 능력 좀 있다고…… 랭커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냐? 크크큭!”

“랭커?”

인한이 힐끗 한 곳을 바라보았다.

한 사내가 검을 뽑아 들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확실히, 풍겨 오는 위압감이 다른 자들에 비해 월등했다.

‘그런데…….’

의아했다.

인한은 현재 랭커가 아니다. 땅의 돌에서 확인해 보았지만 랭킹 안에는 들지 못했다.

그렇다는 건 저 랭커라는 자가 인한보다 강하다는 건데, 도저히 그렇게 보이진 않는다. 지금은 마력량도 체력도 상당히 떨어져 있는 상태인데도 그랬다.

“하하! 넌 좆된 거……!”

“시끄러워, 꼰대.”

인한이 김문석의 정강이뼈를 지그시 밟았다.

“끄으으으으으윽!”

우드득!

다리뼈가 바스러지며 연체동물처럼 축 늘어졌다.

그 충격을 도저히 버티지 못했음일까. 김문석이 신음을 흘리다 기절해 버렸다.

“흐음.”

인한은 김문석을 옆으로 던져 버리고 주위를 살폈다.

이 주변을 포위하고 있던 자들이 하나둘씩 접근해 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인한은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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