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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51화 (51/266)

# 51

<공략자들 51화>

* * *

“안 알려 줄 거지만.”

인한은 탑 안으로 들어왔다.

몇 개의 영상을 더 찍어서 인벤토리에 쟁여 두고, 가끔 밖으로 나가 영상을 올릴 생각이었다.

인한이 두뇌파 헌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완전 바보는 아니다.

믿을지 안 믿을지야 모르는 마력은 제외하고, 히든 던전과 튜토리얼에 대한 정보를 뿌렸는데 그냥 그렇게 끝날 거라는 태평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건들겠지.”

거기다 다음 영상 예고도 날렸다. 그냥 넘어가 주면 물론 그거야 고맙지만 굳이 경계하지 않고 있다가 뒤통수를 맞긴 싫다.

“미래에 탑의 정보로 얼마나 심각한 일들이 많았는데.”

좋은 예가 시작의 신전이었다.

시작의 신전이 발견되고, 그 정보를 뿌리려던 최초 발견자가 소리소문없이 사라진 사건이 있었다.

덕분에 그러한 곳이 있다는 것만 알려지고, 한참이 걸려서야 시작의 신전이 알려졌다.

탑에서의 정보는 곧 강함으로 이어진다.

강함은 곧 돈으로 이어진다.

돈이 엮이면,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법이었다.

그래서 탑으로 들어왔다.

탑은, 일단 넓다. 그리고 CCTV든 휴대전화든 뭐든 문명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위치를 찾기가 힘들다.

무엇보다 인한은 홀로 활동하기에 더더욱 그렇다.

인한은 시작의 마을에 오자마자 김만춘을 찾아갔다.

“……미쳤지?”

“하하, 들으셨군요.”

“그럼 모르겠냐?”

몇 마디 이야기가 오고 갔다.

왜 그런 멍청한 짓을 했냐, 네가 무슨 자선사업가냐 등등.

“에휴, 난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부터 정보를 다 뿌릴 생각이냐?”

은근슬쩍 물어보는 어투.

인한도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건 말씀드리기가 조금 조심스럽네요.”

인한은 김만춘의 표정을 살폈다.

무덤덤해 보이지만…….

‘뭔가 이야기가 있었군.’

표정에 은근함이 섞여 있었다.

오성 그룹 쪽에서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전생의 김만춘이었다면 인한에게 사정을 말해 주며 솔직하게 이야기했을 테다.

‘조금 섭섭하지만…….’

어쩔 수 없다. 지금의 김만춘은 만난 횟수로는 다섯 번이 안 되는 사이니까. 형님 동생 한다지만 그것도 그냥 형식적이고.

김만춘의 입장에서는 위에서 정보 좀 캐라고 해도 양심까지 갈 것도 없을 테다.

“그건 그렇고, 네가 말한 것들 의외로 빨리 구해졌다. 거기다 양도 조금 오버된 것들이 많아. 얼른 셈이나 하자.”

“벌써 구해졌습니까?”

족히 한 달은 걸릴 거라 예상했다. 탑 밖에 다녀온 시간은 고작 2주 정도고.

“넌 모르겠지만 몸뚱이만 있고 돈은 벌고 싶은 미친놈들이 한둘이 아니다. 거기다 몬스터 상대도 아니고, 풀 쪼가리 좀 구해 오고 몇백씩 챙길 수 있으면 누구나 하겠지.”

“그래서, 총 얼마입니까?”

“2억 좀 안 돼.”

“싸게 먹혔군요.”

“……보약 만드는 데 2억이 싸게 먹힌다는 놈은 너뿐일 거다. 그리고 우리 쪽에서 매입하는 쪽으로 이야기를 진행했다. 네가 사기만 하면 실적 좀 뽑아낼 수 있지. 흐흐!”

김만춘은 인한이 말한 것들을 테이블에 쭉 나열했다. 확실히 인한의 예상보다 양은 많았다.

물론 많아서 문제 될 건 없었다. 적으면 문제가 되지.

“그런데 이걸 어떻게 해서 보약을 만드냐? 독 있다고 뜨는 것도 있던데.”

“그게 다 방법이 있습니다, 형님.”

인한은 셈을 하고 밖으로 나왔다.

입에 담배를 문 김만춘은 인한을 배웅하며 물었다.

“다음엔 또 언제 올 생각이냐?”

“아마도…….”

인한은 피식 웃었다.

“랭커가 된 후일 겁니다.”

* * *

마나 스킬의 원리는 이러하다.

검은 탑 안에는 마나가 분포되어 있다.

생물과 비생물을 가릴 것 없이, 존재하기만 한다면 식물에도, 동물에도, 광물에도 구분 없이 섞여 있다.

당연하지만, 공기에도 마나는 섞여 있다.

사람은 들숨을 통하거나 탑의 것을 먹어 마나를 체내에 들여보낸다.

하지만 어떤 과정도 거치지 않은 마나는 체내에 머물지 못하기에 날숨이나 소화 작용을 통해 바로 빠져나간다.

이 과정은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음식을 입에 넣자마자 뱉는 것과 같다.

그렇다면 음식을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음식의 영양소를 제대로 흡수하고자 한다면?

턱을 움직여 음식을 씹고, 목구멍을 열고, 식도로 삼키는 과정과, 그 과정을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여러 기관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어째서인지 마나를 받아들이고 그것을 사용할 수 있는 ‘기관’은 있지만, 소화기관처럼 자연스레 마나를 ‘소화’할 수 있는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그 기관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나 스킬이 필요하다.

마나 스킬은 인간이 기관을 움직일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거기다 단순히 마력을 받아들이는 것뿐 아니라 자유자재로 사용하고 활용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마력의 축적이다.

보통은 이 마력을 축적하는 행위를 스테이터스 포인트나 마나 스킬을 통한 호흡으로만 행해졌다.

하지만 누군가 의문을 제기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마나란 공기에만 있는 게 아니라 생물에도 있는데? 먹는 걸로도 마나를 섭취할 수 있지 않을까?

마나를 많이 품고 태어나는 풀이 있다.

독이 있지만 그 풀의 효과를 높여 주는 열매가 있다.

어떤 몬스터의 간은 마나는 적지만, 웬만한 독을 중화시키는 효과가 있다.

이것들을 어떻게 잘 조합해서 섭취하면 한 번에 다량의 마력을 축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 * *

6층 필드 [마녀의 늪] 제9 안전지대.

커다란 연못의 모습을 하고 있는 안전지대에선, 누가 보면 마녀의 실험실을 연상시킬지도 모르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족히 10리터는 들어갈 수 있을 법한 커다란 철제 냄비가 활활 타는 장작불 위에 놓여 있었다.

보글보글!

그 철제 냄비 안은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태초의 혼돈이 잠자고 있었으니…….

“비주얼 하난 끝내주는군.”

인한은 나무 국자를 휘휘 저으며 코를 틀어막았다.

보라색과 남색과 흑색이 뒤섞인 정체 모를 액체는 색상만 봐도 도저히 사람이 섭취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정체 모를 하얀 물체가 기포와 함께 떠올랐으니 그 비주얼은 좋게 봐줘야 독약이고, 나쁘게 보면 생화학무기 제조의 현장이었다.

인한은 화력이 약해지는 것 같아 장작을 몇 개 더 넣어 줬다. 화력을 늘리기 위해 흙을 빚어 주변을 막아 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한은 그렇게 한동안 국자를 움직였다.

‘음, 이제 됐으려나.’

인한은 걸쭉했던 액체가 어느 정도 묽어지자 숨을 훅 내쉬고 인벤토리에서 아이템을 하나 꺼냈다.

[몬스터 캣의 보주]

[악마의 보주]

[오크 족장의 보주]

그것은 색색의 구슬들이었다.

인한이 때때로 얻었던 ‘보주’라는 아이템들.

인한은 보주를 쭉 나열하고, 주먹으로 내리쳤다.

쾅!

집채만 한 암석도 일격에 부서뜨리는 그 무지막지한 주먹을 작은 구슬이 버틸 리가 없다.

인한은 부서진 보주의 가루를 툭툭 털어 내고 파편 속에서 무언가를 집었다.

빛이 물질처럼 굳어 있는 듯한, 환상적인 형태의 물질이었다.

인한은 그걸 그대로 냄비 속으로 던져 넣었다.

그렇게 두 번.

까맣게 변해 가던 냄비 속 정체 모를 액체는 점점 밝은 색조로 변해 가더니, 결국 언뜻 봐도 맛있어 보이는 색…… 을 띠진 않았다.

검은 색조의 액체는 공업용 색소를 왕창 부어 넣은 듯 붉은 기조의 탁한 액체로 변해 있을 뿐이었다.

검거나 붉거나, 결국 도저히 사람이 섭취할 만한 색은 아니었다.

하지만.

띠링!

[최초로 다량의 마나를 함유한 영약을 만들어 냈습니다.]

[지능 스테이터스가 10포인트 상승합니다.]

[만들어 낸 영약에 이름을 정할 수 있습니다.]

처음 보는 천문에 인한은 눈을 껌뻑였다.

‘그렇구나.’

아주 새롭게 창조된 것에는 이름이 없다.

이 영약은 아주 먼 미래에나 만들어질 것들이다. 이름이 없으니, 이름을 내리는 것이다.

‘원래 있던 걸 주면 되겠지.’

인한은 이 약의 원래 이름을 붙였다.

[엘드라드의 영약]

[제작자 : 최인한]

[등급 : C]

[종류 : 소모품]

[효과]

1. 경미한 몇 가지 독에 중독됩니다.

2. 사용자의 마나 스킬 기량에 따라 총 250의 마력을 흡수할 수 있습니다. 사용자의 마나 스킬 기량이 부족하거나 마력량이 부족할 경우, 마력 폭주의 위험성이 있습니다.

3. 체질이 개선됩니다. 마나 스킬의 효율이 25% 상승합니다.

“좋아. 성공이다.”

인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한 번에 성공한 건 아니었다.

인한이라고 해도 기억이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비율만 조금 낮춰서 적은 양을 만들어서 성공한 것이었다.

그걸 양이 많아졌을 때도 과연 성공할까 싶었지만, 보란 듯이 완성됐다.

‘예상보다 효율이 낮지만, 이 정도면 선방인가.’

정수의 경우엔 어떤 조건도 없이 설정된 마력을 섭취할 수 있다.

개인의 마력의 성질이나 그때의 몸 상태, 마력의 양을 무시하는 절대적인 아이템이기에 정수가 대단한 것이다.

다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영약의 경우엔 몇 가지 부작용이 따라붙는다.

‘중독이라…….’

이건 솔직히 예상도 못한 부작용이다.

아마 재료가 몇 가지 부족한 탓일 것이었다.

한 20층까지만 가더라도 이것보다 배는 좋은 효율에, 중독 등의 부작용이 없는 영약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다시 만들자니 재료값이 너무 많았다.

‘그래도 경미한 수준이라니까 면역 스킬과 극체술을 믿어 봐야겠군.’

인한이 영약의 제조법을 아는 이유는 데스파티 시절의 경험 덕분이었다.

해태 길드는 아니었지만, 소위 길드라 이름 붙은 집단은 하나의 범국가적 기업에 가까울 정도로 소속 인원이 많고, 역할 분담과 후진 양성이 체계적이었다.

그런 거대한 조직을 움직이기 위해선 돈이 필요하기 마련.

보통은 기업의 후원을 받아 움직였지만, 상위 길드 중 하나였던 ‘매지션즈’처럼 그 이름 자체가 하나의 상표가 되어 장비나 포션을 제작하여 수익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

데스파티도 비슷한 경우였다.

인한은 제작 스킬은 없었지만, 주어진 레시피를 따라 재료를 만드는 일은 할 수 있었다. 인한은 그때 한동안 노동력을 착취당한 적이 있었다.

‘아니, 사실 착취가 아니라 그냥 날 길들이는 것이었을지도.’

인한은 이를 바득 갈았다.

박철환은 언제나 인한을 싫어했다. 그 교활한 놈은 충분히 그런 방법으로 인한을 괴롭혔을 수도 있다.

‘후우, 집중하자.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고.’

인한은 긴장한 표정으로 영약을 바라보았다.

사실 말이 영약이지, 탑의 후반쯤 되면 효과 좋고 부작용도 없는 엄청나게 많은 양의 영약이 쏟아져 나왔다.

개중에는 레시피가 대중에 공개된 것도 몇 가지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인한의 영약은 불완전하다. 그걸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관건이다.

‘좋아.’

인한은 결연한 표정을 짓고 큼지막하게 국자를 떴다.

* * *

맛은 정확히 이랬다.

처음 혀에 닿은 순간, 달콤함이 입을 감싸고, 그 뒤를 쌉싸래함이, 신맛이 코를 타고 울리고, 짠맛이 입안 가득 퍼질 때쯤이면 은은한 매운맛이 목을 쑤셨다.

‘커흑!’

굳이 표현하자면 죽을 정도로 쓴 한약 먹는 기분이었다.

전생에서 이런 영약을 한두 번 먹은 게 아니라서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인한은 꾹 참고 국자를 계속 움직였다. 그래도 많이 졸인 덕분인지 양은 기껏해야 2, 3리터 정도.

“꺼윽.”

인한은 배가 불룩 튀어나올 정도가 됐다. 이걸 순전히 소화하려고 일부러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고 마시지도 않았다.

‘이제부턴 트림도 안 한다!’

인한은 입을 꾹 닫았다. 일말의 마력도 흘릴 수 없는 의지 표명이었다.

전신의 감각을 차단하고, 체내의 마력 흐름에만 집중했다. 생리현상이 일어나도 마력을 한 방울까지 짜내기 전까지는 참아 낼 것이다!

웅웅!

마나를 마력으로 치환하는 기관인 마력로와 마력원(魔力元)이 맹렬히 일을 시작했다.

극체술의 옹호한 마력이 뻗어 나가 액체 속의 마나 덩어리를 추출해 낸다.

그것을 마력원으로 끌어들인 후, 마력로를 따라 전신을 타고 흐른다.

그렇게 움직인 마나는 어느새 마력의 큰 흐름에 섞여 하나의 마력이 되고, 다시 마력원으로 돌아온다.

이미 전생에서 수도 없이 답습했던 것들이다.

영약을 처음 먹은 초심자들의 실수 따위는 있을 수 없다. 인한의 기량이라면 한 방울의 마나도 소모하지 않고 다 소화할 수 있었다.

다만.

[마비독에 중독됩니다.]

[식중독에 중독됩니다.]

[신경독에 중독됩니다.]

‘이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인한은 영약 속 마나를 고작 3할 정도 흡수했을 때 문제에 맞닥뜨렸다.

슬슬 효과를 드러낸 독들이 인한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차!’

그 때문에 마나를 추출하는 도중 누수가 발생했다.

한 번 빠져나간 마나는 그대로 날아가 버렸다. 기껏해야 한 줌의 양이지만, 이제부터 계속 그럴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제길. 집중이 안 돼.’

사실, 떠오른 독들은 전부 엘드라드의 설명에 있는 대로 경미한 독들이었다.

하지만 그건 하나하나가 경미할 뿐, 합쳐졌을 때의 효과는 결코 경미하지 않았다.

생각해 보라.

팔다리가 얼얼하고, 피부가 따끔거리고, 어지럽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마저도 면역 스킬 덕분에 효과가 훨씬 덜 느껴지는 것인데…….

‘이렇게 된 이상…….’

마나의 누수가 서서히 늘어나고 있다.

소설처럼 독의 기운으로 뭘 한다든가 그런 건 다 개소리다. 독은 뭘 해 봤자 독이다. 지금은 중독 면역 스킬이 제 할 일을 다 해 주기를 바라야 한다.

거기다 극체술로 강화된 이 몸뚱이는 어느 정도의 독은 버텨 줄 테다.

2억이다. 무려 2억.

약 하나 만드는 데 그 돈을 쏟아부었는데 단 한 톨도 포기할 수 없다.

‘이렇게 하는 건 처음인데…….’

인한은 머릿속을 번뜩 스치는 방법을 실행에 옮겼다.

극체술의 마력은 강화의 마력.

신체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들어 주고, 끊임없이 더욱 강화시켜 주는 마력이다.

‘그렇다면 체내도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은 없다!’

마력의 흐름을 신체 내부로 돌려 버렸다. 마력으로 내장을 보호하기 시작한 것이다.

‘된다!’

그런데 그 단순무식한 방법이 효과를 발휘했다.

신체로 퍼지던 독의 기운이 극체술의 방벽을 뚫지 못했다.

다만 체내를 마력으로 두른 만큼 마력의 소모가 극심해졌다.

인한은 식은땀을 흘렸다.

‘빨리 끝낸다.’

속전속결만이 답이었다.

이 마력을 모두 소화하면 3단계를 뚫을지도 모른다.

3단계부터야말로 진정한 마력 사용자라고 할 수 있다. 마력으로 할 수 있는 수많은 기교를 그때부터 사용할 수 있으니까!

우웅!

극체술의 마력이 움직였다.

그때였다.

인한은 아주 깊숙한 곳, 한 번도 손을 대지 않은 곳에서 무언가가 느껴졌다.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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