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50화 (50/266)

# 50

<공략자들 50화>

* * *

인한은 메일을 확인했다.

‘역시 마음대로는 안 되나?’

최보도가 소속된 신문사는 메인 신문사는 아니었지만 SNS 카드 뉴스로는 제법 인지도가 있어서, 기사로 나오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런 커뮤니티가 있다는 건 처음 알았네. 오히려 그쪽이 더 좋을지도 모르겠어.’

인한은 최보도가 보낸 메일을 확인하고 히죽 웃었다.

인한은 1층의 히든 던전, 고대인의 도피처의 위치를 까발렸다.

지금은 탑의 초창기. 1층의 히든 던전의 가치를 인한이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탑은 경쟁을 하는 곳이 아니야. 협동을 해야 하는 곳이지.’

탑이 만약 게임이라면, 튜토리얼과 기본 조작 방식도 알려 주지 않은 불친절한 망게임이다.

튜토리얼이랍시고 존재했던 튜토리얼존도 클리어 방법이 알려지지 않았고, 지금에서야 다들 알게 됐지만 천문의 활용법, 마을의 생성 방법이나 스킬, 타이틀의 출현 조건들도 초창기에는 아무도 몰랐다.

정보의 부재.

실패의 대가는 죽음이며, 결말은 세상의 멸망이거늘 탑은 어떤 정보도 주지 않았다.

회귀 전에는 이 정보의 부재를 뼈를 깎는 경험을 통해 하나둘씩 쌓아 갔다. 가치 없는 정보조차 사람의 희생이 필요했다.

부족한 정보와 정보의 독점은 탑의 공략을 더디게 했고, 헌터들의 성장을 억제했다.

‘바뀌어야 해.’

지식은, 정보는 고이면 아무것도 만들어 내지 않는다.

튜토리얼존의 최초 보상은 인한이 받아 갔지만, 그 후에도 클리어는 할 수 있다.

클리어하게 되면 소정의 스테이터스 보상과 간단한 장비가 보상으로 올 테다.

마력 스테이터스도 사람들이 무시하고 있지만, 그 중요함은 너무 늦게 알려졌다.

사람들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성장하며, 각자 머리를 맞대고 공략을 짜내다 보면 탑은 더욱 발전할 테다.

‘무엇보다.’

간단한 몬스터의 공략법, 던전의 특징이나 종류, 몬스터의 습성처럼 굳이 희생 없이도 얻어야 할 정보는 공유되어야 마땅하다.

인한이 굳이 혼자 탑을 올라 혼자 끝낼 생각이었다면 이런 작업은 애당초 필요 없을 것이다.

알고 있는 모든 던전과 정보를 독식하며 성장하면 되니까.

하지만 탑은 결코 혼자 오를 수 없다. 인한이 경지를 초월한 절대적인 힘을 갖게 되더라도, 어느 정도다.

‘물론 선은 필요하겠지.’

시작의 신전, 히든 클래스를 얻을 수 있는 스페셜 던전, 레어 타이틀의 출현 조건, 왕가의 비도, 등등 아직 바로 알리기에는 섣부른 정보다.

인한은 그 ‘선’을 지키며 정보를 뿌릴 생각이다.

* * *

인한은 전자기기를 다루는 게 어색했다.

“아, 한 번만 더 가르쳐 주실래요?”

“아따. 그러니까, 이건 전원 버튼! 이건 촬영! 알간?”

굳이 돈을 아낄 필요도 없어서 시내의 아무 전자상가에 가서 영상 촬영용으로 카메라를 하나 산 인한은 사용법을 배우고 있었다.

“아따, 요새 젊은 양반들은 죄다 잘 다루더만, 자네는 뭣을 그렇게 못 다룬댜?”

“하하, 제가 좀 아날로그형입니다.”

“어째 나보다 못혀. 아재구만, 아재.”

“…….”

부정하고 싶지만 내용물은 아재가 맞다.

수십 년을 탑 안에서 주먹만 휘두르고 살았는데 최첨단 기기들이 손에 맞을 리가 있나.

인한은 영상 촬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노이즈 캔슬러건, 마이크건, 방음장치건, 하물며 조명조차 몰랐다.

인한은 집으로 돌아와서 그나마 좀 덜 무너진 방에 카메라 올려 두고 영상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찰칵!

“아차차, 사진이었구나. 이거 영상으로 어떻게 바꾼다고 했지?”

찰칵! 찰칵! 찰칵!

“……연속촬영?”

위이잉!

“됐다!”

인한은 그제야 조금 떨어진 곳에 서서 하얀 마스크와 두꺼운 후드를 눌러 썼다.

빛이라고는 무너진 천장에서 내려오는 게 다인지라 무척이나 어두컴컴했다. 고작 마스크와 후드만으로도 인한의 얼굴은 가려졌다.

“어, 안녕하십니까. 아니, 이건 좀 아닌가?”

인한은 커흠, 기침을 한 번 하고 다시 말을 시작했다.

간단한 정보였다.

그리고 탑의 기준이 바뀔 정보이기도 했다.

“마력 스테이터스 250포인트 이상 쌓으면, 기공술이라고 하는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게 시작이었다.

* * *

1천 명짜리 카페에서 정보 하나 올렸다고 그렇게 많은 사람이 볼 리가 없다.

기껏해야 조회수 5, 6백 찍으면 선방한 정도일까?

하지만 사람의 입이란 무서운 것이다.

발 없는 말은 천 리를 간다.

히든 던전에 대한 이야기는 시작의 마을에서 시작해서 인터넷으로 번져 갔고, 일주일도 채 안 된 지금은 지역을 불문하고 세계의 수많은 헌터들이 그 정보를 듣기 시작했다.

“뭐? 히든 던전이 1층에 있다고?”

“한국 헌터들에게서 나온 거 같던데, 시작의 마을 인근이래.”

“1층이라……. 그럼 잠깐 내려가 볼래? 어차피 2층 메인 던전 도전하기 전에 잠깐 쉬려고 했잖아.”

“오케이! 가 보자!”

검은 탑은 전 세계에서 모여드는 곳이다.

최전선 공략자들은 그렇게 열렬히 관심을 갖지 않겠지만, 적당히 탑을 오르거나 5층 이하에 있는 자들은 달랐다.

[히든 던전 ‘고대인의 도피처’에 입장하셨습니다.]

그렇게 히든 던전은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어떤 미친놈이 이걸 공개한 거야? 최인한? 어디서 들어 봤는데?”

“그거잖아. 그 튜토리얼 공략자.”

“정말? 뭐, 또 다른 건 없어?”

“그러고 보니까 유튜뷰로 뭐 공개한다고 하던데?”

“언제!”

“어…… 이 던전이 밝혀지고 일주일 뒤야.”

“오늘이잖아!”

* * *

영상은 조잡했다. 영상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일반인이 찍었다는 게 드러나는 영상이었다.

그런데 그 영상엔 은근한 분위기가 있었다. 어디 폭격이라도 맞은 듯한 폐허 속에 사내가 서 있다.

천장의 한 부분이 무너져 빛이 갈라져 내려오고 있는데, 그게 사내의 뒤쪽에 내려와 언뜻 성스럽게까지 느껴지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먼지 알갱이들이 빛줄기를 지날 때면, 마치 빛의 조각처럼 반짝이며 흩날린다.

거기다 핏줄처럼 튀어나온 철골이나 땅바닥에 가득한 시멘트 조각도 어디 전쟁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사람들은 영상을 보면서 일단 한 번 숨을 죽인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후드로 얼굴에 그늘을 지게 한 사내는 영상 속에서 천천히 입을 연다.

자, 그는 어떤 말을 할 것인가.

-어, 안녕하십니까. 아니, 이건 좀 아닌가?

젊은이 특유의 높은 어조의 목소리였다.

-크흠, 검은 탑과 관련된 몇 가지 정보를 공유하겠습니다.

기승전결이며 서본결이며 이 영상에는 없었다.

-마력 스테이터스는 무용지물이 아닙니다. 마력 스테이터스 250포인트 이상 쌓으면, 스킬 카테고리가 추가됩니다. 기공술이라고 하는 마력을 사용할 수 있는 스킬을 얻을 수 있게 되죠.

일반인은 그 이야기가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헌터들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력을 다룰 수 있게 되면 이런 것도 할 수 있게 됩니다.

영상 속 청년이 갑자기 옆쪽 벽면에 났던 철골을 잡았다. 그러고는 내려치기라도 하듯이 반대쪽 손을 곧게 세우고 치켜들었다.

위잉!

그 손에서 흐릿한 백색의 기류가 생성된 것은 착각이 아니었고.

깡!

철골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끊어졌다.

청년은 그걸로 끝나지 않고 철골을 무슨 수수깡 부수듯이 뚝뚝 자르더니 검지와 엄지 사이에 끼고 압축시켰다. 끼기긱! 끼기긱! 하는 섬뜩한 소리가 이어졌다.

-이렇게 말이죠.

동전 모양으로 압축된 철골이 청년의 손에 쥐어졌다.

-또 하나, 튜토리얼존을 클리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드리려고 합니다. 아마 이번 히든 던전에 한 번이라도 가신 분이 있으면 이걸 궁금해하시겠죠. 헌터가 되고자 하는 분들은 꼭 유념하기 바랍니다.

히든 던전 최초 발견자의 이름엔 떡하니 인한의 것이 새겨져 있었다.

-간단합니다. 슬라임의 체내에서 코어를 50개 모아 끝에 있는 공동의 오른쪽 구석으로 가면 됩니다.

……사실 그건 간단한 게 아니다.

아무리 슬라임이 허접한 하위 몬스터라지만 결국 인간을 잡아먹는 몬스터인 건 마찬가지다.

-그냥 이렇게 들으면 어렵죠. 하지만 슬라임은 불에 잘 탑니다. 슬라임으로 태운 불꽃엔 슬라임들이 다가오지 않기도 합니다. 이걸 잘 이용하면 충분히 50개를 모을 수 있습니다.

누구도 몰랐던.

누구라도 경악할 정보가.

-튜토리얼 클리어 보상은 소정의 스테이터스 포인트와 기초 장비입니다. 기초 장비라 하더라도 공장에서 찍어 내는 기성품보다 훨씬 뛰어납니다. 족히 2, 3층에서까지 쓸 수 있을 겁니다.

청년은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도 몇 가지 유용한 정보를 가지고 오겠습니다.

그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청년이 입을 여는 순간 청년의 기세가 바뀐 것을 영상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

-탑은 경쟁하는 곳이 아닙니다. 협력해도 부족한 곳입니다. 탑을 오르는 헌터들이여, 탑을 만만하게 보지 마십시오. 탑은 현재 진행형의 최악의 재앙입니다. 당신들이 자만을 품고 탑을 두려워하는 것을 멈춘 순간, 탑은 당신들을 잡아먹을 것입니다.

청년의 말에는 짙은 진심이 묻어 있었다.

-자신을 단련하는 것을 멈추지 마십시오. 탑에 잡아먹히지 마십시오.

청년이 다가와 카메라의 전원을 껐다.

그걸로 갑작스럽게 시작한 영상은 갑작스럽게 끝났다.

첫날 이 영상의 조회수는 기껏해야 1, 2백 회였다.

하지만 이틀째에는 1천, 2천 회까지 올랐으며, 사흘 나흘이 지나며 ‘추천 동영상’과 ‘인기 동영상’에 들고, SNS와 뉴스에 언급되며 1백만을 돌파, 1천만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일주일 정도 뒤, 또 다른 영상이 게시되었다.

그때 나온 정보는 스킬을 얻을 수 있는 방법, 헌터들이 상대하기에 애먹었던 몇몇 까다로운 몬스터의 공략법 등등.

자잘하지만 실용도가 높고, 쉽게 깨닫지 못하는 정보들.

영상의 마지막에 청년은 또다시 한마디를 남겼다.

-정보는 공유되어, 보다 높은 발전의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변화는 시작된다.

* * *

-어휴, 마지막 말 뭐임? 개 오글거리네;;

-응 안 믿어~ 히든 던전 미끼로 던지고 다른 사람들 쓰레기 같은 스테이터스 찍게 만들려는 수작질이지.

-킁킁! 어디서 주작 냄새 나는데? 저거 CG아님?

-그러네, 묘하게 영상도 이상한 거 갖고.

-ㄴㄴ 저 영상 쪽에서 일하는데 저거 아무것도 안 들어가 있음.

- ㄴ윗분 말로는 뭘 못하겠음. 인증 ㄱㄱ

-주작충에 관종이네.

-애초에 왜 저런 정보 뿌리겠음? 지 혼자 먹지.

사실, 인한의 영상은 굉장히 많은 악플들이 달렸다.

대부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하지만 인한은 거기에 중점을 두지 않았다.

어차피 영상을 본 대부분 사람은 헌터가 아니다.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의 관심에서 몇 발자국 떨어져 있었던 마력 스테이터스가 화젯거리로 떠오른 것으로도 충분하다.

‘적어도 한참의 세월이 흐른 후에야 간신히 마나 스킬에 대한 이야기가 돌거나 하진 않겠지.’

아마 인한의 이야기를 믿더라도 헌터들은 부담스러워 할 것이다.

그들은 마나 스킬에 대한 것을 알고 있고, 극체술과 타이틀의 효과로 마력 스테이터스를 금세 올릴 수 있는 인한과 달랐다.

일반적인 헌터들은 고작 레벨업 할 때마다 주는 3이라는 포인트를, 확연히 효과가 느껴지지 않는 마력에 투자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변화는 있을 거야.’

누군가는 의심하고, 누군가는 믿을 것이다.

그 변화가 중요하다.

애초에 관심도 갖지 않던 마력이라는 존재가 의심이나 신뢰를 받는 위치가 되는 것이다.

‘거기다 튜토리얼 공략법을 밝혔으니, 신입 헌터들의 초반 성장도 어느 정도는 달라질 거고.’

스테이터스 보상과 초반의 장비는 1층에서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 정도로 인한은 만족했다.

* * *

사실 가장 큰 난리가 난 것은 일반 헌터들이 아니었다.

“야, 이 새끼들아! 너네들은 뭐 하는 놈들인데!”

당연히, 난리가 난 것은 국정원이었다.

“1년이 넘었는데 어떻게 한 사람을 못 찾아!”

“아니, 그…… 누군지 찾긴 찾았는데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것뿐이지…….”

“아니 쓰벌, 탑에 오르는 데다 오성에서 회원 카드까지 갖고 있는 ‘최인한’이라는 사람 찾는 건 흥신소 놈들도 하겠다! 네놈들도 돈 처먹고 일을 하는 새끼들이면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야 할 거 아니야! 요원이란 놈들이 랭커도 일반인한테 다 뺏겨 놓고!”

목청 높이는 팀장을 보며 요원들은 입맛을 다셨다.

대충 짐작이 갔다.

아, 조인트 까이고 오셨구나.

“안쪽에 우리 요원들은 왜 놈을 못 찾는 건데!”

“탑 안쪽이 워낙 거대합니다. 어디에서 활동 중인지라도 알아야…….”

“에라이 씨!”

퍼억!

“억!”

팀장의 20년 내공이 담긴 절대신공 조인트가 작렬했다.

“계정 접속은 어디서 했어! 외국이냐?”

“아, 아니요, 해외가 아니라 국내 IP입니다. 은평구에 있는 한 PC방인데…….”

“다른 건! 맞아, 그 기자!”

“직접 만난 게 아니라고 합니다. 어디까지나 메일로 주고받은 모양이라…….”

“아니, 그래서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거야? 야 이 쌍노무 새끼들아!”

팀원들은 전부 ‘아이씨’하고 고개를 떨어뜨렸다.

저 욕 나오면 오늘은 퇴근하긴 글렀다고 봐야 한다. 거기다 아마 끝나고 전원 옥상 집합이다. 까딱하면 원산폭격을…….

‘하, 시발. 하얀 마스크 새끼.’

최근 그 방송이 물의를 일으킨 이후 국정원은 최인한이라는 인물에게 ‘하얀 마스크’라는 별명을 붙였다.

“야, 너네들 잘 들어.”

“…….”

“걔는 좀 다르다. 어지간한 정보를 갖고 있는 게 아니야. 탑에 대해 뭔가 알고 있어.”

모두의 시선이 진지해졌다.

좀 ?같은 상사이긴 하지만, 그의 감만은 날카로운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다.

“그 정보를 우리가 얻어야 한다. 다른 어떤 나라도 아니라, 다른 일반 시민들이 아니라. 그런 정보는 국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통제된 정보를 활용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는 씨익 웃었다.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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