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공략자들 49화>
인한의 집은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해 있었다.
그쪽으로 가는 버스 번호조차 다 까먹어 버린 탓에 어쩔 수 없이 사람에게 물어봐 가면서 그곳으로 향했다.
인한이 살던 동네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1차에 쏟아져 나왔던 몬스터 웨이브는 건물적인 피해는 거의 없었지만, 2차에선 대형 몬스터들도 대다수 쏟아져 나오며 건물이며 사람을 닥치는 대로 파괴했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재개발이 한창인 동네는 인한의 기억과는 많이 달랐다. 곳곳에 부직포로 가린 채 건물이 올라가거나, 부서진 것들이 수리되고 있었다.
‘아, 그렇지.’
인한은 그제야 기억해 내고 길을 올랐다.
인한의 집은 오르막길을 쭉 올라야 나오는 곳이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오를 때마다 오래전 기억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프랑스풍의 낡은 2층집. 마당이 예뻤던 인한의 집은…….
‘역시.’
반파된 상태였다.
핏줄 같은 철근들이 삐죽삐죽 튀어나와 있고 바스러진 시멘트들이 난장판을 이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부서진 기와나 나뭇조각이 툭툭 떨어졌다.
인한은 잔해들을 헤집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집 안은 누군가 한번 뒤집어엎은 것인지, 돈이 될 만한 것들이나 옷가지, 음식들은 다 사라진 상태였다.
전생에서 몬스터 웨이브에 도망치며 6년, 탑을 오르길 22년, 이번 생에서 1년 하고 반 정도.
거의 30년 만에 찾아온 집이었다.
‘난 역시 어딘가 잘못됐구나.’
전생에서 탑을 오른 이유는 부모님의 복수 때문이었다.
하지만 회귀 후 인한은 부모님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 오랜 세월이 지나 버린 것이다.
헌터로선 어땠는지 몰라도 ‘인간’으로선 너무 오랜 세월 잘못된 길로 빠져 버렸다.
후드득!
그때 인한이 잔해 속에서 액자 하나를 발견했다. 먼지를 툭툭 떨어뜨리자, 웃고 있는 가족의 모습이 보였다.
어딘가 슬픈 미소를 지은 인한은, 그 액자 하나만 챙긴 채 집을 떠났다.
* * *
‘그래, 일단 돈부터 확인해 볼까.’
인한은 바로 은행으로 향했다. 비밀번호를 헷갈려서 한참을 고민한 끝에, 비로소 카드 잔액을 확인할 수 있었다.
[623,501,243]
“하.”
고작 숫자 몇 개일 뿐인데,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이런 돈이 카드에 찍혀 있는 걸 볼 수 있는 날이 올 줄이야.
기분이 묘했지만…… 크게 기쁘지도 않았다.
‘뭐, 어차피 재료 사고 나면 뭉텅 빠지려나.’
인한은 피식 웃고 몸을 돌렸다.
이제 밖으로 나온 제일 큰 목적을 달성할 시간이었다.
인한은 근처 PC방으로 향했다. 바로 인터넷에 접속한 인한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포털 사이트 네이비어를 켜서 인물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최보도.’
그것은 기자 이름이었다.
미래에 유명한…… 이라고 할 것도 없다.
몬스터 웨이브 도중에도 검은 탑 관련 조사와 취재를 멈추지 않았던 종편 기자였다.
그러다 기자를 그만두고 헌터들 사이에서 정보지로 이름 높았던 ‘헌터즈’의 편집장까지 된 인물이었다.
‘있구나.’
인터넷 뉴스에는 한국인 랭커와의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그 밑에 최보도의 메일 주소가 적혀 있었다. 그는 아직 말단 기자일 뿐이었다.
“설마 삭제하진 않겠지?”
인한은 그에게 메일을 적기 시작했다.
* * *
최보도는 머리를 쥐어짰다.
‘하, 스벌. 역시 소재 부족이다.’
1차 몬스터 웨이브 이후로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사실 ‘벌써’라고 하기에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이긴 하지만, 기자에겐 그렇지도 않았다.
‘뭘 할 게 없네.’
2차 몬스터 웨이브 때나 공략 초창기 때처럼 검은 탑은 핫한 감자가 아니게 됐다.
물론 대중들은 검은 탑과 헌터들에게 지대한 관심을 품고 있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건 그저 연예계 가십거리 정도로 낮아진 상태였다.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낮아졌을지도 모른다.
‘뭐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건…… 역시 욕먹을 생각이겠지.’
공포였던 검은 탑은 최근 잠잠하다. 이제는 그저 도시에 떡하니 서 있는 흉물스러운 탑일 뿐이었다.
최근에 썼던 기삿거리만 하더라도 세 번째 한국인 랭커와 헌터관리법, 검은 탑 특별법 정도뿐이었다.
‘이래선 잡지사랑 별다를 게 없네.’
최보도는 등받이에 등을 깊게 기댔다.
최근에 아는 형님에게서 온 연락이 머릿속을 스쳤다.
‘잡지라…….’
인터넷 정보지를 하나 만들자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신뢰도 낮은 찌라시류가 아니라, 정말 확실하고 신뢰도 높은 걸로.
형님의 말은 이거였다.
헌터관리법이 통과되고 헌터가 제대로 된 직업으로 정착하게 되면 사회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거다.
벌써 검은 탑의 사업성을 본 기업들이 움직이는데, 기업이 움직이면 사회가 움직이는 건 당연한 이야기였다.
확실히 끌리는 제안이긴 했다.
골수 판타지 덕후였던 그는 초자연적 공간인 검은 탑을 좋아했다.
직접 검은 탑을 오를 정도의 배짱은 없지만, 그 소식이나 이야기만큼은 좋았던 것이다.
‘확 한다고 해 봐? 못 먹어도 고?’
특별히 기자라는 직업에 애착이 있는 건 아니다. 어중간한 인서울 문창과를 졸업했고, 문장에는 소질이 없어서 흘러가다 보니 기자가 된 것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 하면서 지내 볼까?
“에효.”
고개를 휘휘 저은 그는 메일을 켰다. 죄다 스팸투성이었다.
인터넷 기사에는 그의 메일 주소가 올라오기 때문에 스팸 알바생들이 열심히 메일 주소를 베껴다 쓴다.
“삭제, 삭제…….”
전체 삭제를 누르고 휙휙 넘기던 그가 우뚝 멈춰 섰다.
“이건 개인이 보낸 거네.”
닉네임은 ‘헌터A’.
“작명센스 하고는.”
평소 같으면 바로 삭제했을 것이다. 하지만 특별히 할 일도 없었다. 시간이나 때울 겸 메일을 열었다.
[최보도 기자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뭐지?’
메일의 내용을 읽은 최보도는 눈을 벅벅 비볐다.
“흠?”
자신의 눈을 한 번 의심.
“음…….”
안경이 잘못된 건지 확인.
하지만 그대로였다.
[전 튜토리얼존을 클리어한 최인한이라고 합니다. 1층의 히든 던전을 발견했고, 독식할 생각이 없기에 밝히고 싶습니다. 위치는…….]
그 메일의 내용엔, 그렇게 적혀 있었다.
* * *
-어! 뭐냐 보도야! 설마 할 생각 있냐?”
“아니, 그게 아니라 형. 혹시 튜토리얼 공략한 사람 이름 기억해?”
-튜토리얼 공략? 아, 그, 그, 최 뭐시기였는데.
수화기 너머로 떠드는 소리가 한참 들린 후에 대답이 돌아왔다.
-맞다, 최인한. 한국 사람이었지.
“그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어. 그래서 말인데 형, 부탁 하나만 하자. 형 헌터 팀 하나 알고 있다고 했지?”
-어? 그래, 있지.
“그 사람하고 연락할 수 있어?”
-나도 탑에 들어가야 연락하는데. 그 드루이드의 인형이란 게 있거든.
“알아. 탑 안에서는 그걸로 연락한다며?”
-하여튼 들어가서 얘기해 봐야지. 그런데 왜?
“히든 던전에 대한 제보가 있었어.”
-…….
한동안 조용해졌다.
-그거 또 급식충들이 아는 척하는 거 아니야?
“지리에 대한 설명이 세밀해. 거기다 자기가 최인한이라고 밝혔고. 형도 2층까지 올라가 봤다고 했지?”
-2층 보스존까지 갔었어.
“1층 시작의 마을 서쪽 문으로 쭉 가면 엄청나게 커다란 떡갈나무가 하나 있다던데. 몬스터 오크라고.”
-……맞아. 그거 유명한 나무야.
“주변에는 꽃밭.”
-꽃밭이라…… 아, 그쪽이군. 정말 헌터인가 본데?
“부탁할게. 메일 전송할 테니까 진짜 있나 확인 한 번만 해 줘.”
-알았다. 오늘 밤까지는 연락 줄게. 걔네들한테 부탁할 것도 없이 나 혼자 다녀오면 될 거야.
최보도는 투덜거림을 무시하고 메일을 한 번 더 읽었다.
느낌이 왔다.
이 제보자는 진짜다.
[기사가 올라오고 일주일 뒤, 유튜뷰에서 영상을 업로드할 것입니다. 비슷한, 어쩌면 더 중요할 정보를 올릴 예정입니다.]
혹시 영상 계정의 팔로워 수를 위해 이런 메일을 보낸 걸까 한 번 의심도 해 봤다.
하지만 그가 올린 계정은 고작 하루 전날 신설된 계정이었고, 무엇보다 메일로 보낸 정보가 너무 세세했다.
히든 던전 출현 조건에 있는 꽃의 이름, 찾아가는 법, 밤에 그 꽃 주변으로 모이는 몬스터의 이름과 습성까지.
‘만약 정말이면?’
이 정보는 전 세계가 촉각을 곤두세울 것이다.
히든 던전이 괜히 히든 던전이 아니니까.
최보도는 즉각 현 상황에 대한 메일을 보내고, 메일 주소와 메일 내용을 복사한 후 삭제했다.
삭제 메일함을 비운 것을 확인한 그는 등받이에 등을 깊게 기댔다.
* * *
다음 날 오후 4시.
전화벨이 울렸다.
-맞다. 정말 있었어. 몬스터 오크가 설마 히든 던전의 입구일 줄이야.
“그래? 알았어.”
최보도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선배 기자에게 히든 던전과 관련하여 기사를 쓰겠다고 했을 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이걸 사람들이 볼 거나 같냐? 그래, 히든 던전. 대단하지. 그런데 그거야 탑을 오르는 사람들만 관심이 있지 탑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안 읽어. 그리고 우린 탑 밖에 있는 사람들이 읽을 기사를 쓰는 거고! 거기다 시발, 그거 확실한 정보야? 여긴 신문사라고! 찌라시 만드는 곳이 아니라!
선배는 바로 퇴짜를 넣었다.
이럴 줄 알았고, 사실 그러면서도 아는 헌터에게 바로 정보를 넘긴 것도 알고 있다.
그래도 포기할까 보냐. 최보도는 카페에 들어갔다.
한국 헌터연합.
이름 그대로 헌터들의 카페였다.
회원 수는 고작 1천 명 안팎이지만, 몇 가지 질문과 활동이 확인되어야 가입, 승급이 가능해서 카페 멤버의 질은 괜찮은 편이었다.
‘공지글로 올리자.’
최보도는 이 카페의 창립 멤버이자 매니저였다.
최보도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공지- 히든 던전 정보]
거기엔 자신의 이메일과 소속을 적어 뒀다.
뒤에는 제보자가 밝혔던 방송에 대한 정보도 적어 뒀다.
이걸로 끝이다.
어디, 한번 결과를 보자.
* * *
하루의 사냥을 끝내고 밖으로 나온 최명훈은 한숨을 훅 쉬었다.
“기껏해야 고블린이 쓰던 단검 몇 자루가 끝인가.”
그는 1층에서 활동하는 헌터였다.
아니, 헌터보단 플러에 가깝겠지. 그는 솔로로 활동하며 자잘한 몬스터의 부산물로 돈을 벌고 있다.
고블린이나 오크 같은 인간형 몬스터들이 사용하는 철제 무기는 어느 정도의 가격에 팔렸다.
탑의 안쪽은 탑의 바깥쪽과 철의 재질이 다른 모양인데, 한데 모아서 녹인 다음에 다시 무기를 제작해서 되팔았기에 구매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래 봤자 열 자루에 10만 원이지만.”
이제 슬슬 1층의 메인 던전에 들어가야 하나 고민이 됐다.
하지만 메인 던전으로 들어가려면 팀이 필요한데, 그는 돈을 벌려고 헌터를 한 것이기 때문에 애초에 인맥이 전혀 없었다.
최명훈은 스마트폰을 켜고 입맛을 다셨다.
띠링!
탑에서 나오자 권외였던 인터넷이 터지면서 알림과 문자가 주르륵 올라갔다.
[프렌즈 사천…….]
[열쇠와 루비를…….]
[지금 즉시 가입하면!]
죄다 게임 연락이다.
역시 게임 강국. 세계가 이 꼴이 돼도 게임을 멈추지 않았다. 그나마 한 놈 연락 있는 게 술 마시자는 거였고.
최명훈은 알람을 휙 올리다가 멈췄다.
“어……?”
그건 한국헌터연합 카페의 게시물이었다.
활동하는 사람은 적지만 제법 양질의 정보 공유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언제나 알림을 켜 놓았었다.
[히든 던전 정보].
최명훈은 그 글을 읽다가, 처음에는 또 뻘 게시글인 줄 알고 비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곧 그 게시글이 공지글이란 것과 정확한 지리 설명이 들어 있고, 튜토리얼 공략자 ‘최인한’의 이름이 적혀 있는 것을 보고는.
“젠장! 늦었잖아!”
그대로 몸을 돌려 탑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