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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47화 (47/266)

# 47

<공략자들 47화>

* * *

[5층 일반 던전 ‘알란 구시가지’의 보스 ‘Lv.41 샌드 크리퍼’의 방에 입장하셨습니다.]

결국 앞선 팀도 실패했다.

날이 늦었기 때문인지 인한의 뒤로 다른 헌터 팀은 오지 않았다.

아마도 인한이 오늘의 마지막 도전자가 될 터다.

‘그리고 12시간 내로는 누구도 도전 못 할 거고.’

메인 던전에서는 보스가 죽으면 12시간 내로 재생되지 않는다.

-트르르를!

인한은 모래로 만든 거인의 앞에 섰다.

샌드 크리퍼.

기이한 울음소리를 내며 모래더미가 몸을 일으켰다.

키는 5미터 정도, 다리는 기형적으로 작은 데 비해 팔이 두껍고 길었다. 흘러내리는 모래 사이에서 둥그런 두 눈동자가 붉게 빛났다.

샌드 크리퍼가 까다로운 이유.

그것은 놈의 단계별 특성에 기인한다.

1단계.

콰- 앙!

인한의 일격에 대량의 모래가 흩날렸다.

콰앙! 콰앙! 콰앙!

그게 시작이었다.

인한은 마치 식후 운동하듯 가볍게 공격을 뻗는데, 터지는 소리는 폭탄…… 아니, 이 정도면 거의 폭격이다.

폭음이 울려 퍼지며 샌드 크리퍼의 외피를 이루는 모래가 펑펑 터져 나갔다.

-드루우아아아!

기이한 외침과 함께 샌드 크리퍼가 입을 쩍 벌리며 포효하기 시작했다.

고작 전투를 시작한 지 5분인데 패턴이 변했다.

인한은 가볍게 히죽 웃었다.

‘1단계는 됐고.’

누가 보면 경악했을 것이다.

족히 20분은 걸리는 1단계를 팀도 아니고 혼자서, 그것도 5분 만에 끝내다니.

-트르르르!

1단계는 그냥 다른 몬스터와 같다.

그리고 일정 피해를 입은 샌드 크리퍼는 2단계로 이행한다.

쿠구구구!

땅이 진동하더니 샌드 크리퍼의 몸을 감싸던 모래가 흩어지며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흩어졌던 모래도 땅속으로 통과하듯 사라졌다.

-트르를!

그리고 곧 모래가 솟아오르며 샌드 크리퍼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 모습이 하나가 아니었다.

‘어라? 2단계를 건너뛰었네?’

2단계는 상처의 회복이다.

놈들은 지면에 숨으면 입은 피해의 9할가량을 회복한 채 나타난다.

그다음이 3단계, 분열인데…….

‘아, 그렇군. 1단계에서 너무 많은 피해를 입어서…….’

크기는 조금 작아졌지만 숫자는 다섯 마리로 늘어난 샌드 크리퍼가 인한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인한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절체절명이었다.

물론, 샌드 크리퍼가.

인한이 땅을 박찼다.

“피스트 캐넌!”

쾅!

아이언 크러시의 기술, 피스트 캐넌.

두 주먹에 서린 마력이 닿자마자 샌드 크리퍼가 거친 소리와 함께 터져 나갔다.

기술의 이름 그대로 주먹 한 방 한 방을 대포처럼 느껴지게 만드는 기술.

마력을 주먹에 머물게 해서 효과를 보는 게 아니라, 방출하는 즉시 제어를 풀어서 폭발시키는 기술이다.

파괴력은 그야말로 발군. 샌드 크리퍼의 모래 육체가 미친 듯이 흩어지며 주변에 모래 비가 내렸다.

하지만 사실 오러를 이용해 육체를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 없는 시전자에게는 자신의 육체에도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기술이었다.

다만 인한은 굳이 오러를 익히지 않아도 해당 사항이 없을 뿐이지.

‘내겐 극체술이 있다!’

이제 육체라는 개념이 어색할 정도가 되어 버린 인한의 괴랄한 몸뚱이는, 오히려 핸드 캐넌에 의한 돌아오는 다소의 피해가 피해면역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는 수단이 되어 버린 상태였다.

-트루어어앙아아!

샌드 크리퍼가 비명을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샌드 크리퍼의 분열체도 몸을 비틀며 피해를 회복하기 위해 지면에 파고들고자 했다.

하지만.

화악!

인한은 태연하게 허공에 손을 뻗었다.

인한은 인벤토리에서 보라색 액체가 든 유리병을 꺼내 샌드 크리퍼를 향해 던졌다.

쨍그랑!

마치 맑은 물에 잉크를 한 방울 떨어뜨린 것처럼, 그 보라색 액체에 닿은 부분부터 샌드 크리퍼의 몸이 급속도로 굳기 시작했다.

샌드 크리퍼의 움직임이 급격하게 느려졌다. 땅으로 숨으려는 것도 더 이상 하지 못했다.

‘적어도 5년 뒤에나 발견될 공략법, ‘베놈트’다!’

스톤 스네이크의 석화독을 포함한 5층 몬스터의 부산물들 네 종을 물에 섞은 것.

효과는 간단하다. 탑 밖에도 이 액체와 같은 효과를 가진 물건이 존재한다.

‘시멘트.’

시멘트와 다른 점이 있다면, 급속도로 굳는다는 점과 마력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불처럼 퍼져 나간다는 점이었다.

쨍그랑!

나머지 놈들에게도 베놈트를 던져 굳게 만든 인한이 목을 뚝뚝 꺾으며 다가갔다.

-트르르를!

인한이 주먹을 끌어당겼다.

* * *

김만춘은 사무실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역시 아침은 한가했다. 뭐 물론, 그렇다고 밤이 바쁜 것도 아니지만.

딸랑!

언제나처럼 풍경이 울렸다. 김 씨는 하품하다 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서 오세요.”

김만춘은 정면을 바라보다 흠칫 놀랐다.

“허, 허헉!”

머리카락을 치렁치렁 내리고, 전신에 핏자국이 가득한 남자가 말없이 입구에 서 있었다. 간이 다 쪼그라드는 줄 알았다.

“누, 누구…….”

“안녕하십니까. 접니다.”

“저, 저라니 누구…….”

김만춘은 그제야 눈치를 확 챘다.

그다! 그 징한 놈!

“아, 하하…… 고객님…….”

“안녕하십니까?”

안녕 못해!

김만춘은 외치고 싶었다.

“오늘도 필요한 게 좀 있어서 왔습니다.”

인한이 뚜벅뚜벅 걸어왔다.

김만춘은 저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컥! 냄새!’

짐승의 노린내에 피 냄새에 땀내가 섞여 가히 태초의 혼돈을 품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니, 잠깐, 피 냄새?

김만춘은 인한을 살폈다.

곳곳에 핏자국이, 그것도 한두 방울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양이 묻어 있었다.

“손님, 괜찮으십니까? 핏자국이…….”

“아, 제 핏자국 아닙니다. 걱정 마세요.”

“예, 예?”

그게 더 걱정해야 하는 이야기 아닌가?

김만춘은 몸을 순간 움찔 떨다가, 고개를 휘휘 저었다.

기껏해야 몬스터의 피겠지. 킬러 같은 인상은 아니었다.

그런데 몬스터 중에 빨간 피를 가진 놈이 있던가?

“커흠, 오늘은 어떤 일이십니까?”

“팔 거 팔고, 살 거 사러 왔습니다.”

“……또 한 움큼 들고 오셨겠군요. 사무실로 오시죠. 커피 한 잔 내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 *

김만춘은 창고의 전원을 켰다.

놀랍게도 전깃불이었다.

“어떻게?”

“태양열 발전입니다. 본사에 신청하니까 한 대 놔주더군요.”

인한은 눈을 갸름하게 뜨고 LED등으로 밝혀진 창고를 스윽 훑어보았다. 제법 규모가 있었다.

김만춘은 인한을 창고 한편에 위치한 컨테이너 박스로 안내했다. 나름 사무실이라는 말을 덧붙이며 문을 열었다.

“아, 저 그리고.”

“예? 왜 그러십니까?”

“이제 말씀 놓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이제 자주 볼 사이 아닙니까? 제가 불편해서 그럽니다.”

“하하, 그래도 손님인데 제가 어떻게…….”

“괜찮으니까 편하게 말씀하시죠.”

“아니, 그래도…….”

“괜찮습니다. 저도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형님.”

“정말…… 괜찮냐?”

“예, 그래 주십쇼.”

김만춘은 솔직히 환영이다.

아무리 돈이 되는 손님이라지만 정도껏 얄미웠어야지.

“뭐 특별히 마시는 거라도?”

“예? 아, 뭐, 아무거나 주셔도 됩니다.”

“뭐 사실 믹스밖에 없긴 해.”

그럼 왜 물어본 거지?

그건 그렇고, 말을 놓고 나니 급격히 편해진 김만춘이었다.

인한은 사무실을 둘러보았다.

“흐음.”

책장과 책상, 서류 뭉치, 소파에 접이식 침대도 있는, 그야말로 사무실 같은 공간이었다.

인한은 중앙에 있는 테이블에 가서 편안히 앉았다.

‘그러고 보니 커피라…….’

참 오랜만에 마시는 것 같다.

족히 몇 년은 됐을 것이다. 노예처럼 데스파티에 있을 때는 밥도 제대로 못 먹었으니까.

딱 새끼손가락 두 마디 반 높이의 걸쭉한 믹스 커피를 타 온 김만춘은 인한의 맞은편에 앉았다.

앞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낸 김만춘이 물었다.

“한 대 피울래?”

“아뇨, 담배를 안 피워서.”

“아, 그럼 나 좀 피워도 될까?”

“예, 괜찮습니다.”

“고마워.”

후우, 하고 회색 연기가 허공에 흩어졌다.

한동안 담배를 피우던 김 씨는 커피를 담았던 종이컵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입을 열었다.

“한동안 공략만 한 모양이네. 차림새 보니.”

“예, 아무래도.”

“역시. 그럼 소식 못 들었겠구나?”

“소식이요?”

“흠, 잠깐만.”

김 씨가 의자 뒷받침을 쭉 젖히더니 책상 위에 있던 신문을 가져왔다.

“거기 좀 봐라.”

“예? 개헌 추진…… 탄핵소추……. 뭡니까?”

“그거 말고 그 밑에.”

“……헌터관리법.”

“그래, 그거. 정부에서 제출한 거 저번 주에 국회에서 통과된 모양이더라. 원래라면 13일 뒤부터 적용되기 시작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탑을 오르면서 소식 못 듣는 경우가 많아서 1년 정도 길게 잡은 모양이야.”

인한은 미간을 찌푸렸다.

헌터관리법.

인한이 이걸 모를 리가 없다.

‘이게 지금쯤 나오는 법이었구나.’

10년 전 1차 몬스터 웨이브부터 시작된 재앙은 인류에게 검은 탑의 공포를 각인시켰다.

그 공포는 빠른 피해 복구와 안정화가 진행되며 점점 구체적으로 변해 갔고, 끝내는 헌터에게도 이어졌다.

제약 없는 힘은 위험하다. 탑에 들어서는 데는 어떤 조건도 필요 없는데, 탑에서 얻는 힘은 너무나 큰 것이다.

하지만 탑을 오르기 위해선, 그리고 아직 토벌되지 않은 위험지역의 몬스터를 처리하기 위해선 헌터들의 힘이 필요한 것도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거기다 서서히 검은 탑의 가치가 드러나며 뛰어난 헌터가 국가의 경쟁력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각국은 발 빠르게 여러 법안을 통과시키고, 헌터와 탑에 대한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의 윗대가리들은 골머리 앓다가 일단 족쇄부터 채우려고 했지.’

대한민국은 그런 헌터들에게 법이라는 이름으로 억누르려고 했다.

자세한 내용이야 많지만, 요약하자면 이랬다.

-너희들 공무원 대우해 줄게. 대신 명령 들으면서 살아!

국가에서는 헌터에게 월급과 혜택을 약속하는 대신, 시험과 엄정한 심사를 통해 탑을 오르도록 검은 탑 주변을 봉쇄했다.

그리고 이미 탑을 오르는 헌터들은 국가에 등록하고 국가의 명령을 듣도록 했다.

‘멍청한 짓이지.’

비슷한 짓을 한 나라도, 억압한 나라도 있지만 검은 탑을 주도했던 몇몇 선진국들은 달랐다.

등록은 하도록 하고, 또한 국가에 소속되도록 하기는 했지만 자유를 보장했다.

국가에 의해 토벌 임무 등에 임할 때는 어디까지나 ‘의뢰’의 형태를 띠었고, 막대한 보상금도 주어졌다.

족쇄를 채우긴 했지만 ‘억압’이 아닌 ‘상생’을 도모한 셈이다.

또한 좋은 인재들이 자국을 떠나지 않게 각종 혜택을 부여하며 끌어안았다.

‘그에 비해 한국은…….’

물론 어느 정도는 지켜졌다. 쥐꼬리만 한 월급과 있으나 마나 한 혜택들.

그러면서도 별의별 명령을 다 내렸고, 헌터는 야만스럽고 폭력적이며 위험하다는 선동에, 언플에…….

‘사실 한국에서 랭커들이 많이 나왔지.’

한국에는 헌터의 수가 적은 반면 뛰어난 헌터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많던 랭커들은 대부분 해외로 귀화했다. 중국으로 귀화해 혈맹 길드에 들어갔던 이정환이 좋은 예였다.

그제야 변화가 일어났지만…… 그때는 이미 너무 많은 인재들이 한국을 떠난 후였다.

“덕분에 우리도 조금 흔들릴 것 같다. 탑에서 가지고 나오는 물건에 세금을 왕창 떼어먹는데…… 어휴. 그리고 나도 헌터로 등록되는 모양이더라.”

인한은 신문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흠, 전 안 할 거 같군요.”

“……뭐? 어떻게 안 하냐. 나라가 하라는데.”

“전 조금 기다렸다가 제대로 정착되면 하려고요.”

그래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전문 부서도 생기고 기관을 포함한 다양한 변화가 생기며 좋아진다.

하지만 인한으로서는.

‘내가 지금 거기까지 신경 써 줄 여유가 없네.’

그런 데 신경 쓰는 것보다 코앞에 닥친 위험이 더 급했다.

“뭐 알아서 하고.”

김 씨는 담배를 하나 더 꺼냈다.

“뭐 하여튼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번엔 또 얼마나 가져왔어?”

“여기, 이것들입니다.”

인한은 품에서 A4 종이를 한 장 꺼내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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