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공략자들 46화>
“샐러! 너 어떻게 이런 걸…….”
-삐익?
“그, 그냥 알았다고?”
그게 무슨 소릴까?
-삐익! 삐이이! 삐이? 삐삐!
“원래 이런 건 못 하는데, 나랑 계약하고 이상해졌다고? 아, 할 수 있게 됐다고?”
-삑!
인한은 눈을 끔뻑였다.
하긴, 인한도 그런 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정령석을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는 정령이라니……?
‘왕의 권세인가?’
만약 인한에게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인한은 고개를 휘휘 젓고 다시 정령석을 바라보았다.
[최하급 정령석]
[등급 : F]
[종류 : 소모품]
[효과 : 속성력 스테이터스가 8포인트 상승합니다.]
정령사들이 정령석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알고 있다. 인한은 정령석을 입에 던져 넣었다.
꿀꺽!
목구멍을 통과한 순간, 인한의 안쪽에 있는 불의 속성력이 일어나 정령석을 휘감았다.
그러자 정령석이 알갱이처럼 부서지며 커다란 속성력의 흐름에 휘말렸다.
[속성력이 8포인트 올랐습니다.]
“오오!”
인한이 불끈 주먹을 쥐었다.
진짜다!
이건 진짜다!
“다, 다음 거까지.”
[속성력이 10포인트…….]
[속성력이 6포인트…….]
[속성력 : 50]
“대박이다!”
인한이 기쁨에 겨워 외쳤다.
그 순간 주변을 지나가던 헌터들이 ‘어휴, 딱한 사람’ 하고 중얼댔지만 인한의 귀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 수십 개의 돌이 전부 정령석이었던 거냐……!”
4층까지 오면서 주운 그 돌들을 죄다 버려 버렸다.
사실 인한이 사냥을 오래, 그리고 많이, 거기다 보상이 좋은 밤에까지 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숫자를 얻은 것이지, 딱히 알록달록한 돌이 누구에게나 자주 나오는 것은 아니었다.
-삐익!
인한의 눈앞에 3, 40센티 정도 되는 커다란 수달이 허공에 뜬 채 인한의 볼에 몸을 비볐다.
“어? 샐러?”
수달이 아니었다. 샐러였다.
속성력 덕분일까. 손바닥만 하던 놈이 엄청나게 커졌다.
인한은 샐러를 보며 놀라면서도,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럼 정령술도!’
인한은 주먹을 불끈 쥐고 정령술을 펼쳤다.
화르륵!
촛불 정도의 새끼손가락만 했던 불꽃은 인한의 주먹을 휘감을 정도의 크기로 커진 상태였다.
-크륵!
그때였다.
주변을 거닐던 고블린과 인한의 눈이 마주쳤다.
인한은 고블린을 보다, 다시 손바닥에 타오르는 불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인한이…….
히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키, 키야악!
고블린은 본능적으로 위기감을 느끼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순간.
퍼엉!
-취이이이익!
느긋하게 갈 길을 가던 고블린에게는 심히 억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뒤통수에 붙은 불이 맹렬하게 타오르며 고블린을 태워 가기 시작했다. 땅바닥에 붙어 몸을 구르기도 했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취이아아아악!
-삐익! 삐익!
결국 타오르는 불꽃은 고블린의 전신으로 번졌다.
……샐러는 옆에서 재미있다는 듯 꼬리를 미친 듯이 흔들며 발광했다.
인한도 해 놓고 조금 그로테스크한 광경이라 눈을 찌푸렸는데, 샐러는 오히려 즐기고 있었다.
귀여운 생김새로 판단하기엔 샐러의 성격이 굉장히 괴팍할지도 모른다.
‘그것보다, 위력이 괜찮잖아?’
인한은 손에 다시 불을 생성하며 중얼댔다.
감당할 정도의 속성력만 사용한 것인데 한 놈을 잡아 버렸다.
만약 모든 속성력을 쏟아붓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지금 불꽃의 세 배 정도 크기의 화염을 타오르게 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거기다 정령술의 불꽃은 자연의 불꽃과는 다르다.
정령술의 불꽃은 ‘탈 것’을 통해 타는 게 아닌, 속성력이라는 것을 통해 타오른다.
구구절절 설명하자면 길지만, 한마디로 안 꺼지고 굉장히 잘 탄다는 것이다.
‘한 번?’
화르륵!
인한이 주먹을 뻗은 순간, 한 줄기 화염이 따라붙었다.
격한 움직임의 체술과 병행할 정도는 아니지만, 인한이 꿈꾸던 모양새는 나왔다.
‘이거, 근데…….’
인한은 커흠, 하고 기침을 하고 주먹을 몇 번 더 뻗었다.
퍼엉, 퍼엉 하는 파공성과 함께 불꽃이 멋들어지게 터져 나갔다.
인한의 눈이 반짝였다.
‘……괜찮은데?’
아니,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멋있다.
그야말로 불주먹!
솔직히 멋들어질 거라고는 상상했지만 이 정도라니!
인한은 고개를 휙휙 돌려 주변을 살폈다.
어서, 빨리 이대로 주먹을 휘둘러 보고 싶다! 상대, 상대가 필요하다!
-크륵?
그때 두 블록 정도 너머에 파충류형 몬스터 바실리스크가 보였다.
-캬아아악!
놈은 고블린과 달리 인한에게 적의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인한은 히죽 웃으며 주먹을 쥐었다.
퍼- 엉!
엄청난 폭음과 함께 화염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머리가 박살 난 바실리스크가 땅바닥에 맥없이 털썩 쓰러졌다.
“내가 바로 검은 탑 불주먹이다! 이 도마뱀아!”
사실 불 쪽은 거의 데미지가 없었지만…… 인한에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인한은 쓰러진 바실리스크를 보며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인한에게서 네다섯 블록 정도 떨어진 거리.
“불주먹이래. 킥!”
“웃지 말자. 남자에겐 저런 ‘시기’도 있는 법이니까.”
“안타까운 사람이네.”
“남자란…….”
한 무리의 헌터들이 인한을 보고 있었다.
사실 인한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지만 워낙 인한이 우렁차게 말하는 바람에 그들이 들은 것이었다.
“어우, 막 허공에 주먹질한다.”
“극혐…….”
“그, 그런데 조금 멋있지 않아? 어떻게 손에서 불이 나오는…….”
“…….”
“뭐, 뭔데 그 눈빛!”
“힘내라.”
“솔직히 멋있잖아! 불주먹이라고! 불주먹!”
“에휴.”
인한은 여전히 자아에 도취된 채 호쾌한 웃음만 터트릴 뿐이었다.
“하하! 불주먹!”
* * *
그 후로도 인한은 인간형 몬스터만 사냥하며 그 ‘알록달록한 돌’을 찾아 헤맸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으니.
‘이 짓도 계속하니 별로 안 느는구나.’
처음에는 많게는 10포인트까지 올랐는데, 처음 얻은 두 개를 포함해 네 개를 섭취한 순간부터 속성력의 증가치가 반감되었다.
게다가.
퍼엉!
인한이 쥐고 있던 속성석이 깨져 버렸다. 손끝에 불로 지진 것 같은 화끈함이 느껴졌다.
“큭! 또!”
속성석이 무조건 정령석으로 변환되는 것도 아니었다.
이렇게 조절에 실패하면 여지없이 터져 버렸다.
인한은 투덜대며 손을 털었다.
‘이제…… 두 개 남았구나. 뭣도 약으로 쓰려면 없다더니.’
거의 하루 종일 인간형 몬스터를 닥치는 대로 잡으며 돌아다녔건만 인한이 얻은 속성석은 일곱 개뿐이었다.
그중 세 개가 터졌고, 두 개를 섭취했고, 나머지 두 개가 남았다.
인한은 한숨을 쉬고 몸을 일으켰다.
‘이건 여기까지만 해야겠군.’
5층의 심층부에 들어온 것도 벌써 한참 지났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레벨의 차이, 스테이터스의 차이, 마력의 차이.
모든 게 인한이 너무나 월등하기 때문에 얻는 게 없으니, 5층에서 더 머무는 건 시간 낭비였다.
‘가자.’
인한은 보스존으로 향했다.
5층의 보스존은 다른 던전들과 달리 시가지의 중심에 위치해 있었다.
중앙에 있는 커다란 철문을 가진 건물. 그곳에 도착한 것은 인한만이 아니었다.
‘두 팀 정도인가?’
누군가 들어간 모양인지, 두 개의 그룹이 문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인한도 그들의 뒤에 가서 앉았다.
그렇게 30분쯤 지났을까.
끼이이익!
문이 열리고 팀 하나가 나왔다.
“제기랄! 또야!”
독일인이었다. 안 그래도 거친 어조가 특징인 독일어인데 더욱 거칠게 느껴졌다.
“개 같아! 도대체 어떻게 사냥하는 거야!”
팀장으로 보이는 자가 자신의 투구를 땅바닥에 내던지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일단 정비부터 하지. 오늘은 마을로 가자.”
그렇게 도전했던 팀이 자리를 떠났다.
다음에는 자연스럽게 팀 하나가 일어나 문으로 들어갔다.
탑의 불문율과 같은 것이었다.
보스존의 도전은 선착순으로.
물론 개중에 네임드 헌터 팀은 무시하고 새치기를 하는 모습도 보이지만, 너무 막돼먹은 팀만 아니면 대부분 그 불문율을 지켜 줬다.
그때 누군가가 인한을 툭 쳤다.
“자네.”
인한보다 앞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내.
가무잡잡한 피부에 토브를 입고, 구트라를 쓴 중년 사내였다.
“무슨 일이시죠?”
“한참을 홀로 있는 것 같아서 말이지. 팀원들은 어찌하고 혼자 방황하고 있는가?”
인한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런 오해를 한두 번 받은 게 아닌지라 이젠 익숙했다.
“솔로입니다.”
“음? 솔로?”
그가 눈을 껌뻑였다.
아마 다음 나올 반응도 예상이 갔다. 못 믿겠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어라?’
하지만 예상외의 반응이었다.
“동양인에…… 솔로에…….”
그는 무언가를 중얼거리며 인한을 훑어보았다.
“혹시 무기는 뭘 사용하나?”
인한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건 왜 묻는 거죠?”
“그리 대단한 질문도 아닐 텐데. 이런, 민감한 질문이었나 보군? 이해하게.”
사과도 아니고 이해하라니. 인한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래서 내가 이쪽 애들을 싫어하지.’
이들에게는 아직 신분제가 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을 가진 그들을 인한은 불편해했다.
“흠, 다름이 아니라 혹시 자네가 소문의 자이언트는 아닐까 싶어서 말이지.”
“자이언트? 그게 뭡니까?”
“자이언트를 모르는가? 최근에 여기저기에서 이야기가 나오는 자지. 육룡 이후로 처음으로 홀로 활동하고, 황인이며, 무기를 사용하지 않고, 몬스터의 공격도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굳건한 육체를 가진 헌터에 대한 소문이지.”
“예……?”
그거, 완전 자신 아닌가?
애초에 숨기고 활동하진 않았지만 그렇게 드러나 있었다니?
“그런데 왜 별명이 자이언트입니까?”
“내가 듣기로는 210센티의 장신에, 몸무게는 120킬로나 나가는 모양이야. 야만인처럼 짐승의 가죽으로 옷을 입고 머리는 여자처럼 길러 늘어뜨린 모양이라더군. 그 육신은 쇳덩이처럼 단단하며, 주먹 한 번에 몬스터를 처치하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던가.”
“……확실히 저는 아니군요.”
“하하! 그렇지. 사실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나? 만약 있다면 그자는 어지간한 변태일 걸세! 멀쩡한 무기를 내버려 두고 맨몸으로 탑을 오르다니? 거기다 제대로 피하지도 않고 일부러 몸으로 받아들이다니. 고통받는 걸 즐기는 기이한 성적 취향이 있는 거겠지.”
“하, 하하…….”
인한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눈을 돌린 인한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설마 소문이 벌써…….’
맨손으로 공격하고, 맨몸으로 몬스터의 공격을 버티고, 일격에 몬스터를 처치하고, 황인에 솔로.
딱 인한이다.
물론 워낙 눈에 띄게 행동하긴 했다. 굳이 드러내고 다니지도 않았지만 굳이 사람들을 피하고 다니지도 않았으니 인한에 대한 소문이 돌 법도 했다.
체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지극히 드문데, 거기다 엄청난 특징까지 있으니까.
‘그건 그렇고 210센티에 120킬로? 어처구니없는 수치군. 말도 안 되는…….’
동양인을 기준으로 하면 인한의 키가 크기는 하다.
사실 처음 회귀했을 때까지만 해도 180센티 초반이었지만, 지금은 190센티에 닿았다.
아마도 굽어 있던 골격이 펴진 것과, 극체술을 통한 육체의 강화로 인한 성장일 테다.
‘아니, 근데 이 양반이 변태라니!’
절대 아니다!
인한이 이상한 취향을 가졌고 고통받는 걸 즐기다니!
거기다 짐승의 가죽을 입고 있는 것도 표현이 좀 그렇지 않은가. 가죽 갑옷이라고 해야지.
이래 봬도 천문으로 효과를 읽으면 입이 떡 벌어질 고급 아이템인데!
‘거기다 최초로 붙은 칭호인데, 자이언트라니?’
자이언트, 한마디로 거인이다.
그 임태호도 칭호가 붙었는데, 인한은 여태껏 칭호가 붙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20층부터 40층까지 최상위권 공략 길드였던 해태 길드의 창립 멤버이자 길드장이었으니 어디어디의 누구누구까지는 불려 본 적이 있지만, 특출한 게 없어서 특별히 별칭이 붙은 적은 없다.
끼이익!
그때 문이 열리고 또 하나의 팀이 나왔다.
굉장히 빠르게 나온 팀들이었다.
아무래도 실력에 맞지 않지만, 던전의 난이도를 경험해 보고자 한 모양이었다.
“알라의 가호가 함께하길, 여행자여.”
“……당신은 가다 좀 넘어지시길.”
“응? 뭐라고 했나?”
“아무것도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