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42화 (42/266)

# 42

<공략자들 42화>

피부가 끓는다.

“으윽…….”

저도 모르게 던져 버릴 뻔한 것을 이를 악물고 버텼다.

상상 이상의 고통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 뜨거움이라면…….

[화상 면역 스킬의 숙련도가 1% 상승했습니다.]

역시!

살을 불에 지지는 기분이었다.

극체술의 회복이 계속되며 마력이 쭉쭉 빨려 나갔다.

[심각한 화상…….]

[화상 면역 스킬의 숙련도가…….]

[화상이…….]

[화상 면역 스킬의…….]

“크윽!”

인한은 참다못해 발열팩을 던져 버렸다.

왜 불에 타 죽는 것이 가장 고통스러운 죽음 중 하나라는 건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극체술에 의해 상처는 점점 회복되었다. 인한은 찡그린 얼굴을 서서히 펴며 스테이터스를 확인했다.

“……제법?”

9퍼센트가 올랐다.

그냥 적당히 뜨거운 정도의 발열석은 한참을 만져야 0.1퍼센트가 오를까 말까인데, 그 짧은 시간에 9퍼센트다.

“이거 할 만한데?”

고작 숙련도 9퍼센트 올리겠다고 자해하는 걸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겁하겠지만, 이제 아무렇지도 않게 된 인한은 좋은 아이디어라면서 히죽댔다.

‘화상 면역을 지금부터 올려 두면 좋긴 하겠다.’

정확히 몇 층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30층 초중반이었을 것이다.

드락키 용암지대.

엄청난 열기 때문에 사냥은커녕 계속 있는 것조차 힘들었던 층이었다.

그곳에서 공략자들은 화상 면역을 얻어 용암지대를 나아갔다.

화상 면역은 용암지대뿐만 아니라 모든 열에 대한 면역으로 이어진다.

앞으로의 일에서 불을 뿜는 몬스터는 굳이 30층대까지 가지 않더라도 굉장히 많다. 화상 면역은 큰 도움이 될 테다.

‘불로 살을 지지는 건 아무래도 미친 짓이고, 역시 발열팩이 딱이긴 한데…….’

인한은 힐끗 땅바닥에 떨어진 발열팩을 바라보았다.

할 때 하더라도 바로 하고 싶진 않다.

타닥!

때마침 장작이 무너지면서 불길이 줄어들었다. 이미 몸은 화끈화끈했지만, 인한은 모닥불을 향해 장작을 하나 더 넣어 줬다.

‘아, 그러고 보니.’

인한은 타오르는 불에 손바닥을 내밀고 집중했다.

화륵!

손끝에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정령술.

사실 이 ‘술’이라는 글자가 맞는 거 같지가 않다.

다른 스킬들과 다르게 정령술은 뭐라고 할까, 그냥 할 수 있게 되었다.

어떤 이론이나 요령이 있는 게 아니었다. 숨을 쉬거나 눈을 감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불이라는 속성력을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할 때마다 신기하단 말이야.’

탑의 정령술은 소설이나 만화에서 나오던 것과는 달랐다.

인한은 분명 샐러라는 정령과 계약을 했지만 샐러를 통해 힘을 발휘하지는 않았다.

‘정령처럼 힘을 쓸 수 있게 하는 게 정령술이라니.’

말 그대로, 인한은 불을 다룰 수 있게 됐다.

속성력이란 스테이터스를 마력처럼 소모하는 것으로, 인한은 계약한 정령의 속성을 다룰 수 있게 됐다.

아직 실력이 낮아서 불에 다치지 않는다든지, 불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든지 하는 건 아니었다.

정령술을 얻은 후 시험 삼아 불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화상을 입기도 했다.

‘덕분에 화상 면역 스테이터스랑 속성력은 좀 올랐지만.’

지금의 인한은 딱 촛불만큼의 불꽃을 다룰 수 있는 정도였다.

인한은 내친 김에 샐러도 소환했다.

-시익!

샐러가 소환되자마자 활발하게 인한의 주변을 날아다녔다.

샐러는 작은 도롱뇽 같은 모습이었는데, 자세히 보면 얼굴은 수달처럼 생겼다.

놈은 온몸이 불로 뒤덮여 있었는데, 계약 후라 그런지 놈에게서 느껴지는 불은 따뜻했다.

‘얘는 커지면 어떻게 되려나.’

인한은 손바닥에 떠 있는 불꽃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속성력 스테이터스가 1포인트 상승했습니다.]

[속성력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속성력은 훈련하면 훈련할수록 금방 는다.

주먹을 쥐어 손바닥에 타오르는 불꽃을 꺼뜨린 인한은 장작불 옆에 누워서 뒹구는 샐러를 바라보았다.

속성력이 오른 덕분인지, 아주 조금 덩치가 커진 듯 보이는 샐러.

인한이 강해져야 샐러가 성장한다. 속성력이 높아지면 이 녀석이 어떻게 변할지 기대됐다.

위이잉!

그 순간, 느긋한 저녁을 만끽하던 인한의 귀에 알림이 울렸다.

인한의 표정이 굳었다.

주술이 발동했다.

100미터 거리에 누군가가 접근했다. 그것도 제법 많은 수가.

* * *

절벽의 밑에서, 그녀는 허탈하게 웃었다.

‘아, 이렇게 죽는 건가?’

힐끗 허공에 떠오른 천문을 바라보았다. 천문에는 몸의 상처에 대한 천문이 계속 떠올랐다.

‘아냐! 정신 차려. 이런 데서 죽을까 보냐.’

그녀는 힘겹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검을 지팡이 삼아 걷기 시작한 그녀의 뒤로 누군가의 외침 소리가 들렸다.

“야! 어디 갔어! 아직도 못 찾았냐!”

“이쪽은 못 봤습니다, 형님!”

“잘 찾아봐!”

발에서 시큰거리며 불길한 통증이 올라왔지만, 그녀는 입술을 잘근 씹으며 신음을 참았다.

그때였다.

-크르르르…….

낮게 가라앉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도베르만을 코끼리 크기 정도로 키운 듯한 몬스터가 걸어 나왔다.

“올가릴…….”

침을 뚝뚝 떨어뜨리는 몬스터, 올가릴이 앞발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꺄악!”

콰앙!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힘없이 절벽에 처박혔다.

“쿨럭!”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고통이었다. 머리가 크게 흔들리며 시야가 흐릿해지는 걸 느꼈다.

-크르르르!

올가릴의 입이 서서히 다가왔다.

‘이대로…… 죽는 건가……?’

그녀는 부들부들 떨며 몸을 움직이고자 했다. 도망치고 싶었다. 여기서 죽을 수는 없었다.

어째서,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녀의 팔다리는 도저히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뭔가가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 * *

인한은 기척에 조심하며 몸을 움직였다.

‘상당히 많은 숫자.’

인근에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거기다…….

“씨발년! 그걸 들고 튀었어! 잡히면 뼈를 갈아 마셔 버릴 테다!”

“그쪽은?”

“없다!”

아무리 봐도 그리 제대로 된 헌터로 보이지 않는 자들이었다.

‘나는 아니었나?’

브라이언의 일이 여기까지 연결됐을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그럼 다른 누군가가 쫓기고 있는 것일까?

이대로라면 인한에게도 피해가 있을지도 몰랐다. 여기서는 피곤하지만 몇 킬로 정도 이동을 하는 편이 좋을지도 몰랐다.

“꺄악!”

그때 귀를 스치는 비명 소리.

쾅, 하는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도 들렸다.

발을 돌리려던 인한을 붙잡기에는 충분했다.

‘흠?’

멀지 않은 곳, 정체 모를 집단도 비명 소리를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한은 거대 몬스터 올가릴과 기절해 있는 백인 여성을 발견했다.

터엉!

인한은 바로 올가릴에게 달려들었다.

-크륵?

콰- 앙!

엄청난 폭음이 울려 퍼졌다.

올가릴의 아가리에 주먹을 꽂아 넣은 것이다.

대량의 핏물이 촤학! 하는 소리와 함께 사방에 흩뿌려지고, 올가릴이 금세 축 늘어졌다.

“괜찮습니까?”

인한은 바로 여성에게 다가갔다.

전신에 타박상이 가득했다. 한쪽 다리는 부러진 것 같지는 않은데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인한은 여성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 사람은……!”

인한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 갔다.

* * *

“제길! 어디로 도망친 거야!”

“멀리는 안 갔어! 소리가 들렸잖아! 꼭 생포해라!”

인한은 수풀 속에 숨은 채 점점 멀어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한은 힐끗 옆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기절한 채 쌔액, 쌔액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백인 여성이 있었다.

‘그녀가 왜…….’

인한은 복잡한 감정을 느끼며 미간을 슬며시 좁혔다.

인한은 이 여성을 알았다.

정확히는 미래의 이 여성을.

소드 퀸, 아나스타샤 로자베라.

데스파티 소속의 몇 안 되는 여성 랭커 중 하나.

하얀 것을 넘어 투명할 정도의 피부에 풍성한 황갈색 머리카락과 또렷한 이목구비. 유리 세공품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외모였다.

하지만 미래의 그녀는 그 아름다움보다는 잔혹함으로 더 악명이 높았다.

‘그 블러디 아나를 만날 줄이야…….’

지독히 호전적이고, 피를 보는 데 거리낌이 없으며, 일단 사람을 향해 검을 들면 죽이거나 불구를 만들 때까지 살의(殺意)를 거두지 않았기에 붙은 블러디(Bloody)란 칭호.

그녀에게선 언제나 피 냄새가 났다.

‘버리고 갈까?’

인한은 자신을 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위험에 처한 사람이 눈앞에 있으면 도와줄 거고, 악인이 눈에 보이면 처단할 것이다. 살인은 되도록 피할 테지만, 필요하다면 고민 없이 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런 인연도 없는 일에 굳이 손을 뻗을 생각은 없다.

그녀와 인연은 있지만, 그 인연 속에서 그녀는 가해자였고 인한은 피해자였다.

‘그렇긴 한데…….’

사실 몸을 뺄 수 없도록 계속 발목을 잡는 생각이 있다.

인한은 올가릴이 그녀를 덮쳤던 광경을 떠올렸다.

인한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100퍼센트 죽었을 상황이었다.

만신창이인 그녀의 몸 상태에, 굶주린 올가릴이 이를 드러내고 있었으니.

하지만 그녀는 이곳에서 죽을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검은 탑의 99층까지 올라간 최초의 길드, 데스파티를 이끌어 간 주역 중 하나였으니까.

“나 때문인가.”

인한은 나직이 중얼거렸다.

나비효과.

인한의 존재가 검은 탑에서 일어났어야 할 수많은 일들을 바꾼 걸지도 모른다.

‘어차피 신경 쓸 생각도 없지만.’

인한에 의해 변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저 변하게 두면 된다.

죄책감을 가질 생각도 없고 후회할 생각도 없다.

애초에 찾아올 결말을 바꾸려는 생각인데, 그 과정들이 바뀌는 게 무서울 리가 없다.

그렇지만 분명 자신의 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부스럭!

그때 인한의 귀에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름 소리를 죽이며 움직이는 모양인데 인한에게는 선명하게 들렸다.

“윽!”

“커윽?”

인한은 간단하게 그들을 때려눕히고 아나스타샤를 내려다보았다.

‘……일단 구해 주지.’

인한은 아나스타샤를 등에 업었다.

지금의 아나스타샤에게선 피 냄새가 나지 않는다.

대화를 나눠 볼 가치는…… 있다.

* * *

적당히 거리를 벌린 인한은 숲속의 커다란 암석을 등지고 자리를 잡았다.

땅바닥에 침낭을 깔고 아나스타샤를 눕힌 후 옆에 모닥불을 피웠다.

‘일단 치료부터 해야겠는데.’

다행히 중상은 없어 보였지만 여기저기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으응…….”

치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아나스타샤가 누운 곳에서 꿈틀대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아나스타샤가 몽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인한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곧 그 커다란 눈을 한층 더 커다랗게 뜨더니 벌떡 일어섰다.

“누구야, 당신!”

“어떻게 봐도 제가 도와준 것 같은 상황인데, 그렇게 경계하는 건 좀 무례가 아닌가 싶습니다만.”

“…….”

아나스타샤는 긴장을 풀지 않은 채 인한을 노려보았다. 인한은 고개를 휘휘 젓고 모닥불 위에 냄비를 얹었다.

“수프 만들어 뒀는데, 데워 드리죠. 먹어요. 상당히 굶은 것 같던데.”

“필요 없어!”

“아까부터 꼬르륵 꼬르륵 울려 댔는데요?”

“웃기지 마! 윽! 내, 내 검은?!”

아나스타샤가 자신의 인벤토리에 검이 없는 걸 알았는지 당황해 했다.

있을 리가 있나. 땅에 떨어져 있길래 인한이 자신의 인벤토리에 챙겨 뒀는데.

“이거 찾습니까?”

“이리 내!”

아나스타샤가 손을 뻗자 인한이 검을 획 뒤로 뺐다.

“싫은데요.”

“이익!”

“먹으면서 얘기하죠. 물어보고 싶은 것도 있으니.”

“필요 없어!”

그때 냄비에서 고소한 크림 냄새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꼬르륵!

뒤를 잇는 우렁찬 소리.

인한은 피식 웃으며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았다. 아나스타샤의 새하얀 볼이 새빨갛게 물들었다.

“걱정 마세요. 당신을 쫓던 사람들은 다 떨궈 냈으니까. 당신이 쓰러졌던 곳에서 족히 몇 킬로는 떨어진 곳입니다. 한마디로 당신 구해 주고, 기절한 당신 업고 그만큼 왔단 말이기도 하죠.”

인한은 그릇에 수프를 담으며 말했다.

아나스타샤는 입을 뻐끔거리며 우물거리다 마지못해 그릇을 받았다.

“……당신 누구야.”

“헌터입니다. 어디에나 있는 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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