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
<공략자들 40화>
믿을 수 없다.
있을 수 없다.
이건…… 악몽이다.
“크아악! 어떻게…… 어떻게!”
확실히 인한은 강했다.
처음 만났을 때도 도저히 5층에 있는 인원으로 볼 수 없을 정도였다.
하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고작 한 달 정도 떨어져 있었을 뿐인데, 그는 지금 백 명의 킬러를 압도한다.
말로 하니까 쉽지만, 손과 발 각각 두 개로 2백 개의 손과 발을 막아서는 것이다.
그것도 맨몸으로, 날카로운 쇠붙이들을.
‘그, 그자와 같다. 10층의 그자와…….’
고작 5층에서 저 정도의 강함은 이미 그 자체로 정상이 아니다.
“씨, 씨발! 키히히! 씨발!”
브라이언은 주저앉은 채 미친 듯이 욕지거리를 중얼댔다.
벌써 엄청난 거리를 도망쳤다. 이제 더 이상 인한이 쫓아오지 않을 거란 생각에 감정이 폭발했다.
원래 그의 계획은 이게 아니었다.
인한을 먹는다.
브라이언의 예상이 맞는다면 인한은 씨앗을 보유한 헌터들이 찾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 말은 즉, 인한을 죽이는 데 성공하면 그 사람이 브라이언이 될 수 있다는 말이었다.
아니, 사실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다.
단순하게 씨앗을 갖고 있을 뿐이라도 좋다. 그렇다면 씨앗을 빼앗으면 될 뿐이니까.
그랬을 텐데…….
‘이길 수 없다. 절대.’
숫자만 준비한 게 아니다.
수많은 무기에 함정에 ‘인질들’도.
그런데 그것들을 다 사용한다고 생각해도 승리의 이미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도망쳤다.
100명의 킬러들을 동원해 놓고 실패했으니 조직에서 그의 위치가 크게 흔들리겠지만, 목숨이 위협받는 것에 비하면 큰일도 아니다.
어차피 조직에 킬러들은 차고 넘치니까.
“그냥 머릿수로는 안 돼. 그, 그래! 그분을 데려오자! 그분이라면……!”
그때였다.
[액티브 스킬 ‘추격의 저주’에 의해 표식이 활성화됩니다.]
[시전자 : 최인한]
[시전자에게 위치가 발각됩니다.]
처음 보는 종류의 천문이었다.
브라이언은 눈을 껌뻑였다.
‘이게 무슨 소리야?’
그때 욱신거리는 느낌에 브라이언은 자신의 손등을 감쌌다.
손등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자가 새겨진 채 빛을 발하고 있었다.
“허?”
그리고.
콰앙!
무언가가 날아와 땅바닥에 박혔다.
폭음과 함께 지면이 뒤집힌다.
하얗고 표면에 조각이 되어 있는 무언가…….
‘유적의 잔해?’
이게 왜 날아온단 말인가?
브라이언은 불길한 예감에 몸을 획 돌려 뒤편을 바라보았다.
먼 곳이다.
흐릿한 그림자…… 사람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맹렬한 속도로 접근하고 있었다.
“최인한……!”
브라이언이 몸을 돌려 땅을 박찼다.
괴물 같은 놈이다.
그만큼 도망치고 거리를 벌렸는데, 일부러 방향도 틀어 가면서 도망쳤는데 도대체 어떻게 쫓아왔단 말인가!
콰앙!
그때 또 하나의 돌덩이가 날아와 바로 옆에 떨어져 땅을 헤집었다.
“크, 크윽……!”
브라이언은 급히 일어나 다리를 움직였다.
아직 거리는 있었다. 도망칠 수 있다!
‘개새끼! 내가 잡힐 것 같으냐!’
* * *
“흠, 곧 잡겠군.”
[표식 : 브라이언 그레임스]
‘감’이라고 해야 옳을 감각이었다. 머리로는 알 수 없는데, 표식이 박힌 상대가 어디에 있고, 어디로 향하는지 저절로 알 수 있었다.
‘저기군.’
인한은 눈치채지 못한 듯 걷다가, 손에 쥐고 있던 돌멩이를 날렸다.
“크악!”
커다란 암석의 뒤편에서 거구의 형체가 뛰쳐나왔다.
인한은 피식 웃으며 느긋하게 그쪽으로 움직였다.
‘어떻게 내 위치를 아는 건데!’
브라이언은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숨도 죽여 보았고, 물속에도 숨어 보았고, 나무나 돌 뒤의 유적이나 동굴에 숨기도 했다.
하지만 인한은 정확히 브라이언의 위치를 파악했다.
‘설마 아까!’
브라이언은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로 달리며 이를 바득 갈았다.
손등에는 여전히 정체 모를 글자가 빛을 내고 있었다. 역시 이게 정체를 인한에게 알려 주는 것이리라.
그 순간, 브라이언이 뻗던 오른발을 향해 길쭉한 무언가가 쭉 뻗어졌다.
발이다. 누군가의 발.
몸을 피하기엔 너무 늦었고, 브라이언은 낙법을 취할 새도 없이 달리던 기세 그대로 땅바닥을 굴렀다.
“커흑!”
“술래잡기는 이제 슬슬 끝내자. 실험해 보고 싶던 스킬도 써 봤으니.”
“시, 시발…….”
인한이다.
인한이 쭉 뻗었던 발을 도로 당기며 넘어진 브라이언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쓸모없는 놈들!’
100명이나 있는데 저놈 한 명의 발도 못 잡다니!
브라이언은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떻게든 도망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도저히 놈과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질 않는다.
‘어라?’
브라이언의 눈에 들썩이는 인한의 어깨가 보였다.
“그, 그래! 괴물 같은 네 녀석도 지치지 않을 수가 없겠지!”
지쳤다. 확실하다. 표정도 다소 일그러져 있고 호흡도 거칠다.
할 만하다.
이 정도라면…… 그래, 싸울 만하다!
“크흐흐! 그래! 어디 싸워 보자고!”
브라이언이 인벤토리에서 대검을 뽑아 들며 외쳤다.
브라이언이 대검을 인한에게 겨눴다.
그 무거운 걸 들고 있으면서도 대검에는 흔들림이 없다. 지금은 5층에서 활동하지만 브라이언은 8층까지 올라가 본 적 있다. 그도 실력자다.
“내가 어디 쉽게 죽어 줄 줄…….”
쩌- 엉!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한이 대검을 후려치자 팔이 확 젖혀진 것이다.
모든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힘에다 투자했건만 지친 놈에게 상대도 안 된단 말인가!
“내가 조금 지쳤다고 네놈 상대도 못할 줄 알았나?”
인한은 또다시 한 발자국 내디뎠다.
“크아아!”
브라이언은 스킬을 전개했다.
광폭화.
검투사라는 클래스를 얻은 후 받은 보상의 스킬. 모든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일시적으로 1.5배로 만들어 주는 스킬이다!
눈이 붉게 물든 브라이언의 대검이 인한에게 쏘아졌다.
인한이 브라이언의 대검으로 손을 뻗었지만.
‘걸렸구나!’
부웅!
대검이 곡예와 같은 선을 그렸다. 미꾸라지처럼 팔을 타고 움직인 대검이 인한의 목을 노렸다.
인한의 대응이 늦다. 저 얇은 목에 대검이 직격한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승리라니!
하지만.
콰득!
인한의 중얼거림이 브라이언의 믿음을 깨부쉈다.
“고작 1퍼센트 오르네.”
브라이언의 대검은 인한의 목에 멈춰 있었다. 브라이언은 다시 힘을 줘 보았다.
하지만…… 움직이질 않는다.
꾸욱!
인한이 브라이언의 대검을 움켜쥐었다.
브라이언은 화들짝 놀라 대검을 끌어당겼지만, 대검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네 가치는 고작 그 정도라는 거야.”
인한이 대검을 천천히 밀어냈다.
“네 녀석에게 듣고 싶은 얘기가 많다.”
“내, 내가 말해 줄 것 같나!”
“그래?”
콰앙!
인한은 대검을 다시 한 번 후려쳤다. 지이잉, 하는 울림이 대검을 타고 브라이언의 손을 울렸다.
“큭!”
브라이언이 손끝에 느껴지는 시큰함에 외마디 비명을 흘리며 대검을 놓아 버렸다.
인한은 대검의 무게가 전혀 안 느껴지는 것처럼 뒤편으로 휙 날려 버렸다.
“이제 하고 싶을 것 같은데.”
“크, 크윽…….”
브라이언은 손목을 쥔 채 인한을 노려보았다.
“크, 크흐흐! 날 어떻게 할 생각하지 마라. 내가 뭘 갖고 있는지 알면 넌 날 어떻게 못할 거거든. 크흐흐!”
“……?”
브라이언이 드루이드의 인형을 들며 비열하게 웃었다.
“묘족의 마을. 키히히! 설마 내가 모를 줄 알았냐? 지금쯤이면 거기에 우리 애들이 우르르 몰려갔을 거다! 넌 날 살려야 해. 그래야 내가 드루이드의 인형을 통해 거기에 그만두라고 말할 수 있을 테니까! 거기에도 100명은 족히 갔을 거다! 어이, 묘족은 어때? 여자들은 많나? 어떻게 될지는 알 테지? 남자들은? 걱정 마! 남자도 수요는 있을 테니까! 크흐흐흐!”
인한은 순간 흠칫했지만, 금세 입을 열었다.
“우리나라 말에 김칫국 마신다는 말이 있지.”
“갑자기 무슨 소리냐!”
“거긴 나 없어도 충분해.”
묘족의 마을엔 그들이 있다.
이정환과 세릴.
인한은 그 둘의 실력을 안다.
세릴은 제정신이 된 후로 폭주했을 때의 반 정도밖에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모양이지만, 그 정도면 과거의 인한 정도는 된다.
그리고 이정환은 빛의 수호자를 얻었다. 단체와 단체의 싸움에서 빛의 수호자는 사기적인 효과를 낸다.
“도대체 무슨…….”
“마을도 걱정 안 된다. 어차피 발각된 건 한참 전이야. 마을이 옮겨야 하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을 거고. 그리고 이 멍청한 새끼야. 네가 그 명령을 내릴지 안 내릴지 내가 어떻게 알고 널 살리라고?”
카를은 이미 그 문제에 대해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안전도, 마을의 안위도.
인한이 걱정할 게 아니다.
“그래서? 또 뭐 꺼낼 거 있냐?”
“크윽……! 나, 날 건들면 네가 안전할 것 같으냐!”
“흠, 이번에는 참 상투적인 대사네. 널 건들면 안 되는 이유는 또 뭐지?”
“내가 어떻게 수백 명이나 되는 인원을 끌고 다닐 수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나는 조직에 속해 있다! 헬 하운드! 우리 길드에는 나보다 강한 자들이 족히 열은 있다. 네가 날 건들면…… 끄아아아아악!”
콰득!
브라이언이 비명을 질렀다.
인한의 주먹이 브라이언의 팔뚝에 꽂혔다. 브라이언의 팔뚝은 기형적으로 뒤틀렸다.
“크, 크흐으으윽……. 이 미, 미친 새끼이이이!”
“설마 벌써부터 무리를 만들었을 줄은 몰랐군. 그 이야기도 들어야겠어.”
인한은 브라이언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이제부터 몇 가지 물어볼 거야. 대답을 제때 하는 게 좋을 거다. 난 고문 같은 거 해 본 적이 없거든. 아! 참고로, 난 널 굉장히 싫어해.”
인한은 브라이언의 옆구리에 손을 대었다. 그곳에 갈비뼈가 만져졌다.
그리고.
뚝!
사정없이 부러뜨렸다.
브라이언의 커다란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
비명이 터져 나오려는 순간 인한이 브라이언의 입에 나무토막을 쑤셔 박았다. 억눌린 비명이 새어 나왔다.
몸을 비틀며 헐떡이던 브라이언이 한참 지나 안정되자 인한이 나무토막을 빼냈다.
“이제 말할 마음이 됐으면 좋겠군.”
“개…… 새끼…….”
“아직 안 된 모양이군.”
“아, 안 돼!”
인한은 브라이언의 입에 나무토막을 다시 쑤셔 박았다.
뚝!
섬뜩한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우우우웁! 우우욱!”
“자, 이제 첫 번째 질문.”
인한은 나무토막을 뺐다. 브라이언은 숨을 거칠게 헐떡였다.
“씨앗은 정확히 뭘 의미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