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공략자들 39화>
저격이다.
인한이 눈을 찌푸리며 일어섰다.
어깨를 털자 뭉개진 총알이 툭 떨어졌다.
사실상 마력으로는 거의 방어하지 못했다. 즉, 저격을 순수한 육체만으로 맞은 건데도 이 정도였다.
인한의 육신은 이미 어느 정도 선을 넘어선 걸지도 모르겠다.
‘……저기군.’
인한은 욱신거리는 어깨를 휘휘 돌리며 주변을 훑어보았다.
초원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넓은 땅이었다. 고른 잔디가 불어오는 바람에 얕게 맥동했다.
그런 잔디밭에 마치 섬처럼 유적의 잔해가 널려 있었는데, 그 유적에서 햇빛에 반사되는 반짝이는 빛이 보였다.
‘이거.’
인한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귀찮게 된 거 같지?’
총성을 시점으로 곳곳에서 사람들이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함정이었어.”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이쪽으로 오는 길에 묘하게 추격자의 기척이 없던 것도, 애초에 쫓고 있는 자가 있다는 게 드러난 것도 다 이쪽으로 몰아세우기 위함이었다.
어느새 초원은 수십의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그들 사이에서 거구의 사내가 대검을 짊어진 채 걸어 나오고 있었다.
“키히힛!”
기이한 웃음소리.
“브라이언…….”
“반가워, 달링.”
* * *
“총알도 막아 내다니. 도대체 그 몸뚱이는 어떻게 되어 먹은 거야?”
“…….”
“표정 좀 풀라고. 너무 싫어하는 거 아니야? 난 굉장히 기대했는데. 내가 다시 볼 거라고 했잖아. 하핫!”
인한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서? 이걸 다 끌고 온 거냐?”
“당연하지! 나도 좀 무리했다고.”
“도대체 날 잡으려고 몇 명이나 데리고 온 거지?”
“숲속에 있는 놈들까지 200명? 더 많나? 하여튼 그래. 아, 참고로 숲속에 있는 놈들도 서서히 오고 있으니까 기대하라고. 키히히!”
인한은 그 말을 듣고 끄덕였다.
확실히 그 정도 숫자이기에 인한을 몰아세운 거겠지.
인한은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후우, 귀찮게 됐군.”
“뭐? 귀찮? 드디어 미쳤군! 아니지, 아니야. 이러면 안 되는데…… 혹시 포기라도 한 거야? 죽을 작정? 안 돼! 싸울 생각을 해야지! 발악해야지! 포기하면 어떡해! 우리 또 제대로 싸워 봐야지!”
인한의 미간이 꿈틀거렸다.
“이 정도 인원 데리고? 제대로 싸우자고?”
“아, 물론 핸디캡이지. 넌 강하니까. 키히히!”
브라이언은 입술을 할짝 혓바닥으로 핥으며 말했다.
“기대돼. 널 죽이면 도대체 뭘 줄지 말이야. 도대체 그 강력함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씨앗도 씨앗이지만 네 그 스킬 쪽이 매우 기대돼.”
그 말에 인한이 피식 웃었다.
“혹시 이걸로 날 어떻게 해 보려고 데려온 거냐?”
“뭐……?”
“너야말로 오해가 큰 것 같은데.”
인한은 목을 뚝뚝 꺾었다.
“도망친 거, 무서워서 그런 줄 알았나? 혹시 내가 협공당하면 위험하다고 생각했을 줄 알았어?”
“도대체 무슨 소리를…….”
“착각하나 본데, 난 그냥 서두르고 싶었을 뿐이야.”
인한은 주먹을 그러쥐고 주위를 스윽 둘러보았다.
“너희들 같은 쓰레기들이랑 손을 섞고 싶지 않았을 뿐이라고.”
화악!
인한은 마력을 완전히 풀어 버렸다. 굳이 전투를 피하겠다는 달짝지근한 생각도 버려 버렸다.
인한의 안에 스위치가 있으면, 딸깍 하고 소리를 냈을 것이다.
인한은 다시 브라이언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 이걸로 될 거 같아? 이 자리의 100명으로? 핸디캡을 원했으면 내가 잘 때 팔이라도 하나 부러뜨렸어야지.”
인한은 주먹을 쥔 채 브라이언에게 한 발자국 내디뎠다.
“……!”
오싹!
브라이언은 등골을 달리는 섬뜩함을 느꼈다.
“더, 덮쳐!”
브라이언이 뒤로 몸을 돌리며 외쳤다.
그 말과 함께 초원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인한에게 달려들었다.
인한의 뒤편에서 가장 먼저 달려든 킬러 한 명이 칼을 내리쳤다.
하지만.
캉!
칼은 인한을 베기는커녕 중간에서 툭 부러져 붕붕 날아 땅바닥에 꽂혔다.
“어?”
칼을 휘두른 킬러가 자신의 칼을 보며 벙찐 표정을 지었다.
인한은 날아오는 수많은 무기를 무시하고 브라이언에게 시선을 던졌다.
“오늘은 안 놓친다.”
인한이 발을 뻗었다.
* * *
원래 PMC 소속으로 활동했었던 그는 어떤 난장판에서도 냉정함을 잃은 적이 없다.
다리가 지뢰에 날아가고 옆 사람이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에 바람구멍이 나도 냉정함을 유지했다.
덕분에 수명이 짧은 용병 생활도 제법 길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뭐랄까. 머리가 현상을 이해 못 해서 냉정함이고 뭐고 제정신을 유지 못 하고 있었다.
“크어억!”
퍼억!
인간이 하늘을 날고 있다.
아, 물론 그건 그렇게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쟁터에서 드물지만 제법 볼 수 있다.
다만…… 인간이 잡아 던진 것도 아니고, 인간이 휘두른 주먹에 날아가는 것은 처음 봤다.
퍼억! 콰득! 우드득!
있을 수 있는 파육음이란 파육음은 죄다 흘러나오는 초원. 녹색 대지는 어느새 선연한 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괴, 괴물…….”
물론, 킬러들의 피로.
“시, 시발…….”
수지가 안 맞다.
고작 한 명, 헌터 한 사람이 아이템을 떨어뜨린다면 뭐 얼마나 떨어뜨리겠는가.
원래라면 7, 8층의 규모 있는 팀들을 습격해 돈 좀 만지고 있을 예정이었는데, 괜히 조직의 간부인 브라이언에게 차출당해 다 날려 먹었다.
거기다 그 한 명이 말도 안 되는 괴물이라니.
때마침 한 명이 또 허공을 날았다.
‘정말 안 죽는 거 맞아?’
브라이언은 상대가 살인을 극도로 꺼린다는 말을 하며 인원을 차출했다.
그런데 정말?
얻어맞으면 허공을 훨훨 날고, 꺾으면 빨래 짜듯이 뒤틀리는데 죽지 않는다고?
“헉!”
그때 그의 앞에 인한이 멈춰 섰다.
“야, 야 이 새끼들아! 비, 비켜!”
본능적으로 도망쳐야 한다는 걸 알았지만 워낙 뒤에 빼곡히 사람들이 차 있어서 뒷걸음질을 칠 수가 없었다.
아니, 이 새끼들, 그냥 너부터 죽으라고 일부러 자리 안 내주고 등 떠밀고 있는 거다!
퍼억!
그때 그는 무언가 번쩍인다는 것을 느끼고 기분 나쁜 부유감을 느꼈다.
‘제기랄.’
그는 하늘과 땅이 뒤바뀐 듯한 착각과 함께 땅바닥과 진한 키스를 하며 기절했다.
“으, 윽…….”
대충 2, 30명 정도가 일방적으로 학살당했을 때쯤부터 킬러들이 움찔대며 인한에게 달려들지 않았다. 무기를 내민 채 그만큼의 거리를 벌린 상태였다.
“도망갈 거면 도망가지, 뭐 하냐?”
인한이 자세를 잡았다.
폰 체술.
정권(正拳).
콰아앙!
마력이 담긴 일격에 포위망의 일각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올바르게 주먹을 뻗는 법, 정권.
정확한 자세로, 정확한 경로로 주먹을 뻗을 뿐인 별다를 것 없는 스킬이지만, 이것을 연마하다 보면 매 순간 주먹의 정확도가 올라가는 느낌이다.
인한은 날아드는 무기들을 보며 우직하게 주먹을 뻗었다. 일격 일격, 단어 그대로 ‘올바른 주먹’을 뻗으며.
‘이건…….’
인한은 눈앞을 가리고 있던 막을 하나 벗겨 낸 듯한 기분이 들었다.
몬스터들을 상대로만 스킬을 펼치다 보니 알 수 없었던 것들이, 사람을 상대로 하다 보니 알게 된다.
‘마치 패시브 스킬처럼…… 자세를 교정해 주듯이.’
인한의 주먹이 점점 묵직해진다.
주먹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다만 그렇더라도 수도를 통한 선(線)의 공격이나 지법(指法)을 통한 점(點)의 공격과 달리, 면(面)의 공격이란 것은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면도칼과 같은 날카로운 주먹이 있으면 송곳과 같은 예리한 주먹도 있고, 채찍과 같은 재빠른 주먹도 있다.
그런 성질에 따라 몸의 단련법도, 자세도, 움직임도 달라져야 한다.
‘나의 주먹은.’
인한의 주먹은 묵직한 해머와 같다.
날카롭게 쏘아 내는 것도, 약점을 파고들어 일격을 노리는 것도, 쾌속하게 움직여 떨쳐 내는 것도 아닌.
묵직하게, 우직하게, 한 방 한 방.
굳건한 육체로 상대의 공격을 버티고, 상대의 방어를 힘으로 찍어 누르며 상대의 육체에 꽂아 넣는다.
콰- 앙!
주먹이 정련(精練)된다.
몸의 중심은 쇠막대기를 박은 것처럼 굳건하고, 뻗어 내는 주먹은 묵직한 힘을 품는다.
[스킬에 적용되어 있던 락을 해제합니다.]
[스킬의 등급이 올라갑니다.]
[스킬의 카테고리가 변경됩니다.]
[패시브 스킬 : 폰 체술]
[등급 : A]
“커흑!”
“저게 말이 돼!?”
“비, 비켜, 새끼들아!”
그때 한 킬러가 후방에서 외쳤다. 힐끗 뒤를 본 킬러들이 호들갑을 떨며 양옆으로 확 갈라졌다.
그 킬러의 손에 전차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병기가 걸려 있다.
투웅! 슈아아악!
공기가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RPG가 인한과의 거리를 좁혔다.
‘지금.’
인한은 주먹을 휘둘렀다.
그 순간.
또 한 번 그 공간에 들어선다.
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다르다.
주먹을 뻗었을 때 이미 인한의 주먹이 그 하얀 선의 흐름에 올라 있었다.
콰와아아아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잔해가 한 마리의 괴물처럼 피어올랐다.
킬러들은 몸을 숙인 채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았다.
“주, 죽었나?”
“새꺄! 그 말하면 죽을 놈도 일어날 거다!”
투확!
“헉!”
말마따나 인한은 그 연기를 걷어 내고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불과 재를 휘감은 채 우뚝 서 있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 그 자체였다.
킬러들은 더 이상 달려들 용기를 잃어버렸다.
전차를 상대로 만들어진 무기를 맨몸으로 얻어맞고 아무렇지도 않다니.
저게 정말 사람 몸뚱이란 말인가!
‘내 몸이지만 소름 돋긴 하네.’
그야말로 지금 인한의 몸은 흉기였다.
인한은 망연자실해 하는 킬러들에게서 시선을 돌려 초원의 한쪽을 바라보았다.
“역시 도망쳤군.”
그곳에서는 브라이언이 헐레벌떡 뛰어 도망치고 있었다.
인한은 고개를 휘휘 젓고 공포에 젖은 킬러들을 바라보았다.
“저건 조금 있다 쫓기로 하고.”
인한은 덜덜 떨고 있는 킬러들을 바라보았다.
“덤벼. 뭐 하고 있어?”
인한이 다시 주먹을 움직였다.
인한은 킬러를 혐오한다.
이런 놈들에겐 손을 아낄 필요가 없다.
콰아아앙!
스트라이커를 얻은 후 보상으로 받은 스킬, 파공권.
끌어당긴 주먹에 마력이 모여들고, 그것이 파쇄추처럼 뻗어 나갔다.
아차 하면 목숨을 앗아 갈 수도 있는 위력이건만, 인한은 킬러들의 급소에 꽂아 넣지 않았다.
팔, 다리, 혹은 어깨나 중요 관절.
‘몬스터들의 먹이나 되라. 그게 네놈들에게 어울리는 최후야.’
인한은 움직임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인한의 손이 향하는 곳에 일어나는 것은 육체의 파괴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