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공략자들 38화>
물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방향을 잡았다.
가까워질수록 거세지는 물소리와 함께 툭, 툭, 인한에게 작은 물방울이 튀기기 시작했다.
곧 인한이 물소리의 근원에 도착했을 때.
쏴아아아아아아!
세상을 떠내려 가게 만들 정도로 거대한 폭음이 울려 퍼지는 곳이었다.
거대한 폭포다. 길이는 족히 수백 미터는 되어 보였고, 높이는 4, 50미터 정도로 보였다. 초승달 모양으로 깎인 절벽의 위에서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졌다.
[클리터 대폭포]
천문이 오른쪽 옆에 슬쩍 떠올랐다.
‘이 물이 5층의 중앙으로 흘러내리지.’
인한은 그 압도적인 자연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감상에 젖을 법도 하건만, 탑을 오르며 상상을 초월하는 광경을 워낙 많이 봐서 그런지 별로 신기하지도 않았다.
인한은 폭포로 다가갔다. 폭포에서 100미터는 떨어져 있는데도 수면에서 튀긴 물에 옷이 흠뻑 젖었다.
인한은 묘족에게서 받은 가죽제 갑옷과 C급 아이템 바람의 장화를 인벤토리에 넣어 뒀다.
‘자, 이제…….’
정령사를 획득할 수 있는 스페셜 던전은 이 폭포의 뒤편 어딘가에 인공적으로 만든 동굴에 있다고 공략에 적혀 있었다.
그런데…… 이걸 언제 다 뒤질지 머리가 아파 왔다.
‘못할 건 또 뭐야.’
인한은 폭포로 달려들었다.
* * *
1시간 후,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인한은 비로소 동굴을 찾아냈다.
‘폭포 중간에 있었다니…….’
당연하게 폭포의 가장 아래쪽에 있을 줄 알았는데, 대폭포 중앙에 나 있었다.
문득 이 던전을 찾아낸 사람이 폭포로 떨어지다가 동굴로 들어가게 됐다는 사실을 기억해 내고는, 폭포 곳곳을 뒤지다가 알게 된 것이다.
덕분에 덜덜 떨면서 물을 있는 대로 뒤집어썼다.
‘신기하네.’
온몸이 젖어 상당히 싸늘했는데, 동굴 내부에 들어오자마자 훈훈함을 느꼈다.
벽에 손을 대자 뜨거울 정도의 열기가 느껴졌다.
인한은 몸을 말리고 다시 방어구와 옷을 걸친 채 안으로 들어갔다.
[스페셜 던전 ‘클리터의 동굴’을 발견하셨습니다.]
[클리터의 동굴]
[대폭포를 만들어 낸 장본인, 정령사 클리터가 만들어 놓은 공간입니다. 정령의 힘이 느껴집니다.]
[난이도 : C]
[클리어 적정 레벨 : Lv.20]
“대폭포를?”
이런 정보는 들은 적이 없는데?
공략에는 그저 정령의 힘이 느껴지는 동굴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을 뿐이었다.
‘이상해.’
몇 번이고 과거에는 본 적이 없는 정보들이 천문에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리시피르가 씨앗 이야기를 할 때 비슷한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원래라면 보지 못할 것을 천문으로 볼 수 있는 건가.’
아마도 인한은 그 씨앗이란 걸 이미 갖고 있거나, 혹은 그에 준하는 걸 갖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알 수 없는 문자도 읽을 수 있는 거고.’
아마도, 그러리라.
그렇다면 그건 언제 어디서 인한에게 심어진 것일까.
생각은 거기서 막혔다. 가진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인한은 짜증스럽게 머리를 헝클고 천문을 확인했다.
[스페셜 던전 ‘클리터의 동굴’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 / N]
“입장한다.”
인한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입장하는 것까지는 이미 클래스를 가진 사람도 가능하다.
[첫 번째 시험을 시작합니다.]
[반정령(半精靈)을 정령으로 진화시키십시오.]
그 천문이 떠오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형형색색의 빛의 알갱이들이 동굴의 벽 곳곳에서 나타나 허공을 유영했다.
반정령, 아직 정령이 되지 못한 자연의 힘의 응집체였다.
갑자기 진화시키라는 천문이 떠오르면 대부분은 당황하겠지.
인한은 반정령 하나를 조심스럽게 감쌌다.
손끝에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을 보니 불 속성의 정령인 모양이었다.
인한은 손끝에 마력을 집중했다. 반정령의 몸이 부르르 떨리더니 그 마력을 집어삼켰다.
[반정령이 정령으로 진화합니다.]
[첫 번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두 번째 시험을 시작합니다.]
[오염된 정령을 쓰러뜨리십시오.]
공중에 떠다니던 반정령들이 다시 벽 속으로 스며들 듯 사라지고, 허공에 나타난 것은 아이 머리통만 한 크기의 새까만 정령이었다.
‘얘를 상대하는 방법이 아마.’
공략에는 분명 이렇게 적혀 있었다.
-반정령들이 다 사라져도, 첫 번째 시험 때 정령이 된 놈은 남아 있습니다. 오염된 정령은 정령술이 아니면 쓰러뜨릴 수 없어요. 정령과 계약한 후 정령술로 쓰러뜨려야 합니다.
인한의 옆에는 전신에 은은한 불꽃을 흘리는, 작은 도롱뇽처럼 생긴 정령이 허공에 떠 있었다.
인한은 정령을 지그시 응시했다.
“조금만 힘을 빌려줘.”
정령은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불의 정령 ‘샐러’가 최인한에게 힘을 빌려줍니다.]
[일시적으로 클래스를 획득했습니다.]
[클래스 : 정령사]
[지능 스테이터스가 10포인트 상승합니다.]
[정령술 스킬이 추가됩니다.]
[정령술 계열의 클래스 획득 패널티와 특전이 주어집니다.]
1. 마법 카테고리의 스킬을 사용할 수 없게 됩니다.
2. 속성력 스테이터스가 추가됩니다.
“일시적으로라. 아직 클리어는 아닌 모양이네.”
인한은 손을 앞으로 뻗었다. 화염…… 이라고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작은 불꽃이 손바닥에서 피어올랐다.
인한은 그 불씨를 점점 다가오는 오염된 정령을 향해 뻗었다.
오염된 정령은 샐러의 불꽃에 몸의 말단 부분부터 타들어 가더니 끝내 허공에 흩어졌다.
[두 번째 시험을 통과했습니다.]
[세 번째 시험이 시작됩니다.]
[정령 ‘샐러’와 계약을 하십시오.]
샐러는 인한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계약 방법은 알고 있다.
인한은 샐러에게 손을 뻗었다.
샐러가 움찔 떨더니 조금 물러났다.
‘설마?’
샐러가 거부하면 모든 게 헛수고다.
정령사는 다른 스페셜 던전과 다르게 정령에게 선택받는다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얻지 못한 사람도 숱하게 있었다.
‘제발…….’
인한은 샐러를 바라보았다. 인한의 간절함을 알았는지 샐러가 서서히 인한에게 다가왔다.
뜨거웠다. 계약을 했다면 정령은 계약자에게 아무런 위해를 입히지 않지만, 인한은 지금 아무것도 아니다. 불 그 자체를 만지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화륵!
[화상 면역 스킬의 숙련도가 3% 올랐습니다.]
덕분에 화상 스킬도 오르기 시작했다. 인한은 눈을 질끈 감은 채, 샐러를 그러쥐었다.
펑!
샐러가 터지듯 허공에서 사라졌다.
[불의 정령 ‘샐러’가 계약을 받아들였습니다.]
[클래스를 획득했습니다.]
[클래스 : 정령사]
[스페셜 던전 ‘클리터의 동굴’을 클리어하셨습니다.]
<패시브 스킬>
[정령술]
[등급 : C]
[숙련도 : Lv.1 (0.00%)]
[효과: 정령을 다룰 수 있게 됩니다.]
* * *
멸망의 숲 아르템은 북쪽에 메인 던전이 있다.
인한은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시간이 조금 지체됐어.”
원래라면 클래스만 얻고 6층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묘족의 마을에서 한 달을 소비해 버렸다.
아직 서둘러야 할 필요까진 없지만…….
‘10층 공략은 여전할 테고.’
누구도 지금 시간대에서 공략이 늦어지면 몬스터 웨이브가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10층 최전선의 공략자들은 지금도 우격다짐으로 ‘어째서인지 죽지 않는’ 보스 몬스터에게 무한정 도전하고 있을 터였다.
‘정보는 뿌렸어. 그런데 소식이 없다는 건 믿지 않거나, 정보가 가지 않은 거다.’
인한이라고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클리어 방법을 여기저기에 정체가 드러나지 않게 뿌렸다.
그런데 10층까지 그 정보가 닿지 않은 모양이었다. 혹은 인한이 뿌린 정보를 ‘미친 짓’이라고 치부했거나.
하긴 알아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어찌 됐든 인한이 가야 할 것 같다.
그때였다.
“…….”
인한은 잠깐 걸음을 멈췄다.
그 상태로 숨을 짧게 내쉰 인한은.
타닥!
전조 없이 속도를 높였다.
전력으로 뛰는 것은 아니었다. 적당한 속도로 5백 미터 정도를 달린 인한은 호흡을 정돈했다. 그리고 다시 조금 걷다가 땅을 박찼다.
그렇게 2킬로.
인한은 아예 멈춰 섰다.
‘역시 누가 쫓아오는군.’
인한은 쉬는 척하며 자리에 앉아, 인벤토리에서 물을 꺼내 마셨다.
‘은신술이 있는 클래스. 아무래도 한 명은 아니겠지. 꽤 숫자가 있어.’
극체술이 2단계에 들어서며 감각이 날카로워졌는데도 알아채기까지 한참 걸렸다.
그마저도 놈들 쪽에서 갑자기 거리를 좁히며 인한을 둘러싸기 시작해서 눈치챈 것이었다.
이유는 안다.
악연은 인한을 놓아주지 않을 모양이었다.
‘브라이언 그레임스.’
솔직히 뒤를 밟힐 정도의 일은 놈밖에 생각나질 않는다. 이제는 슬슬 잊히고 있는 최초 튜토리얼 클리어 때문일 리도 없고 말이다.
‘그럼.’
인한은 다시 일어섰다.
수풀 곳곳에서 움직임이 보였다. 달려들기도 애매하고, 쫓아가기도 애매한 거리였다.
‘뿌리쳐 볼까.’
[바람의 가호]
전신에 시원한 바람이 흘렀다.
인한은 자세를 낮추고, 전신의 마력을 발바닥에 응집시켰다.
그리고.
콰앙!
폭발음과 함께 인한의 몸이 앞으로 쑤욱 뻗어 나갔다.
마력을 이용한 응용 중 하나. 발바닥에 모여든 마력이 폭발하며 인한의 몸을 순식간에 날려 버린 것이다.
주변 광경이 선이 되어 밀려나고, 인한의 몸이 바람으로 변했다.
“…….”
수풀 속에서 몸을 일으킨 인영이 보였다.
인한은 힐끗 쳐다보고, 그대로 자리를 벗어났다.
한편 수풀 속에서 몸을 일으켰던 인영은 인한을 지그시 바라보다 드루이드의 인형을 꺼내 들었다.
“알아챘습니다.”
* * *
‘제길.’
인한은 혀를 찼다.
생각을 잘못하고 있었다. 그냥 뒤만 밟힌 줄 알았는데…… 포위망에 둘러싸였다.
‘이러면 어디로 도망쳐도…….’
지금까지 두세 번 정도 방향을 꺾었다. 하지만 어디로 가도 놈들이 있었다.
몇십 명으로 펼칠 수 있는 포위망이 아니었다. 족히 백 명…… 아니, 그것보다 훨씬 많은 수여야 했다.
그때.
쐐액!
측면에서 새파란 빛이 번뜩였다.
캉!
인한의 몸에 부딪힌 칼이 튕겨 나갔다. 인한이 입술을 잘근 물었다.
이 일격의 의미는 그저 칼질 한 번이 아니다.
놈들이 먼저 공격을 펼치기 시작했다!
콰득!
놈의 팔을 부러뜨리고 턱에 일격을 꽂아 내어 기절시켰다.
스멀스멀, 마치 벌레 떼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듯 수풀 속에서 놈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인한은 접근하는 놈들을 피해 땅을 박찼다.
‘아예 진을 쳤군.’
숲에서 벗어나야 했다.
여기는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숲이다. 넓은 곳으로 나가야 했다. 어차피 부딪칠 거라면 넓은 쪽이 편하다.
‘저쪽!’
인한은 또 한 번 방향을 틀었다. 다행히도 추격자들의 기척이 엷다. 선택을 잘한 모양이었다.
인한은 빽빽한 나무들 사이로 넓은 공터를 발견했다. 다행이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이대로 부딪치지 않고 도망…….
퍼- 억!
그때 어깨에 묵직한 충격이 느껴졌다.
인한은 달리던 속도 그대로 땅에 처박혀 굴렀다. 타아앙, 하는 소리가 직후 충격의 뒤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