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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34화 (34/266)

# 34

<공략자들 34화>

* * *

‘지도를 받길 잘했어.’

인한은 지도를 보며 중얼거렸다.

던전 공략에 왕도는 없다지만, 그래도 핵심이 되는 것은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몬스터의 파악.

습성, 특징, 전투 방식, 부산물의 종류, 될 수 있다면 리젠 되는 시간이나 위치까지.

몬스터는 인간을 향해 무조건적인 적대심을 가진다. 그러니 그들에 대해 알면 죽을 확률이 쭉 떨어지게 된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지도의 제작.

왕가의 비도처럼 모든 던전이 길이 복잡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이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다.

소위 맵핑(Maping)이라 불리는 지도 제작은 안전지대의 위치, 몬스터의 이동 경로, 함정의 위치 등을 적어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 안정적인 던전 공략을 위한 필수 요소다.

처음 던전에 들어서면 일단 무작정 나아가는 수밖에 없지만 어느 정도 들어가고 난 이후엔 다시 돌아와 몬스터의 파악과 맵핑을 완벽히 끝내고 다시 나아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몬스터의 파악은 특별한 기술이나 장비가 필요 없는 반면, 맵핑은 전문직이 생길 정도로 고도의 작업이다. 던전 공략 시 가장 성가신 것도 맵핑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가장 귀하다는 미로형 던전의 지도를 얻은 거지.’

함정과 길의 복잡함 때문에 난이도가 제일 높은 미로형이다. 대신 그만큼 보상은 두둑하다.

때때로 보스 몬스터에게서 나오는 던전의 지도.

그것은 벽에 걸려 있는 횃불의 위치조차 적혀 있을 정도로 세세하고 정확했다.

던전 공략 4일차.

함정도 미리 알고 있고, 몬스터 종류야 진작 알고 있으니 공략은 순조로웠…….

“순조롭기는…… 헉! 헉! 개뿔!”

이정환이 숨을 헐떡이며 땅에 쓰러졌다.

“헉헉! 전에…… 크하! 인한 씨 요청에 오케이 하면, 때려 달라고 했잖습니까……. 허억! 허억!”

이정환이 원망스럽게 중얼거렸다.

인한은 한참을 무슨 소린지 생각하다 예전에 했던 농담을 떠올렸다.

“지금이라도 때려 드려요?”

콰강!

인한이 장난 삼아 벽을 두드렸다. 벽에서부터 지면으로 폭음이 짜르르 울렸다.

이정환이 사색이 됐다.

보스라는 목표가 사라졌으니 던전 공략은 노가다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 공략이란 것은 어디까지나 ‘인한의 기준’에서였다.

이정환은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느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겠습니까……?”

“안 할 이유도 없죠.”

“……이 괴물.”

“전 딱히 강요하진 않았습니다.”

“그거 아십니까?”

“예? 뭐가요?”

“인한 씨 은근히 재수 없…… 아니, 얄미운 거.”

싱긋 웃는 인한을 보며, 이정환은 이를 바득 갈았다.

탑에 오기 전, 가끔 참가했던 마라톤 대회가 떠올랐다.

보통 2, 30킬로까지는 쉽게 달리다 어느 순간부터는 죽도록 힘들다.

결승을 코앞에 둔 후부터는 오히려 쉬울 것 같지만, 더 죽을 것 같다. 목으로 피며 물이며 내장이며 다 토해 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면 인한과 함께하는 공략은?

더하면 더했다. 아니, 많이 더했다. 체력은 자신 있었는데, 그 자존심이 완전히 무너졌다.

인한과 하는 던전 공략은 지금까지 했던 것과는 달랐다.

정말 아슬아슬할 때까지 사냥을 하고, 체력이 한계에 도달하면…….

스테이터스가 오른다. 그럼 고작 1포인트나 2포인트만큼의 체력으로 또 던전을 돈다.

그럼 또 체력이 오르고, 또 오르고…… 그걸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레벨업.

레벨업 효과로 체력이 회복되고, 그만큼의 체력을 또 소모한다. 그게 무한 반복이다.

‘그런데…… 강해지는 게 눈에 보여서 더 빡쳐.’

몸에 조금이라도 무리가 간다든지, 컨디션이 무너진다든지 하면 그만두기라도 할 텐데 성장이 엄청나다.

이런 식으로 던전을 돌았기에 인한이 저리도 강한 걸까.

그렇다면…… 이정환은 강해지기 싫다.

이러려고 헌터가 됐나 하는 마음에 자괴감이 들고 괴로웠다.

질끈 감은 눈이 촉촉해졌다.

물론 인한도 사람이긴 사람인지, 호흡이 흐트러져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신 인한이 서서히 입을 열었다. 이정환이 눈을 반짝였다.

‘끝내겠지? 끝낸다고 하겠지? 벌써 밤이고…….’

“이제 조금만 하면 던전 다 돌아보겠네요. 힘냅시다.”

“아, 그렇죠? 끝났…… 예? 아직 못 돈 구역이 9퍼센트나 남았는데요?”

“밤샘하면 되죠.”

“……!”

* * *

[사용자 정보]

이름 : 최인한

종족 : 인간

레벨 : Lv.29

타이틀 : 시작하는 자(A+), 언데드 학살자(E), 독보(A)

클래스 : 없음

[스테이터스]

힘 : 115

민첩 : 112

체력 : 153

지능 : 82

마력 : 283

[스킬]

<액티브 스킬>

1- [폰 체술 (C) Lv.2(0.02%)]

2- [아이언 크래시 (B) Lv.1(0.01%)]

3- [제국식 유술(柔術) (C) Lv.3(1.03%)]

4- [도축(C+) Lv.2(3.45%)]

5- [왕의 권세(EX) Lv.1]

6- [전투 집중(타이틀 스킬)]

<패시브 스킬>

1- [체술 (C) Lv.13]

2- [지도 제작 (E) Lv. 3]

3- [응급처치 (D-) Lv. 4]

<마나 스킬>

1- [극체술 <2단계> (S) Lv.3(8.5%)]

2- [기공술 (A)] (상위 마나 스킬에 편입됩니다.)

<면역 스킬>

1- [피해 면역 (S) Lv. 2(3.0%)]

고작 2주 남짓 지났지만, 인한은 꽤 많은 변화를 맞이했다.

첫째로, 정수를 마시고 레벨 업 포인트를 전부 마력에 투자한 인한의 마력은 250을 넘겼다.

덕분에 그립고도 그리운 마나 스킬 기공술을 얻게 되었지만, 상위 마나 스킬인 극체술에 편입되면서 아무런 일도 없었다.

내심 최초 타이틀도 바랐지만, 어째서인지 나오질 않았다. 애초에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누군가 이미 가져갔을 수도 있지.’

둘째로, 극체술의 2단계를 뚫었다.

[극체술 <2단계>]

[등급 : S]

[숙련도 : Lv.2 (8.5%)]

[재사용 대기시간 : 없음]

[효과]

1. 마력에 특성을 부여합니다. (특성: 강화)

2. 보유 마력에 비례해 육체가 강화됩니다.

3. 모든 받는 피해가 20% 감소합니다. 물리, 마법 저항력이 20% 증가합니다. 1분마다 받은 피해량의 10%를 회복합니다(지속적으로 마력을 소모합니다).

4. 오감이 활성화됩니다.

인한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들이셨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이었다.

그저 축적하고 방출할 뿐이었던 마력이 체내를 돌아다닌다. 본래도 흐르긴 했지만, 이젠 그 흐름을 인한이 의도한 대로 움직일 수 있다.

‘이게 S급 마나 스킬.’

2단계에 들어선 후 인한이 느낀 것은, 극체술은 굉장히 느린 마나 스킬이라는 것이다.

마력을 축적하는 속도도, 방출하는 속도도 느리다.

하지만 놀라울 정도로 안정적이고 단단하다.

보통의 마나 스킬들은 굉장히 예민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쉽게 깨진다.

하지만 극체술은 다소의 움직임에도 상관이 없다. 거기다 마력의 흐름도, 성질도 굳건하다.

기공술의 마력은 주변 환경이나 몸 상태의 변화에 민감했는데, 극체술은 인한의 의지가 가기 전에는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단단한 땅 위에 세워진 철옹성과 같았다.

거기다 네 번째 효과가 추가되었다.

감각의 활성화.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했는데, 집중을 하면 느껴지지 않던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단순히 눈이 좋아지고 귀가 좋아진다기보다 조금 더 정확해지고 세밀해진 기분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눈앞을 가리고 있던 막을 하나 벗겨 낸 기분이랄까?

세 번째로 바뀐 것은 새로운 스킬 카테고리의 생성이었다.

면역 스킬.

인한은 이게 벌써부터 생길 수 있는 건지 미처 몰랐다.

‘내가 한 20, 30층쯤 올라야 나오는 거 아닌가?’

면역 스킬은 일정한 자극을 지속적으로 받으면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일정한 자극이란 게 워낙 많은 양이 필요해서,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오랜 시간이 흘러야 나오고는 하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인한이 몸을 매우 막 굴려서 생긴 스킬이란 소리였다.

‘기분은 좀 그렇지만, 효과만큼은 엄청나지.’

인한은 손바닥을 펴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단검을 그대로 내리찍었다.

퍽!

자칫 손을 못 쓰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피해 면역 스킬의 숙련도가 0.03% 상승했습니다.]

인한의 손은 작은 핏방울이 송골송골 맺힐 뿐이었다.

이제 인한의 힘보다 인한의 몸이 더 단단해져 버렸다.

극체술에 의한 육체 강화에 면역 스킬까지. 이러다 트롤이라도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 트롤은 몸빵은 약한데 회복이 빠른 쪽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골렘?

‘숙련도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이렇게 칼로 내리찍어도 고작 0.03퍼센트를 주는 게 흠이라면 흠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

인한에게 찾아온 가장 큰 변화.

[왕의 권세]

[등급 : EX]

[숙련도 : 없음]

[효과]

1. 모든 제한으로부터 벗어납니다.

효과는 딱 하나.

언제나 직관적인 천문의 다른 설명들과는 달랐다. 그러나 그 애매모호한 표현의 의미를 알게 되기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효과를 깨닫게 된 계기는 스킬 덕이었다.

인한의 기본 스킬들이 모조리 사라지고, 새로운 스킬…… 아니, 인한의 레벨과 클래스 등급이 낮아 알고 있지만 익히지 못했던 스킬들을 얻게 됐다.

이것을 얻게 된 것은 평소 수련을 했던 습관 덕분에 저도 모르게 폰 체술을 펼쳤을 때였다.

그때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설명 대신 ‘폰 체술을 획득했다’는 천문이 떠올랐다.

폰 체술과 마찬가지로 수련해 온 아이언 크래시는 얻을 수 있었지만, C급 스킬 이상은 아직 숙련도가 낮아 펼칠 수 없다는 천문이 떠올랐다.

그것뿐이 아니다.

클래스 획득 전에는 쉽게 오르지 않는 능력치도 클래스를 획득한 것과 다를 바 없이 오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벌써 30대를 코앞에 두고 있다.

그 외에도 인한은 자신이 아직 눈치채지 못했을 뿐, 많은 것이 왕의 권세에 의해 변했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어떤 것이든 ‘원래 안 되는 거야’라고 치부했던 것들이 사라진 것이다.

말 그대로 한계가 무너져 버렸다.

어쩌면.

인한은 조심스레 생각했다.

누구든지 단 하나만 얻을 수 있는 클래스도, 아니 클래스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 탑에는 알게 모르게 익숙해져 버린 수많은 제약들이.

왕의 권세에 의해 무효화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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