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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31화 (31/266)

# 31

<공략자들 31화>

‘그래도 아직 방법은 있다!’

쾅!

세릴이 땅을 박차고 기습적으로 거리를 좁혔다.

인한은 숨을 깊게 내쉬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근접전이다. 그것도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의 근접전.

마력량이 수천에 달해서 전신에 오러를 두르는 게 아니라면, 공격을 할 때 방어로 향하는 오러는 필연적으로 약해지기 마련이다.

쐐애애액! 파악!

인한의 볼에 오러가 스친다. 팔뚝, 허벅지, 복부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간다.

인한은 그것들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세릴의 품으로 깊게 파고들었다.

코앞까지 발차기가 오르내리고, 손톱의 오러에 전신이 스친다. 이미 피투성이인 몸통에 몇 줄기의 혈선이 더해진다.

‘집중해!’

하지만 그 모든 것은 치명상이 아니었다. 피하고, 막고, 맞아 주면서 인한은 버티고 있었다.

치명상을 입히지 못한 것을 세릴도 느낀 건지, 살짝 뒤로 거리를 벌렸다.

화악!

그걸 인한이 순식간에 따라붙는다. 세릴이 달려드는 인한에게 검을 찌르듯 팔을 뻗었다.

샤악!

목을 꺾어 그 팔을 피한 인한이지만 눈 밑이 깊게 찢어지며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곧장 주먹을 뻗어 훤히 비어 있는 옆구리에 반격했다. 세릴의 몸이 훅 꺾였다.

인한은 쓰러지는 세릴에게 달려들었지만.

“큭!”

퍼억!

세릴이 넘어지면서 발악적으로 휘두른 발차기가 인한의 몸통을 두드렸다.

내장까지 파고드는 고통에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다. 인한은 이를 까득 물며 눈을 빛냈다.

‘제길!’

피할 수 있는 공격이었다.

한층 더 긴장하고, 한층 더 집중해야 한다.

육신의 구석구석까지 의식을 싣는다.

근육 한 줄기 한 줄기의 수축과 팽창, 뼈마디 하나하나의 움직임, 내쉬고 들이쉬는 호흡의 순간순간과 뻗고 당기는 움직임의 반복, 마력의 방출과 수렴에 날카로움을 더한다.

‘더! 아직!’

공격이 쉴 새 없이 몰아친다.

그 모든 것을 피해 내고 있지만, 만족스럽지 않다. 더욱, 충분히 더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면 회피에서 반격과 공격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주먹 하나의 거리로 피하던 공격이 종잇장 하나의 거리로 변하고, 비효율적이던 움직임에 낭비가 사라져 갈 때쯤.

부릅뜬 인한의 눈에서 실핏줄이 터져 눈이 붉게 물들었다. 코에서도 새빨간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서서히, 세릴의 호흡이 보인다.

호흡이 보이면 공격이 보이고, 움직임을 차단할 수 있고, 끝내는 빈틈을 찾아낼 수 있는 법.

후욱!

세릴이 공격을 뻗었다. 동시에 반격을 위한 길이 보였다. 인한은 한 발자국 앞으로 뻗었다.

‘……!’

그 순간.

인한은 이상한 감각에 휩싸인다.

모든 것이 멈춰 있다.

세릴도, 자신도, 모든 것도.

‘아니.’

아주 느리게, 세릴의 손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정지가 아니라 아주 더디게 움직이는 것뿐이다.

인한의 의식의 속도를 모두가 쫓아오지 못하는 것이다.

‘……들어왔다.’

전투 중, 아주 가끔, 집중이 최고조에 달할 때.

인한은 매우 드물게 이 공간에 들어섰다.

시간이 아주 더디게 흐르고, 모든 힘의 흐름이 손에 잡힐 듯 느껴지는 곳.

몸이 붕 떠올라 모든 전투가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지고, 보지 못했던 것이 보이며, 부족했던 것을 깨닫게 되는 곳.

그때 이 공간에 파도의 포말을 연상시키는 새하얀 선들이 나타난다.

선은 고정되어 있지 않고 끊임없이 움직인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한과 적의 움직임에 따라 사라지기도 하고 나타나기도 한다.

이 선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인한은 세릴의 오러가 서린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선으로 손을 뻗었다.

선에 닿은 순간, 뭘 해야 할지는 자연스레 깨닫는다. 그 행동의 과정과 초래할 결과까지 마치 예언과 같은 확신을 만들어 낸다.

인한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느려졌던 시간이 순식간에 가속하며 제 속도를 되찾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펼친 것은.

파검식.

방검형(防劍形).

후욱!

인한을 노리던 세릴의 공격이 말도 안 되는 각도로 휘더니 튕겨 나갔다. 세릴의 몸이 허공에서 팽이처럼 핑그르르 회전했다.

쐐애애액!

그 순간에도 세릴은 공격을 뻗는다. 인한의 목을 노리는 일격.

평소라면 당황했을 정도의 빠르긴데,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인한은 그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아니…… 마치 공격이 인한을 피해 가는 느낌이다. ‘그 공간’에 들어선 후엔, 그런 기분이다.

다시금 몸이 움직인다.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이는 느낌.

쾅! 쾅! 쾅!

땅에 떨어진 세릴이 벌떡 일어서려는 순간, 인한이 접근했다.

단타로 끊어 내는 삼격.

세릴의 공격이 첫 일타에 끊기고, 나머지 두 번의 공격이 세릴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인한은 한 걸음 더 거리를 좁혔다. 숨이 닿을 정도의 거리. 인한의 몸이 회전한다.

[정체 모를 체술을 사용하셨습니다!]

[크리티컬! 피해량이 100% 증가합니다!]

쾅!

묵직한 충격에 뒤편으로 튕겨 나간 세릴이 입으로 새빨간 선혈이 토해 냈다.

어깨와 등의 일부분을 사용한 일격. 앞으로 나서는 하체와 회전하는 허리의 힘, 그리고 체중을 모조리 어깨와 등 쪽에 집중해 들이받는 기술이었다.

B급 스킬, 태산고(泰山?).

워낙 체술을 선택한 사람이 적기 때문인지, 탑에서는 체술을 익힌 사람끼리 교류가 활발했다.

그중 탑 밖의 격투술을 탑 안에서 수련해 스킬로 확립한 자가 여럿 있었다.

그리고 이건 중국인 우 센슌에게 배운 중국 권법 기술 중 하나. 근접에서 써야 하는 데다 등과 어깨의 급소를 전부 내주기 때문에 까다롭지만, 그만큼 파괴력이 뛰어난 스킬이었다.

“으, 크으…….”

세릴이 처음으로 신음을 흘렸다. 아니…… 신음이라기보다는 내장, 특히 폐에 충격이 들어가 호흡이 안 되어 흘러나온 소리였다.

세릴은 호흡곤란 때문에 꺽꺽거리며 숨을 헐떡이면서도 눈은 인한에게로 향했다.

“캬악!”

그리고 발악하듯 인한을 향해 두 팔을 내리그었다.

휘익!

인한은 한 발자국 뒤로 빼는 것으로 세릴의 공격을 피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이 이 전투의 마지막 순간이다.

인한이 주먹을 휘둘렀다. 세릴이 팔을 X자로 교차해 정면을 방어했지만.

투확!

인한의 주먹은 교차된 세릴의 가드를 아래에서부터 쳐올렸다. 세릴의 몸통이 훤하게 드러났다.

뻗을 때부터 이 주먹은 가드를 풀어내기 위함이었다. 세릴이 다급히 몸을 뒤틀어 보지만 반응이 늦었다.

인한의 양 손바닥이 세릴의 몸통에 닿았다.

‘이 공격은…….’

성공한다. 정통으로 들어간다.

그것을 알지만 인한은 이 공격이 세릴을 죽이진 못할 것도 알았다. 기껏해야 기절시키는 게 한계일 것이다.

그렇다면, 처치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일어나 몬스터로서 인한에게 달려드는 것은 아닐까.

많은 의문이 떠오름과 동시에 인한은 답을 알았다.

이걸로 충분하다.

이것으로, 세릴은 정신을 차린다.

그런 확신이 든다.

투웅!

두 손바닥이 정확히 세릴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새하얀 기운이 꿈틀대며 세릴의 마력로로 파고들었다.

* * *

“후욱. 후욱.”

인한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몸을 움직이던 묘한 힘은 어느새 사라졌다. 인한은 힐끗 세릴을 바라보았다.

세릴은 땅바닥에 쓰러진 채 부들부들 떨더니 축 늘어져 기절했다.

흐릿하게 지지직거리던 세릴의 뿔이 허공의 안개처럼 흩어지듯 사라졌다.

인한은 곧장 달려가 코에다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엷지만, 확실한 호흡이 손끝을 간질였다.

“하아.”

인한은 이번에야말로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것이야말로 무기가 아닌 체술의 이점. 몬스터를 상대할 때뿐 아니라 사람을 상대할 때도 엄청난 효용을 보이는 힘의 사용법이다.

‘오랜만에 해 봤다.’

인한은 피투성이가 된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발터 에스키엘에 의해 확립된 체술 한정의 마력 사용법.

성공했다.

‘마력이 부족한 데다가, 급하게 사용하느라 위력도 약한 게 다행이었어.’

세릴은 죽지 않았다.

인한의 마력이 체내에 침투했지만, 워낙 그 양이 적고 제어가 미숙해 기절하는 것으로 끝났다.

약했기 때문에 죽이지 않을 수 있었다니, 기분이 묘하다.

[진 보스 몬스터 ‘계약자 세릴’을 처치하셨습니다!]

[몬스터들에게 적용된 피어가 해제됩니다!]

“윽!”

“인한 씨-!”

신음을 흘리며 땅바닥에 엎어진 인한을, 이정환이 달려와 끌어안았다.

“엄청났습니다! 정말! 와! 살았어요! 살았다고요! 말도 안 됩니다! 미친 전투였어요!”

이정환이 인한의 옷을 잡고 펄떡펄떡 뛰었다. 그것보다 얼굴이 가깝다. 조금 떨어져 줬으면 좋겠다.

“으하하하하!”

인한이 입을 커다랗게 벌린 채 웃는 이정환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대단해요! 대단합니다! 정말!”

“진정하세요. 그보다 몬스터는?”

“아! 너무 기뻐서……. 그리고 몬스터는…….”

피어에 의해 다가왔던 몬스터들은 피어가 해제되자 소스라치게 놀라며 도망친 모양이었다.

보스 룸도 아닌데 보스들이 모여 있던 이 공간에 거부감이 있는 건지 인간만 보면 미친 듯이 달려드는 몬스터들이, 이정환과 팀원들을 신경 쓰지 않고 등을 돌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저쪽의 보스 몬스터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잡혀갔을 때는 한순간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지금 보니까 다 죽어 있다니?”

“나중에, 나중에 설명하겠습니다.”

인한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자 조금 진정한 이정환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맙소사! 엄청 다치셨잖아요!”

이정환의 말에 인한은 그제야 눈을 돌려 전신을 둘러보았다.

킹 보어의 가죽으로 만든 갑옷은 거적때기가 되어 버렸고, 그 사이로는 살색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상처투성이였다.

개중에는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파인 것도 있다.

하지만 인한은 특별나게 고통스러운 느낌이 없었다.

‘이게 약발이네.’

앤디아를 너무 많이 넣은 모양이었다. 고통은 있지만 그렇게 심하게 느껴지진 않았었는데…….

“뼈도 부러졌잖습니까!”

이정환이 화들짝 놀라며 외쳤다.

“가만히 있어 보십시오.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아, 저 보스 몬스터 해체를…….”

“저희에게 맡기십쇼, 여러분, 부탁할게요.”

“네, 팀장님!”

이정환이 인한의 몸을 치료하기 시작했다.

그제야 인한은 천문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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