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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략자들-23화 (23/266)

# 23

<공략자들 23화>

“뿔이…… 세 개……?”

이정환이 넋을 놓았다.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인한이었다.

“달려요!”

“허억!”

인한은 이정환의 목덜미를 끌어당기며 땅을 박찼다.

-크락! 크레리악!

레스탈은 기이한 울음소리와 함께 새빨간 채찍을 사방팔방으로 휘둘러댔다.

금새 이정환도 정신을 차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아직 심층부도 아닌데 보스 몬스터가 어떻게!”

“……!”

그 순간.

인한의 눈에 이정환을 노리고 휘둘러지는 레스탈의 채찍이 보였다.

“피해!”

콰앙!

거센 타격음과 함께 이정환을 밀쳐낸 인한이 채찍에 대신 가격당해 벽면에 날아가 처박혔다.

통로가 크게 요동치고, 이정환은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췄다.

“인한 씨!”

“괜찮습니다!”

인한은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웬만한 충격은 흠집도 나지 않는다.

욱신!

그런데 팔이 아파 왔다.

오른팔을 본 인한의 표정이 굳었다. 대검에도 쇠 화살에도 흠집도 나지 않던 인한의 피부에서 피가 철철 흘러나왔다.

“무슨……!”

간단한 이야기.

보스 몬스터 레스탈.

놈이 인한의 극체술을 뚫었다!

-크레리! 쿡!

“큭!”

다시 휘둘러지는 채찍에 인한이 몸을 확 숙였다.

카가가각!

벽이 갈리는 듯한 소리. 채찍은 인한의 머리 바로 위를 스쳐 지나갔다. 인한은 다급히 몸을 굴러 피한 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저, 저거 도대체 뭡니까!”

“보스 몬스터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보스 몬스터가 어떻…… 인한 씨! 옆에!”

이정환이 다급히 검을 쭉 뻗었다. 이번에 노려진 것은 인한이었다. 아까와 똑같은 상황이다.

콰앙!

검을 휘두른 것은 이정환이었지만, 채찍에 담긴 힘을 버티지 못해 오히려 튕겨져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윽…….”

이정환은 비틀대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레스탈은 휙휙 돌리며 다가왔다.

“도망칠 방법은…… 없겠죠?”

이정환이 인한의 옆에 서며 말했다.

인한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싸워야 한다.

놈의 속도는 인한과 이정환의 달리기로 감당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다.

-루레이르! 부쿡셰이 팍!

레스탈이 입을 열자 짙은 피 냄새와 짐승의 냄새가 났다.

인한과 이정환은 놈과 마주한 채, 마른침을 삼켰다.

* * *

퍼어엉-!

엄청난 파괴력으로 돌진한 인한이 뒤로 튕겨져 나가 벽에 처박혔다.

“크악!”

거칠게 기침을 내뱉자 피가 섞여 토해졌다.

인한이 튕겨져 나간 틈을, 이번에는 이정환이 검을 휘두르며 나아갔다.

“아껴둔 스킬이다! 파워 스트라이크!”

검이 거센 힘을 담고 휘둘러졌지만.

쾅!

휘둘러진 채찍과 부딪친 순간 검이 붕붕 돌아가 벽에 맞고 떨어졌다.

“제, 제기랄. 숨겨둔 C급 스킬이었는데…….”

이정환은 울상을 지었다. 인벤토리에서 여분의 검을 꺼낸 이정환의 정면에, 곧장 채찍이 휘둘러졌다.

그리고 피하려는 순간.

“그거 막아요!”

“예!?”

이정환은 반론을 제시할 겨를도 없이 검을 휘둘렀다.

“파워 스트라이크!”

쩌엉!

방금처럼 꼴사납게 튕겨져 나가지 않았지만, 검을 잡은 이정환의 손목과 팔꿈치의 관절이 삐걱대며 불길한 소리를 흘렸다.

레스탈은 채찍을 다시 휘두르고자 손잡이를 끌어당겼다.

그 순간.

“크으압!”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인한의 주먹이 레스탈의 명치에 정확히 틀어박혔다.

쾅!

-크륵!

순간 레스탈은 전신에 느껴지는 묵직한 타격감에 신음을 흘렸다.

몇 발자국 뒷걸음질 친 레스탈에게 인한이 따라붙었다. 옆구리에 한 바퀴 회전하며 휘두른 엘보우가 틀어박히고, 앞다리에 로우킥을 틀어박았다.

-크라아아!

레스탈이 비틀거리며 균형이 무너졌다. 오직 살의만 풍기던 레스탈의 눈동자에 당혹감이 서렸다.

어떻게 이런 작은 인간이 이 정도의 타격을 줄 수 있단 말인가!

-캬아악!

레스탈이 분노에 찬 표정으로 채찍을 사방팔방으로 휘두르기 시작했다.

인한이 급히 몸을 뒤로 뺐지만.

콰득-!

낭창거리며 휘둘러지는 채찍의 궤도를 읽지 못하고 옆구리에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큭!”

억눌린 신음이 입술을 비집고 흘러나왔다. 순간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인한은 이를 악물고 간신히 전권에서 벗어났다.

“인한 씨!”

이정환이 다급히 인한에게 달려와 채찍을 받아냈다.

인한은 고통에 표정을 찡그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정환도 채찍을 튕겨내고 인한과 나란히 섰다.

레스탈도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둘을 노려보았다.

잠깐의 대치상태.

이정환이 옷을 북 찢어 검을 쥔 오른손에 칭칭 감았다. 인한이 그걸 힐끔 보고는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그 질문 고대로 돌려드리죠. 전 그냥 조금 삔 것 정도입니다.”

“옆구리가 좀. 아마…… 하나 내준 것 같습니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격통이 치달았다. 심상치 않은 고통으로 보아하니 뼈에 금이 간 것 같다.

‘그래도 나는 극체술이 있지만…….’

인한은 잔뜩 굳은 표정의 이정환을 바라보았다.

극체술에 의해 인한의 몸은 이미 내구도도 회복력도 일반적인 인간과는 다르다.

하지만 이정환은 아니다. 연이은 전투에 회복도 제대로 못하고 축적되고만 있는 상태인 것이다.

‘설마…… 다중 보스인 던전일 줄이야.’

인한은 레스탈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다중 보스.

그것은 한 던전에 여러 마리의 보스가 출현하는 던전을 의미한다. 상층의 던전에서는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던전의 규모가 큰 곳에서 자주 등장하는 패턴이라 예상을 했어야 했는데, 설마 고작 5층에서 다중 보스가 나올 줄은 몰랐다.

세 개짜리 뿔인 것치고는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

양쪽에 두 뿔은 우뚝 솟았지만 미간에 솟은 세 번째 뿔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만 솟아 있을 뿐이다.

덕분에 그렇게 압도적으로 차이나는 몬스터는 아니지만…… 분명 보스다.

거기다 인한과 이정환은 하루 종일 던전을 공략했고, 휴식시간이었을 지금은 2시간 정도 미로를 방황한 것이다.

체력도 정신력도 한계였다.

“전 걱정하지 마십시오. 죠셉 복용했습니다. 딱 하나 남았네요. 인한 씨도 드세요.”

이정환이 작은 약통을 툭 던졌다.

조세프의 약초. 약칭은 죠셉이다.

탑에서 나온 아이템 중 하나로, 7층의 보스 몬스터 ‘앤트’에게서 나온 아이템이다.

게임 속 포션과 같은 효과를 지녔는데, 약초로 불리기만 할 뿐 환단 형식으로 뭉치는 약이다.

아이템을 분석하고 제작방식을 알아낸 이래로 탑의 전역에서 꽤 비싸지만 쉽게 구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인한은 약통에서 약을 꺼내 씹어 먹었다. 짙은 흙향이 나는 약이다. 식도를 타고 흘러내리자마자 약효가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효과 돌려면 꽤 걸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거기다 외상은 치료 안 되는 것도요.”

“그럼 강한 척하는 걸로 알아 두십시오. 저 싸나이 이정환, 짐이라고 생각하면 섭합니다.”

-카륵!

그때, 레스탈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한이 피식 웃었다.

“좋습니다. 제 공격에 꽤 타격을 입는 거 같던데, 공격력이 센 반면에 맷집은 약한 모양이더군요.”

“계획 있으십니까?”

“두 개 정도.”

“뭡니까?”

“첫 번째는 싸워서 쓰러뜨리는 겁니다.”

“예!?”

“저놈, 잘하면 쓰러뜨릴 수 있습니다. 약점이 여기저기 보이네요. 하지만 지금은 나중을 생각해서라도 체력을 아껴야겠죠. 거기다…… 저희도 지금 많이 지쳤으니까.”

“그래서 나머지 하난 뭡니까! 억! 저놈 움직이려는 거 같아요! 빨리! 얼른!”

“이것도 도박입니다. 그다지 추천해드리고 싶지는 않은데…….”

“헛! 으, 저놈, 채찍 돌려요! 할 테니까 빨리 말해 주십쇼!”

“으음, 솔직히 이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집니다.”

“씨발! 빨리 말하라고!”

“특별히 할 건 없습니다.”

인한이 외쳤다.

“달립시다!”

* * *

인한과 이정환은 달렸다.

부웅! 콰가가가!

거리가 좁혀져 레스탈의 채찍이 휘둘러질 때면 인한이 달려들어 채찍을 막아 냈다.

그 후에 달려들어 공격하는 것은 이정환. 그 순간 발생하는 약간의 틈에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허억! 그거 제대로! 허억! 먹힐까요!”

“먹혀요!”

휘익!

귀전을 파고드는 섬뜩한 파공성에 인한이 슬라이딩을 하듯 몸을 낮췄다.

그 순간, 인한의 허리가 있었을 장소에 채찍이 휘둘러졌다. 인한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한은 약간의 산소 결핍을 느꼈지만 달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체력과 민첩 스테이터스가 끊임없이 올라갔다.

“여기서 오른쪽!”

쾅!

인한과 이정환이 오른쪽으로 돈 순간 레스탈의 채찍이 벽면을 후려쳤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슬슬 인한도 이정환도 한계였다.

“허억! 얼마나…… 흐읍! 남았습니까!”

“조금만…… 조금만 더……!”

-캬르 라욱!

레스탈이 코앞이다!

인한이 젖 먹던 힘을 다해 외쳤다.

“마지막으로 달려요!”

인한과 이정환이 땅을 박찼다. 뒤에서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레스탈이 가공할 스피드로 달려드는 게 느껴졌다.

“더, 더 이상은…….”

“지금!”

“예, 예……?”

“지금입니다!”

“커흡!”

쭉 뻗어진 인한의 팔이 이정환의 멱살을 잡고는 달리던 상태로 급제동을 걸었다.

인한의 몸이 땅을 긁으며 순식간에 속도가 줄어들었고, 뒤를 쫓던 레스탈과의 거리가 줄어들었다.

-브릴렉 슈아!

그때를 놓치지 않고 레스탈이 허공에 붕붕 돌리던 채찍을 쭉 뻗어왔다.

콰득!

몸을 최대한 비틀었지만 이미 늦은 상태였다. 입이 쩍 벌어지는 고통이 등에서부터 전신으로 엄습해왔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인한은 이를 악물고 레스탈을 노려보았다.

‘제발!’

-크릭투스! 카락!

인한과 이정환보다 빠르게 달리던 레스탈의 몸이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인한과 정환을 스쳐 지나가며 쭉 미끄러졌고…….

퉁!

한 번 들어보았던 소리가 울렸다.

한순간, 레스탈의 몸이 땅으로 쭉 꺼졌다. 뒤를 이어 푹, 푸부북, 하는 섬뜩한 파육음과 함께 레스탈의 것으로 보이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됐다!’

이것이야말로 인한의 계획.

함정의 강력함은 말 그대로 피부로 느껴본 인한이 아주 잘 알고 있다.

-크, 크륵. 크륵…….

울음소리가 잠잠해질 무렵, 이정환이 비틀대며 일어섰다.

“제, 제기랄. 간신히 잡았다.”

“아니요. 아직 천문이 떠오르질 않았습니다.”

이정환이 와락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그렇다. 보스든 몬스터든, 처리하면 천문이 떠올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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