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11화 (11/266)

# 11

<공략자들 11화>

‘거기다 나는 지금만 강해지는 게 아니다. 나는 시작부터 마력을 올리고 있어. 시작이 다르지.’

인한은 레벨업에 따른 모든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마력에 투자했다. 거기다 느리긴 하지만 극체술을 통해 쌓이는 마력까지.

‘그리고 마나스킬과 체술 스킬의 시너지는 여타 스킬에 비해 압도적인 효율을 자랑한다.’

오직 육체만을 이용해 스킬을 펼칠 때 얻을 수 있는 이점.

발터 에스키엘에 의해 확립된 ‘힘’의 사용 방법.

인한은 그것을 알고 있다.

인한은 손을 들었다.

그리고 인정사정없이 벽면을 향해 휘둘렀다.

쾅!

벽을 두들긴 인한의 피부는 약간 붉게 달아올랐을 뿐 큰 변화가 없었다. 이미 마력에 의한 육체 강화는 진행되는 중이었다.

이번엔 인한은 눈을 슬쩍 감았다.

밖으로 향하는 하나, 둘씩 모두 끊어낸다. 안으로, 더 안으로 파고든다. 피부를 지나 근육을 지나 수많은 혈관들을 지나쳐서 더욱더 안쪽…….

체내에 자리 잡은 수많은 물길이 나타났다. 그 길이 머무는 수백 개의 경유지가 있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 있는 커다란 호수. 그 호수에서 물을 끌어당긴다.

위이잉!

서서히 눈을 떴을 때, 인한은 자신의 손을 휘감고 있는 푸른 마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인한은 그대로 주먹을 다시금 벽면을 향해 휘둘렀다.

콰득!

휘둘러진 기세에 비해, 들려온 소리는 미약하기 그지없었다.

인한은 서서히 주먹을 벽면에서 떼어냈다. 무슨 일이 벌어지거나 하지 않았다. 인한은 주먹을 휘두른 곳을 살짝 툭 건드렸다.

쩌어억!

그 순간, 거미줄 같은 실금이 천장까지 그어지며 먼지가 후두둑 떨어졌다.

‘슬슬 적은 마력으로 펼치는 것도 익숙해지네.’

이것이 바로 체술로 펼칠 수 있는 힘의 전달법.

폭탄을 땅 위에다 놓고 터트리는 것과, 땅을 파서 안에다 터트리는 것과 어떤 것이 더 피해가 클까?

몬스터는 마력이 섞인 생명체다. 그 생명체의 체내에 흐르는 마력로(魔力路)를 무자비하게 헤집는 것이 바로 체술로만 펼칠 수 있는 힘의 사용법이었다.

인한은 자신의 손끝에서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새하얀 마력의 알갱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이런 색일까.’

인한은 자신의 마력의 색을 보며 의아해했다.

마력은 그 사람이 익힌 마나스킬이나 개인의 특성에 달라진다. 인한의 마력색은 과거에는 짙은 푸른색이었다.

‘극체술을 익혀서 바뀐 걸까?’

그러고 보면 마력의 색에는 아주 검은색도, 아주 회색도, 아주 하얀색도 없었을 텐데.

-크어어어.

벽면을 치는 소리를 들은 것인지, 신음소리를 내며 스켈레톤 병사가 다가왔다.

인한은 스켈레톤 병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쾅!

스켈레톤 병사는 리젠되자마자 벽에 처박혀 쓰러졌다.

‘이제 슬슬 가볼까.’

인한은 심층부에서 사냥하며 발견한 그 장소를 떠올렸다.

이제는, 때가 됐다.

[히든 던전 ‘고대인의 도피처’의 보스존입니다. 입장하시겠습니까?]

[Y / N]

보스의 방.

고작 이틀 전에 튜토리얼을 끝낸 헌터가 메인 던전보다 높은 등급인 히든 던전을 솔로 클리어하고 있다.

인한은 문을 열었다.

두두두두두!

육중한 진동과 함께 철문이 열렸다.

[1층 히든던전 ‘고대인의 도피처’의 보스 ‘Lv.20 스켈레톤 나이트’의 방에 입장하셨습니다.]

어두컴컴한 공동.

화륵!

문이 열리자 축구 경기장만 한 거대한 공간의 곳곳에 횃불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크으으으.

공간의 중앙에는 조악한 나무 의자가 있었다.

그곳에서 웃는 것 같기도, 우는 것 같기도 한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인한은 숨을 길게 내쉬어 몸의 긴장을 풀고 자세를 잡았다.

콰앙!

의자가 터져 나가고 시커먼 물체가 인한의 바로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크흐흐흐!

금색으로 빛나는 갑주를 입은 스켈레톤. 유일하게 밖으로 드러낸 두개골은 광택이 있는 붉은색으로 번들거렸고, 눈구멍에서는 녹색 불꽃이 활활 타올랐다.

‘뿔 두 개!’

지금까지의 몬스터와 다르게 이마의 양쪽에 우뚝 솟은 두 개의 뿔. 몬스터는 그 뿔의 개수와 크기, 질로 능력을 말하는 법.

스켈레톤 나이트는 손에 들고 있는 금빛 검을 인한에게 겨눴다.

-크흐흐흐흐!

놈이 전신의 뼈를 들썩이며 웃었다.

* * *

먼저 움직인 것은 스켈레톤 나이트였다.

찌익!

분명 피했다고 생각했건만 오른쪽 옷깃이 길게 찢어진다.

뒤를 이어 또다시 휘둘러지는 검격.

주먹을 뻗어 검면을 후려친다.

캉!

“윽?”

마력까지 둘러 후려친 일격이었건만 튕겨 나간 것은 인한의 손이었다.

마력의 특수성마저 무시할 정도의 가공할 힘.

자세를 바로잡을 새도 없이 황금색 검이 재차 휘둘러진다.

‘어딜!’

인한은 놈의 몸통을 걷어찼다.

샤악!

놈의 검이 아슬아슬하게 허공을 갈랐다.

-키아아아악!

스켈레톤 나이트는 거리를 좁히며 맹공을 쏟아부었다. 인한은 제대로 공격도 못해 보고 피하거나 흘려낼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공격과 공격의 사이, 스켈레톤 나이트가 자세를 바꾸는 순간.

타닥!

인한이 스켈레톤 나이트의 품으로 파고든다.

이곳은, 인한의 거리다.

위이잉!

주먹에 희미한 빛이 서린다.

일격 스킬이 발동됐다.

-키아악!

스켈레톤 나이트가 날렵하게 뒤쪽으로 튀어 올랐다.

인한의 반격은 허무하게 허공을 갈랐다.

벌어진 거리.

인한은 손을 휘휘 털었다.

분명 손해를 봤지만, 그렇게 나쁘지는 않다.

레벨 차이가 무려 11에 달한다. 거기다 보스는 스테이터스가 동 레벨의 몬스터보다 높다.

그런 놈을 상대로 공격을 한 번도 허용하지 않고 반격까지 했다.

‘할 만해.’

인한이 자세를 잡았다.

벌써 10레벨을 달성한 체술 마스터리.

거기다 얻어 낸 [일격], [돌려차기], [관수]를 포함한 체술 관련 액티브 스킬 5가지 기본 스킬들도 E등급에 도달했다.

스킬들의 보조, 그리고 아직 스킬이 되지 못한 머릿속 기술들.

버겁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이길 수 있다.

-크아아아아!

스켈레톤 나이트가 다시 땅을 박찼다.

눈으로 좇아가지 못할 속도.

하지만 예상하기 쉬운 직선 공격에 불과하다.

콰아앙!

고작 한 발자국 뒤로 빠진 움직임에 놈이 인한의 뒤편 벽을 들이박았다.

화악!

자욱하게 모래먼지가 피어올랐다.

그 사이로 무언가가 날아간다.

퍽!

-칵!

스켈레톤 나이트가 허리를 꺾어 날아온 것을 피해 냈다.

-……?

오크의 뼈가 섞인 단검.

그 순간.

투확!

안개가 훅 걷힌다.

단검을 피하느라 자세가 무너진 스켈레톤 나이트를 향해 쏘아진 스트레이트!

-키아아아악!

‘피했다.’

쾅!

이마저도 피해 내는 스켈레톤 나이트.

머리를 박살 낼 생각이었는데 주먹은 놈을 스치고 벽면을 후려쳤다.

하지만.

‘이걸로 끝낼 생각은 없어!’

턱!

인한이 왼손으로 스켈레톤 나이트의 쇄골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남아 있는 오른손이 곧게 펴진다.

마치 한 자루의 칼처럼.

그 칼의 날에 흐릿한 기운이 서렸다. 인한의 손날이 곧장 관절로 떨어졌다.

우드드득!

-캬아아아아아악!

놈의 팔 한쪽이 떨어져 나갔다.

놈의 눈구멍에서 타오르는 불꽃이, 세차게 흔들렸다.

쓰러지는 놈에게 인한이 올라탔다. 팔을 누르고 허벅지를 제압했다. 완벽한 마운트 포지션이었다.

-크륵?

놈의 눈구멍에 서린 불꽃이 한 순간 흔들렸다.

인한은 주먹을 길게 끌어당겼다.

우드득! 뚜둑!

* * *

인한은 털썩 주저앉았다.

힐끗 옆을 바라보자 두 눈에서 안광을 줄기줄기 뿜어 대던 스켈레톤 나이트는 어디로 가고, 땅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뼈다귀만 있을 뿐이었다.

[히든 던전 ‘고대인의 도피처’를 클리어하셨습니다!]

[스테이터스가 큰 폭으로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벨이 상승합니다.]

[소모된 체력과 체력을 20% 회복합니다.]

[클리어 보상이 지급됩니다.]

[고대인의 뼛조각]

[타이틀 효과 <최초의 도전자>가 적용됩니다. 아래의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하실 수 있습니다.]

[보상]

1. 스킬 : 고대 왕가(王家)의 검술(등급: D)

2. 무기 아이템 : 해방된 기사의 신검(등급: D)

3. 무기 아이템 : 바람의 장화(등급: C)

3. 액세서리 아이템 : 고대의 보주(등급: E)

4. 재료 아이템 : 고대 왕의 뼛조각(등급: D-)

(제한시간: 60초)

“C, C 등급?!”

인한이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10층까지 공략된 상황이라면, 아직 C등급은 매우 희귀할 때다. 제대로 쓸만한 아이템은 최하층 구간을 벗어난 뒤부터이기 때문이다.

“우선…….”

스킬은 필요 없다. 어차피 검술 스킬이었다.

재료 아이템은 스켈레톤 나이트의 시체에서 직접 챙기면 된다.

액세서리는 고작 E등급이다.

검은 인한에게 쓸모없는 것.

무조건 장비다!

현재 10층을 공략하고 있는 랭커들이 소유한 아이템이 C등급이다.

한마디로, 물론 레벨대에 따른 차이가 있겠지만, 그래도 등급만 생각하면 10층이나 차이가 있는데 같은 아이템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다!

인한은 아이템을 선택했다.

[보상이 지급됩니다.]

[바람의 장화]

[레벨제한 : Lv.20]

[등급 : C]

[종류 : 신발]

[내구도 : 413/413]

[이동속도 : 84]

[방어력 : 14]

[효과]

-방어력 10% 증가

-민첩 15 증가

-이동속도 10% 증가

[액티브 효과]

1. 바람의 가호- 10초간 민첩 스테이터스가 20 증가합니다. (재사용 대기시간 : 30분)

레벨제한 20짜리 아이템.

거기다 액티브 효과가 적용되어 있는 아이템이다!

‘이 정도면……!’

희귀한 C급 아이템인 것도 그렇지만, 이동속도와 민첩과 액티브 효과까지 달려 있다.

인한은 씨익 웃었다.

첫 시작이 좋다.

“자, 이제 한 번 살펴볼까.”

인한은 옷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인한은 보스존의 공동을 향해 걸어갔다.

전투 중에 보았던 것이 있다. 어쩌면 그놈의 ‘왕’이란 것이라든지, ‘아발론’이란 것을 알 수 있을지 몰랐다.

인한은 벽면에 붙어 있는 횃불을 뜯어내 빛이 닿지 않는 곳을 향해 들이밀었다.

“있다.”

벽화다. 전투를 하며 보았던 것이다. 공동을 가득 채운 건 아니지만 꽤 스케일이 큰 작품이다.

고대의 벽화라고 해도, 퀄리티는 꽤 높다.

미끄러운 표면에 그려진 벽화들 대부분이 색조가 있었고, 지구의 고대 벽화와는 다르게 각각의 그림도 형상이 제법 뚜렷해서 알아보기 쉬웠다.

구석기시대 쯤의 오래된 벽화보다는, 이집트 쪽 벽화에 가까운 모습이다.

‘도대체 뭘 그려 놓은 거지?’

횃불을 좀 더 들이밀었다.

건물로 보이는 것들이 줄지어 그려져 있고, 그곳에 사람들이 서서 무언가를 올려다보았다.

모습은 사람이지만 세 배는 더 커다란 그 존재는,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이들의 신인가.’

보통 신을 표현할 때 이렇게 표현하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신이라고 하기엔…….

‘너무 사람 같군.’

조금 화려하다뿐이지 사람과 이목구비도 복장도 비슷하다.

그 거대한 사람은 짙은 검은색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 거대한 사람은 나머지 사람들을 몰아세워 땅굴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그림은 끝이었다.

인한은 횃불을 조금 옆으로 옮겼다.

기이한 문양이 벽면에 줄지어 파여 있다. 문자인 것일까. 음각된 문자가 세로로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무슨 글자인지 영 못 알아 먹겠…….”

인한은 우뚝 멈춰 섰다. 놀란 듯 글자를 뚫어져라 바라보는 인한의 손에서 횃불이 툭, 떨어졌다.

분명, 인한은 이런 문자를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왕들을 피해…… 숨어들었다……. 우리는 저주를…….”

하지만 인한은 그 문자를 확실하게 읽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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