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
<공략자들 10화>
인한은 허공에 주먹을 휘둘러보았다.
분명 자신의 의지지만, 정체 모를 힘이 작용하며 힘이 배가되는 기분.
분명하다.
스킬이 발동됐다.
“어째서?”
인한은 당황했다.
탑을 오르는 자에게 스킬은 매우 중요하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에게 초목을 무너뜨리고 산천을 뒤엎는 괴수들과 싸우는 힘을 갖게 해 준다.
그래서 모든 헌터들이 스킬에 목을 맨다.
그리고 그만큼 희귀하여 얻기가 힘들다.
인한은 최상위층에 있었지만, 갖고 있던 스킬은 모두 그럭저럭 쓸 만한 수준의 것들뿐이었다.
그래서 이번 생에서만큼은 고급 스킬들을 얻고자 다짐했었다.
그런데 비록 E급이긴 하지만 이렇게 간단히 스킬을 얻다니.
‘설마?’
주먹을 바라보는 인한의 눈이 흔들렸다.
잊고 있었다.
스킬이 없다고 기술을 잊은 게 아니라는 것을.
검은탑에서의 스킬은 발동한다고 몸이 자동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몸을 움직이면 스킬이 그 움직임의 위력을 증폭시켜 주는 식이다.
인한의 숙련된 움직임에 맞춰 스킬이 생성된다.
스킬에 있어서는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얻어 가려 했건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잖아?’
탑에서 익힌 기술들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22년간 익혀 온 기술들.
수많은 카테고리의 수많은 스킬들.
비록 히든 스킬 하나 없는, 있는 거라곤 고작 정체도 모를 왕의 권세뿐인, 그럭저럭 쓸 만한 정도에 불과한 빈약한 스킬창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검은탑의 초기.
22년 후 그럭저럭 쓸 만해지는 스킬들이 지금은 어떨까?
* * *
인한은 거침없이 나아갔다.
오른손이 완벽히 익숙해질 때까지 초반부의 몬스터를 사냥했다. 기동성이 떨어지는 언데드로 이루어진 고대인의 도피처는 좋은 재활훈련 장소였다.
아니, 재활훈련치고는 강행군이었다.
보통 던전 공략은 다수로 행해진다. 위험한 것도 있지만 지도 작성과 몬스터의 습성 파악 등 역할을 분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한은 혼자서, 그것도 지도도 습성 파악도 무시하고 휴식도 없이 나아갔다.
[스킬을 익혔습니다!]
[돌려차기]
[스킬을 익혔습니다!]
[관수(貫手)]
‘벌써 다섯 개 정도.’
엄청난 속도로 스킬을 얻어 갔다.
아직 5층에서 할 수 있는 클래스 업그레이드를 하지 못해서 기본 스킬들만 얻을 수 있지만…….
‘이대로 가면 얻을 수 있을지도 몰라.’
S급 타이틀 <천무(千武)>.
랭킹 1위였던 박철환이 가지고 있던 타이틀.
끝까지 정체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스페셜 원이라 불리는 EX급을 제외하고선 최고등급인 S급의 타이틀이 얼마나 사기적인 효과를 가졌을지는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계획과 다르지만.’
스킬을 이렇게 쉽게 얻을 줄 몰랐으니 <천무>는 계획에 두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노려볼 수 있을지 모른다.
콰앙!
인한이 주먹을 휘두르자 좀비가 벽에 날아가 처박혔다. 다시 움직이려고 꿈틀대는 놈의 머리를 인한의 발이 짓뭉갰다.
그 순간.
[타이틀을 획득하셨습니다!]
[타이틀 : 언데드 학살자]
[등급 : E (성장형)]
[효과]
1. 언데드 헌터- 언데드 카테고리의 몬스터를 사냥할 때 모든 능력치가 5% 증가합니다.
[다음 등급 상승까지 사냥해야 할 언데드 0/444]
[상세설명 : 44마리의 언데드를 안식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
이런 타이틀이 존재했나?
거기다 성장형!
“그렇군. 히든 던전이 아닌 곳에서 언데드가 나오는 건 14층의 ‘저주받은 신전’부터니까…….”
한마디로 누구보다 빨리 언데드 계의 몬스터를 사냥한 인한에게 타이틀이 주어진 것이었다.
‘탑에 언데드형 몬스터는 수도 없이 많다. 큰 도움이 될 거야.’
인한은 기쁜 마음을 숨기지 않았지만, 한편으로 다소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뒷머리를 긁었다.
‘천무는 일단 생각만 하고 있자.’
애초에 출현 조건을 모른다. 아는 것은 탑에서 ‘어떠한 스킬’을 ‘일정 숫자’만큼 획득하는 것. 어떤 스킬을 어떻게 얻어야 하는지를 몰랐다.
‘서두르지 말자. 어차피 지금은 기초스킬밖에 익히지 못하니까 나중으로 미루고.’
욕심을 접는다.
그렇다면 원래 목적인 성장에 집중해야 한다.
[‘고대인의 도피처’의 심층부에 도착했습니다.]
[몬스터의 등급이 상승합니다.]
[상세설명 : 고대인들은 누군가에 의해 도피처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어도 편히 쉬지 못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의 왕’의 저주가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왕.’
또다시 왕이다.
시초의 왕과 죽음의 왕.
그리고 아발론.
인한은 천문을 내리고 정면을 응시했다.
‘이제 조심해야겠어.’
거침없이 나아가던 인한의 발걸음이 조용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던전의 심층부. 착각인지, 사실인지 아주 조금 더 어두워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피부가 콕콕 쑤실 정도로 음산한 기운이 통로에 가득했다.
이따금 바람 소리가 비명처럼 웅웅거리며 짐승의 울음소리처럼 들리는 것 같은…….
“흡!”
갑자기.
오른쪽에서 서늘한 감각이 몸을 덮쳐 왔다.
인한은 뒤로 몸을 날렸다.
-캬아아악!
콰득!
인한이 있던 벽이 긁히며 모래가 우수수 떨어졌다.
나타난 것은 초반에 숱하게 본 스켈레톤 병사.
그런데 행색이 다르다.
아무것도 없이 거적때기만 입고 있던 초반의 스켈레톤들과 다르게 낡은 철검에 방패, 갑옷까지 입고 있다.
그 눈에서 발하는 귀기 어린 푸른빛에 오싹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약하기 그지없던 초반부의 몬스터들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었다.
‘일단 물러나서 조금 더 준비할까?’
인한은 한 발자국 물러섰다. 하지만, 그런 순간 바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니, 잡는다!’
뒤로 빠진 발이 크게 앞으로 나선다.
하지만 그때.
-크어어어어.
“……!”
뒤에서 좀비 특유의 쇳조각을 긁는 듯한 울음소리가 분명 벽이었을 곳을 뚫고 들려왔다.
벽면을 뚫고 팔을 뻗은 놈들이 인한에게 달려들었다.
-캬아아악!
“큭!”
인한은 다급히 놈의 팔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카각!
뼈와 뼈가 부딪쳤는데 쇳소리 같은 게 울렸다.
인한은 충돌의 힘을 못 이기고 땅바닥에 넘어져 버렸다.
부웅!
그 새를 놓칠세라 스켈레톤의 철검이 인한의 머리로 떨어졌다.
인한은 간발의 차로 땅을 굴러 검을 피해 냈다.
벌떡 일어나 정면을 노려본다.
놈들이 천천히 인한에게 다가왔다.
인한은 힐끗 뒤를 바라보다, 혀를 찼다.
“쯧.”
하필이면 피한 곳이 코너였다. 도대체가 이런 쪽으로는 운이 없다며 인한은 궁시렁대면서도, 조금씩 뒷걸음질 쳤다.
걸음을 옮길수록 벽이 가까워진다. 한 발자국, 두 발자국, 세 발자국…….
툭!
곧, 인한의 등이 벽에 닿았다.
그 순간.
-캬악!
놈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공격을 뻗었다.
‘위험!’
인한이 이를 악물었다.
저도 모르게, 몬스터들 사이로 동선을 그린다.
머릿속을 스치는, 몇 번이고 인한의 목숨을 살려준 스킬.
‘될까?’
기술을 쓰는 법은 머릿속에 새겨져 있다.
‘해보자.’
인한이 자세를 잡았다.
과거, 인한이 가졌던 유일한 A급 스킬.
‘파검식(破劍式).’
후두둑!
인한이 땅을 박찼다. 뒤편으로 모래가 튀어 오른다.
앞으로 강하게 뻗어 낸 일 보.
이게 축이 된다.
휘익!
순식간에 가장 앞에 있던 좀비의 품속으로 들어간 인한의 몸이 빠르게 회전한다.
-크어어!
발목에서 무릎으로, 무릎에서 허리로 전달되는 회전.
뿌득! 뿌득!
연약하기 그지없는 관절과 근육이 과도한 움직임에 비명을 질렀다.
축으로부터 전달된 힘이 인한의 몸을 핑그르르 회전시킨다.
그리고 회전의 끝자락에.
몬스터들이 있다!
콰아앙!
[크리티컬! 피해량이 100% 증가합니다!]
거세게 휘둘러진 발길질에 다섯 마리의 좀비 중 세 마리의 몸이 푹 파였다.
-크어어어!
다음은 철검을 휘두르는 스켈레톤.
캉!
어깨를 당겨서 가볍게 피해낸다. 땅바닥을 긁는 철검.
놈의 정면이 비었다.
빠각!
일격에 스켈레톤의 가슴뼈가 수수깡처럼 박살났다.
[Lv. 9 고대인 스켈레톤 병사를 쓰러뜨렸습니다.]
인한은 주먹을 털고 뒤로 돌았다.
-크어어어…….
좀비들이 비틀대며 일어서고 있다.
인한은 천천히 놈들에게 걸어갔다.
* * *
인한은 숨을 몰아쉬었다.
무리한 움직임에 근육과 관절이 쑤셨다.
그래도.
“내가 이겼다. 이 뼈다귀들 새끼들아.”
인한은 미소 지었다.
됐다.
권사 클래스 3차 클래스 업그레이드 보상인 A급 스킬 파검식.
인한은 자신의 목숨을 몇 번이고 살려 줬던 그 기술을 스킬의 보조 없이 펼치는 데 성공했다.
욱신!
물론, 근육과 관절에 오는 부담을 생각하면 다음부턴 할 수 없겠지만.
[힘이 5포인트 상승합니다.]
[민첩이 4포인트 상승합니다.]
인한은 스트레칭을 하고 주먹을 몇 번 뻗어냈다.
팡!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려 퍼졌다.
확실히 초반에는 스테이터스의 성장이 강함에 크게 작용했다.
-크어어…….
역시 심층부인지, 몬스터가 벌써부터 보였다.
‘이제 아까처럼 위험한 상황은 만들지 않아.’
한 번 당했으니 방심은 하지 않는다.
포위당하지 않게 조심하면서, 빠르게 한 마리씩.
콰득!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스켈레톤 병사의 얼굴에 주먹이 틀어박힌다.
우드득, 비스킷처럼 부서지는 얼굴뼈와 함께 놈이 땅바닥을 뒹굴었다.
-쿠어!
-크아아!
“그래, 와라!”
인한은 피하지 않았다.
묵직한 일보를 앞으로 뻗을 뿐.
쾅! 콰득!
인한이 좀비의 목을 부러뜨렸다. 그 다음 휘두른 팔꿈치에 뒤따르는 스켈레톤 병사의 몸통이 그대로 부서졌다.
절도 있는 움직임.
간결하고 빠르게.
그리고 강하게.
* * *
심층부에 들어선 지 이틀, 그리고 던전에 들어선 지 사흘이 지났다.
인한은 인벤토리에서 육포와 견과류, 물을 꺼내 먹었다. 탑에 들어오기 전에 비상식량 삼아 배낭에 챙겨 왔던 것을 인벤토리에 넣었던 것이다.
‘몬스터들이 다시 나올 때까지 얼마 안 남았군.’
인한은 물을 꿀꺽꿀꺽 마셨다. 슬슬 식량과 물이 부족했다.
‘어차피 충분할 만큼 성장했어.’
[사용자 정보]
이름 : 최인한
종족 : 인간
레벨 : Lv.9
타이틀 : 시작하는 자(A+), 언데드 학살자(F)
클래스 : 없음
[스테이터스]
힘 : 29
민첩 : 24
체력 : 35
지능 : 17
마력 : 43
‘엄청나다.’
생전의 인한은 약했다.
니시야마 겐지처럼 기연이 있던 것도, 육룡과 같은 재능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해태 길드 때도 그저 새로운 방식이 떠올라 그걸 처음으로 도입해 성공시킨 사람일 뿐이다.
딱히 뒤처지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결코 뛰어난 적은 없었다.
데스파티 때?
인한은 전투마다 목숨을 걸었다. 99층까지 살아남은 것은 그의 실력이 좋았다기보다는 운이 좋았던 탓이다.
아니, 어쩌면 인한이 철저히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데스파티의 길드장 박철환의 비틀린 쾌락의 발로였을지도 모른다.
인한은 뛰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이제 과거다.
‘이런 기분이었나.’
랭커들의 기분.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는 강자의 기분.
‘솔로가 꿈이 아니야.’
인한은 주먹을 꽉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