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9화 (9/266)

# 9

<공략자들 9화>

‘가깝네.’

방향만 알면 어둠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기다 가깝기까지 하다. 인한은 방향을 잡고 이동을 개시했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하고서 인한은 나무가 자라지 않는 커다란 공터를 발견할 수 있었다.

숲에 가득한 어둠 덕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공터에는 화려한 모양의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삭막한 숲의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광경이었다.

‘아니, 어떻게 보면 가장 어울리는 건가?’

인한은 꽃들을 보며 눈을 갸름하게 떴다.

몬스터들이 짐승보다 많고, 그 흔한 나무조차 웬만하면 하늘을 찌를 법한 거목으로 자라는 이곳에서 이렇게 눈에 띄는 꽃밭이 정상일 리가 없다.

이 꽃들은 전부 독초다. 이곳에 공터가 생긴 이유도 몬스터들조차 접근을 꺼려하기 때문이었다.

‘제대로 찾아왔군.’

인한은 거침없이 꽃밭으로 들어갔다.

인한이 찾는 것은 독초들 사이에서 피어나고 밤이 되면 은은한 빛을 발하는 꽃, 월광초(月光草)였다.

월광초는 빛을 발하는 것을 제외하면 지극히 쓸모없는 잡초다.

치명적인 독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설사를 유발하는 성분을 가지고 있어서 식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런 월광초도 사용법이 있었으니.

‘찾았다.’

인한은 걷다 말고 조심스레 몸을 낮췄다.

인한이 바라보는 곳, 짙은 어둠 속에서 확연하게 빛을 발하는 꽃이 있다. 이게 월광초다.

인한은 다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드문드문 독초들 사이에 월광초가 보이는 빈도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면에 환하게 빛이 반짝이는 공간이 나타났다.

넓은 공간에 월광초가 잔뜩 피어 있었다. 구름처럼 뭉게뭉게 뭉쳐 있는 월광초들이 달빛을 받아 주위를 환히 밝혔다.

인한은 월광초 밭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회색빛 벌레들이 나타나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 * *

탑의 현자, 리 쉔펑은 몬스터 웨이브가 일어나기 전에는 미국의 모 유명 대학의 생물학 교수로서 관련 학계의 권위자였다.

그는 탑의 많은 것을 보고, 연구하며 나중에 이런 말을 남겼다.

-모든 생물과 현상에는 반드시 무슨 의미가 있다.

월광초가 그랬다.

식용으로도, 독초로도 쓸 수 없는 잡초.

누구도 오지 않을 위험한 밤의 필드에 피어나는 들꽃.

그런 월광초에도 숨겨진 비밀이 있었다.

첫 번째는 몬스터 루나 모스(Lunar Moth)를 끌어들인다는 것.

크기는 성인 남자의 손바닥만 하고, 날개와 몸통 모두 베이지색을 띤 회색으로 가득한 몬스터.

인한은 월광초 밭을 가득 채운 루나 모스들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갔다.

루나 모스들은 인한에게 신경 쓰지 않고 월광초에 달라붙었다, 떨어졌다를 반복하며 저들끼리 몸을 부딪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콰직!

인한은 땅바닥에 내려앉은 루나 모스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Lv.3 몬스터 루나 모스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36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간단해!’

루나 모스도 몬스터다.

위험한 건 다른 몬스터와 똑같다.

날개를 통해 흘러나오는 독가루는 각종 해로운 효과를 가져다주고, 꼬리의 끝에 달린 독침에 한 번 맞으면 즉사한다.

하지만 월광초의 주변에 있는 놈들은 결코 위험하지 않다.

놈들은 월광초의 주변에서 짝짓기를 한다.

월광초의 주변이 아닌 곳에서 나타난 루나 모스들은 지극히 위험하지만, 이곳에 있는 루나 모스들은 월광초의 빛에 취해 적의 등장을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다.

인한은 월광초에 달라붙은 루나 모스를 향해 나이프를 찍었다.

콰직!

[Lv.2 새끼 루나 모스를 사냥했습니다.]

[경험치 24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Lv.5 짝짓기 중인 루나 모스를…….]

[Lv.3 루나 모스를…….]

[레벨이 상승합니다.]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3포인트 획득합니다.]

[소모된 체력과 마력을 다소 회복합니다.]

[타이틀 효과 <최초의 발걸음>이 적용됩니다.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2포인트 추가로 획득합니다.]

인한은 정확히 10마리의 루나 모스를 사냥하고 두 개의 레벨을 올렸다.

‘이제 슬슬.’

인한은 나이프에 묻은 루나 모스들의 점액을 옷에 문질러 닦아 냈다.

루나 모스는 인한이 목표로 하던 것이 아니다.

월광초의 두 번째 비밀.

월광초는 ‘어떤 장소’를 찾기 위한 이정표다.

인한은 루나 모스 10마리의 시체를 피부에 닿지 않도록 천으로 감쌌다.

인한은 그것을 챙겨 월광초가 피어 있는 방향을 따라 몬스터 오크의 아래쪽으로 움직였다.

‘역시…… 언제 봐도 거대하군.’

인한은 고개를 들어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바람에 조용히 흔들리는 떡갈나무가 한 마리의 거대한 괴수처럼 느껴졌다.

인한은 월광초가 피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짐승이 파먹은 건지, 자연적으로 파인 건지는 몰라도 월광초가 피어 있는 쪽 기둥에 사람 서너 명은 거뜬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공간이 만들어져 있었다.

인한은 천에 싼 루나 모스의 사체를 구멍 속에 밀어 넣었다.

그 순간.

몬스터 오크에 나 있던 구멍이 쩍쩍 갈라지며 나무줄기가 튀어나오더니 루나 모스의 사체를 휘감았다.

그리고 떠오르는 천문.

[히든 던전 ‘고대인의 도피처’의 입장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고대인의 도피처’에 입장하시겠습니까?]

[Y / N]

알림에 인한이 미소를 지었다.

인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대인의 도피처’에 입장하셨습니다.]

[고대인의 도피처]

[아발론의 고대인들이 몬스터들의 습격을 피해 숨어든 땅굴입니다. 땅굴이 얼마나 깊게 파여 있는지, 얼마나 넓게 파여 있는지 누구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등급 : E ~ D-]

[클리어 적정레벨 : Lv.5 ~ Lv.15]

‘아발론!’

또다. 이 단어가 또다시 등장했다.

인한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왜일까.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히든 던전 최초 발견자! 최초 발견자에 따른 보상이 주어집니다.]

[던전의 소유자로 등록할 수 있습니다.]

[소유자 최대 등록 인원은 5명입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Y / N]

“등록.”

히든 던전은 최초 발견자에게 여러 특전을 내준다.

그중 대표적인 게 이 소유권.

최초 소유자로 등록하게 되면, 소유자의 의지로 던전을 출입하는 헌터들을 강제하는 권리를 얻게 된다.

거대 길드들은 이 방법으로 던전을 독점했다.

[등록이 완료되었습니다. 최초 등록자는 던전 도전자들의 출입을 강제할 수 있습니다.]

“자유 설정으로.”

인한은 그렇게 할 생각이 없다.

최초 등록자가 자유로 설정하면 나머지 네 명의 소유자는 출입을 강제할 수 없게 된다.

나머지 네 소유자가 얻는 이득이라고는 던전을 돌 때 얻을 수 있는 버프 정도.

[히든 던전 ‘고대인의 도피처’의 소유자]

-최인한(최초 등록자)

-아직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아직 등록되지 않았습니다.

[최초 발견자 보상에 따라 던전에서 획득하는 경험치가 20% 상승합니다.]

[최초 발견자 보상에 따라 던전에서 아이템 획득률이 20% 증가합니다.]

[타이틀 효과 <또 한 번의 발걸음>이 활성화됩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해 볼까?”

* * *

히든 던전 고대인의 도피처.

검은탑의 길드 4강 중 하나이자 중국계 헌터들이 주를 이뤘던 길드 혈맹(血盟)에서, 정확히는 혈맹 소속의 헌터 리 쉔펑이 찾아내 세상에 드러난 던전이었다.

‘땅굴이라.’

탄광을 연상시키는 굴. 통풍은 되는지 공기는 신선했다.

굴이라서 어두울 줄 알았는데 벽면에 하얀빛을 발하는 조약돌만 한 알갱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꽤 밝았다.

그때.

-크르르…….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인한은 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왔군.’

굴의 끝에서 무언가가 걸어왔다.

이지를 상실한 흐릿한 눈동자, 절뚝거리는 다리, 썩어 버린 피부, 무엇보다 몬스터의 증거인 미간의 뿔.

좀비를 연상시키는 몬스터 네 마리가 턱을 딱딱 부딪치며 인한에게 다가왔다.

-크어?

살아 있는 사람의 냄새를 맡은 탓일까.

가장 앞에 있는 놈의 고개가 인한을 향했다.

인한은 고개를 좌우로 뚝뚝 꺾었다.

인한의 두 손은 손을 보호하기 위해 긴 천으로 밴딩한 상태였다.

입가에 서서히 미소가 그려졌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하겠지. 초심자 헌터가 히든 던전에서 무기 하나 없이 설친다면.’

애초에 과거에 헌터들 중 격투 관련 클래스에 전직한 사람이 거의 없던 이유도 그 위험성 때문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맨몸으로는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것도, 살아남는 것도 힘들다.

인간이란 맨몸으로는 짐승도 제대로 잡기 힘든 연약한 생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인한은 아니다.

인한에게는 노하우가 있다.

감각을 알고, 기술을 안다.

쉬익!

깔끔하게 직선으로 뻗어진 주먹.

-키악!

그 일격에 좀비의 균형이 무너진다.

땅을 박차고 좀비에게 깊숙이 달려든 인한의 주먹이 움직였다.

어깨, 가슴, 목, 그리고 머리.

퍽, 퍽, 퍽, 퍽!

[Lv.5 부패한 고대인 좀비를 처리했습니다.]

[경험치를 52포인트를 획득했습니다.]

뒤에 있던 좀비들이 인한에게 양팔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인한은 벽면을 박차고 좀비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다.

-크락!

쾅!

좀비는 별다른 반항도 한 번 못해 보고 벽과 인한의 주먹 사이에서 머리가 으깨져 버렸다.

[크리티컬! 피해량이 100% 증가합니다!]

-크르르륵!

남은 것은 둘.

인한이 주먹이 또다시 움직였다.

[Lv.4 썩은 고대인 좀비를 쓰러뜨렸습니다.]

[Lv.3 문드러진 고대인 좀비를 쓰러뜨렸습니다.]

“휴!”

깔끔한 움직임에 힘 있는 공격.

마치 식후 운동이라도 하듯 가볍게 몬스터들을 처리한 인한이었지만.

‘발을 좀 더 썼으면 됐을 텐데. 오른쪽 팔도 좀만 더 휘둘렀다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아무래도 머릿속에 여전히 오른손에 대한 위화감이 있는 게 문제였다. 거기다 몸의 성능도 생각보다 낮았다.

그래도.

‘충분해.’

부족한 건 채우면 되니까.

그때.

[다른 어떤 도구의 도움 없이 오직 가진 바 육신만을 사용하여 성공적으로 전투를 마쳤습니다!]

[스킬을 익혔습니다!]

[체술(마스터리)]

[숙련도 : Lv.1 (1%)]

[효과]

1. 체술 관련 스킬을 익힐 수 있습니다.

2. 체술을 통한 공격력과 수비력이 5% 상승합니다.

3. 체술 관련 스킬 피해량 10% 증가.

[일격(一擊)]

[등급 : E]

[숙련도 : Lv.1 (6%)]

[효과 : 강화된 일격을 가한다. (재사용 대기시간: 30초)]

“……!”

인한이 입을 쩍 벌렸다.

스킬이다.

스킬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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