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
<공략자들 8화>
전신에 서서히 감각이 돌아온다. 심장의 박동이 느껴지고, 호흡이 느껴지고, 끝내 눈이 번쩍 떠졌다.
‘성공했나?!’
인한은 벌떡 일어섰다. 클리어했다는 내용의 천문이 떠오른 것을 기억한다.
인한은 전신을 훑어보았다. 상처가 가득했던 몸은 조금의 먼지가 묻은 것 빼고는 깔끔했다.
‘클리어다.’
인한은 털썩 주저앉았다. 긴장이 빠지며 입꼬리가 씨익 말아 올라갔다.
성공한 것이다.
전 세계 모든 헌터들이 도전했음에도, 딱 10명만이 성공한 시작의 신전 마지막 단계를.
‘그러고 보니 보상은?’
보상 관련 천문이 떠오르지 않았음을 깨달은 인한은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야 지금 인한이 있는 곳이 처음 스페셜 던전을 들어 왔을 때 있었던, 웅장한 궁전의 모습임을 깨달았다.
분명 클리어하면 폐허에 전송되어 단상에 있는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을 텐데.
“축하드립니다.”
여인의 미성이 들려왔다.
인한은 부스스 자리에서 일어섰다. 단상의 앞에는 허리를 곧게 편 여인이 서 있었다.
‘5단계를 클리어하면 직접 전해 주는 건가.’
아마 그런 것이리라.
인한은 단상의 앞에 섰다. 이제 보상만이 남아 있을…….
“원래라면, 씨앗을 심어 드렸을 테지만.”
여인이 입을 열었다. 그러며 눈동자를 돌려 인한을 바라보았다.
인한이 굳었다. 그 목소리에는 분명 감정이 있었고, 그 말을 뱉은 얼굴에는 분명 표정이라는 것이 서려 있었다.
“당신에게는 필요 없는 것이겠군요.”
여인은 인한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확실하다. 그저 마력에 의해 만들어진 환영이 아니다.
저 눈빛은 분명…… 살아있는 사람의.
“아뇨.”
여인은 인한의 생각을 부정했다.
“전 이미 힘만 남은 존재. 당신과는 다릅니다. 당신에게선 짙은 그분의 냄새가 납니다. 도대체 어떻게 권세를 얻은 것인지 궁금하군요.”
“당신 지금 내 생각을 읽…… 아니, 잠깐. 지금 당신, 권세라고……?”
“왕의 권세, 가지고 계실 텐데요.”
“그걸 어떻게 알지? 도대체 어떻게 아는 거야? 아니, 알고 있는 게 맞아? 알고 있다면, 그 스킬의 정체가 도대체 뭐야!”
“저는…….”
여인의 입이 서서히 열렸다.
하지만, 여인의 입에 담긴 말은 인한의 바람과는 달랐다.
“대답할 수 없습니다.”
“뭐라고……?”
“당신의 속에 있는 질문의 답은 직접 알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그런 ‘규칙’이니까요.”
“헛소리 그만하고 대답이나 해!”
인한은 그렇게 외치며 여인에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
“부디 그분의 선택이 옳았기를.”
화악!
하얀 안개가 폭사되었다.
엄청난 풍압에 몸이 붕 뜨고, 인한은 뒤편으로 사정없이 내팽개쳐졌다. 몸을 일으키고자 했지만 안개의 힘 때문에 몸을 웅크리는 수밖에 없었다.
솨아아!
검은 안개는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것처럼, 갑작스럽게 사라졌다.
인한이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처음 들어왔던 폐허의 풍경이 펼쳐져 있을 뿐이었다.
“…….”
서늘한 바람이 폐허에 난 구멍을 통해 인한을 스쳐갔다. 땀에 의해 축축하게 젖은 등이 차갑게 식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 흐르고, 인한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열이 올랐던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인한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단상 뒤편에 있는 숨겨진 통로를 여는 돌을 다시 꾹 눌러 보았다.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역시…….’
시작의 신전은 딱 한 번만 도전할 수 있다. 이미 인한은 자격을 잃은 것이리라.
인한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직접 알아가라고?’
인한은 혀를 찼다.
무언가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이 세계에 작용하는 기분이다.
이놈도, 저놈도, 전부 다 남의 인생을, 의지를, 각오를 지 멋대로 주무른다. 꼬리에 꼬리를 잇는 의문들이 가득했다.
그때.
[보상이 지급됩니다.]
천문이 떠올랐다.
마치 고민하는 인한에게 쓸데없는 시간낭비라고 꾸짖기라도 듯이.
“…….”
인한은 조각상을 째려보았다.
‘좋아. 원하는 대로 해 주지.’
인한은 단상을 바라보았다.
단상의 위, 몇 개인가의 책자가 놓여 있었다.
[아래의 보상 중 한 가지를 선택하여 익힐 수 있습니다.]
[극체술]
[광검술]
[마도술]
……
다른 건 거들떠볼 필요도 없다.
인한이 노릴 것은 단 하나.
극체술.
이것을 얻는다.
[보상을 선택하셨습니다.]
[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마나스킬>
[극체술]
* * *
머리에 상쾌한 기운이 들어오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보가 주입된다. 뇌는 그 정보를 가감 없이 받아들인다.
인한은 감았던 눈을 서서히 떴다.
‘오랜만이군.’
자연스레 익힌 스킬이 아닌, 보상과 스킬로 스킬을 익혔을 때 나타나는 현상.
인한은 극체술을 익혔다.
[극체술<1단계>]
[등급 : S]
[숙련도 : Lv.1 (0.00%)]
[재사용 대기시간 : 없음]
[효과]
1. 마력에 특성을 부여합니다. (특성: 강화)
2. 보유 마력에 비례해 육체가 강화됩니다.
3. 모든 받는 피해가 5% 감소합니다. 물리, 마법 저항력이 10% 증가합니다. 1분마다 받은 피해량의 5%를 회복합니다.(지속적으로 마력을 소모합니다.)
[숙련도가 Lv.10이 되면 극체술이 2단계로 승급합니다.]
[마나스킬을 획득했습니다.]
[마나스킬 카테고리 개방.]
인한은 천문을 보고 우뚝 멈춰 섰다.
순간, 눈과 머릿속의 정보를 의심했다.
덕분에 희열이 찾아온 것은 한 박자 뒤의 일이었다.
‘말도 안 돼! 극체술이 마나 스킬이었나!’
극체술의 하위 버전인 강체술은 단순히 육체의 효율을 높여주고, 어느 정도 선까지 강화하는 데 그친다.
극체술도 그 폭이 매우 클 뿐 비슷한 종류의 효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B급 스킬 강체술과 S급 스킬 극체술의 사이에는 그만큼의 간극이 있었다.
[마나스킬(Mana Skill)]
모든 스킬 중 가장 희귀하며, 가장 상위에 있는 스킬 카테고리.
지구에 찾아온 비현실적인 재앙인 검은탑에는 천문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정석적인 힘, ‘마나’도 존재했다.
이 마나는 존재 자체로는 어떤 힘을 발휘하지 않지만, 이것을 가공하는 순간 가공할 힘을 발휘하게 된다.
스테이터스 창에 있는 ‘마력’은 이 마나를 가공한 힘을 의미했다. 이 마력을 흡수하거나, 방출하거나, 사용하는 모든 스킬을 마나 스킬이라고 했다.
마나스킬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탑의 초중반. 탑이 본격적으로 공략되기 시작할 때쯤이다.
당시 사람들은 마력 스테이터스를 찍지 않았다.
가장 초창기에는 마력이라는 단어가 주는 기대감에 투자한 사람이 있었지만, 곧 대부분이 포기하고 힘이나 민첩 같은 기본 스테이터스를 찍었다.
반복 행위나 실전을 통해 늘어나는 기본 스테이터스와는 달리, 마력은 레벨업 시 주는 스테이터스 포인트나 희귀한 아이템으로만 올릴 수 있었고, 아무리 올려도 눈에 띄는 변화를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도 몰랐지.’
마력 스테이터스를 찍는 것을 포기하지 않은 일본의 한 평범한 헌터에 의해 알려지게 된다.
마력 스테이터스가 250포인트가 된 순간 주어지는 마나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가 얻은 히든 보상 마나스킬 ‘기공술’은 마력을 다룰 수 있게 해 주었다.
스테이터스와 스킬만으로도 인간을 벗어난 힘을 발휘할 수 있지만, 마력은 그것들과 궤를 달리하는 힘이었다.
마력의 폭발적인 가능성은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고 넓었다.
그 후부터 이어진 마나스킬에 대한 관심은 많은 마나 스킬을 발견하게 했다.
‘많은 양을 쌓을 수 있는 마나스킬은 아니다. 하지만.’
S급 스킬인 만큼 안정적이며, 마력을 사용하는 방식만큼은 놀랍도록 뛰어났다.
거기다 부가적인 효과들도 엄청나다.
첫 번째 효과인 마력 특성 부여.
마력은 막 뽑아낸 원유와 같다. 그것을 그대로 태우는 것과, 휘발유든 경유든 등유든 성질을 바꿔 필요한 곳에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차이가 있다.
이것처럼 가공할 에너지인 마력에, 더더욱 ‘강화’라는 방향성을 주어 효율을 극단적으로 높인 것이다.
‘치유’, ‘절삭’, ‘경화(硬化)’…… 수많은 특성 중 극체술이 갖고 있는 강화의 특성은 인간의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시켜 줄 것이다.
특성 부여는 평균적으로 탑의 중층 정도 도착했을 때나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그조차 인한은 한참 늦어진 70층대에서 어렵사리 얻었다.
그걸, 지금은 1레벨 때 얻은 것이다.
‘거기다 마력에 비례한 육체 강화. 나한테는 더할 나위 없는 효과야.’
마력에 비례한 강화라면 그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몸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세 번째 효과.
자연 재생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피해량 감소와 저항력 증가, 거기다 받은 피해의 회복이었다.
극체술의 숙련도가 늘어나면, 나중에는 공격을 맞으면서도 오히려 회복을 할지도 모른다.
‘대박이다.’
극체술은 한 사람에 의해 알려졌다.
두 주먹으로 탑의 최정상이 된 전설적인 헌터.
탑의 랭킹 2위, 무신(武神) 발터 에스키엘.
웬만한 길드 한 두 개 정도의 전력을 단신으로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을 보유한 최강 중의 최강.
공식 랭킹이 2위지만, 1위인 박철환이 오히려 부딪치는 걸 피할 정도의 강자.
그를 키워준 이 힘이, 이제는 인한의 손에 들어왔다.
인한은 기쁜 마음을 품고 폐허를 벗어나려다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
인한은 고개만 살짝 돌려 뒤편을 바라보았다. 조각상은 그저 그대로, 지그시 내리깐 눈으로 단상을 바라볼 뿐이었다.
헌터 생활 22년 만에 처음으로 S급 스킬을 얻었건만, 뒷맛이 조금 찝찝하다. 하지만 단추는 맞게 끼워지고 있다.
‘난 내 갈 길 가면 되겠지.’
인한은 폐허를 벗어났다.
* * *
스페셜 던전에서 나왔을 무렵은 이미 땅거미가 내려앉은 후였다. 던전에서 낮시간을 전부 보낸 모양이었다.
‘바로 간다.’
잠시 쉴까 생각을 했지만, 바로 움직이는 걸 택했다.
정신적으로는 피곤하지만 육체적인 부분은 스페셜 던전에 들어갔을 때 그대로다.
각 단계를 소모된 체력은 클리어 시 회복됐기에 결과적으로 현재 인한의 몸은 도전하기 전의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1층의 필드 ‘미지의 숲’에 진입합니다.]
[밤이 되었습니다. 몬스터들의 능력치가 상승합니다.]
“후우, 후우.”
인한은 뜨거운 숨을 내쉬며 숲길을 달렸다.
원시적이고 어두운 숲이다. 축축한 흙냄새와 썩은 내, 습기 가득한 공기가 가득했다.
땅은 늪처럼 끈적끈적한 흙이 깔려 있고, 그 위로 사람의 핏줄 같은 굵은 나무뿌리들이 튀어나와 사방팔방으로 얽혀 있었다.
“후.”
인한은 앉기 편해 보이는 나무줄기에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몬스터의 흔적은…… 없고. 잠깐 쉬고 가도 되겠군.’
몬스터들은 밤이 되면 강해진다. 그렇기에 헌터들은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 해가 저물면 필드에 나서지도, 던전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게 있다.
1층에 있는 몬스터들 중 밤에 활동하는 종류는 많지 않다. 거기다 그것들 모두 이동속도가 낮은 놈들뿐이다. 마주칠 가능성은 적을뿐더러, 마주친다고 해도 따돌리기 매우 쉽다.
-크라아아!
먼 곳에서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보통의 헌터라면 몸을 움츠리기 마련이건만, 인한은 움찔도 안 했다.
‘지금 내게 가장 필요한 건.’
극체술의 마력을 쌓는 속도는 미비하다. 극체술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선 다른 방식으로 마력을 쌓아야 할 필요가 있다.
‘레벨업이다.’
인한이 목표로 하는 곳이 있다.
1층에 단 하나뿐인 히든 던전.
아직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을 그곳이라면 <시작하는 자>의 타이틀 효과까지 받을 수 있다.
인한은 근처에 있는 가장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서쪽 끝, 미지의 숲 중앙에 하늘을 찌를 듯이 우뚝 솟아 있는 나무가 보였다.
몬스터 오크(Monster Oak).
하늘을 집어삼킬 듯 웃자란 거대한 떡갈나무. 저곳에 히든 던전의 입구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