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략자들-4화 (4/266)

# 4

<공략자들 4화>

인한과 태호는 갈림길에 마주 섰다.

“정말 같이 갈 생각이 없는 거냐? 굳이 혼자 다닐 이유가 없지 않냐.”

인한은 임태호를 보며 히죽 웃었다.

‘어리네.’

젊어 보이는 게 더 맞으려나? 거기다 워낙 생긴 게 삭은 양반이라 30대 초반일 텐데 40대로 보였다.

뭐 그렇다곤 하더라도, 사실 정신연령을 따져도 임태호가 인한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인한은 기계처럼 탑만 올랐다. 조금 더 직설적으로는 노예처럼. 40층의 사건 이후로 인한은 조금도 성장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왕 젊어진 거. 그냥 익숙해지자.’

꿈에 그리던 과거로 돌아왔다.

이렇게 된 거, 과거는 잊고 젊은 사람으로 살면 된다.

“뭔데 갑자기 웃냐.”

“아니에요. 아,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어서 당장은 같이 못 다니겠네요.”

임태호가 뒷머리를 벅벅 긁었다.

임태호는 인한이 걱정됐다. 원래 저 정도 나이면 옛날에는 한창 대학에 다닐 때다. 이런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세상이 참 미쳐 돌아가도 얼마나 미쳐 돌아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적어도 네가 가르쳐 준 방법은 비밀로 하마. 이런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도 아는데 말이야.”

“아뇨, 괜찮습니다. 어차피 언젠간 알려질 테고, 덕분에 사람들이 위험에서 벗어나면 좋지요.”

지금이야 모르겠지만, 나중에는 정말 흔하게 보급되는 정보다.

임태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혼자 다닐 생각이냐?”

인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임태호.

정말 반가운 사람이었다.

피는 다르지만 인한은 임태호를 친형처럼 따랐었다. 그런 사람을 사별했다 다시 만났다.

거기다 지금 이 시간대라면 살아있을 동료들. 인한이라고 그들이 그립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녀’도 살아있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인한은 숨을 훅 내쉬었다.

‘솔로로 탑을 오른다.’

솔로.

혼자 검은탑을 오르는 자를 지칭하는 말.

검은탑을 솔로로 오르는 사람은 매우 많았다. 대부분 하위층에서 몬스터를 사냥하고 그 부산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인한은 공략자로서 탑을 오를 것이다.

사람들을 모으는 데 걸리는 시간.

사람들과 다니면서 제한되는 자유.

이것들이 인한에게 족쇄가 된다.

인한은 미래를 안다.

각 층의 몬스터들을 안다.

22년의 세월을 기억한다.

‘그리고.’

탑의 곳곳에서 두각을 드러낼 천재들.

인류를 이끌었던 영웅들.

그들을 안다.

전생의 그들은 언제나 힘을 합치지 않고 서로 거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래선 안 된다.

과거가 계속되면 100층의 보스를 이길 수 없다.

길드의 형태가 아니더라도 상관없다. 하나의 울타리 속에 있기만 하면 된다. 동료, 전우애, 우정, 사랑, 상관없다.

‘놈은 날 죽이지 못했다.’

즉사의 저주라는 정체 모를 스킬에 의해 길드원이 전멸했을 때, 인한은 죽지 않았다.

또한.

‘박철환이 도망치기 직전에 펼친 공격. 고작 스친 정도에 불과했지만, 분명 들어갔지.’

거기에 격노한 놈이 그 ‘즉사의 저주’라는 걸 펼친 것이다.

박철환이 도망친 후 누구도 놈에게 공격을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박철환만은 성공했다.

길이 보인다.

‘반복하지 않아!’

탑을 오르며 멈추지 않았던 수많은 후회들.

그것들을 바꾼다.

“뭔가 결심한 모양이군.”

태호의 말에 인한은 눈을 커다랗게 뜨면서.

“예.”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임태호는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뭔 생각인지 모르겠다만 혼자 다니다 자빠져 죽지나 마라. 몸은 비리비리 해 가지고 말이야. 남자라면 근육이지! 객기 부리다 죽지 말고 근육부터 키워라!”

“그 비리비리한 놈한테 구해진 게 고작 몇 시간 전인데요?”

“뭐!? 내가 도망치려면 칠 수 있었던 일이었어, 새끼야!”

임태호는 으르렁대다, 순간 움찔하고 눈을 끔뻑이며 인한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세요?”

“아니, 너, 좀……?”

임태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분명히 몇 시간 전과 뭔가 달라졌다. 근데 뭐가 다른지 확실하게 짚을 수가…… 아니. 그래, 눈이 다르다.

눈에 생기가 있다. 여전히 표정에 음울한 기색이 다 사라진 건 아니지만, 분명히 분위기가 변했다.

“됐다. 아니다. 것보다 웃으니까 보기 좋구나! 꼭! 다시 보자!”

임태호가 손을 불쑥 내밀었다.

악수.

그러고 보니까. 이 형님 악수를 참 좋아했다.

“물론이죠.”

인한이 그 손을 잡았다.

“그럼, 이만 가마!”

임태호는 맞잡은 손을 크게 한 번 흔들고, 몸을 획 돌려 뚜벅뚜벅 걸어갔다.

인한은 임태호의 등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잠시만……!”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응? 뭐냐?”

“아, 저 음…….”

붙잡고 싶다. 가족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그렇게도 그리운 사람을 만났는데, 헤어지고 싶을 리가 없다.

같이 다니는 건 어렵지 않다. 나머지 해태 길드원들도 모으면 어떨까.

그건 정말 행복하고 즐거울 터다. 조금 불편함을 감수하면, 인한의 기억을 활용하면 오히려 길드원들과 같이 성장해갈 수 있는…….

하지만, 거기에는 미래가 없다.

인류의 미래가.

인한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미, 결정했다. 최인한. 정신 차려.’

인한은 고개를 휘휘 저었다.

“다음에 뵈면…….”

“뵈면?”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뭐? 푸하하! 싱거운 놈! 이미 형님이라고 부르고 있으면서! 것보다 몸 건강히 지내라 아그야!”

아그는 무슨, 알맹이 나이로 치면 그쪽이 아그구만.

임태호가 팔을 허공에 크게 흔들고 다시 걸어갔다. 그 호탕한 목소리에 가슴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인한도 어렵사리 몸을 돌렸다.

‘시작하자.’

여기서부터 걸음을 내디딘다.

대략적인 계획을 짜 뒀다.

그 첫 번째.

‘여기서 그걸 얻어 간다.’

인한은 서서히 걷는 속도를 올리다, 이내 달리기 시작했다.

‘최초로 튜토리얼을 끝낸 사람에게 주는 타이틀.’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튜토리얼을 끝내고 탑을 오르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튜토리얼을 그저 ‘끝냈을 뿐’이지 완벽하게 ‘클리어’한 것은 아니다.

‘<시작하는 자>.’

검은탑 랭킹 8위, 천궁검(天宮劍) 니시야마 겐지가 얻었다고 알려진 타이틀이었다.

* * *

인한은 쉬지 않고 달렸다.

인한이 멈추는 경우는 오직 슬라임이 나타났을 때뿐.

펑!

가던 방향에 나온 슬라임이 아니었음에도 인한은 굳이 돌아가서 슬라임의 핵을 뽑아냈다.

슬라임을 처리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튜토리얼 클리어를 위해 필요하기 때문.

‘이제 20개 정도 남았나.’

인한은 다시 땅을 박찼다.

튜토리얼존의 끝자락에는 커다란 공동이 존재한다. 공동의 끝에는 1층으로 갈 수 있는 이동진이 있다. 그때부터 천문을 얻게 되고, 본격적인 탑이 시작된다.

‘하지만 그 문으로 나가는 게 클리어가 아니었어.’

나중에 니시야마 겐지가 입을 열었다.

문을 열고 나가는 건 ‘클리어’가 아닌, ‘포기’라는 것을.

니시야마 겐지는 문을 열기 전 공동의 구석에 기형학적인 도형이 잔뜩 그려져 있는 곳을 발견했다고 한다.

쉽게 말해, 마법진을 발견했다.

그곳에 다가가 중앙에 서니 이런 문구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튜토리얼존 클리어 조건]

[슬라임의 핵 0/50]

[보상]

-타이틀을 얻게 됩니다.

겐지가 튜토리얼을 끝냈을 무렵엔 이미 수많은 사람이 탑을 오르고 있을 때였다.

인한의 기억으로는 이미 ‘육룡’이라 불리는 랭커들이 맹속도로 성장해 가던 시기였다.

그럼에도 뒤늦게 탑을 오르기 시작한 니시야마 겐지가 그들을 따라잡았다. 그는 말을 아꼈지만 헌터들은 모두 그것이 타이틀 덕분이라는 것을 짐작했다.

또 한 마리의 슬라임이 벽돌과 벽돌 사이에서 주르륵 흘러나와 인한에게 달려들었다.

인한이 손을 쭉 뻗었다.

펑!

인한은 땅바닥에 떨어진 놈의 핵을 주머니에 넣었다.

‘19개.’

* * *

[튜토리얼존이 도전자 ‘최인한’에 의해 클리어됐습니다!]

팡파르가 울려 퍼지며 요란한 알람이 허공에 떠올랐다.

<시작하는 자>는 최초 달성 업적이다. 알람은 탑에 있는 전 세계의 수많은 헌터들에게도 떠올랐을 테다.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그리고 인한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은 필연이다.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 사람이니까.

‘상관없어.’

이건 시작이다.

그들이 놀랄 일은 아직 한참 남았다.

인한의 눈앞에 천문이 빠르게 올라갔다.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이제부터 탑을 오를 수 있습니다.]

[천문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타이틀 : 시작하는 자]

[등급 : A+]

[효과 :]

1. 최초의 발걸음(패시브): 레벨업에 따른 스테이터스 포인트를 2만큼 추가로 획득합니다.

2. 최초의 도전자(패시브): 최초로 보스 몬스터를 사냥하는 데 성공하면, 보스에게 얻을 수 있는 보상 중 하나를 선택하여 추가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3. 또 한 번의 발걸음(패시브): 50층까지 최초로 발견한 던전에서 경험치 획득량이 20% 상승합니다.

[상세설명 : 홀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누구보다 빠르게 튜토리얼존을 클리어했습니다. 누구도 도전하지 못한 업적에 ‘아발론’의 ‘시초(始初)의 왕’이 축복을 내립니다.]

‘응?’

상세설명에 이상한 문구가 있었다.

아발론, 시초의 왕.

‘일단.’

인한은 생각을 떨쳐 내고 타이틀의 효과에 집중했다.

A+.

아직 탑의 초창기라 높아 봤자 아이템이든, 스킬이든 C등급 이상이 나왔을 리가 없는데 무려 A등급이다.

첫 번째 효과인 ‘최초의 발걸음’.

보통 레벨업을 하면 스테이터스 포인트 3을 획득한다. 그런데 이 타이틀의 효과에 따라 5의 포인트를 획득할 수 있다.

레벨업을 할 때 남들보다 1.5배 정도 더 성장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초의 도전자]는 아이템 획득 관련 효과다.

검은탑은 게임이 아니다. 몬스터가 죽었을 때 아이템이 툭 떨어지지 않는다.

헌터들이 직접 몬스터의 사체를 도축하거나, 몬스터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을 뒤져서 전리품을 챙겨야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 보스만이 도축을 제외한 방법으로 보상을 떨어뜨리는데, 이 보상은 아이템, 타이틀, 스킬, 추가 경험치 등등이 매우 희귀한 확률로 나오게 된다.

그런데 그것들 중 하나를, 그것도 선택하여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또 한 번의 시작]은 경험치 상승 효과. 경험치 상승 관련 스킬과 아이템은 극한으로 희귀하다. 엄청난 효과였다.

이 정도면 S급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

‘A+가 붙은 이유는 아마도 두 번째와 세 번째 효과에 붙는 패널티 때문이겠군.’

최초로 사냥한 보스에게만 아이템을 얻을 수 있고, 경험치 상승은 최초로 도전한 던전에서만 받을 수 있다. 세 번째는 50층이란 제한도 달려 있다.

‘무엇보다. 내가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는 분명 육룡이 10층을 향해 가고 있을 때일 거다.’

아직 누구도 들어가지 못한 히든 던전을 들어가거나 육룡의 성장을 추월하지 않는 이상 두 번째와 세 번째 아직 발휘하기 힘든 효과였다.

‘그럼에도 지금의 나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효과들이야. 이 타이틀 덕분에 천궁검이 초반에 랭킹 1위였던 것이로군.’

천궁검은 20층을 넘어갈 때까지 부동의 랭킹 1위였다. 하물며 솔로 플레이어였다.

하지만 20층에서 해태 길드가 창설되고 해태 길드가 누구보다 먼저 20층을 클리어해 버리며 차이가 벌어졌다.

겐지가 20층을 클리어하고 21층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해태 길드는 21층의 보스존 앞에 도착한 상태였다.

천궁검이 그때쯤 길드를 만든 이유도 이제 더 이상 타이틀이 소용없으리라는 것을 깨달은 탓일지도 모른다.

‘<시작하는 자>는 분명 확실한 패널티가 있는 타이틀이다. 하지만 나에겐 아니야.’

인한은 타이틀 창을 내렸다.

타이틀만큼이나 반가운 것이 있었다.

‘드디어 천문을 얻었군.’

인한은 미소를 지었다.

사용자 정보, 스테이터스, 스킬, 인벤토리, 퀘스트로 이루어진 천문.

그것들을 떠올린 순간 다섯 개 창이 동시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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